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2황자가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음?”
생각지도 못한 데미안의 보고에 로건이 고개를 갸웃했다.
실종되었다던 놈이?
“……황실의 반응은?”
“그게…… 처음부터 실종을 인정하지 않았던 터라…….”
“아, 그랬지. 하면 그 마법사들에 관한 이야기도 언급된 것이 없는가?”
“예. 전혀 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검은 뱀, 그놈들이 제국에 적대하는 것이 아니었나?
아니면 2황자가 그놈들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만한 역량이 있었나?
아니, 역시나 황실이 구한 것일까?
“아무래도 2황자가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것으로 봐야겠지? 그 마법사들과 근위대의 싸움도 사실이고?”
“예. 아세리안의 참상은 아직도 복구 중입니다. 제국이 굳이 그런 연기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검은 뱀, 그놈들에 관해선 파악된 정보가 있나?”
“죄송합니다. 아직은 파악된 것이 없습니다.”
“그런가…….”
톡. 톡.
팔걸이를 두드리는 로건의 안색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런데 공교로운 일이 있습니다.”
“음?”
“2황자가 모습을 드러낸 시기에 사방왕 중 하나가 움직였습니다.”
“뭐?”
웬만해서는 왕부를 떠나지 않는 제국의 사방왕들.
황제의 권위를 일부 대행한다는 그 지위의 무게만큼, 그들이 공식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황제의 명이 있을 때뿐이었다.
“동익왕이 황도 아세리안에 방문한 날 2황자가 다시 모습을 보였고, 그날 이후 2황자와 동익왕이 같이 동왕부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수상하군.”
“예.”
정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검은 뱀 문양의 마법사들도 그렇고 황실의 내부 사정도 모르니, 겉으로 드러난 수상함만으로 상황을 추리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아프군.”
로건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 쥐는데, 문득 자신보다 더 굳어 있는 데미안의 얼굴이 보였다.
“……짐작 가는 게 있나?”
그 물음에 데미안이 주저하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명확한 근거는 없으니 그냥 상상이라 하겠습니다.”
“상상?”
“폐하의 말씀대로 제국이 전쟁을 계획하고 있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일부러 왕국의 혼란을 만들어 낸 것이라면, 클레오 리버만의 배후로 의심되는 2황자가 그 계획의 실행자나 입안자쯤 될 겁니다. 이 가정들이 모두 진실이라면…….”
“전부 사실이다.”
배후가 아니라면 감쪽같이 사라졌던 클레오의 머리를 들고 나타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로건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리자 데미안 역시 더욱 굳어진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예. 그게 사실이라면 저는 2황자의 일에 동익왕의 힘을 더하려는 의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미 암살자까지 보낸 마당에 비슷한 일을 또 벌이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에는 큰 맹점이 있었다.
“아예 대놓고 전면전이면 몰라도 또 뒷작업을 한다고? 지금 우리 왕국에 혼란으로 이어질 만한 약점이 있던가?”
왕국의 모든 권력이 사실상 로건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지금의 맥라인 왕국이다.
반발할 만한 세력은 이미 뿌리를 뽑아 버렸고, 남은 이들은 모두 혈맹이나 그 이상의 확고한 신뢰 관계에 있는 이들뿐이다.
그렇다면 내부의 혼란을 도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쟁이 쉽지 않을까.
그것이 로건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송구하옵니다만 폐하, 왕국 내부에 큰 균열을 만들 수도 있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뭐?”
“지금은 폐하의 치세하에 좋은 일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아닙니다만…….”
데미안의 말이 이어지자 로건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폭탄이 왕국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자각한 것이다.
“이거, 자네가 아니었으면 발밑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있을 뻔했어.”
감탄한 왕의 눈빛을 데미안은 딱딱한 미소로 받았다. 칭찬에 취하기에는 지금 언급하고 있는 사안이 너무 무거웠으니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전과 같은 암살행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그쪽을 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리가 있어. 아니, 내가 적이라도 그것을 노리겠군. 허, 내 머리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게 새삼 아프게 와닿아. 고맙다, 데미안.”
과연 데미안 나달, 그란디아 해방 전선의 독사라는 이명이 아깝지 않았다.
과거 다뤄지는 말의 입장이었을 때는 그가 같은 아군임에도 섬뜩할 때가 많았다. 전체를 위해 일부를 희생시키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던 냉혹한 책략가였던 만큼, 자신 역시 언제 희생될지 몰라 찜찜하기만 했던 나날들이 그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던 것이다.
그런데.
“아, 아닙니다, 폐하. 공사가 다망하시니 거기까진 생각을 못 하신 거지요. 저야 항상 내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손사래를 치는 데미안을 보며 로건은 새삼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체감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녀석이었나.’
아마도 그가 전생에 겪었던 독사는 이런 데미안이 조국의 멸망을 겪으며 변화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런 부침을 겪지 않게 해 주겠다.’
로건은 속으로 그리 다짐하며 데미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런 일에 겸손할 필요는 없네. 부족한 점을 알고 있어야 채울 생각도 하는 거지.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다면 서슴없이 말해 주게. 내겐 자네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해.”
그에 데미안은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오히려 신하를 높여 주는 왕. 이런 왕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이 신하로서는 가장 최고의 선물 아닐까.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데미안은 작은 미소로 왕의 의지에 답했다.
“그럼 그 건은…….”
“찌를 약점이 명확하다면 미리 대응책을 준비하기도 쉽지요.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적이 수작을 걸어 온다면, 그 참에 그 문제까지 전부 정리하겠습니다.”
“그래. 믿겠다.”
“예!”
데미안과의 대화가 심중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 것일까.
클레이튼이 있는 마법 병단, 구 왕실 마탑의 건물로 향하는 로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내부의 문제에 대한 대비는 데미안의 주도하에 진행 중이니, 이제는 제국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전력을 메울 방안을 찾을 때. 다행히도 클레이튼이 그 대안이 될 만한 실마리를 찾아내고 있었다.
“추, 충!”
“폐하를 뵙습니다!”
“맥라인의 군주를 뵙습니다.”
탑의 앞에서 경비를 서던 기사와 병사들이 다가오는 로건을 보며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어, 어찌 기별도 없이 오셨습니까, 폐하.”
아무리 왕궁의 내부에 있는 탑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왕의 행차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심지어 호위기사도 없이 홀몸으로 나타난 로건을 보며 기사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사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클레이튼 공은?”
“아, 안에 계십니다. 기별할까요?”
“아니, 내가 들어가겠다. 중요한 일을 연구 중인 사람을 방해할 수는 없지.”
“예? 아, 예! 안내하겠습니다.”
황급히 돌아서는 기사를 따라 로건은 천천히 탑을 올랐다.
그란디아의 천년 역사 내내 왕조와 함께 이 땅에 존재해 온 마탑. 위자드 학파라는 진짜 이름 대신, 그란디아 왕실 마탑으로 불려 온 클래스 마법사들의 중심지엔 그 긴 역사를 증명하듯 고풍스러운 벽화들이 가득했다.
용과 거인, 숲의 요정과 대지의 요정들이 압도적인 힘으로 대륙을 종횡할 때, 도시의 높은 성벽에 기대 괴물들과 싸우고 이종족과 싸운 인간들의 역사가 새겨진 벽화들이.
‘천 년 전…….’
그란디아 왕국, 좀 더 정확히는 요새 도시 그랑이라는 대륙 동부 ‘인간족의 희망’을 일구어 냈던 마법사들이 새겨 놓은 벽화였다. 이종족들이 횡행하던 그 당시에도 인간의 명맥을 이어 온 역사의 현장들을 탑의 1층부터 쭉 새겨 놓은 것이다.
그것은 이전 위자드 학파의 자부심이자 천년 왕국 그랑디아의 자부심이기도 한 역사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지금, 클레이튼과 로건이 다시 만들고자 하는 보완책의 근본이기도 했다.
‘요새 도시. 정확히는 성에 새기고 유지할 수 있는 대마법진.’
이, 삼십 미터에 이르는 성벽조차 몇 번의 도약만으로 넘어 버리는 기사들이 즐비한 현대에서, 성벽은 그저 수비하는 측면에서 시간을 끄는 용도 이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대마법진이 새겨진 성, 요새라면 다르다.
‘역사에 따르면 그랑의 내부에서 싸우던 병력은 끝없는 활기와 지치지 않는 투쟁심을 얻었다고 했어.’
비록 영락한 그 후예들은 대마법사는커녕 마도사 하나 배출해 내지 못했지만, 그 흔적만은 마탑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다만 그랑은 그 역사만큼 너무나도 오래된 도시였기에 이제는 그 대마법진의 흔적 역시 희미해져 버렸다는 게 문제였다.
– ……다른 대마법진은 흐릿한 흔적마저도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벽의 보호 마법도 이젠 갱신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몇 년 안에 작동이 멈출 것으로 사료됩니다.
– 복구는? 불가능한가?
– 지금 수준의 마도학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전 왕실 마탑의 마탑주이자 현 마법 병단의 부단주 중 한 명인 체이슨 리버필드의 말은 지금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의 어려움을 방증했다.
전생의 그랑이 왜 그리도 쉽게 파괴되었는지 본의 아니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아세리안의 마법진들은 그리도 멀쩡하게 반응하는데 말이야.’
물론 아레스 제국의 역사는 그란디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그런 제국 역시 아세리안이나 기타 대도시의 대마법진을 응용하기는커녕 간신히 유지하는 게 고작이라는 걸 고려하면, 로건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은 무모한 도전일지 몰랐다.
하지만 클레이튼은 그것이 무모하지 않다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시작은 그의 제자 빅토리아가 이제는 그 검은 뱀들의 것이라 추정되는 연구 일지와 트리아의 국보, 6클래스의 아티팩트 이그니스에서 무언가 단서를 찾아내면서부터였다.
– 공통점이 있어요. 이 연구일지를 만든 학파와 이그니스를 만든 학파는 아마도 같은 학파일 거예요.
–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식. 마나를 볼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이그니스와 일지를 비교해 가며 마법진을 복원할 수 있어요. 나아가 그 응용도요.
그저 대량 생산되는 아티팩트의 품질을 높일 수 있을까, 라는 기대에서 시작한 일이 의외의 단서를 준 것이다.
– 반년. 반년이면 됩니다. 맡겨 주십시오.
클레이튼이 그렇게 장담하며 빅토리아와 연구를 개시한 지 벌써 4달이 다 되어 갔다.
‘이제는 슬슬 결과물이 나왔겠지?’
초조한 마음과 기대감에 로건의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이곳입니다, 폐하.”
그 기대감이 생각보다 컸던 걸까.
기사가 그리 말하며 문을 가리키는 순간, 로건은 노크도 없이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양각색의 액체가 담긴 이상한 유리병들이 잔뜩 늘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에 조금 당황한 로건은 원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쳤다.
“클레이튼 공! 연구는 어떻게……!”
힘찬 목소리가 공간을 울리자 유리병이 가득한 공간 안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컥!? 누, 누구야? 이 중요한 때에!”
“꺄악! 스승님! 눈 돌리지 마세요! 지, 집중! 아, 안 돼! 마나가……!!”
“이런 빌어먹을!!”
우우우웅.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로건의 안색이 굳어지기가 무섭게.
꽈아아아아아앙!
굉장한 폭음과 함께 왕실 마탑의 6번째 층이 통째로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