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1)
31화드드드드.
푸르릉.
열 필의 말이 집채만 한 수레와 짐마차를 이끌고 맥라인 영지에 들어섰다.
묵직한 무게를 증명하듯 땅바닥에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 주변을 호위하는 낯선 용병들과 물건들이 향하는 방향은 분명했지만, 근처에 접근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우, 냄새.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
“냄새가 좀 독한데.”
“말린 고기가 이렇게 냄새가 심할 수 있나?”
“몬스터 고기라잖아.”
“저게 그…….”
“대공자님 괴행?”
“몬스터 피를 먹고 힘을 얻었다는 소문도 있는…….”
“입 다물어, 이 미친놈아!”
“큰일 날 소리를!”
웅성웅성.
수군거리는 시선들 속에서 거래 이후 최대 물량의 카록 고기가 창고에 도착했다.
“역시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신의 계시야.”
“예?”
고약한 냄새에 코를 막고 있던 릭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들었다.
“어제 만든 것들을 여기에 쓸 생각이거든.”
“예에?!”
“그 통을 들고…… 넌 못 들겠구나. 내가 들고 올 테니 넌 준비나 하고 있어.”
“무슨 준비요?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
“지금 하잖아!”
“아, 꼭 저도 가야 합니까?”
“당연하지!”
“으아아. 싫어요, 정말 싫다구요!”
로건은 카록 고기를 사 모으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창고를 찾지 않았기에 릭의 거센 거부 반응이 무엇 때문인지 몰랐다.
하지만 카록의 고기를 보관해 놓은 창고의 문을 여는 순간, 그 이유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어마어마한 악취가 그의 코를 통과해 그대로 뇌를 강타했다.
짐 마차에서 맡은 냄새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 역한 냄새였다.
“우웨에엑!”
아마 뒤에서 한발 먼저 토하고 있는 릭이 없었다면 그 역시 바로 바닥에 구토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욱.’
포스를 컨트롤하여 후각을 마비시키자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코를 막고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견디지 못하고 구토를 한, 핼쑥해진 얼굴의 릭이 원망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흠! 자, 이 ‘중화제’를 카록의 고기에 뿌려. 약간만 뿌려도 색깔이 하얘지는 것이 보일 테니 표피가 다 하얗게 보일 정도로만 뿌리면 돼. 까만 건 독성이 남은 거야. 조심해.”
“으으으. 그걸 꼭 제가 해야…….”
“나도 할 건데?”
“흐흡.”
거의 울음을 터트릴 지경인 릭을 억지로 붙잡고 우선 100㎏ 정도의 육포만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자, 이제 이걸 갈아서 둥그렇게 만들어.”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릭은 더 이상 군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엄지손톱만 한 둥근 환 수백 개가 만들어지자, 자신이 이토록 고생한 작품의 용도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 왜 이렇게 만든 겁니까?”
“약처럼 보이지?”
“……예.”
“다행이다. 약으로 팔 거야.”
“예에에?!”
릭의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레졌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놀랄 일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오늘 만들었던 과정 다 기억하지?”
“아뇨. 전! 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뭘 했었죠? 하하. 하. 하.”
불길한 예감을 느낀 릭이 어색한 표정으로 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똑바로 기억했다는 표정이네.”
“윽!”
하지만 십수 년을 보아 온 죽마고우, 아니 죽마고주(主)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결국 피하고 싶었던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이게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싫습니다.”
전생에서 어떠한 궂은일도 거절하지 못하고 끝내는 처형까지 당했던 심복 릭이 단호하게 지시를 거부했다.
“릭.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절대 싫습니다!”
“릭! 날 못 믿어?”
“믿기 싫어어어어어!!”
반쯤 실성한 듯 괴성을 지르며 도망치는 릭.
결국 로건은 무보수 강제노동이 가능할 줄 알았던 심복에게 주당 100골드라는 보너스를 약속하고서야 간신히 일을 맡길 수 있었다.
물론, 그것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실험을 해 봐야겠는데…….”
“차라리 죽이세요. 전 그것만은 못합니다. 차라리 그냥 죽으렵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릭이 결사적인 표정으로 단호히 외쳤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릭은 로건이 찾는 실험 대상이 아니었다.
“넌 쓸 곳도 없잖아. 앞으로도 없을 테고. 당연히 아니지.”
“아, 다행이다. 감사…… 아?”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왠지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들어 주인을 흘겨보는데, 로건이 화제를 돌렸다.
“우리 주변에 밤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던가?”
“예? 무슨 밤일요?”
“왜, 그런 거 있잖아. 자식이 없다던가. 공처가라던가. 아니면 매일 아침 어깨가 축 처진 유부남이라던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 이거, 인마! 이거!”
로건은 결국 용병 시절 배운 저속한 손동작으로 밤일을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용케도 한 번에 알아들은 릭이 아주 쉽게 실험 대상을 설정해 주었다.
“드웨인 행정관님이 아직 자녀가 없으시잖아요. 결혼 10년 차이신데……. 어린 신부에게 늦장가 갈 때는 그리 좋아하시더니, 요새는 맨날 야근만 하시잖아요.”
“아……?”
그 듬직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슬픈 사정이 있었다니.
로건은 그렇게 실험 대상 1호를 결정했다.
* * *
“예?”
“남자한테 참 좋은 거라고, 그거.”
“예에?”
“거참,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이거 말이야, 이거.”
“아…….”
어찌 된 문명인들이 언어 대신 손동작만 알아본단 말인가.
당혹스러운 표정이 된 드웨인이 손안에 들린 정체 모를 환과 로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그래. 한 방이면 효과가 있다니까? 지금 카일에서 유명한 필립 상단의 특허 제품이야.”
정확히는 유명한이 아닌 유명해질, 특허 제품이 아니라 제품이 될 예정이었지만 로건은 떳떳했다.
‘어차피 증명된 사실이니까.’
그런데 왜 드웨인에게 실험을 하려 하는지는 애써 외면하는 로건이었다.
‘……확실하지만! 나도 들어만 봤지. 먹어 보진 않았으니까.’
상당히 양심에 찔렸지만 적어도 몬스터의 독성이 중화된 것만큼은 확실히 확인했다.
‘개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게다가 나름의 동물 실험도 거쳤다. 그것이 로건 최후의 양심이었다.
“정말, 정말이십니까?”
“그럼! 효과가 없으면 내가 드웨인에게 천 골드, 아니 가문에 만 골드 기부한다.”
“오! 정말 기부를 하신다고요?”
그 와중에도 본인에게 돈을 준다는 것보다 가문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걸 보니 더욱 양심의 가책이 일었다.
‘서로 좋은 일이야.’
사실 틀린 생각도 아니었기에 로건은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미 한참 저물어 가는 저녁.
등잔불을 켜지 않으면 글도 보이지 않는 집무실에서 외로이 장부를 펼쳐 놓은 덩치 큰 사내가 왜 이리도 안쓰러운지.
그래. 이 모든 것은 드웨인이 불쌍해서다.
“노안도 있을 텐데 얼른 집에 들어가.”
“아하하. 일이 좀 남아서.”
“어허! 그 남은 일 나중에 하고. 그거 진짜 비싼 거야. 나중에는 돈 주고도 못 구해!”
이 역시 정확히는 비싸’질’ 것, 돈 주고도 못 구하게 ‘될’ 것이었지만.
“그렇습니까…….”
확신 어린 표정 연기가 드웨인에게 조금은 먹힌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공자니이이이이임!”
대낮부터 자신을 찾아 달려오는 환한 안색의 드웨인을 보며 로건은 성공을 확신했다.
“그 약, 얼마면 됩니까?! 얼마면 되냐고!! ……요!”
생각보다 훨씬 격한 반응에 로건은 인체 실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10개들이 한 세트를 건넸다.
드웨인은 그 작은 상자를 마치 전설 속 용사가 성검을 받아드는 것처럼 무릎까지 꿇고 받아 들었다.
그 큰 덩치 안에 쌓인 가녀린 역사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볼 수 있는 단면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만으로도 가능성은 충분할 것 같았지만 로건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두 번의 실험을 더 했다.
의외로 또 한 명의 고개 숙인 남자였던 헤인켈은 약을 선물한 다음 날부터 그만 보면 엄지를 들어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게 무엇이냐?”
“남자에게 좋은 보약입니다.”
“으음?”
생전 처음, 아니 전생까지 포함해 두 생에 처음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고작 3일 만에 바로 나타났다.
“흠흠, 로건.”
“예?”
“……좋더구나.”
어색하게 딴 곳을 보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
약간은 붉어진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로건은 뿌듯함을 느꼈다.
‘잘하면 동생이 생길지도 모르겠는걸.’
흐뭇한 미소 속에서 로건은 상품의 가치를 확신하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해 줄 사람을 호출했다.
* * *
하지만 전생의 황금충은 로건이 부르는 가격을 듣고는 기겁했다.
[얼마에 파시겠다고요?]“개당 백 골드. 열 알 세트로 천 골드에 팔 생각이야.”
[……설마 귀족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호구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설마. 그래도 팔릴 거라 확신하는 것뿐이야.”
보수적인 그란디아 왕국만 해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귀족들은 정부나 애인을 따로 두는 경우가 허다했다.
풍류랍시고 온갖 문란한 사생활을 즐기는 귀족들도 상당수 있을 정도였다.
좀 더 자유로운 사상의 아레스 제국으로 넘어가면 그 정도를 넘어 기행에 가까운 성벽을 가진 귀족들도 많았다.
그리고 자연히 그런 문란한 생활 탓에 성 기능에 문제가 생긴 이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의 삶의 가장 큰 낙이 성생활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카록의 고기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해 준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전생에도 귀족들 때문에 그렇게 비싸진 것이고.’
물론 지금 로건이 팔고자 하는 30g짜리 한 알에 백 골드라는 가격은 전생에서 카록의 멸종 직전, 그 최고가보다도 비쌌다.
하지만…….
“한정 생산이라 말하고 적은 수량만 공급하면 그 이상의 가격에도 살 거야.”
[……효과만 확실하다면 그렇긴 합니다만.]“확실해. 그러니 처음 목표를 잘 찾아야지.”
[목표……요?]“그래. 이 약을 먼저 먹고 그 효과를 입증해 줄 사람.”
[아…… 그렇다면 막시밀리안 자작 같은 사람이 증명해 주면 확실하겠죠.]“그 바람둥이?”
[아무래도 그 분야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니까요.]왕국 수도에서 가장 유명한 바람둥이의 이름이 나오자 로건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바람둥이가 아니라 반대인 사람을 찾아야지. 이 약이 꼭 필요한 사람.”
[네? 아……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이 약은 정력제이기도 하지만 발기부전 치료제이기도 해. 사실 그쪽 효과가 더 크지. 그러니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이어야 효과가 확실하겠지.”
[……하지만 로건 님. 그런 은밀한 사정을 가진 귀족이 그걸 밝히면서까지 광고를 해 줄까요? 나 불능이었는데 이거 먹고 나았다고?]필립의 지적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지만 로건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광고하지 않아도 돼.”
[예?]“광고하지 않아도 되고, 본인이 직접 사지 않아도 돼. 수도에 거기에 문제 생긴 귀족들이 한둘인 줄 알아?”
[마치 수도에 가 보신 것처럼…….]필립의 말에 로건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어렸다.
수도? 당연히 가 봤다. 전생이지만.
“은밀한 소문만 퍼져도 벌 떼처럼 찾아올 거야. 바람둥이들이야 그때 알아서 사서 먹겠지. 그럼 우리가 가격 경쟁을 붙여도 되고.”
[……잠시만요. ‘우리’요?]“그래. 네가 팔게 될 것이니까.”
[혹시 그 약에 문제가 있으면 전 죽을 텐데요. 혹시 남의 목숨이라고 막말하시는 건…….]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을 건드리는 사업이니 확실히 위험부담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패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걱정하지 마. 효과 확실하고 부작용도 없어.”
[고작 세 번 실험하셨다고 해 놓고 너무 확신을……. 하아. 뭐, 원래 그러신 분이었죠.]로건은 ‘원래 그러신 분’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다행히 필립은 더 따지지 않고 일단은 수긍했다.
[좋습니다. 그 말씀 믿겠습니다. 그런데 물량은 얼마나 되나요?]“네 생각보다 꽤 많을 거야.”
[기적적인 약이라면서, 재료가 흔한 건가 보죠?]적어도 맥라인 영지의 남부 별장 창고에서는 그랬다.
“알면 깜짝 놀랄걸?”
[호오, 그렇군요. 역시나 이번에 보낸 약초와 카록의 고기가 재료인가 보죠?]뜨끔.
필립은 눈치가 지나치게 빨랐다.
“……예리한 녀석.”
[황당한 물품들을 계속 보내고 있는데 더 황당한 물건이 튀어 나왔으니 당연한 추론이죠.]“당연히 비밀인 건 알지?”
[……물론이죠. 귀족들이 알면 수상해서라도 안 사겠죠.]필립의 생각과는 달리 전생에 귀족들은 아예 덩어리로 스테이크를 해서 먹었다.
“……뭐, 그것보다는 레시피가 유출되면 안 되니까.”
[하아. 아무튼 새 사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제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네요. 어떻게 그런 아이템을 알게 되신 겁니까?]“그건 비밀.”
[거참. 로건 님도 신기한 분이십니다.]“크크. 걱정하지 마. 이것만 잘되면 네가 무슨 사업을 하건 팍팍 밀어 줄 수 있으니까.”
[……감사합니다.]“그럼 일단 네가 생각해 봐.”
[예? 뭘요?]“이걸 어떻게 파는 게 좋을까? 수도의 귀족들에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