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10)
310화
“아니, 제가 무척 위험한 실험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마음대로 들어오시면……!”
험상궂은 얼굴과 다르게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클레이튼이 왕을 향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 댔다.
할 말이 없는 로건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종과 호위기사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풍성하던 갈색 머리와 수염이 홀라당 타 버린 클레이튼의 얼굴, 특히나 정수리가 휑하니 빈 채 붉어진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평소 대하기 어려웠던, 험악한 얼굴에 말도 많지 않은 왕국 유일의 마도사가 보여 준 뜻밖의 모습이 모두의 웃음보를 자극한 것이다.
클레이튼은 한참 분노를 쏟아 낸 후에야 그 상황을 깨달았다.
시선을 돌려 마주치는 족족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숙이는 시종들의 모습과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정수리에 바람이 스치는 감각이 다시금 그의 분노를 자극했다.
“정말 큰일 날 뻔한 겁니다! 저나 폐하는 그렇다 치더라도, 빅토리아 그 아이는 진짜 죽을 수도 있었어요! 아무리 폐하라도 이번 건은 정말! 정말로 반성하셔야 합니다!”
“……면목 없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오.”
정수리를 훤히 드러내고 성을 내는 클레이튼의 모습은 꽤 우스웠지만 로건은 웃을 수 없었다.
문밖에 있었던, 그를 안내했던 기사마저도 중상을 입고 사제들의 치료를 받고 있었으니, 빅토리아는 클레이튼의 필사적인 보호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죽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심각한 일을 저질러 놓고 고작 실험 하나에 그런 폭발이 일어날 줄 몰랐다는 핑계를 대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비루한 일이었다.
“빅토리아 그 아이는 왕국 마법계에, 아니 세계 마법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천재입니다! 우리는 그런 천재를 잃을 뻔한 겁니다!”
클레이튼의 말이 다소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리아, 그 아이는?”
“큰 상처는 없지만 충격이 상당한 모양입니다. 서클이 흔들렸을 테니 당분간은 요양을 시킬 생각입니다.”
“……어쩔 수 없지. 리아에겐 내가 따로 찾아가서 사과하겠네.”
꼭 클레이튼의 성난 얼굴이나 옆에서 느껴지는 빅토르의 따가운 시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왕국의 인재를 허무하게 잃을 뻔했어.’
크게 다친 기사에게도, 빅토리아에게도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섭섭지 않은 보상을 해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로건이 계속해서 저자세로 나오자 클레이튼 역시 이내 분노를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정수리의 휑한 느낌은 절로 뒤끝이 생기게 했다.
“……외부에는 제 실험 실패로 공표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폐하의 계획이 늦춰지는 건 감수하셔야 합니다. 이 고비만 넘었어도 코앞이었는데…….”
“아니, 그건……!”
클레이튼의 말에 바닥으로 향해 있던 로건의 고개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실험 기구도 전부 날아갔습니다. 다시 준비하는 데만 족히 보름은 걸릴 겁니다.”
그러나 이내 이어진 너무나도 당연한 말에 로건은 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그리고 이 계획의 주도자는 제가 아닌 리아입니다. 그러니 그 아이가 복귀할 때까지는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없지요.”
“그 아이의 역할이 그렇게나 컸었나?”
“예. 폐하께서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요.”
클레이튼의 말에 로건은 미안해하는 와중에도 묘한 호기심이 들었다.
* * *
“분명히 봤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던 푸른 머리의 소녀가 천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허공을 살짝 움켜쥐는 손. 그러나 적색과 푸른색의 오드아이는 눈앞에 있는 제 손이 아닌 어제의 폭발을 다시 그려 보고 있었다.
‘제대로 된 마법도 아니었는데.’
순수한 마나가 준비한 시약들과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섞이면서 일어난 폭발. 애초에 연구하고자 하는 결과와는 전혀 다른 참상이었지만 빅토리아는 그 안에서 생각지 못한 영감을 얻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방어 마법을 전개하는 것도 잊었을 정도로.
그 때문에 스승이 상당한 부상을 얻었고, 자신 역시 심장에 쌓인 서클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런 대가를 치른 만큼 그 인상적인 광경은 뇌리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소량. 스승님의 마력(Mana force)을 뚫고 피해를 줄 정도의 마나(Mana)는 절대 아니었어.’
하위의 이능이 상위의 이능을 순간적으로라도 압도하려면 그 에너지 총량이 월등해야 한다.
그 당연한 상식이 무너지는 광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보였다.
‘마나가 시약들과 섞이면서 한도 끝도 없이 응축됐어. 일반적인 마력하고도 달라.’
19살의 나이에 이미 5서클의 끝에서 초인의 벽을 바라보는 재능은 그 기묘한 광경 속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본 것이다.
‘역시 다중 속성의 발현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어.’
마법사가 마도사가 될 때, 한 가지 속성만 다루던 서클 마법사 대부분은 또 하나의 속성을 터득한다.
그녀의 스승인 클레이튼 역시 본래 가지고 있던 대지의 속성에 바람의 속성이 더해져, 말도 안 되는 원거리에서 다수의 전투 골렘을 다루는 일이 가능해진 것처럼.
그것은 오러유저 대부분이 새로운 능력을 얻는 대신 종합적인 능력이 상승하는 형태로 각성하는 것보다도 그 비율이 훨씬 높았다. 명확히 조사된 바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그리고 마도사들은 그 이유를 섭리를 다루기 위해서는 한 가지 속성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스승님이 가진, 누군지 모를 자들이 남긴 연구 일지를 통해 마법진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며 빅토리아는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마법진은 마나가 가진 속성과 상관없이 그 효용을 발휘한다. 굳이 섭리를 움직이는데 다중 속성의 마나를 품을 필요는 없어.’
거기에 역사에 남겨진 대마도사들의 이야기가 그녀에게 확신을 더해 주었다.
대륙에 공식적으로 대마도사가 등장한 지도 이미 삼백 년이 넘었다. 그리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 걸출한 이들의 대다수는 한 가지 속성이 아닌 클래스 마법을 구사하는 위자드 학파의 갈래들이었다. 그렇기에 서클 마법의 마도사들이 다양한 속성을 다루는 것이 대마도사가 되는 길이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극히 일부.
삼백 년이 아닌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손짓 한 번으로 한 국가를 사막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겁화(劫火)의 마도사나 인위적으로 산맥을 일으켰다는 대지의 지배자 같은 마도사들의 설화가 존재했다.
물론 설화이니만큼 당연히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런 설화 속에 이름을 남긴 마도사들은 동시대에 존재했던 흔한 위자드 학파의 대마도사들을 압도했다는 기록도 엄연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그 설화 속 마도사들이 경지를 넘으며 다중 속성이 아닌 한 가지 속성의 가능성을 극대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의 폭발은 그 상상이 단순히 상상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여 주었다.
“분명히 가능해.”
확신 어린 음성이 방 안을 울리는 동시에 그녀의 손끝을 따라 황토색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장에 자리한 서클이 흔들렸으니 한동안은 요양에 집중하며 마법 사용을 자중하라는 스승의 충고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머릿속 한구석에 묻어 두었다.
‘증명은 약간의 마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괜찮을 거야.’
우웅.
그 의지에 화답하듯 대지의 마나가 미미한 진동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의지에 따라 움직인 마나는 어제 보았던 폭발의 패턴을 그대로 복사하며 작게 응축되기 시작했다. 어제의 경험을 토대로 그녀가 구상하고 생각해 왔던 단일 속성의 강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다.
만약 실패하여 또다시 폭발을 만들어 낸다면 정말 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 이 순간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일단 해 봐야지.
그녀와 오빠의 인생을 구해 준 은인이자, 왕국의 군주가 가진 지론. 그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이루어 낸 왕국의 성과만을 떠올리며 빅토리아는 자신의 영감을 따랐다.
‘일단 해 본다!’
그리고 그 기대는 바로 보답받았다.
우우웅.
황톳빛 대지의 마나가 진한 갈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보는 순간, 빅토리아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자신의 마나가 스승의 마력과도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이음새가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흔들렸던 심장의 마나서클들이 그 깨달음에 호응하듯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적어도 몇 주의 요양이 필요할 것이라는 스승의 걱정이 무색하게 변화하는 서클.
빅토리아의 얼굴이 환희에 물들고, 제자리를 찾은 서클이 또 하나의 서클을 만들어 내려는 순간.
“리아!”
벌컥 방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튀어 들어왔다.
“누가 오셨는지 봐……? 어?”
“이, 이…….”
일그러지는 빅토리아의 얼굴.
마력으로 변해 가던 대지의 마나가 그 순간 균형이 깨어지며 다시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 하…….”
본능적으로 무언가 타이밍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빅토르가 어색한 웃음을 지을 때.
“꺼져! 이 바보야!!”
빅토리아는 자신이 평생 처음으로 제 오빠에게 욕을 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오빠를 향해 뻗은 손가락에서는.
우르르릉.
꽈아아아앙!
황토색 빛이 새어 나오며 2층 저택의 벽면 한구석을 터트렸다.
* * *
“……그런가. 그래도 뭐 부상을 다 회복했다니 다행이긴 한데.”
빅토리아를 찾아온 로건의 어색한 시선이 슬쩍 구석으로 향했다.
한쪽 건틀릿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채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벌을 서고 있는 빅토르.
오러유저에게 저게 무슨 고통을 주겠냐마는 표정만큼은 충분히 괴로워 보였다.
그런 그의 옆에서 쓸데없이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클레이튼이 끝없는 잔소리를 퍼붓고 있었다.
“자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나? 대륙 역사상 최연소 마도사가 탄생할 뻔했는데……. 역사를 망친 거야. 역사를…….”
‘귀에서 피 나겠다.’
그런 생각에 헛웃음을 짓던 로건이 다시 빅토리아를 돌아보았다.
“그 나이에 벌써 마도사의 경지라니. 놀랍구나, 리아.”
“아, 아닙니다, 폐하. 저 바보 같은 오빠 때문에 언제 다시 그런 기회가 올지…….”
“한 번 겪어 봤으니 반드시 기회가 다시 올 거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울상을 짓고 있는 남매와는 달리 로건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빅토리아가 역사에도 보기 드문 마법의 천재라는 것은 클레이튼을 통해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 나이 때문에, 그리고 임박한 전쟁 때문에 설마 그녀가 그 안에 초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반쯤 발을 들인 것 같지 않은가.
당사자는 감정의 기복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로건의 초감각에는 빅토리아의 심장에서 이미 반쯤 형성된 여섯 번째 서클이 인식되고 있었다.
대마법진에 대한 연구가, 제국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가 또 하나의 강력한 전력을 일궈 낸 것이니 어찌 뿌듯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 그 시기는 네 생각보다 훨씬 빠를 거다. 그러니 그만 오빠를 용서해 주거라.”
로건의 말에 조금 풀어지려던 빅토리아의 얼굴이 이내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용서 못 해요!”
“응?”
“오러도 숨겨 놓고, 이게 무슨 가족이야. 치…….”
오랜만에 보는 빅토리아의 투정.
아마도 저택이 터져 나갈 때 빅토르가 오러를 보인 모양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그 작디작던 꼬마는 이제 어엿한 숙녀의 태가 나고 있었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마주한 옛 모습의 흔적은 로건을 절로 미소 짓게 했다.
“내가 시킨 일이다. 그러니 화를 내려면 나한테 내야지”
“폐, 폐하께 감히 어떻게……요.”
“내게 화를 낼 수 없다면 오빠도 그만 용서해 주지 그러냐.”
“……예.”
아직 삐진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거야 빅토르가 알아서 해결할 일.
로건은 그저 사과차 방문한 곳에서 의외의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에 흡족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 대마법진의 발현과 응용에 관한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클레이튼의 전언을 들은 로건의 얼굴에 다시 한번 함박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