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세상만사 좋은 일만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은 진리.
하지만 로건은 공교로운 타이밍에 들어온 보고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제국 동왕부의 사절? 제국의 사절이 아니라?”
“예. 최근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왕국과의 무역에 대한 조율 때문이라고는 합니다.”
“필립이 일을 너무 잘해서 문제인가.”
“그것보다는 다른 이유가…….”
“뭐, 거절해. 왕실에선 무역에 직접 손을 대지 않는다고.”
맥라인 상단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듯한 헛소리였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며 코걸이라 댈 핑계야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그게,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왜?”
“사절로 방문하는 이가 공주라고 합니다.”
“공주?”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로니안 백작과의 혼약을 다른 방문 사유로 내걸었습니다.”
“혼약? 아니 일단 혼약은 둘째치고, 그걸 당사자가 직접 온다고?”
“저도 처음 들어 보는 경우이긴 합니다.”
보고를 하는 드웨인의 표정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왜 드웨인과 같이 들어왔나 했더니.’
로건의 시선이 자연스레 드웨인의 옆에 서 있던 데미안에게로 향했다.
“루이사 폰 아세리안, 향년 29세의 공주가 있긴 합니다. 제국의 왕족이 그 나이 때까지 혼인하지 않은 건 드문 경우인데다가, 무슨 사정인지 외부 활동에 대한 기록도 없습니다.”
“……작정하면 생판 모르는 여자를 공주로 위장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군.”
“예.”
“폐하, 그건 너무 가신 게 아닐지……. 만약 혼약이 성사되면…….”
드웨인이 식겁하며 끼어들었지만 로건과 데미안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성사 안 돼.”
“예. 그럴 리 없습니다.”
두 사람의 확신 어린 대답에 드웨인이 울상을 지었지만 로건은 그런 가신의 심정을 헤아려 줄 여유가 없었다.
‘무언가 수작을 부릴 것이라곤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주? 혼약?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접근이었다.
그렇게 황당해하고 있는데 데미안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일단 사절을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일반 귀족도 아니고 무려 제국의 왕족이 혼약을 신청하는데 거절한다?
당장 싸우자는 말이 될 것이다.
물론 제국과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로건은 제국이 전쟁을 일으킬 것을 알고, 제국도 로건이 제국을 적대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국가 간의 일이라는 게 그렇게 감정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라.
‘아직은 아냐. 마법진도 그렇고.’
부족한 전력을 가진 이쪽에서 먼저 전쟁의 빌미를 줄 생각은 없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군.”
“예.”
“로니안더러 입궁하라고 하고, 아예 사절에 대한 ‘보호’ 책임까지 맡겨. 어떤 사고도 생겨서는 안 돼? 알지?”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예측과 다른 이 움직임에 대해 계획을 다시 세울 필요도 있었다.
“우리가 걱정했던 그 일, 그게 꼭 사절이 와서 해야 할 일은 아니잖아? 물론 다른 수작을 부린다 해도.”
집무실에서 돌아 나오는 길.
로건이 찜찜한 마음에 혼잣말하듯 묻자 데미안이 바로 동조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왜 왔을까?”
“…….”
그 말에는 곧바로 답을 하지 못하던 데미안이 이내 자신 없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공주가 아니라, 첩자일 가능성밖에 없을 듯합니다.”
“왕성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예. 기사들에 대한 소문도 있으니, 제국의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긴 하지.”
데미안의 말에 로건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비밀을 지킬 것을 당부하기는 했지만, 군단의 기사들에게 보급된 아티팩트만 무려 3만 개에 달했다. 그 모든 인원이 철통같은 보안을 지킬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였다.
자연히 맥라인 기사들이 가진 아티팩트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퍼지고 있었으니, 제국이 그에 대해 알아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게다가 최근 마탑의 폭발 사건도 있었으니까요.”
“크흠. 흠. 그게 또 그렇게 연결이 되나.”
그 사건을 유발한 당사자로서 로건은 면목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티팩트의 수급이야 타렌에서 하고 있으니 왕성에서 알아낼 건 없을 것입니다만, 일단 그쪽에 초점을 맞춰 준비하겠습니다.”
아차.
그 말을 듣고 나니 또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대마법진에 대한 연구.
‘아직 채 완료되지 않았는데.’
설마 그 실수가 이렇게 제국하고 연결이 되나, 하는 생각에 로건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탑에 접근하는 건 절대 금지시켜. 그게 아니더라도 숨겨야 할 것이 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로니안에게도 내가 그리 당부해 놓지.”
“예.”
그렇게 로건을 비롯한 맥라인의 수뇌부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불과 일주일 후, 동왕부의 사절이 맥라인 왕성에 들어섰다.
* * *
– 제국 동왕부의 사절이자 공주, 루이사 폰 아세리안 님 드십니다.
“들라 하라.”
대전의 문이 열리고 천천히 들어서는 일행.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가장 앞에 선,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었다.
이 시대의 귀족 여인들이 흔히 입을 법한 일반적인 외출용 드레스. 달리 말하면 제국의 왕족이 입을 만한 옷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수한 차림새와는 달리, 여인의 얼굴만큼은 빛이 났다.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 투명하게까지 보이는 새하얀 피부, 수려한 이목구비에 유독 붉은 입술. 거기에 허리까지 흘러내린 새까만 머리카락은 그 어떤 장신구보다도 뚜렷하게 그녀의 미모를 강조해 주고 있었다.
“허…….”
“과연, 공주라더니…….”
“놀라워…….”
지켜보던 귀족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고, 상석에서 내려다보던 로건의 눈빛 역시 흔들렸다.
‘진짜 공주인가?’
당연히 가짜일 것이라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예상 밖의 외모에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대에선 아무리 태생이 예쁜 아이더라도 관리받지 못하면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 혹은 기사나 마법사 집안에서 자라지 않는 이상, 피부가 매끈하고 치열이 고르기만 해도 대충 예쁘고 잘생겼다는 평을 들을 수 있을 정도.
특히 피부가 희고 잡티 하나 없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귀한 집에서 귀하게 컸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것이 마법으로 위장한 것이 아닌 바에야 말이다.
로건이 아무래도 공주가 맞는 듯한 여인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호위기사 둘과 시종 넷만을 뒤에 남겨 둔 공주가 열 발짝 앞으로 걸어 나와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루이사 폰 아세리안이 맥라인의 태양을 뵙습니다.”
이제는 로건의 별명처럼 굳어져 버린 칭호.
그 말을 하는 어조와 행동거지 하나하나까지도 확실히 제대로 교육받은 티가 났다.
‘아주 제대로 교육받은 첩자이거나, 진짜 공주거나.’
일단 제국의 수작이라면 마법의 흔적부터 찾는 것이 우선일 터였다.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공주. 예상치 못한 방문이라 준비가 다소 부족한 것을 양해 바라오.”
마탑, 아니 마병단에서 먼저 살피긴 했겠지만, 공주의 몸을 자세히 수색하진 못했을 것이다. 로건은 의례적으로 응대하며 조심히 포스를 움직여 감각에 집중시켰다.
그 순간 확장된 초감각이 근거리에 있는 공주의 전신을 샅샅이 훑었다.
잠시 후, 형식적인 미소를 띠고 있던 로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표정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듯, 공주는 부드러운 미소로 로건의 인사에 답했다.
“아닙니다. 급작스러운 요청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실례를 나무라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폐하’.”
그 호칭 하나에 담긴 의미를 아는 이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제국의 왕족이 타국의 왕에게 전하가 아닌 폐하?
놀란 시선이 모이는데,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로건이 다시 미소를 띠며 공주를 바라보았다.
겨울을 향해 접어 들어가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더운 듯 땀을 주르륵 흘리는 로건의 모습이 조금은 생소하게 대신들의 눈에 박혀 들었다.
“무역에 관한 일이야 실무진들이 알아서 할 일이겠지만, 혼담에 관한 것은 정말 뜻밖이었소. 그것도 당사자가 직접 올 줄이야. 특별한 사유가 있는지 묻고 싶소.”
“사유랄 게 특별히 있겠습니까. 그간 건강이 좋지 못하여 혼기를 놓친 처녀가 마음이 급하여 직접 발걸음한 것이라 봐주시면 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공주의 농담에 근처에 있던 이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고, 로건 역시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아우를 궁에 부르긴 하였으나, 공주의 행차가 생각보다 빨라 시일이 맞지 않은 듯하오. 하니 조금만 궁에 머물며 기다려 주시오. 환영 파티 역시 준비해 두었으니 편안히 즐기시면 될 것이오.”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제야 공주의 호칭을 인식한 로건이 살짝 안색을 굳혔다.
* * *
“정말 공주가 맞긴 한 것 같습니다만, 어떠셨습니까.”
대전에서의 만남이 끝난 뒤, 빠르게 곁으로 다가온 데미안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로건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우고 굳은 얼굴로 답했다.
“마도사다.”
“……예?”
“그것도 그 검은 뱀, 그놈들과 같은 마나를 쓰는 마법사야. 진짜 공주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그 말에 데미안의 표정도 확 굳어졌다.
마도사? 초인?
그 젊은 여인이?
“하지만 마병단에서 이미 검사를…….”
“기존의 마법 체계와 다르다. 작정하고 숨기는 데에 특화된 마나야. 나도 놈들을 상대해 보지 않았다면 그냥 속아 넘어갔을 거다.”
로건은 좀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감각을 극대화해도 특별히 걸리는게 없었다. 괜스레 드는 불길한 예감에 특성까지 발동하여 모든 힘을 기감에 집중시키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은밀하게 가려진 6개의 서클을.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제국의 공주가 마도사라는 것만으로도 놀라울진대 심지어 그 근본이 검은 뱀, 그놈들이라…….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럼 이게 대체…….”
앓는 소리처럼 나온 데미안의 질문 아닌 질문은 로건의 심정을 대변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 알 수가……. 그럼 아세리안의 일은 대체 뭐였지?”
“경계 병력을 최대한으로 늘리겠습니다. 다소 위화감이 들더라도요.”
“아니, 아니야. 기존 체계를 유지해라. 괜한 의심을 심어 줄 수는 없지.”
“그래도 마도사라면…….”
“놔둬라. 빅토르와 부르델을 붙이겠다.”
“아, 그러시다면야.”
부르델은 아예 멀리서 감시만 하게 하고, 빅토르에겐 오러를 숨긴 채 호위하라 하면 될 것이다.
웃고 있던 공주, 루이사의 얼굴을 떠올린 로건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그 시각.
왕궁의 반대편에서는 공주와 그 측근들이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확인해 보셨습니까?”
“…….”
“공주님?”
“아니, 도무지 모르겠어. 내가 파악 못 할 정도면 2황자가 말한 것처럼 중급 수준도 아니야.”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루이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혹시 특별한 아티팩트라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란디아의 보물, 지배자의 왕관은 유명한…….”
“그래 봤자 5클래스의 아티팩트야. 내가 고작 그 정도도 꿰뚫어 보지 못할까.”
공주의 차가운 눈초리에 호위기사, 아니 호위기사로 위장한 탑의 병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멍청한 놈.
‘하여간 세뇌한 놈들은 지능이 너무 떨어진다니까.’
혀를 차며 돌아선 루이사는 잠시의 고민 끝에 다시 은밀히 지시를 내렸다.
“왕이 무력을 쓰는 것을 봐야겠다. 황금빛 포스를 썼다는 소문만으로는 불확실해. 그게 정말 ‘그 힘’인지, 아니면 그저 특이한 노란색 포스인지는 장로인 내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으니.”
로건 맥라인.
그자가 과연 대스승이 찾는 존재가 맞을까.
만약 맞는다면…….
루이사의 피처럼 붉은 혓바닥이 그보다 붉은 입술을 요염하게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