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처음 뵙겠습니다. 로니안 맥라인입니다.”
“루이사 폰 아세리안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작님.”
루이사가 차분한 미소로 로니안의 인사를 받았다.
수수한 복장과 차분한 태도, 그래서 그런지 더 화사하게 느껴지는 미소가 로니안의 이목을 끌었다.
“제가 너무 늦었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서두른 탓이죠. 그나저나 기분 나쁘지는 않으셨나요?”
사과에 대한 답으로 돌아온 묘한 반문.
“예?”
그에 로니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루이사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미 혼기도 한참 지난 여자가 어린 백작에게 수작을 거는 꼴이 되었잖아요.”
그리 말하며 찻잔을 집어 든 루이사가 자연스레 다리를 꼬자 옆이 트인 드레스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다리가 로니안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국의 공주에 비하면 제가 더 부족하지요.”
얼굴이 붉어진 로니안이 애써 시선을 돌리는데, 새빨간 입술에 한층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루이사가 그런 로니안을 응시했다.
“그럼 제가 제국의 공주가 아니라면 제 말을 인정하신다는 거네요?”
따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였지만.
“아, 그게 그 뜻이……, 죄, 죄송합니다.”
당황한 로니안이 손사래를 치다 바로 고개를 숙였다.
루이사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었다.
“죄송해요. 제 장난이 지나쳤네요. 천재 기사로 유명하시다더니 생각보다 순……수하시네요.”
“그게 저……, 죄송합니다.”
붉어진 얼굴로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는 로니안을 웃는 얼굴로 바라보던 루이사가 말했다.
“혼인이야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머무는 동안 잘 부탁드려요, 백작님.”
“……저야말로.”
혼약을 빌미로, 그것도 그 당사자가 직접 방문한 사절.
게다가 그 혼약의 대상인 로니안 맥라인 백작이 공주의 호위로 배정된 것은 순식간에 수많은 소문을 만들어 냈다.
제국의 공주와 왕의 동생.
혼담이 오가는 아리따운 미녀와 천재 기사.
그리고 일시적이기는 하나 호위기사와 레이디.
그야말로 어느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같은 수식어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로니안 백작이 수행 중에 만났던 연인이라던데.”
“대박! 그럼 연인을 찾아서 이곳까지 온 거야?”
“그래. 제국의 공주가 왜 직접 여기까지 왔겠어.”
등등의 온갖 소문이 저잣거리에 넘쳐났다.
거기다 왕성 안에서 로니안과 루이사 공주가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함께 다니는 것이 여러 사람들에게 목격되면서, 소문은 금세 뚜렷한 형태를 갖춰 갔다.
둘의 결혼 날짜가 임박했다.
제국과 왕국의 동맹이 가까워졌다.
진실을 아는 이들로선 헛웃음이 나올 만한 형식으로.
* * *
“오늘은 어떻더냐?”
“별다른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저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소 굳은 표정의 동생이 그리 말하자 로건은 좀 어이가 없었다.
“사흘 내내? 마탑이나 그런 곳에 가 보겠다는 이야기도 없고?”
“예, 그렇습니다.”
“……이상하군. 네게 뭔가 해 달라는 것도 없었고?”
“아,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로건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로니안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저와 형님의 대련을 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처, 천재 형제들의 무위를 구경해 보고 싶다면서요.”
아무리 형이라지만 일국의 왕에게 구경거리가 되어 달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망설이는 동생의 태도야 이해가 갔지만, 일반적인 궁중의 처자가 궁금해할 수도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대체 무슨 목적일까?’
루이사가 왕성에 온 지 고작 3일.
올 때도 그러했지만, 그 이후의 행동까지도 모두 예측을 벗어나고 있었다. 로니안과 나누는 얘기 또한 사소한 신변잡기에 관한 것뿐이었으니, 더욱 골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방심할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수작은 부리고 있고?”
“예. 점점 더 노골적으로 수를 쓰고 있습니다. 억지로 잡아 뒀다가 이렇게 헤어진 후에야 밀어 내는 것도 고역이고요.”
로니안이 쓴웃음과 함께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손가락 끝에서 회색빛 기운이 스멀스멀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루이사를 보기 전에는 방심하고 있었다.
오러유저가 아닌, 데미안이나 드웨인 같은 무력이 약한 이들만 단속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 정신을 조작하는 마법이요? 뇌를 건드린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 마도사나 오러유저한테는 무리일 겁니다.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의 의지와 이능을 극복하고 정신을 교란하는 것보다야 그냥 죽이는 게 차라리 쉬울 것입니다.
클레이튼의 호언장담에 연합의 전투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이 더해지자 확신하고 말았다. 검은 뱀 놈들의 마법은 오러유저에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게다가 포스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경험했으니 자연히 방심한 것이다.
하지만 루이사를 만난 다음엔 경각심이 짙어졌다.
자신이 특성까지 쓴 뒤에야 간신히 간파한 수준 높은 은폐 마법. 적들은 알려지지 않는 마법을 쓰는 이들이었는데, 상식에 얽매이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그제야 찜찜한 가정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가일이 오러유저라는 것을 알면서도 쓴 마법이었어. 왜 그리 쉽게 파훼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러유저에게도 통하는 정신 마법이 있는 거야.’
그래서 동생에게 각별히 주의를 시킨 결과가 저것이었다.
“희미한 마력이 별다른 전조도 없이 머릿속으로 파고드는데, 벌써 세 번째 겪는 것인데도 여전히 감지가 어렵습니다.”
오러유저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것도 아주 은밀한 정신 마법.
루이사는 로니안을 만난 첫날부터 은밀히 마법을 걸어 왔다.
그리고 그날, 로니안은 처음으로 로건의 말에 반발했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궁중 처자였습니다. 형님이 과민하신 것 같습니다.
마도사라는 것을 미리 일러 뒀음에도 나온 어이없는 대답.
그제야 동생의 눈동자에 스친 회색빛을 확인한 로건은 아예 작정을 하고 동생의 머릿속에 포스를 쏟아부었었다.
“저는 한 번 당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데도 몰아내기가 이렇게 힘든데 형님은 어찌 한 번에 가능하셨던 겁니까? 경지의 차이라기엔 좀…….”
“그건 솔직히 나도 모르겠구나.”
며칠 전 일은 로건에게도 의외였다.
그저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한 듯하여 먼저 탐색을 하려 한 것뿐이었다. 더하여 마법에 관한 것이니 바로 클레이튼을 호출할 생각이었는데, 회색 마력은 그저 탐색을 위한 자신의 포스에도 견디지 못하고 흩어져 내렸다.
생각보다 쉽게 마법이 깨진 것에 당황한 것도 잠시, 곧바로 그 흩어지는 패턴을 기억해 동생과 빅토르, 부르델에게까지 요령을 가르쳐 주었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누구보다 포스를 민감하게 운용할 수 있는 동생조차도 저렇게 식은땀을 흘리며 힘겹게 몰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찌 된 영문인지 추측할 만한 근거라고는 그저.
‘그 검은 뱀 놈들이 빅토르에게 말했다는 특수한 색의 포스가 가진 특성, 그게 정말인 걸까.’
적이 교란을 위해 흘린 거짓 같은 정보가 전부.
그러니 깊게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진 로건이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기는데.
“……어쩌면 공주가 마법을 쓴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생의 엉뚱한 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뭐?”
“단순히 대화만 하다 보면 확실히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괜히 마법을 써서 발각되지 않았다면, 저는 그 여자가 첩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살짝 붉어진 동생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부끄러움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거 이거, 그 여자가 마법으로 수작을 부린 게 차라리 다행이구나. 안 그랬으면 내 동생이 알아서 제국의 공주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뻔했어.”
“아니, 형님! 그 정도까지는……!”
피식.
당황하는 동생의 모습이 재밌어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눈앞에 있는 동생은, 은하검이라는 비기까지 성취한 동생은 분명히 전생의 동생보다 무력이 뛰어날 것이다.
하지만 몰락하다 못해 박살이 난 가문에서 홀로 성장하여 오러유저가 되었던 그때의 동생보다 정신력이 강할까?
독기가 있을까?
‘그럴 리가.’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동생은 분명 여전히 뛰어난 천재였지만, 한편으론 평범한 20대 초반 젊은이의 감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새삼 심란했다.
분명 형으로선 동생이 ‘그란디아의 마검(魔劍)’이나 ‘차가운 불꽃’ 따위의 이명으로 불리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을 앞둔 군주로서는 재기 넘치는 20대 초반의 젊은 천재보다는 ‘차가운 불꽃의 마검’이 더 필요하긴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로건은 자신의 볼을 후려갈겼다.
“이런 바보 같은……!”
철썩!
순간적으로 놀란 탓에 꽤 모질게 후려갈겼는지 입 안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형님?!”
갑작스러운 자학에 놀란 로니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로건은 손사래를 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니다. 갑자기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서.”
“예? 그게 무슨?”
동생의 황당한 눈빛을 보면서도 로건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회귀를 했을 때, 나라는 몰라도 가족만큼은 지키고자 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생의 자신이 내팽개쳤던 모든 짐을 지고 외롭게 죽어 간 동생이 지금은 평범한 또래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증거였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런데 그걸 가지고 아쉬워하다니.
“쓰읍!”
입 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 맛을 되새기며 로건은 다시 각오를 다졌다.
‘과정에 매몰돼서 진짜 목적을 잊어서는 안 돼. 절대.’
그래.
애써 바꾼 모든 것에 긍정적인 면만 있을 수는 없다.
알고 있다.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을 좀 더 활용할 방법이나 보완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좋게 변한 외형만 봐서는 안 되는 거야. 또 놓친 것이 없는지 다시 하나하나 점검해 봐야겠어.’
늦게나마 깨달은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며 로건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로건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로니안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떨치지 못했다.
“형님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혹시 형님……?”
“엉뚱한 소리 마라. 이유는 몰라도 그 여자의 마법은 내게 전혀 통하지 않으니.”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시니까요.”
“반성이다, 반성.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아니, 그래도 형님 입술에 피가…….”
“금방 나아. 신경 꺼라.”
로건은 동생의 황망한 시선을 피해 다시 화제를 돌렸다.
“혹시나 그 여자가 너에게 명령조로 부탁을 하는 순간이 오면 바로 말하거라. 아마 네가 마법에 걸렸다 확신하는 것일 테니까.”
“예? 아…… 그게, 오늘 한 그 부탁도 사실 명령조였던 터라 제가 마법에 걸렸다 확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뭐?”
“형님과 대련해 달라고 한 것 말입니다.”
“……그런 유희가 본 목적일 리는 없지 않느냐. 그냥 네가 마법에 제대로 걸렸는지 테스트를 해 본 거겠지.”
“……그렇겠지요.”
“그래. 진짜 목적이야 네가 마법에 사로잡혔다는 확신이 든 다음에 말할 것이다.”
“어…… 그럼 형님, 정말 저랑 그 여자 앞에서 대련을 하실 겁니까?”
“뭐? 그건 그냥 거절…….”
“방금 제가 마법에 사로잡혔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
아무래도 본의 아니게 광대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