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누가 벌써 귀족을 움직이라고 했어!?”
그랑의 왕궁 안, 제국의 손님들이 머무는 별궁 안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물론 루이사의 그 고함은 마법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채 그녀의 바로 옆에 있던 호위기사 준과 통신구 너머의 상대에게만 들렸다.
이내 통신구 너머의 노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달란 영지의 일은 저희가 한 짓이 아닙니다, 루이사 장로님. 저희는 애초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려 했습니다.]“뭐?”
[손발이 묶인 것이나 다름없는 맥라인의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짓을 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하? 그럼 그게 우연이라고?”
[그렇습니다. 적어도 저희 분파에서는 절대 귀족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그런…….”
그 말엔 루이사도 고운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의 계획은 자경단의 해체나 제한 조치 이후에, 귀족들을 조종하여 무력을 잃거나 제한당한 평민들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악덕 영주들의 폭압에 짓눌려 있던 민중들의 감정선을 한 번 터트려 놓았다. 이제 그들의 뇌리에는 ‘우리도 귀족을 죽일 수 있다’라는 가능성이 새겨졌을 터. 그 상황에서 귀족들의 공격이 시작된다면, 예전의 무력했던 민중들과는 달리 누른다고 눌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불씨를 세뇌와 선동으로 키워 나라 전체를 뒤엎는 혼란으로 몰고 가려 했던 게 본래 계획이었다.
연사 석궁이라는 무기를 가진 이 나라의 평민들이라면 정말로 나라를 뒤엎을 가능성도 있었다.
설령 왕실이 자경단을 해체한다 해도 모든 무기를 완벽하게 회수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글렀고…….”
벌써 귀족의 공격이 시작된 이상, 왕은 귀족과 평민 양쪽 모두의 움직임에 제한을 두려 할 것이다.
로건 맥라인은 절대 왕권을 가진 패왕. 그의 제한 조치가 내려졌는데도 귀족들을 세뇌해 억지로 움직인다면, 왕실은 분명 이상함을 느끼고 움직일 게 분명했다.
그렇게 왕국의 부흥을 이끌었던 초인왕이 본격적으로 군단을 활용하게 되면 분란의 씨앗은 금방 부서질 것이다.
“쯧. 이렇게 된 이상, 귀족과 평민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간다. 어찌 되었건 분열은 필수. 맥라인의 태양은 귀족과 평민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야.”
[예. 이 왕국은 다시 그란디아 시절에 가깝게 퇴보하게 될 것입니다.]“그래.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왕실이 귀족을 버리면 지금의 체제가 무너진다. 만약 체제를 지키기 위해 귀족을 택한다면, 그때 다시 평민을 선동하면 된다.
그리고 왕실은 아마 당장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귀족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초 계획보다 파급력은 약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다시 계획을 다듬고 있는데.
“대전 회의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벌써?”
왜 이렇게 빨리 끝났지?
묘하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불길함은 이어지는 부하의 보고에 바로 현실화되었다.
“이런 X 같은 일이……!”
루이사의 붉은 입술에서 보기 드물게 욕설이 터져 나왔다.
* * *
“영주를 살해한 살해범은 법률대로 극형에 처한다. 하지만 애초에 영주들이 쌓아 온 부덕이 큰바, 그 살해범의 일가에 대한 연좌제는 적용하지 않는다.”
기껏 귀족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의견을 모으기는커녕 일방적인 통보를 던지는 왕. 심지어 그 내용마저도 귀족들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평민이 귀족 살해라는 중범죄를 저질렀는데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겠다니.
“폐하! 그것은 고귀한 귀족들을 평민과 똑같이 취급하는 조치이옵니다. 거두어 주시옵소서!”
왕의 장인인 로버츠 플로이드가 그렇게 소리칠 정도였지만 이어지는 로건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불안감을 느낄 영주들을 위해 정예기사들을 열 명씩 파견해 주겠다. 그들은 영주의 안위를 철통같이 지켜 줄 것이다.”
게다가 그 후속 조치는 오히려 귀족들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불안한 영주들은 왕실에서 책임지고 안위를 보장하겠다. 수도에 저택을 마련해 주고 호위해 주며, 영지엔 능력 있는 관리를 파견해 대신 관리하도록 할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영주들을 달래 주려는 처사 같았다.
하지만 그 본질은 훨씬 과격한 조치였으니, 머리가 있는 귀족이라면 누구나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철통같은 호위라면 감시……?”
“관리인은 또 무슨 소리란 말입니까. 이건 숫제 영지를 왕실에 바치라는 얘기가 아닌지…….”
“폐하께서 봉건제를 파괴하고…….”
바로 옆에 있는 이의 귀에나 들릴 정도로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
그 작은 목소리들이 여기저기로 퍼져 나가며 귀족들의 안색을 연신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어진 로건의 말에 그런 귀족들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단! 영지의 경영 성과가 좋은 영주에게는 왕실 직할지의 도시를 다스릴 기회를 주겠다. 평가의 기준은 영지의 크기가 아닌, 전년도 수확량과의 증가 비율과 민심으로 판단할 것이다!”
전쟁의 공훈이나 영지전 없이도 더 큰 영지를 내어주겠다는 말.
그 파격적인 선언에 대전이 다시금 시끄러워졌다.
“폐, 폐하. 그 말씀은……!?”
“경영 성과만으로 영지를 하사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시골의 영주도 하룬 같은 대영지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이다.”
“……!!”
로건의 더해진 한 마디가 대전의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달구었다.
“대귀족이 될 기회……!”
“그래. 죽을 짓을 했으니까 죽은 거겠지. 영지 경영만 잘했으면 누가 죽였겠냐는 말이야.”
“맞는 말일세.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나 같은 경우야 애초에 걱정도 안 했어!”
욕심이 위기감을 지웠다.
그리고 그런 로건의 선언은 그대로 포고령이 되어 왕국 전역에 선포되었다.
그 결과.
“귀족도 우리 민초들과 똑같이 대우하겠다는 말 아닌가.”
“왕국이 더 살기 좋아지겠어.”
“역시 국왕 폐하…….”
왕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성들에게서 다시금 왕을 향한 찬사가 터져 나왔고, 그 포고령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고 있는 지식인들도 감탄하긴 마찬가지였다.
“제국이 기백년에 걸쳐 이룩한 변화를 단기간에 시행하겠다는 말이네.”
“아예 이런 사건이 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밀어붙였어.”
“왕실에서 일부러 일으킨 건 아닐까? 귀족들이 생명의 위협에 쫄지 않았다면, 이게 이렇게 쉽게 통과될 정책이 아닌데 말야.”
“그건 그래. 아무리 귀족들 대다수가 멍청하다 해도 한둘 정도는 머리가 돌아가는 자가 있을 거 아냐. 제국 역사만 공부했어도 알 텐데.”
“그래도 설마 일부러 그랬겠어?”
“맞아. 그러다 걸렸으면 나라가 전복될 수도 있는데. 도박이야, 도박.”
소수의 귀족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귀족들이 영지를 갖지 못한 제국. 능력 위주로 작위를 내리고, 현재 영지를 다스리고 있는 한 대에 한해, 세습되지 않은 통치권만을 맡기는 제국의 철저한 중앙 집권제를 표방한 실로 파격적인 변화였다.
맥라인이 비로소 봉건제의 허물을 부수고 진정한 의미의 절대 왕권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 로건은 환한 얼굴로 누군가와 통신을 하고 있었다.
“수고 많았네, 남작.”
[폐하의 명을 어찌 거스르겠습니까?]“영지엔 별일 없지?”
[예. 피바다가 되었다는 소문만 열심히 내고 있습니다.]통신구 너머에서 트레보 달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소문을 낼 필요가 있었습니까? 귀족들의 위기감을 극대화하려면 차라리 그냥 두는 것이…….]“다른 수작을 부리는 놈들이 있어서 말이야. 한쪽으로만 몰고 가긴 곤란했다.”
[예?]“굳이 더 알 필요는 없네. 아, 내년 성과 평가는 기대해도 좋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폐하!]나도 이제 이 시골 영지를 벗어나는구나.
그 기쁨이 트레보 달란의 얼굴에 고스란히 비쳐 보였다.
그렇게 통신을 끝낸 로건 역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자, 덕분에 또 한 단계 나아갔다. 이젠 또 어찌 나오려나…….”
2황자와 루이사, 지금으로선 제국이라 생각되는 이들의 모습이 로건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 * * [실패?]
“……죄송합니다. 이 상황에서 억지 선동은 괜한 이목을 끌 수 있습니다. 저희의 꼬리가 잡힐 수도 있구요.”
[……실망이구나, 루이사. 그리 장담하더니.]“면목 없습니다.”
루이사는 고개를 숙인 채로 이를 갈았다.
‘완벽한 허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맞았어.’
애초에 미리 알고 대비한 게 아닌 이상 이런 발 빠른 대응은 불가능하다.
‘맥라인의 귀족들이 그렇게까지 멍청할 줄도 몰랐고.’
자신의 영지에, 제 목에 개 목걸이가 채워지는 줄도 모르고 눈앞의 먹이에 침만 흘리고 있다니. 왕국의 지도층이라는 놈들이 해도 해도 너무 멍청하지 않은가.
물론 사람은 위기에 몰리면 생각이 협소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을 이어 갈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물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그리고 왕위에 오른 뒤. 그렇게 두 번이나 잔혹한 피의 숙청을 자행했던 살벌한 군주가 던져 준 먹이다.
일시적으로나마 더 극한의 위기감 속에서 하나로 뭉쳤던 귀족들의 심리는 그것을 탈출구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평생 사람의 정신에 관해 연구해 온 마법사로서 조금만 생각해도 금세 분석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루이사는 그저 맥라인의 귀족들을 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이대로 돌아올 생각은 아니겠지? 제국의 의뢰는 제대로 시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계획을 위해서라도.]“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계획은?]“……요인 암살로 가겠습니다.”
[클클. 재미있구나. 조직의 극단적인 성향을 고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더냐?]“……왕국의 주요 인물들을 조종해 다른 이들을 공격하게 만들겠습니다. 그것이 초인이라면 더욱 큰 반향을 만들 수 있겠지요.”
[맥라인의 초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겠구나.]“이미 다 조사해 놨습니다.”
[아니. 네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꽤 많이.]“예?”
“……무슨 말씀이신지?”
[타히티 공국에서 녀석을 막아섰던 놈들이 있었다. 달리 말하면, 맥라인엔 알려진 초인들 말고도 세 명의 초인이 더 있다.]“예!?”
화들짝 놀라는 루이사의 모습을 즐기는 듯, 통신구 속 노인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없지만, 다행히 놈들의 특징이 뚜렷하더구나. 하나는 회색의 오러, 하나는 주황빛 오러. 그리고 활을 쓰는 놈까지.]“그런……!?”
그리고 그 순간, 루이사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주황색 오러? 포스?
그녀는 최근에 같은 색의 포스를 발현하는 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 특이한 포스 색이 흔할 리는 없다.
하지만 그녀가 놀란 이유를 대스승은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래, 놀랄 만하지. 회색의 오러유저라니, 우리 쪽 재능을 가진 녀석이 오러유저까지 되었다는 말이 아니더냐. 가능하면 그놈을 찾거라. 놈을 포섭하든 현혹하든, 데리고만 온다면 이번 작전 성공에 못지않은 포상을 약속하마.]솔깃할 만한 이야기였지만 그 말은 루이사의 귀에 닿지 못했다.
“……날 속였다고? 그 어린놈이? 감히!?”
[……짐작 가는 것이 있느냐?]의아해하는 대스승의 물음에도 모멸감에 떨리는 얼굴을 부여잡은 루이사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에야 가까스로 감정을 가라앉힌 루이사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제가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뭐?]이를 가는 루이사의 머릿속에는 붉은 머리 붉은 눈의 청년만이 가득했다.
정말 현혹에 걸렸다면 자신이 오러유저라는 것도 자랑하듯 내보였을 것이다.
한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맥라인에서 제 정체를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였다.
[……어떻게? 설마 마력을 내보였느냐?]노인의 표정이 살벌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루이사의 이중 신분은 조직에서도 극비. 지금 제국에 알려진 것도 탑의 작전을 위해 동왕부의 공주가 협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혹여나 그 진짜 정체가 제국의 황실에 흘러 들어가게 된다면, 수많은 계획이 뒤틀리게 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봉인은 완벽합니다. 스승님이 아닌 다른 장로들이 곁에 있다 해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어찌……? 절대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보낸 것이거늘. 허……. 짐작 가는 것은 있느냐?]“……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루이사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만만하게 맥라인을 찾아왔거늘 이런 수치를 겪게 될 줄이야.
[하……. 그래, 맥라인의 왕. 운명을 바꾸는 자가 그리 만만할 리 없지. 지금이라도 알았다면 됐다.]“예?”
[우리 탑의 정체는 제국 황실에서도 극비, 맥라인의 왕이 알 리 없다. 직접 우리의 마법을 겪어 본 것도 아닐 테니. ……설마 왕에게 마법을 보인 것은 아니겠지?]“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마 처음부터 너를 제국의 첩자 정도로 의심했던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무사히 복귀하는 것에나 신경 쓰거라. 네가 말한 작전은 다른 장로에게 일임하겠다.]“하지만 다른 이에게 건 현혹이 이미 간파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저희에 대해서도…….”
[……그럴 리 없다. 네가 철저히 준비한 마법이야. 그게 기사 주제에 대비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더냐?]오러유저를 단순히 기사로 폄하하는 말이었지만, 그것에는 탑의 마법에 대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닙니다.”
[그래. 아마도 그자가 가진 ‘운명의 힘’이 주변 인물들에게 자연히 영향을 미친 거겠지. 탑의 전설이 설명하는 그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의 마법과는 완전히 상극이니.]“그렇군요.”
[과한 걱정도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복귀하는 것에나 신경 쓰거라.]“아닙니다. 제가 말한 작전이니, 제가 해 보겠습니다.”
[뭐?]“놈들은 제가 이 사실을 알아챘다는 것을 모릅니다. 거기에 걸어 보겠습니다.”
[……모험은 용납할 수 없다. 네 신분은 네 생각보다 훨씬 중요해.]“제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이대로 수치만 안고 돌아갈 수는 없다.
만약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의 발악은 해 보리라.
결의에 찬 눈빛이 통신구 속 노인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