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16)
316화
“예? 죄송합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없는 부분이라.”
별궁 입구를 지키던 기사는 갑작스러운 공주의 질문에 정중히 대답을 거절했다.
‘왜 초인에 관해서 묻는 거지? 그것도 폐하와 평상시 떨어져 지내는 초인?’
처음으로 들은 수상한 질문이 아닌가.
빅토르 대장이 교대하러 오면 바로 보고해야겠다.
기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겉으로는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부탁해도 안 될까요?”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옅은 회색의 마력이 그의 눈으로 흘러 들어가는 순간.
눈동자가 멍하니 풀려 버린 기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가 아는 모든 것을 토해 냈다.
“대력공이나 폭풍검 님은 평상시에 수도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도에 계시면서 폐하와 떨어져 계신 분이라면, 클레이튼 님이 있습니다. 중요한 연구 중이라 요즘 마탑에서 나오지 않고 계시거든요.”
“아, 그렇군요. 혹시 다른 초인분들은 모르시나요? 언급하신 분들이나 검공, 폐하를 제외하면요.”
“……저희 왕국의 초인은 그분들이 전부입니다.”
멍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기사를 보며 공주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부에서도 비밀이군. 맥라인, 확실히 뭔가 더 있어.’
생각을 정리한 루이사는 다시 기사를 보며 웃었다.
“그, 클레이튼 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마탑입니다. 왕궁 동쪽에 높게 솟아 있는.”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그곳에 갈 수 있을까요?”
“지금은 폐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 잘됐군.
“감사합니다. 아 오늘 제 질문은 모두 잊어 주세요.”
싱긋 웃으며 하는 윙크가 마법의 트리거.
그 순간 기사의 멍한 눈동자에 다시금 총기가 돌아왔다.
“아, 공주님. 안녕하십니까.”
기사는 갑자기 나타난 공주를 방금 본 것처럼 정중히 인사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아, 아니에요. 그냥 잠시 바람 쐬러 나왔을 뿐이에요.”
“아…… 네.”
정원도 아니고 별궁 입구에서 바람?
미심쩍다는 듯한 표정이 빤히 읽혔지만, 루이사는 싱긋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돌아서기 무섭게 그녀의 얼굴이 살벌하게 바뀌었다는 걸 기사는 알지 못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더 숨기는 것도 무의미하지.”
그렇게 말하는 루이사의 손에는 주먹만 한 회색 돌멩이가 들려있었다.
그녀가 그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돌멩이가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깨어지며 푸른빛을 내뿜었다.
그와 동시에 동질의 힘을 가진 자만 느낄 수 있는 회색의 마력이 그녀의 심장에서부터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최상급 마정석에 담겨 있던 봉인 마법이 풀린 것이다.
우웅.
“장로님. 허락받지 못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호위기사인 준의 말에 루이사는 슬쩍 눈썹을 찌푸렸다.
조력자이자 부하. 하지만 자신이 탑주의 명령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면 이 충실한 부하는 바로 내부 고발자가 되리라.
그 사실을 자각하자 자연히 대스승의 명령도 다시 떠올랐다.
자신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은 명령이.
– 허가할 수 없다.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확실한 방법이 있으니 다른 장로에게 뒤를 맡겨라.
“……명령은 따른다. 하지만 갈 땐 가더라도 선물은 남겨 둬야지.”
마법을 간파한 것이건, 아니면 ‘운명의 힘’에 자연히 풀린 것이건 상관없다. 그저 자신이 속인 것이 아니라 되려 속았다는 사실이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도저히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굳이 직접 나서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 간단한 방법도 많을 텐데요.”
“확실히 하자는 거지.”
준의 말대로 마도사의 경지에 이른 소울 위저드가 인간을 이용해 사건을 일으킬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별궁의 호위기사들을 현혹해 자신을 습격하게만 하더라도 바로 국제 분쟁이 일어나리라.
하지만.
“간단하게 큰 분란을 일으킬 방법은 내 신분이 너무 주목받게 돼. 거기서 혹여나 다른 사건이 더해지면, 여기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될 수가 있어.”
그렇다고 호위기사들끼리의 충돌이라던가 왕의 근처에 가지도 못할 평기사나 시종들의 국왕 습격 사건 같은 소소한 분란은 성에 차지 않았다.
무엇보다 탑의 마법 또한 전능하지는 않은 터라 그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뇌당한 자의 지능 저하는 그저 여러 부작용 중 하나일 뿐이니 혹여 꼬리가 잡힐 만한 일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루이사의 반문에는 스스로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탑의 역사를 통틀어도 서른이 되기 전에 6서클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자부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상처받은 자존심을 참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에, 그것도 50이 한참 넘어서야 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자가 과연 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마도 6서클 비기너에 불과할 속성 마법사가 한 수 위의 마도사, 그것도 인간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소울 위저드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그것이 카셀 마탑의 마법을 배운 이들이 가진 자부심이요, 그들의 상식이었다.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왕국의 유일한 마도사가 왕궁의 주요 인물들을 습격한다.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꽤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왕궁에 저희 마법을 파훼할 수 있는 자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혹시 그게 그 마도사라면…….”
준의 신분에선 ‘운명을 바꾸는 자’에 대한 정보를 알 자격이 없다. 하지만 임무의 특성상 그런 이가 있다는 막연한 설명 정도는 해 주었으니 저리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아니, 그자는 아니야.”
루이사의 단언에 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내 신분이 노출될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 말을 끝으로 루이사의 몸 전체가 회색빛 안개처럼 흐릿해지더니 이내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그리고.
– 잊었어? 내가 누군지?
꿈속에서 듣는 듯한 아련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완벽하게 사라진 존재감.
그것이 정말 루이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야와 정신이 착란을 일으킨 것이라는 사실을 준은 잘 알고 있었다.
탑이 황실의 추적을 피해 다니면서 만들어 낸 탑의 비전 마법.
그 처참한 역사만큼 그 효용은 완벽했고, 그 시전자는 무려 마도사였다.
‘마나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괴물이 아니고서야 절대 저분을 찾지 못해.’
그리고 그런 괴물은 전설 속에서나 존재했다.
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찜찜한 기분을 달랬다.
* * *
“쉬엄쉬엄하세요, 스승님.”
“아니. 이미 폐하께 약속했다. 이번 달 내에 성과를 보여 드리겠다고. 쉴 시간 따위 없어.”
빅토리아는 눈이 벌겋게 충혈된 스승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먹을 거라도 가져올 테니 좀 드시고 하세요.”
“그래, 알겠다.”
그리 말하면서도 정교하게 세공된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
빅토리아도 자신이 일조한 결과물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스승님께서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 걱정이 될 뿐이었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일까.
“내가 너에 비해 너무 한 게 없어서 그런다. 열심히라도 해야 폐하 앞에서 면이 서지 않겠느냐.”
마법진에 고정된 시선을 돌리지 않는 스승이 농담 섞인 한 마디를 던졌다.
그 말에 담긴 고집을 읽은 빅토리아는 또다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식사라도 제때 챙겨 드려야지.’
돌아서는 빅토리아의 걸음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음?’
빠르게 탑의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기던 빅토리아는 어느 순간 통로 한구석에서 굉장한 이질감을 느꼈다.
아니, 보았다.
‘회색 안개……?’
외길로 이어진 탑의 계단. 그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목 한구석에 안개처럼 뿌옇게 뭉쳐 있는 회색의 이물질을.
절대 자연스러운 안개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나를 끌어올리자 더욱 확실하게 보였다.
‘마나? 아니 이건 비슷하지만 좀 달라 설마 마력……?’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도 자연스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체불명의 회색 안개에 점차 가까워지자, 이내 그 안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
회색 안개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얼핏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게 보였다. 마나를 잔뜩 끌어올린 눈으로도 희뿌연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사람의 형태였다.
아직 마나가 아닌 마력은 확실히 꿰뚫어 보지 못하는 탓에 생긴 한계.
‘마도사라고?’
그리고 그 머리 부분이 자신을 향한다 싶은 순간.
빅토리아는 바로 다른 곳을 보는 듯 무덤덤한 얼굴로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과는 달리, 그녀의 머릿속은 충격으로 얼룩진 상태였다.
‘침입자다!’
그것도 마도사급의 침입자라니.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돌아가서 스승님께 고해야 할까?
아니야. 갑자기 몸을 돌렸다간 놈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과 몇 초 만에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걸음은 어색하지 않게 그대로 그림자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그녀는 결심을 굳혔다.
이곳은 ‘우리’ 마탑이다.
마법사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전투력을 발휘하기에 가장 완벽한 공간.
그렇게 빅토리아가 그림자의 바로 위쪽 계단에 도착하는 순간.
은밀하게, 하지만 맹렬하게 진동하던 서클의 마나가 그녀의 의지에 따라 그 마나를 복잡하게 재배열했다.
우우웅.
이내 돌로 된 계단의 일부가 그대로 커다란 창이 되어 그림자를 꿰뚫었다.
쩌어어어억.
콰아아아앙!
동시에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공격이 실패했다는 것을.
– 알아챘다고……?
꿈결처럼 몽롱하게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흩어지는 안개.
그 안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한 보였다.
어느새 자신의 위쪽 계단으로 올라선 그림자의 손에서 뭉치고 있는 회색빛 마력이.
그리고 그 마력이 향하는 곳이.
쩌저적.
우르르르.
공간이 깨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빅토리아가 서 있던 자리에서 검붉은 빛깔의 가시넝쿨이 솟구쳤다.
뱀이 꿈틀거리듯 흉측스레 움직이는 여섯 갈래의 가시넝쿨이 그녀를 향해 번개처럼 뻗어 나왔다.
“어딜!”
빅토리아의 고함과 함께 벽이 사람의 형상으로 일어섰다.
좁은 공간, 수준 높은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그 위력을 집약시킨 단 하나의 골렘.
지금 그녀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이 든든하게 가시넝쿨들을 막아섰다.
“묶어라!”
계단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과 함께 뜯겨 나온 벽들이 일제히 오그라들면서 그림자를 사방에서 조였다.
“침입자!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심장의 서클이 맹렬히 회전하며 최대한의 전력으로 적을 압박했다.
우르르르릉.
쿵. 쿵.
어느새 검은 가시넝쿨을 통째로 찢어 버린 그녀의 골렘이 뭉쳐진 흙더미 위에 괴력을 더했다.
그그그그그.
하지만.
콰아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적을 조이던 벽들이 무너지고 골렘마저 튕겨 나갔다.
우르르릉.
– 어처구니가 없군.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기괴한 목소리.
무너진 벽들 사이로 쏟아진 차가운 달빛이 적을 비췄다.
이내 적의 모습을 확인한 빅토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호리호리한 체형, 이마에서부터 자라나 머리 위쪽으로 휘어진 두 개의 뿔.
가느다란 체형임에도 강인해 보이기만 하는, 화강암 같은 회색의 피부.
그리고 등 뒤에 몸보다 크게 펼쳐진 박쥐의 날개까지.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안광을 뿜어내며 그녀를 응시하는 적의 모습은 설화로만 들었던 어떤 괴물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악……마?”
그 말에 대답하기라도 하는듯, 적의 손에서 피어오른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빅토리아의 주변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