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일순간 시야가 암흑으로 뒤덮이더니, 아무것도 없는 컴컴한 공간에 홀로 내던져진 듯한 느낌이 빅토리아를 엄습했다.
– 무슨?
혼잣말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에 또다시 놀란 것도 잠시, 빅토리아는 상황을 파악하려 서둘러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저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려 해도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짙은 어둠 속을 더듬어 보려 해도 손발이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조차 통제할 수 없는 완벽하게 무력화된 느낌.
그 느낌은 실로 끔찍해서, 영혼 자체가 이 어두운 공간에 잠식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 내, 내가 죽은 건가?
– 아,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 아아악!
그 끝없는 공포에 비명을 질러 보지만, 그 비명조차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암흑의 공간.
이대로 있다가는 이내 아무 생각도 못 하게 될 것이다.
영혼이 저 끔찍한 공허에 삼켜질 것이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은 깨달은 빅토리아는 이내 생각을 한군데 집중했다. 지금 이 상황을 초래한 이유에 관해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악마. 그리고 그 손짓에서 시작된 암흑.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자신의 눈에 보이던 회색의 흐름은 분명히 마력이었다.
그렇다면 그 쏟아져 나온 암흑 역시 마법일 것이다.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그 마법에 즉사한 내가 지옥에 떨어졌거나, 그 마법이 이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거나.
전자는 굳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죽어 지옥에 떨어질 만큼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는 자신감도 자신감이지만, 정말 그렇다면 발버둥 칠 이유도 없었으니까.
– 난 살 거야!
빅토리아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아득한 옛날,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 오, 오빠. 우리 꼭 이렇게 살아야 해? 엄마랑 아빠 따라가면 안 돼?
그냥 죽자.
아마도 겨우내 독감에 시달리다 간신히 회복했을 때였을 것이다.
간신히 눈을 떠서 자신 몫의 죽까지 제게 떠먹이려는 오빠를 보았을 때, 어린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차라리 죽어서 천국에 가면, 다시 엄마 아빠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 말을 들은 오빠의 표정은 참혹하게 일그러졌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빠는 제게 화를 내거나 혼내지 않고, 그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어. 살아야 해.
– ……왜?
– 죽으면 가는 천국 따윈 없어.
– 아냐! 사제님이 천국이 있댔어!
– 엄마가 그랬어.
그리운 이름이었다.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이의 이름.
그리고 다 큰 지금 생각해도 특이했던 우리 엄마.
– 아무리 힘들어도, 죽고 싶어도, 막상 죽을 상황이 되면 살고 싶은 게 사람이랬어. 그것은 아마…….
어쩌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 아닐까.
이 생이 끝나고 나면 기다리는 것은 편안한 안식이 아니라 이 끔찍한 삶보다 지독한 무언가라는 것을.
– 그, 그런…….
오빠가 전해 준 엄마의 말에는 어린 자신도 납득할 만한 설득력이 있었다.
– 그러니 아무리 비참해도, 아무리 힘들어도 살라고 했어.
다만 납득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분명히 드러난 하나의 사실이 어린 제게 또 다른 충격을 주었었다.
– ……그럼 이제 엄마랑 아빠 못 만나?
– ……응.
그때 아마 자신은 울상을 지었던 것 같다.
아니, 울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으니까.
힘들었으니까.
아팠으니까.
너무 지쳤으니까.
– 왜에!? 어째서!
그런데 그때 오빠의 가느다란 팔이 눈에 들어왔다.
– 엄마 아빠가, 살라고 했어.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 보자, 리아.
그 순간에도 배가 고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제게 죽을 떠먹이려던 오빠의 팔이.
– 오빠가…… 어떻게든 너를 지킬게.
그렇게 가족들의 모진 희생과 헌신 속에서 살아온 삶이었다.
그 모진 삶 속에서 우연히도 은인을 만나 희망을 얻었고, 그제야 희망 속에서 보통의 삶을 살 수 있었다.
– 어떻게 살아온 삶인데.
– 어떻게 쟁취한 기회인데.
– 난 못 죽어!
일생을 관통하는 한(恨)과 소망.
그것이 어둠에 잠식되려는 영혼을 지켜 냈다. 영혼을 물들이려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의 빛을 더욱 환하게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한층 더 끌어 올려진 영혼의 잠재력은 자신을 이 상황에 처하게 만든 악마의 손짓을, 이제는 영혼에 각인되듯 새겨진 마력의 흐름과 그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석이 점차 완전해짐에 따라 잃었던 감각이, 육체가 희미하게나마 다시 통제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빅토리아는 그런 상황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제야 자신의 영혼에 깃들기 시작한 진한 갈색의 ‘마력(Mana force)’을 온전히 다루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곤란하게 됐어.’
암천결계(暗天結界)가 뜻밖의 방해자를 완전히 뒤덮은 것을 확인하며 루이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덕분에 악마현신(惡魔現身)으로 신체 위에 덧씌운 마력체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지만, 보는 사람도 없는 마당에 굳이 신경 쓸 만한 사항은 아니었다.
문제라면 마도사를 순식간에 제압하기 위해 준비해 온 세 가지 마법이 엉뚱한 대상을 상대로 발동되었다는 것이었다.
탑의 비전인 매크로(Macro) 마법을 발전시킨 그녀만의 비기. 단순한 트리거만으로 발동되는 다중 마법 연계가 이번에는 오히려 그녀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암천결계, 악마현신, 그리고 암천결계에 더해진 ‘영혼오염’.
이 마법들이면 마도사를 단숨에 제압하고 세뇌할 수 있다. 세 가지 모두 탑의 6서클 마법 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속하는 대마법으로, 이 시대의 마법사들은 모르는 상위의 속성인 ‘영혼’과 ‘차원’의 속성을 다루는 탑의 마도사만이 펼쳐 낼 수 있는 탑의 비기 중 비기였으니까.
‘그래서 문제지. 젠장.’
미리 철저한 준비를 해 두지 않는다면 마도사인 그녀조차도 쉽게 쓸 수 없는 마법.
맥라인의 마도사를 만나기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전투’를 트리거로 한 것이 실수였다. 방해자는 그저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이게 대체…….”
무시무시한 데몬 형상이 검은 안개에 갇힌 방해자를 노려보았다.
무척이나 어려 보였는데 5서클 수준의 마법을 쓴 것으로도 모자라 탑의 비전인 인식 장애 마법까지 꿰뚫어 보았다.
거기다 차단막으로 소음을 막았다고는 하지만, 마탑의 건물 자체를 재료로 쓰는 듯한 상대의 무식한 마법에 뻥 뚫려 버린 벽들이 문제였다.
환영 마법을 덧씌우면 될 일이었지만, 이미 6서클 마법을 세 가지나 쓰고 있는 상황에서 소음 차단 결계까지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서 또 한 가지 마법을 더한다는 것은 그녀로서도 무리였다.
결국.
삐이이익!
– 탑에 문제가 생겼다!
탑의 아래, 지상 여기저기서 소음이 들려오는 것을 확인한 루이사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물러날 수밖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일하게 자신을 발견한 이 방해자는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희생자가 없는 만큼 그저 단순한 사고로 취급될 테니까.
루이사의 시선이 점차 그 크기가 줄어들고 있는 검은 안개로 향했다.
마법이 끝나 가는 징조.
‘뭐, 재능이 있는 마법사이니만큼 중요 인물이겠지. 아마 마도사의 제자일 테고. 그게 좀 걸리지만.’
이 시대에 탑의 마법을 간파할 수 있는 마법사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제국 황실 정도에서나 가능할까.
이 작은 왕국에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대마법이라도 한순간에 영혼을 오염시키는 수법인 만큼 완벽한 세뇌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에는 오히려 완벽히 세뇌되는 게 더 위험했다. 대번에 평소 행동부터 이상해질 테니까.
그저 이런저런 사고를 일으키는 정도로 충분하다.
‘애초 목표보다는 떨어지지만……. 뭐, 아끼는 제자가 문제를 일으키고 왕과 마도사가 대립하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 위층이다!
아래층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루이사는 아쉬움을 삼키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시야에 거대한 갈색의 주먹이 나타났다.
꽈아아아앙!
– 꺅!
여성형 악마던가.
검은 안개를 찢고 나온 빅토리아가 여전히 기괴하지만 높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대는 적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잡아! 여의치 않으면 죽여라!”
그리고 그녀의 고함, 아니 의지에 따라 3m 덩치의 골렘이 탑 밖으로 튕겨 나간 악마를 향해 쏜살같이 쏘아졌다.
강력하지만 다소 무거운 움직임을 보이는 보통의 골렘과 다르게, 탄력 넘치는 움직임이었다. 그 속도가 왕국의 유명한 초인인 위켄 칼리아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재빨랐다.
번개처럼 쏘아진 골렘이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지면에 반경 3m가 넘는 크레이터가 생겨났을 만큼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비록 그 파괴의 흔적 안에 적의 모습은 없었지만, 빅토리아는 오히려 놈이 한 방에 끝나지 않은 것이 더 기꺼웠다.
우우웅.
심장에서 맥동하는 6개의 서클.
방금 각성한 힘을 제대로 써 볼 만한 상대였으니까.
벌써 한 가지를 확인한 참이었다.
‘역시. 굳이 바람 속성이 아니어도 돼.’
딛고 선 탑의 계단. 그리고 그 탑을 통해 연결된 대지의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자신의 마력이 닿는 범위 내라면, 스승님처럼 바람 속성 없이도 장거리에서 전투 골렘을 조종할 수 있다.
‘물론 스승님보다 범위는 좁겠지만.’
각성을 통해 얻은 ‘속성 강화’. 단일 속성의 마력이 만들어 낸 골렘의 위력은 그 단점을 메우고도 남았다.
꽈아아아앙!
우르르릉.
속도는 폭풍검 위켄 칼리아를, 위력은 대력공 루터 카일을 연상케 하는 강력한 골렘이 적을 쫓으며 연신 파괴의 향연을 벌이는 광경에 빅토리아의 가슴이 뿌듯함으로 벅차올랐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골렘학파의 마법에 막 입문했을 때부터 그녀의 특기는 다수의 골렘을 다루는 것. 똑같은 경지에도 사형제들은 결코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많은 수의 골렘을 다뤘었다.
“도망 못 간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마력이 대지를 타고 뻗어 나가자, 멀어져 가는 악마의 바로 앞쪽 지면이 융기하며 또 하나의 골렘이 튀어나왔다.
콰아아아앙!
– 악!
급작스러운 공격에 앞뒤가 가로막힌 적이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각성한 직후 너무 과도한 마력을 쓴 탓인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잡았다!”
빅토리아가 환호성을 내지른 순간.
– 감히!
쓰러진 악마의 전신에서 회색빛 안개가 터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주위로 퍼져 나갔다.
콰앙!
콰직.
우르르릉.
짙은 안개 속에서 연신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안개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법들.
일순간 목표를 잃어버린 골렘들이 우왕좌왕하다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것이 빅토리아의 감각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놓치지 않아!’
눈을 감고 다시 정신을 집중하자, 지면을 딛고 선 상대의 위치가 포착되었다.
그 위치로 골렘들에게 다시 공격을 명하는데, 그 순간 무언가가 탑의 벽면을 타고 올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의 대지와 그 대지에 연결된 모든 것이 감각권 안에 들어와 있기에 느낄 수 있었던 소리도 없는 움직임.
쿵.
“칫!”
이를 악문 빅토리아의 마력이 또 다른 패턴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러자 마탑의 벽면이 거대한 돌창이 되어 기어오르던 무언가를 연달아 관통했다.
푸우욱.
콰직.
콰지직.
– 캬아아아악!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회색 안개가 사라졌다.
– 키에엑.
쿠웅.
우르릉.
‘공격이 성공한 건가?’
빅토리아가 곧바로 탑의 아래쪽을 내려다보자 검은 피를 뿌리며 탑의 아래로 추락한 거대한 회색 뱀이 그 피와 함께 흐릿하게 사라지는 광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무너져 내린 자신의 골렘들이 남긴 잔해와 뒤늦게 난입한 기사들의 망연한 표정이 보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없었다.
“칫.”
적을 놓쳤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눈은 분노할지언정, 미련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기습으로 득수를 했을지언정, 이제 막 마도사가 된 자신보다 한 수 위의 상대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분명히 대지의 감각으로 느꼈어. 악마가 아니야. 그 안에 있던 형상은 분명히…….’
적이 누군지도 대략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