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18)
318화구 왕실 마탑, 현 마법병단의 주둔지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문은 금세 왕궁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이내 골렘마스터의 실험 실패라는 공식 발표가 전해지면서 사고로 인해 어수선해진 분위기도 곧 수습되는 듯했다. 다친 자도 없었으니, 이대로라면 그저 우연한 소란으로 잊혀질 것 같았다.
다만.
“마탑이 반파될 만한 실험을 했대.”
“제정신이 아닌 거 아냐?”
“역시 마법사란…….”
클레이튼에게는 꽤 억울한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 날 새벽.
소문의 당사자와 왕국의 주인, 그리고 소문에 묻힌 진짜 사건의 당사자가 왕의 집무실에 심각한 안색으로 모여들었다.
“우선, 경지를 이루었는데도 떠들썩하게 축하해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폐하. 저 역시 폐하의 계획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괘념치 마세요.”
그 말에 로건이 피식 웃으며 빅토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구나.”
헝클어진 앞머리가 신경 쓰이는 듯 슬쩍 인상을 찌푸리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다시 어색하게 웃는 모습. 어릴 적 그 수줍었던 꼬마가 이제 확실히 숙녀의 태가 났다.
세월의 흐름이 절로 실감될 만큼.
‘언제 이리 자랐을까.’
뿌듯하고, 또 그만큼 미안했다.
그렇게 따스한 표정으로 빅토리아를 바라보던 것도 잠시, 곧 로건의 얼굴에 고심의 기색이 떠올랐다.
‘설마하니 정말 제국의 공주가 일을 벌일 줄이야.’
공주가 검은 뱀의 마도사라면 검은 뱀 조직은 제국의 수족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굳이 빅토리아의 전력을 숨길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아세리안의 일이 마음에 걸려.’
휘하의 조직을 두고, 외국에까지 소문이 날 만한 대형 사고를 연기할 이유는 없다.
자연히 제국에 협력하는 쪽과 갈등하는 쪽의 두 분파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정보가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다만 그 희박한 확률에 기대어, 두고두고 회자가 될 성취를 비밀에 부치기로 한 것이 당사자에게는 아무래도 미안할 뿐이었다.
“천 년 전 대이주 시대 이래 최연소일 겁니다. 19살에 마도사라니요. 국가의 위신을 올릴 만한 사건이고, 세계만방에 자랑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허…….”
그 스승인 클레이튼이 이리 아쉬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니에요, 스승님. 폐하의 뜻이라면 저나 오빠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자리에 없는 빅토르까지 싸잡아서 하는 장담이었지만, 그 누구도 아니라 말하지 않았다.
노예에서 기사와 마법사로.
푸른 머리, 오드아이의 남매와 국왕의 인연을 아는 자들 중에 그 충성심을 의심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런 만큼 내가 더 잘해 줘야 하는데.’
성년을 전후로 초인이 된 남매. 그 독특한 외형적 특징까지 생각하면 정말 특별한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역사에 남을 천재 남매를 자랑하기는커녕 숨기고 있으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 에일렌, 로니안, 부르델…….’
제국의 황제가 보통의 성정을 가졌다면, 오히려 모두 까발려서 전쟁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을 기대해도 되었을 만한 전력이라 더 아쉬움이 컸다.
“제국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날, 그때 더욱 크게 보상하마. 조금만 참아 다오.”
“이미 저희 남매에게 너무 많은 것을 해 주셨습니다. 괘념치 마세요, 폐하.”
빅토리아의 대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이내 다시금 마탑의 사건을 생각하자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침입자가 여자라고 했지?”
“예. 보기 드문 회색 마력을 사용하는 여자였습니다. 폐하께서도 마나를 볼 수 있으시니, 쉽게 잡아낼 수…….”
“누군지는 안다.”
달리 누가 있을까.
“……예? 그, 그럼 당장 가서 잡아들이시면 되겠네요!”
하아…….
“그게 안 되니까 문제지.”
“예?”
빅토리아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로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의 공주를 잡아 죽여? 가둬?
당장 전쟁이 일어날 일이다.
‘대마법진이 완성되고 전방의 요새나 성에 그 설치가 끝난 다음, 그다음에야 확실한 승산이 있어.’
알아도 모르는 채 해야 할 시기.
차라리 빅토리아가 공주를 놓친 것이 오히려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마탑에서 공주가 죽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로건은 소름이 돋아 오르는 팔뚝을 쓸어내리며 시선을 돌렸다.
“이 일. 어떻게 생각하시오, 클레이튼 공?”
그 무거운 눈빛을 받은 클레이튼이 그보다 더 침중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악의 경우는 그들이 알아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끄응.
엄습해 오는 두통에 로건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는데, 어두운 표정의 클레이튼이 두통이 더욱 심해지는 듯한 말을 더했다.
“아티팩트의 생산지인 타렌이 아니라 저를 노렸다면, 연구 일지가 그들에게 생각보다 더 중요한 물건일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대와 빅토리아의 말 대로라면 마법사들에게는 무상의 가치를 가진 물건일 테니.”
왕국의 유일한, 아니 이제는 유이한 마도사와 국왕이 그렇게 어두운 시선을 교환하는데 빅토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끼어들었다.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뭐?”
“스승님 말씀대로 분명히 수많은 사람이 연구한 연구 일지인 것은 분명합니다. 적게 잡아도 수백 년 역사의 학파에서 전승되는 일지였을 거예요.”
“그러니까…….”
“하지만 내용의 대부분이 어떤 천재들이 번뜩이는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끄적여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비전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결과물이 없어요.”
“……그렇기야 하지.”
연구 일지에서 영감을 받기는 했지만 아티팩트의 대량 생산을 주문한 것은 로건, 그 방식을 알아낸 것은 클레이튼이었다.
게다가 지금 대마법진의 복원에 관한 연구 성과의 7할 정도는 빅토리아 자신의 영감이었으니, 확실히 비전서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정말 그들의 연구 일지라고 해도 그저 갈라져 나온 분파, 혹은 소외된 천재들의 아이디어 모음집 정도일 겁니다.”
“호오?”
빅토리아의 주장은 듣는 이들의 눈빛을 바꿀 만큼 타당했다.
그러나 이어진 스승의 말에는 빅토리아도 살짝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공주가 마탑을 습격한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너무 뜬금없는 무리수였어.”
다만 그 말에 담긴 단어 하나가 빅토리아의 눈을 두 배로 크게 만들었다.
“에? 공주요? 설마?”
로건은 당황하는 그녀를 보며 쓴웃음과 함께 그 의혹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 제국의 공주가 그 마도사다. 거의 100%의 확률로.”
“그런……?! 대체 왜요?!”
공주가 마도사?
그 신분과 힘으로 왜 그런 짓을?
빅토리아의 반문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지만 로건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알 수 없지. 그러니 그 일지 때문이라 생각하는 거고.”
루이사의 속사정을 알 수 없는 그들로서는 그렇게 추리할 수밖에 없었고.
“그놈들에 관한 정보가 너무 적어. 모든 게 추측뿐이니…….
자연스레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뭐?”
황당한 로건의 반문에 빅토리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 * 쿨럭.
기침을 하는 순간 또다시 피가 튀어나왔다.
몇 번째일까.
“흐…….”
가슴의 아릿한 통증보다도 그 통증이 상기시키는 실패, 자존심을 뭉개 버린 지난 밤의 기억이 더욱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있겠어!?”
날카롭게 소리를 질러 보지만, 그 새된 목소리는 오히려 제 자존심을 더욱 찌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준의 모습에 오히려 스스로의 못남이 더욱 자각되는 듯했다.
“……아냐. 후, 됐어. 돌아가 봐.”
“예.”
서클의 마력이 흔들리며 생긴 내상은 오러에 의한 상처처럼 쉽게 낫지 않는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 기괴한 골렘을 부수고 탈출하기 위해서는 무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투의 와중에 각성이라니. 그 영웅소설 속 이야기 같은 경우를 자신이 체감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적에게서.
‘적……이라…….’
피식.
단순한 방해자에서 적으로 격상한 존재감.
상처받은 자존심에 자신도 모르게 또 그 여자를 떠올리고 말았다.
‘잘해야 스물 언저리 같던데 그 나이에 마도사라.’
젊은 나이에 마도사가 되어 탑의 역사에 이름을 새긴 자신보다도 빠른 성취였다.
더구나 이제 막 각성한 마도사가 어찌 그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공격이 다소 투박하고 현묘함도 없었지만, 그 골렘들은 그 이상으로 빠르고 강했다.
웬만한 오러유저의 움직임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는 전투 마법인 악마현신을 사용했는데도 꼼수를 쓸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대마법을 동시에 3가지나 쓰고 난 직후였다는 것도 스스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그 3가지의 마법을 깨트린 것도 그 여자였으니까.
“이건 말도 안 돼.”
항상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기만 했던 삶.
신분이 아닌 마법으로도 그녀보다 족히 3배는 더 살아온 장로들과 경쟁해 왔다.
그런데 또래도 아닌 한참 어린 이에게 패퇴했다니, 루이사의 드높은 자부심은 그 사실을 용납하지 못했다.
“뭔가 꼼수가 있었을 거야.”
우웅.
솟구쳐 오른 분노에 차분히 가라앉혔던 서클이 다시 진동했다.
이내 그 결과가 바로 입으로 나왔다.
쿨럭.
“크…….”
손바닥 안에 흥건한 핏물.
그 피처럼 진득한 살기가 루이사의 눈 속에 번뜩였다.
하지만 지금 그 여자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가슴의 지독한 통증만큼 아픈 패배를 곱씹을 뿐.
혹여나 전장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때 제대로 복수해 주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자중해야 했다.
다만 의문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암천결계와 영혼오염의 조화는 탑에서 초인을 제압하고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 낸 비기.
그녀 자신도 대상자로 지정된다면 벗어날 자신이 없는 대마법이었다. 영혼과 차원,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갖춘 자신도 대응하려면 긴 시간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정상적인 방법은 아닐 거야. 분명히…….”
자신도 못 하는 일을 다른 이가 할 수 있을 리 없다.
질끈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루이사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스스로의 자존심에만 근거를 둔 근본 없는 사고 회로는 이내 삐뚤어진 답변을 내어놓았다.
“그래. 운명을 바꾸는 자, 그 왕과 그렇고 그런 관계인 거야. 첩? 아니면 아직은 내연?”
말을 꺼내 놓고 보니 더욱 정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그년이 잘나서 내 마법을 이겨 낸 게 아니야.
‘그 왕 때문이야.’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거짓말처럼 가슴을 찌르는 통증이 경감되는 것 같았다. 3간신히 지난밤의 악몽을 떨쳐 내고 나자, 비로소 현실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어쩐다.’
악마현신은 마도사와의 전투를 가정한 전투 마법이기도 했지만, 변장의 효과도 있었다.
그런 만큼 외모를 노출하지 않았다는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왕이 자신을 제국의 첩자로 짐작하고 있다면, 지난 밤의 일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이다.
‘따지러 올까? 아니야. 그런다 한들 왕이 할 수 있는 게 없어.’
이 작은 왕국으로선 제국의 공주인 그녀가 온갖 패악질을 부려도 너그러이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녀가 신분을 포기하거나 황제에게 찍히지 않는 이상 그녀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은 결국 제국을 도발하는 일로 이어질 테니까.
‘아무리 이 왕국에 제국을 적대하는 기조가 있다 해도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겠지.’
하나 불안감이 드는 것이 있었지만, 루이사는 애써 그 사실을 외면했다.
‘아니, 잘못될 것은 없어. 증거가 없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데 갑자기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공주님!”
더욱 짙어지는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서늘해지는데.
“구, 국왕이 찾아왔습니다!”
그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별궁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