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또르륵.
“어찌 이리 기별도 없이 오셨는지.”
찻물을 따르는 루이사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유독 창백한 피부 덕분에 더 붉어 보이는 입술.
그 입술이 만들어 낸 아찔한 미소와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드레스가 그녀의 미모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저번처럼 완벽한 은폐 마법은 아니군. 역시 어제 일이 관련이 있나?’
로건의 기감에는 흔들린 서클과 마력의 과부하로 인한 내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전에서 루이사를 처음 보았을 때 특성까지 사용해서 초감각을 극대화해 본 이래, 그의 기감은 또 다른 영역을 향해 한발 나아갔다.
이제는 그것이 오러유저 최상급으로 가는 또 다른 길목이 아닐까 하는 짐작까지 들다 보니, 코앞에 은폐나 위장 마법 따위는 없는 것처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확신에 가까웠던 짐작이 기정사실화되었다.
싱긋.
“아닙니다. 이제 곧 돌아간다는 연락을 받아 인사도 할 겸 들렀습니다.”
왕이 직접 사절을 찾아온다?
왕답지 않은 겸손한 태도였다. 루이사에게는 그것이 제국과의 차이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 작은 승리감이 지난 밤의 쓰린 기억을 지우는 것 같았다.
“마땅히 제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을 텐데요. 이리 찾아오시니 당혹스럽습니다.”
“아닙니다. 안 그래도 여쭤볼 게 있는 터라 겸사겸사 온 것입니다.”
“……예?”
무언가 찜찜한 느낌에 루이사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간 제 아우와 많은 시간을 보내신 듯한데, 혼담에 대한 언급이 더 없으셔서요. 동왕부에서 따로 언질을 주는 겁니까? 아니면 제 부족한 아우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건……?”
이어진 로건의 말에 그녀는 금세 인상을 필 수 있었다.
“아……. 호호, 그건 아닙니다. 로니안 백작님은 제게 과분한 신랑감이지요. 그분이 괜찮으시다면 돌아가서 정식으로 혼인을 추진하겠습니다.”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루이사의 모습은 혼담에 부끄러워하는 귀족 여자의 전형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에 로건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한데 그럼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기겠군요.”
“예? 무슨……?”
애초에 혼담을 진행할 의사가 없었던 루이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반문하는데.
“마도사의 경지에까지 오르신 제국의 공주님이 부족한 제 아우와 혼약을 하신다면, 저희가 어떤 예물을 보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말입니다.”
싱긋 웃으면서 하는 로건의 말에 그녀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자 어찌 반응할까?’
로건은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그대로 굳어 버린 루이사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제안했던 빅토리아의 말을 떠올렸다.
– 직접 물어보시죠?
– 뭐?
빅토리아가 했던 엉뚱한 말은 그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맹점을 지적하며 이어졌다.
– 제국의 공주가 초인이라는 사실을, 그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을까요? 왜 숨기고 다닐까요? 우리처럼 무언가를 경계하는 것도 아닐 텐데.
– 아……!!!
그 말에 로건은 자신이 착각하고 있던 부분을 확실히 깨달았다. 스스로가 빅토르 남매를 비롯해 새로 각성한 초인들을 숨기기에 바빴기에, 적에겐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 그게 뭔지는 몰라도 숨겨야 할 이유가 있다는 거겠죠. 최소한 제국 밖에서는 숨겨야 할 이유가.
– 그래. 거기다 공주는 그 검은 뱀의 마법을 쓰는 마도사라고 하셨죠. 아세리안에서 사건을 일으킨 자들과 같은.
리아의 말을 클레이튼이 거들었다.
– 폐하께서 아까 말씀하신 가정이 사실이라면, 동왕부가 공주의 경지를 황실에도 숨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래도 남는 의문은 여럿 있었다.
대체 공주가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왕국에 직접 왔는지.
어째서 직접 나서면서까지 사건을 일으킨 건지.
추측이 될 만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 ……이건 이용할 수 있겠어. 아니, 틀리더라도 한번 찔러 볼 만해.
로건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지금 루이사의 반응은 후자에 가까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황당하다는 표정이 제법 그럴듯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말을 들었을 때의 전형적인 반응. 하지만 이제 와 완벽한 연기라고 하기에는 좀 전의 침묵이 너무 길었다.
로건은 자신이 먼저 연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피식.
“솔직해지는 게 어떻습니까? 공주.”
“저는 폐하께서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계속 부인하시면 ‘황실’에 정식으로 청혼을 넣겠습니다. ‘마도사’인 루이사 폰 아세리안 공주와 제 동생의 혼담으로.”
“…….”
특별히 강조한 두 단어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던 공주의 표정이 다시 얼어붙었다.
“검은 뱀의 마법을 사용하는 제국의 공주라면, 황실에서 꽤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요?”
로건이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며 그리 말하자, 미소 짓는 모습 그대로 굳어 있던 루이사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해졌다.
보이지 않는 가면이 와장창 깨져 나간 듯한 모습.
그 극적인 변화의 끝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아니, 언제부터 알고 있었죠?”
냉담한 표정에 서슬 퍼런 살기가 어린 얼굴.
시선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자신을 찢어발길 것 같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로건은 여유로운 태도로 차를 후루룩 마셨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숨겨진 서클을 확인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스승님이…….”
울컥해서 소리를 지르려던 루이사의 안색이 그 순간 다시 창백하게 질렸다.
마치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한 것처럼.
‘스승……?’
로건은 그 단어를 머릿속에 새기며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믿기 싫으면 믿지 않으시면 됩니다. 하지만 과거의 이야기보다는 우리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이야기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입술을 질끈 깨무는 루이사의 얼굴에 더 이상 여유는 보이지 않았다.
‘황실에 알려지면 안 된다. 그럼 역시 검은 뱀의 마법사들은 제국 내부의 적? 아니면 동왕부가 반역을 꿈꾸나?’
하지만 현생은 물론 전생에서도 그와 관련한 정보를 접한 적은 없었다. 유일하게 짐작이 가는 것이라곤 전생의 마지막에 본 그 마법진뿐.
수많은 제물을 사용한 그 소름 끼치는 광경이, 왕국 연합에서의 전쟁 당시 트리아의 초인 작센의 최후와 겹쳐지고 있었다.
그런 마법, 그런 광경은 사람이 손대서는 안 되는 인외의 마법이다.
이유 모를 혐오감과 더불어 강렬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당장은 정보가 더 필요해.’
그래서 로건은 침묵하는 루이사를 보며 자신의 패를 먼저 까기로 했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우리 왕국은 제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국 내부의 분열은 오히려 환영하는 바지요. 제가 굳이 공주님이 곤란한 상황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그 과도하게 솔직한 말에 루이사의 눈가가 살짝 씰룩였다. 말에 담긴 내용이 전부 진실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로건은 복잡한 머릿속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루이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루이사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하더니 이내 다시 싸늘하게 굳어졌다.
몇 번이나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참 표정 변화가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아무리 당황했다고 한들 이리도 쉽게 평정이 깨어지는 공주를 사절로 보내다니,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차라리 마도사 공주가 아닌 잘 훈련된 첩자를 보낼 것이지.’
그렇다면 정말 마탑의 일지를 노린 것일까?
무력이 필요할 테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
로건의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데, 침묵 끝에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가 그 수많은 상념을 치워 주었다.
“……뭘 원하지?”
“서로 물어볼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 질문을 하나씩 교환해 볼까요?”
로건의 미소를 루이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럼 제가 먼저 물어도 될까요?”
조금은 진정이 된 듯 다시 바뀐 말투와 어조.
“원하시는 대로.”
하지만 바로 나오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다시 싸늘해진 목소리로 루이사가 물었다.
“어떻게 내 마력을 눈치챘죠?”
“그냥 보니까 알게 됐소.”
“헛소리……!!”
벌떡 일어나 화를 내던 루이사는 미소를 짓는 로건을 보며 애써 분기를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털썩 주저앉으며 살벌한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제대로 된 답변을 안 할 거면 거래는 없던 걸로 하죠.”
거래라.
몰려 있던 상황을 동등한 입장으로 끌어올리는 말장난이었지만 로건은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그저 되물을 뿐.
“왜 헛소리라 생각하십니까?”
“……내 마력을 봉인했던 마법은 마도사가 가까이서 살펴도 알 수 없어야 정상이니까.”
로건으로선 또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특성 ‘업’까지 사용해 초감각을 극대화했다고 해도, 마도사의 탐색 마법보다 낫다고 보기엔 어려울 듯했으니까.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전 분명히 처음 보는 날 확인했습니다만?”
“……유도 신문이나 할 거면 거래는 정말 끝입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에 싸늘한 대답이 돌아오자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제 감각이 좀 특별하기는 합니다. ……이렇게밖에 설명을 못 하겠군요. 이질적인 기운에 특히 민감하긴 합니다만.”
“흥. 그럼 이것도 보이시겠네요?”
루이사가 코웃음을 치자 그녀의 내부에서 마력이 은밀하게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묘한 형태를 그리는 마력의 흐름이.
“오망성이라, 몸속에 마법진이라도 만들 생각이십니까? 그런 것도 가능하다면 정말 신기한 재주군요.”
그 말에 루이사의 얼굴이 흠칫하고 굳어졌다.
“어떻게……?!”
놀란 표정의 루이사는 이내 무엇을 떠올렸는지, 곧 다시 차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재주인가?’
초월적 감각이라는 자각은 있었지만, 그것이 마도사의 탐색 마법을 능가할 정도다?
로건으로선 루이사가 너무 과장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 후에 나온 루이사의 대답은 실로 기가 막힌 것이었다.
“제대로 된 답변이 아닌 것 같으니 다른 질문을 하죠.”
하?
속으로는 이미 납득을 한 것 같은데?
“‘우리’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있죠?”
이득만 보려는 태도가 괘씸했지만, 대화의 주제가 그 역시 바라던 바라 로건은 한 번 더 참아 넘기기로 했다.
“우리라 하시는 게, 제국이나 동왕부를 말씀하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계속 장난으로 일관하실 거면 그만…….”
은근슬쩍 떠보려던 말이 통하지 않자 로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검은 뱀의 문양을 쓰는 마법사들의 집단. 그리고 제국의 적.”
로건의 말에 루이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게 전부인가요?”
“더 알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제국을 적대하는 입장인데.”
아는 것도 없지만 더 알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 척 두루뭉술하게 말했음에도 루이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내 차례군요. 당신들은 왜 제국을 적대하는 겁니까?”
심각한 질문이었던 것일까.
루이사의 입술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망설임 끝에 이내 답변이 튀어나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답변이.
하지만 애초에 마도사와 오러유저다. 진실을 강제하는 마법 계약서도 통하지 않을 초인들의 대화에선 이 정도 답변도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로건은 그것만으로도 가장 궁금했던 점을 확실히 해결할 수 있었다.
‘제국의 적이라 이거지.’
애초에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문답에 모든 진심을 다 꺼내 놓을 리가 없다. 답변과 질문 자체에서 불확실한 사실을 슬쩍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로건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이제는 제 차례군요.”
묘한 미소를 띤 루이사가 대뜸 엄청난 말을 꺼내 놓았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도 하죠. 폐하께서는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저희와 협력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