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아는 분이 계신 거 아니었습니까? 수도를 잘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던데.]
“전혀 없어.”
[크으음. 지금 증명도 안 된 약을 귀족들에게 팔려고 하는데 인맥 같은 건 없으니까 니가 알아서 방법을 생각해 봐…… 라는 말씀이신 거죠?]“그래.”
로건의 태연한 대답에 필립은 잠시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일이 잘못되면 로건 님은 몰라도 전 확실히 죽겠네요.]“괜찮다니까.”
[자기 목숨 아니라고 정말 막…….]“뭐라고?”
[아, 아닙니다. 크으음. 귀족 인맥을 만들려면 역시 파티가 최고죠.]“파티? 파티라…….”
[예. 하지만 전 평민이라 귀족 파티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그럼 적어도 로건 님이…….]“내가? 나보고 파티에 가라고?”
파티할 돈이 있을 리 없는 맥라인 가문에서는 당연히 경험한 적 없고, 전생에서도 파티라고는 용병들 다수에 기사 소수가 난장판을 벌이는 승전 파티가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곤란한 주문이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파티에 참석해서 인맥을 만든다고 해도 장사에 도움이 될 정도로 인연이 깊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파티에서 직접 장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음? 직접 장사? 호오!”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인데 정말 그러시면 안 됩니다. 로건 님뿐만 아니라 맥라인 가문 자체가 사교계에서 매장당할 겁니다.]“아니. 장사한다는 얘기가 아니야. 파는 거만 아니면 되잖아.”
[예?]필립은 뭔가 또 불길한 느낌이 드는 듯 불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흐음. 덕분에 좋은 생각이 났어. 그럼 수도에서 만나자.”
[저도요? 저도 여기서 하는 일이…….]“일주일이면 도착할 거야. 일주일 뒤 아침 그랑의 서문 안에서 만나지.”
[저기, 로건 님. 제 말 듣고 계신…….]지지직.
팍.
간절한 필립의 외침과는 달리, 무언가 생각에 잠긴 채 통신실을 나서는 로건의 발걸음은 상당히 가벼워 보였다.
* * *
“또 외유를 나가겠다?”
“예. 큰 사건을 경험하고 나니 놀란 마음을 다스릴 만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네가?”
“예.”
갑자기 면담을 요청한 큰아들의 어치구니 없는 핑계에 패드릭은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
“허…… 크흠. 그래, 어디에 갈 생각이냐?”
“수도에 좀 다녀올 생각입니다.”
“수도?”
“예.”
“마음을 정리한다면서 대도시에 간다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
“네.”
패드릭은 뻔뻔한 얼굴의 로건을 보며 황당을 감추지 못했지만 아들의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정력제 팔러 수도에 간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돈이 될 물품이라도 상단을 통한 대리 거래라면 모를까 자신이 직접 영업(?)을 뛰겠다고 말하면 가만히 있을 분이 아니었다.
‘귀족의 체면 운운하면서 말리시겠지.’
그러니 이럴 때는 차라리 뻔뻔하게 나가야 했다.
“그래. 또 무슨 생각이 있는 거겠지. 다녀오거라.”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다행히 실적이 만들어 놓은 평판은 아직 굳건했다.
현생에서는 처음 가 보는 수도.
귀족 가문의 자제가 시종도 없이 혼자서, 그것도 무려 2000개 가까이 되는 상자를 실은 마차까지 몰고 가겠다는 것이 가문 내에서 조금 문제가 되긴 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보인 성과 덕분에 로건의 우격다짐에 가까운 강력한 주장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로건은 오래간만에 고즈넉하게 밤하늘의 별을 이불 삼아 길가에서 홀로 노숙을 준비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릭은 일을 해야 하니까.”
나날이 짙어지는 눈 밑 그늘과 함께 매일 창고에서 코를 막고 노동을 하는 릭이 들었다면 환장할 소리였다.
카록의 고기와 이 ‘약’과의 상관관계를 가능한 숨기고 싶었기에 아직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심복이 더 없었으니까.
“그래도 미안하긴 한데…….”
로건도 양심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었다.
“좋아. 네 이름은 앞으로 임포릭(Impo-Rick)이라 하자.”
옆에 수북이 쌓인 상자, 릭의 고생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릭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불능을 치료하는 릭. 좋네!’
그 순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잠을 청하던 릭은 알 수 없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 * * 발 디딜 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성문 앞에 빽빽하게 몰려든 사람들.
그들이 콩알만 한 점처럼 보이는 먼 거리에서도 성문과 성벽은 웅장한 크기를 자랑했다.
마치 거인의 성에 들어서는 소인들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그만큼 천년 왕국의 수도, 성(城) 그랑은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고성이었다.
무려 20m에 이르는 높고 거대한 성벽은 주기적으로 갱신되는 보호 마법의 영향을 받아 쉽게 무너지지도, 닳지도 않으며 천년을 버텨 왔다.
이야기 속에서는 오러유저의 오러로도 성벽에 쉽게 흠집을 내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건 과장이지만.’
전생에 속절없이 무너지던 성벽을 기억하는 로건으로선 저 위압감 넘치는 성벽이 오히려 제국의 강력함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성벽이 점차 가까워지며 바글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가득 보일수록 더 심해졌다.
‘상주인구만 100만 명에, 유동 인구는 200만 명이 넘는 대륙 동부 최고이자 최대의 도시.’
그란디아 왕국의 사람들에게 수도 그랑은 말 그대로 천년 역사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다.
아레스 제국에도 없는 초고대에 만들어진 거성.
하지만 그것을 보는 로건의 감상은 전혀 달랐다.
성문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것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던 광경이 로건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으으음.”
이미 불타 버린 맥라인 성을 뒤에 두고 미친 듯이 수도로 질주하던 때가.
그리고 수도의 저 서문 앞에서 적의 시체로 산을 만들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쓰러지던 그리운 얼굴이.
‘……로니안.’
그리고 비참하게 끌려가는 동생의 모습을 아무것도 못 하고 무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던 기억까지.
까득.
‘다시는…….’
히이이잉.
“읏!”
무심결에 손에 힘이 들어가 고삐를 과하게 쥐자 말들이 갑자기 발작하듯 앞발을 들어 올렸다.
“위, 위험!”
“물러서!”
그 모습에 주변의 사람들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로건 님!”
그 작은 소동으로 안쪽에서 만나기로 했던 일행은 조금 일찍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그런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일단 고객 명단을 구해야지.”
“고객이요?”
“그게 안 서는 귀족 명단. 구할 수 있어?”
필립은 실제로는 오랜만에 마주한 로건을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있겠습니까?”
“그치? 비밀로 하겠지?”
“당연하죠. 그런 사람들이야 당연히…… 어, 설마.”
“그래. 수도쯤 되면 그 비밀을 파는 놈들도 있으니까.”
그것이 로건이 생각한 영업의 시작이었다.
비밀을 캐는 자들. ‘진짜’ 정보 길드의 대부분은 음지에서 양지의 정보를 수집한다.
고객도 가려 받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감지하는 순간 언제라도 꼬리를 자르고 숨어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보 길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길드 중 하나인 ‘녹스’의 동대륙 지부가 그랑에 있었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몰라도 돼. 일단 여기서 쉬고 있어. 나 혼자 다녀올 테니.”
“저,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안전한 숙소를 두고 굳이 위험한 곳까지 따라나서겠다고 하는 필립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그러나 그의 눈에 서린 열망은 진심이었다.
상인으로서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유능한 정보 길드와 연줄을 만드는 것은 모든 거상들의 필수 조건이자, 모든 상인들의 꿈이었다.
“위험한 곳에 있어서 너 죽을 수도 있어.”
“……얌전히 있겠습니다.”
하지만 필립의 포기는 빨랐다. 제 목숨보다 중요한 건 그 무엇도 없었으니까.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로건은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1박에 50골드나 하는 최고급 숙소를 내성에 마련해 놓은 로건이 막상 조심스레 찾아간 곳은 외성 밖 동쪽의 빈민가였다.
백여 년 전, 서쪽 아레스 제국의 급부상으로 무역의 중심이 서부가 되면서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은 모두 서부로 향했다.
동부에 남은 서민들은 떠나고 싶어도 떠날 능력이 없는 극빈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극빈층들이 모여 가장 크게 무리를 이룬 곳이 그랑의 동쪽 외성 밖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성이나 외부에서 죄를 짓고 도망친 범죄자들, 혹은 사회 부적응자들이 끼어들며 슬럼을 형성했다.
하지만 부패한 사회 고위층은 그 슬럼을 형성한 ‘쓰레기’들을 위해 굳이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갈수록 치안의 부재는 더해졌고 결국 어느 순간부터는 나라에서도 포기한 최악의 무법 지대가 형성되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낮에도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곳.
내성의 귀족들과 외성의 번화가에 가려진 그랑의 민낯이었다.
녹스의 그랑 지부는 그 무법 지대에서도 구석진 곳에 있었다.
‘약해 보이면 바로 내장까지 털어 갈 놈들 천지지.’
로건은 한 푼 줍쇼, 하며 손을 내미는 거지의 시선을 무시하며 무법 지대의 골목을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사실 음지의 길드가 한 군데 오랜 시간 존재한다는 것이 웃기기는 했지만, ‘녹스쯤 되면 쉽게 지부를 옮기지는 않을 거야.’
이른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정보 길드라는 것은 그만큼 손님이 많다는 뜻이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지부를 옮겼다가는 그 손님들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로건의 짐작은 맞아떨어졌다.
똑. 또똑. 똑. 똑.
외진 폐가의 문을 일정한 형식으로 두드리자 문 상단에 있던 작은 작대기 모양의 구멍이 달칵 열렸다.
구멍 속에 보이는 푸른 눈이 귀찮은 듯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뭐요?”
“녹스.”
“……암호.”
“루나이.”
“쯧. 기다리쇼.”
다행히 녹스의 위치뿐 아니라 암호도 그대로였다.
전생과 다른 점이라면 밖에서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했다는 점 정도였다.
물론 그 이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들어오쇼.”
폐가의 안쪽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넓었고, 지하의 공간은 더욱더 넓었다.
끼익.
지하의 어느 한 방 앞에 멈춰서서 낡은 문을 열고 들어선 로건을 평범한 인상의 중년인이 맞이했다.
“왕국 서남부의 변방에서 여기까지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로건 맥라인 공자.”
처음 보는 이가 단숨에 자신을 알아보았지만 로건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고작 한 시간 만에 자신의 정보를 알아냈다는 것이 녹스의 능력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 기꺼울 뿐이었다.
“정보 길드에 정보를 사러 왔지 왜 왔겠는가.”
“오호. 저희 지부 위치와 암호는 또 어떤 분께 들으셨는지.”
“그거야 그쪽에서 알아보면 될 일이고.”
아무리 조사해 봐야 답이 나오진 않겠지만.
드르륵.
로건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중년인이 앉아 있는 탁자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뭐 좋습니다. 저희야 가격만 맞으면 되니까요. 무엇을 원하시는지?”
“첫 번째, 최근 10년간 결혼을 했는데도 자식이 없는 귀족의 명단. 두 번째, 첩이나 정부를 만들지 않은 귀족의 명단. 세 번째, 정력에 좋은 음식을 자주 찾는 귀족의 명단. 수도 기준으로.”
“……예?”
발기 부전, 불능인 귀족들의 정보도 녹스라면 혹시 알고 있을지 몰랐다.
다만 귀족의 약점이 될 정보는 알고 있더라도 절대 싸게 팔지 않을 것이다.
고위 귀족의 은밀한 정보라면 후환 때문에 아예 팔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추론이 가능할 만한 정보를 모아 자신이 직접 추려 내는 것이 나았다.
“어렵나?”
“어렵진 않습니다만 그런 정보가 왜 필요하신지……?”
“알려 주면 정보 값으로 쳐 줄 텐가?”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거래가 성사되었다.
* * * 녹스에서 정보를 가져다준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실력이야 믿고 있었으니 그리 놀랍지 않았지만 가격만큼은 놀라웠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이런 소문에 가까운 정보 세 개가 900골드라구요?”
필립이 1cm도 되지 않는 얇은 책자 세 개를 집어 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녹스가 비싸기는 하지.”
“시간만 있다면 저희도 할 수 있는 일을…….”
“그 시간이 아까우니까 돈 주고 맡기는 거지. 그냥 닥치고 그 셋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사람들이나 체크해. 두 개에 해당하는 사람도.”
“……예.”
전생의 거상이 전생의 용병에게 정보 길드의 이용법을 배운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이 노려야 할 목표들이 가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