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20)
320화
“뭐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음이라 존대조차 잊었다.
그 모습을 본 루이사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당황하는 것을 보며 여유를 찾은 듯했지만, 로건은 그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만큼 솔깃한 이야기였으니까.
‘제국을 상대하는 동맹? 그 내부에 있는 적과 함께?’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인가.
필생의 목표를 훨씬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로건의 머릿속에 전생의 마지막에 보았던 시체의 산이 떠올랐다. 나아가 그 위에서 미친 듯이 웃어 대던 광(狂)황제 바로스의 얼굴도.
그런데 상대가 순순히 대답해 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대화는 여기까지군요.”
흐름을 끊어 버리는 단호한 말과 함께 찻잔을 내려놓은 루이사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뒤꿈치를 문 붉은 맹수는 사냥감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황실에 당신의 마법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 당신도 동왕부도 큰일이 날 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것만으로도 좋은데 괜찮겠습니까, 공주?”
“……질문을 교환하는 거래라고 들었는데요?”
돌아서려던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린 푸른 눈에 한기가 잔뜩 서렸지만, 로건은 그저 빙긋 웃으며 찻잔을 들어 보였다.
“거래 맞습니다. 다만 담보를 이쪽이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맥라인의 태양이 아니라 뱀이었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거래를 계속해 볼까요?”
로건의 능글맞은 미소에 안색을 굳힌 루이사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세 가지. 딱 세 가지 질문만 교환하죠.”
“하? 따지실 처지가 아닐 텐데요?”
“어차피 나야 왕부를 버리고 숨으면 그만이니까요. 어때요, 3가지 질문 교환. 서로 가능한 수준에서만 솔직하게 답하는 거로.”
공주가 동왕부에 미련이 없단다.
동왕부는 그 조직과 관련이 없다는 어필인가?
아니면 이조차 기만일까?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을 가슴에 새겨 둔 채, 로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뭐, 제가 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럽시다.”
“그럼 제가 먼저…….”
“그전에 제가 물은 질문부터 답해 주셔야죠?”
“……첫 번째 질문?”
쳇.
거저 하나 먹으려 했더니.
“그러시죠.”
로건이 내심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이자 루이사가 짤막한 단어를 툭 던졌다.
“제국의 의뢰.”
의뢰?
싸우면서도 필요에 따라 협력한다는 것인가?
조직의 정체성이 오히려 모호해지는 것 같아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애매한 답변이군요.”
“싫으시면 이만 대화를 끝낼까요?”
더 이상 양보하지는 않겠다는 뜻이 푸른 눈에 역력히 보였다.
‘이거 너무 몰아붙였나.’
하지만 어차피 회유할 수도 없는 사람이니, 로건은 작은 한숨과 함께 그 답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제 차례군요. 왜 제국을 적대하는 거죠?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그란디아의 역사에서 제국과의 전쟁이 한두 번이었나. 그저 대비를 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얼버무리려던 로건은 루이사의 푸른 눈을 보며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 여자가 납득하지 못하는 답변을 하는 순간 이 대화는 끝날 것이다.
새삼 그 각오가 느껴져 로건은 짧게 혀를 찼다. 어느 정도는 사실을 풀어야 했다.
“제국이 전쟁을 벌일 예정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걸 어떻게……?”
“이젠 내 차례입니다. 당신들 조직의 목표는?”
솔직히 가장 궁금한 것은 제국 왕부의 공주가 어째서 제국의 적을 자처하냐는 것이었지만.
‘동왕부 자체가 검은 뱀과 한 패일까? ‘
이 질문 하나로 어쩌면 그 의문까지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망설이던 루이사의 답변은 이번에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 것.”
뭔 개소리야?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막연한 대답.
하지만 굳게 다물어진 붉은 입술은 더 이상 다른 말을 토해 낼 것 같지 않았다.
‘이거, 제대로 목줄을 잡은 줄 알았는데.’
목줄을 잡힌 개가 여차하면 혀를 깨물고라도 죽겠다고 시위하는 꼴이었다.
이래서야 루이사에게 협상가의 자질이 없다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
‘질서를 바꾼다면, 적어도 제국에 계속 순응하지는 않을 거란 뜻이겠지.’
그 사실 하나만을 새겨 두며 로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이번엔 루이사가 이전에 끝맺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제국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을 아셨지요?”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잠시간 머리를 굴리던 로건은 진실도 거짓도 아닌 답을 내어놓았다.
“황제를 만나 봤지요. 절대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겨우 그걸로?”
“진실의 일부죠. 당신의 대답처럼.”
붉은 눈과 푸른 눈이 서늘하게 교차하더니 이내 두 사람 모두에게서 한숨과 함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래서야 둘 다 소득이 전혀 없겠군요. 마지막 질문은 서로 진심으로 답해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달리 말하면, 진실하게 답해 줄 수 있는 질문에만 대답하기로. 어때요?”
“……좋습니다.”
서로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 사실을 염두에 둔 채 담담한 어조의 말이 교차하고, 마지막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그리고 그날의 대화가 끝났다.
* * * [네 힘을 알고 있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양에 대해 짐작하는 것은 가능해. 게로힌과 충돌한 맥라인의 초인들이나 연합 전쟁에서의 보고가 들어갔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네 봉인을 꿰뚫어 보고 그 성질까지 파악했다니?]“본인이 직접 제게 그리 말했습니다. 감각만으로 알아챘다고.”
그 말에 스승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감각만으로? 허, 내가 직접 건 봉인을……. 어처구니가 없구나. 운명을 바꾸는 자의 힘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것인가…….]“애초에 저의 힘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주변 인물들이 현혹에 걸리지 않은 듯합니다.”
[운명을 바꾸는 힘에다가, 진작 정체를 들켰다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루이사는 자신이 그 봉인을 풀고 한바탕 사건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로건 왕의 말을 들어 보면 그 사건과 별개로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으니까.
‘어차피 어젯밤의 실패가 조직에 끼치는 영향은 없어.’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해 보지만 자연스레 자조 어린 미소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심하군.’
공(功)은 부풀리고 과(過)는 숨긴다.
탑의 하위 조직원들이나 하던 혐오스러운 행태를 자신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니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실패의 끝은 세뇌 아니면 제물.
그것은 카셀 마탑이 황실의 눈을 피해 조직을 유지하고자 지탱해 온 엄벌의 문화가 만들어 낸 폐습이었고, 그 때문에 정보 전달에 차질이 생겨 오히려 일이 꼬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엄벌의 문화 역시 그녀가 바꾸고자 했던 관습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그것을 피하려고 핑계나 대고 있는 꼴이라니.
‘어쩌다 이런…….’
빠드득.
다시금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맥라인 왕의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이가 갈렸다.
그러다 자기가 낸 소리에 화들짝 놀라 통신구를 바라보니, 스승은 그저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루이사는 다시 차분히 로건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자신이 했던 질문과 그에 따른 답을.
– 폐하는 신전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대화의 맥락에 전혀 어울리지 않던 뜬금없는 질문.
하지만 어려울 것 없는 질문이기에 왕의 대답은 쉽게 나왔다.
– ……신들의 대리자. 그런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닌 거 같은데?
– 폐하가 보는 신전에 관해 묻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트러블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 ……타락한 사제들과의 트러블이었을 뿐이요. 교황도 바뀔 테니 이제는 신전도 좀 바뀌지 않겠소? 9대신께서 정명한 대리자를 뽑아 주시기를 바랄 뿐이오.
–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 ……설마 그게 질문의 끝이요?
– 예.
치열한 대치 끝에 나온 마지막 대화가 그런 허무한 것이었으니 자신을 바라보는 로건 왕의 표정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루이사는 그 뜬금없는 질문과 대답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확신할 수 있었다.
“로건 왕은 자신이 가진 힘의 근원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시작되고 있는지도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각이 없다?]“예. 저희에 대한 지식도 단편적일 뿐, ‘운명을 바꾸는 자’나 ‘신들이 떠난 시대’에 대한 정보는 아예 모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루이사의 그 자신감 어린 말투에 통신구 속 스승의 표정도 묘하게 바뀌었다.
[운명을 바꾸는 자가 제 역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감이라도 잡아야 정상일 텐데? 흐음. 이건…….]“예. 충분히 이용 가능할 것 같습니다.”
루이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소한 것 같지만 조직의 목표를 이룰 방향. 그 방향에 지름길이 될 이정표를 보여 준 것이니까.
[좋다. 일단 검토해 볼 테니 이만 귀환하라.]“예, 스승님.”
그랬기에 그녀는 왕성에서의 처참한 실패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웃을 수 있었다.
* * *
“어찌 되었습니까, 폐하?”
“당사자임은 확인했고, 궁금했던 점도 확인했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드웨인의 물음에 로건은 루이사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 당신들 조직의 이름은?
– 카셀. 카셀 마탑.
“지브릭 카셀.”
“예?”
“마도성자의 후예들이다. 확실히 그놈들이었어. 허…….”
“예?”
“있어. 인간 같지 않은 놈들.”
전생의 마지막에 쌓였던 미혹. 시체의 산을 만들었던 그 주동자들에 대한 의문이 확연히 풀렸다.
제국의 내부에서 황제와 어울렸던 놈들이 지금은 서로 싸우고 있으니, 자신이 회귀하여 만든 변수 중에 제법 마음에 드는 변화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또 고민이 생겼다.
“이걸 황실에 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만약 공주의 말과는 달리 동왕부 전체가 카셀 마탑과 관련이 있다면 이것을 황실에 알리는 것만으로도 왕국은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려 사방왕 중 하나가 제국 황실과 충돌하게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만약 공주의 말이 맞다면?
동왕부가 어느 정도 처벌을 받는 수준에서 내분은 마무리될 테고, 검은 뱀들은 다시 숨어 버릴 것이다.
‘제국에 적대하는, 몇이나 될지 모르는 마도사들 집단이 오롯이 적으로 돌아서게 되겠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어쩐다…….”
지금부터 해야 할 선택이 앞으로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 같다는 강렬한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왜 신전에 관해 물었을까.’
루이사의 마지막 질문도 꽤 마음에 걸렸다.
밤이 깊어 갈수록 로건의 고민도 깊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