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23)
323화- 새 교황 오스틴 플루이트 1세 즉위.
그 뉴스는 세상의 민초들에게는 그저 새로운 교단에 새 우두머리가 생겼구나, 정도의 감흥밖에 주지 못했다. 그나마 교단의 사정에 밝은 이들이나 타락한 신전이 조금은 정화될까 하는 기대감을 품을 뿐.
하지만 그 즉위 연설에서 나온 말, 제국과의 협력 선언은 세상의 지배자들을 뒤흔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접한 중앙 대륙의 중심지, 아세리안의 황궁에선 황제가 사실상 동왕부로 쫓겨났던 2황자 바로스를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초췌한 안색의 바로스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최근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인지, 황제가 주는 압박감을 견디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히 예상했던 것처럼 좋은 의미의 호출인 것 같았다.
“그놈들이 벌써 성과를 보였더구나. 성국이 전에 없던 태도를 보였어.”
담담하게 이어진 황제의 말에 억눌렸던 마음이 풀어지면서, 바로스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화색이 돌았다.
“……들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내 약속한 바가 있으니, 지금 이 시점부터 네 복권을 허락하겠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쿵.
혹여나 절대자의 마음이 바뀔까.
바로스는 즉시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오롯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약속은 약속이니 지킨다. 하나 그로 인해 심각한 걱정거리도 하나 생겼다. 무엇인지 알겠느냐?”
감정의 변화 없이 여전히 담담한 어조에는 무서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 떨어졌다가 이제 구원의 빛을 얻은 찰나. 이 상황에서 성급히 입을 열어 다시 모든 것을 망칠 상황은 피해야 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봐도, 도무지 그 걱정거리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자 짐작 가는 것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폐하.”
눈을 질끈 감은 바로스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섣불리 아는 척하는 것보다는 자복하는 것이 상책이다. 황제 앞에서 내세울 자존심 따위는 없었다.
다행히 그 판단은 옳았던 것 같았다.
“평생을 원칙대로 올곧게 살아왔다는 새 교황이 교단의 가장 큰 원칙 중 하나를 바꿨다. 이래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느냐?”
이어진 황제의 말엔 바로스의 눈동자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말뜻을 그제야 이해한 것이다.
“그런……!”
황제가 말해 보라는 듯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놈들이 신성력까지 뚫고 세뇌할 방법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소름 끼치는 예감에 바로스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바닥을 향해 있던 그의 머리 위로 더욱 무거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렇다. 너는 그런 놈들을 이제 어떻게 제어할 생각이더냐?”
그 말을 끝으로 대전에 무거운 침묵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바로스는 그제야 자신이 호출당한 가장 큰 이유를 깨달았다.
‘이것은 시험이다.’
정말 놈들의 마법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면, 황제는 자신의 복권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죄를 물어 자신을 쳐 내고, 다시 놈들을 사냥할 준비를 시켰을 게 분명하다.
즉, 지금 이 말은 자신을 떠보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그리고 달리 말하면.
‘내 능력을 증명할 기회.’
주먹을 불끈 쥔 바로스가 심호흡을 하며 가슴에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내 번개처럼 번뜩이는 영감이 최선의 답을 찾아냈다.
“그들을 제어할 필요는 없습니다.”
“없다?”
“예. 놈들이 약속을 지키면 지키는 대로 제국에 유리한 것이요, 지키지 않는다면 놈들의 수작을 밝혀내고 교단의 지위를 무너트리면 됩니다. 어느 쪽이건 우리 제국의 유일한 걸림돌이었던 성국은 무너집니다.”
당당히 고개를 치켜든 바로스는 황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목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자 모호한 표정의 황제가 되물었다.
“심복지환이 될 놈들은 그냥 놓아두겠다?”
“성국이 무너지면, 그 수작이 놈들의 것이라 밝히고 세상의 공적으로 만들면 될 일입니다. 놈들의 마법에 당한 이들은 확실한 흔적이 남는바,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렵지 않을 테니 우리 황실의 보증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스는 황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보았고, 자신이 정답을 말했음을 직감했다.
“지성을 잃지 않은 것은 확실하구나.”
나아가 황제가 자신의 세뇌 여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는 것 또한.
“좋다. 이 순간부로 황위 계승전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명심하라. 내년 수확기가 끝나면 후계자를 결정지을 것이니, 그 안에 너의 모든 것을 보여야 할 것이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기한 축소까지 통보되었다.
‘왜?’
당황스러웠다.
기록관과 황자들에게 통보되었던 황위 계승전의 종료 시기가 원래보다 1년 이상 앞당겨졌다.
‘성국이라는 걸림돌을 치웠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자신은 최근의 실책으로 점수를 꽤 까먹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황제는 한 가지 일로 공과를 두 번 따지지 않으니, 자신의 복권이 확정된 것을 끝으로 성국에 대한 공헌도는 점수로 치환되지 않을 것이다.
이내 그 짐작을 증명하는 듯한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네 형을 이기기 위해서는 조금 더 분발해야 할 것이다.”
그에 바로스는 이를 악물며 그 자리에서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맥라인에서의 작업은 어찌 되고 있소?”
[흘흘. 뭘 그리 성급하게 구시는가, 황자. 기한은 넉넉할 텐데?]바로스의 독촉에도 통신구 속 늙은이는 그저 능글맞게 웃을 뿐이었다.
평소라면 심리전을 마다할 그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속내 겨루기나 하고 있을 심정이 아니었다.
쾅!
“반년! 그 안에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단 말이오!”
이 겨울이 지나고, 내년 수확기면 모든 것이 결정 난다.
그렇다면 그보다 빨리 승세를 굳혀야 했다.
[반년? 황제가 내년에 모든 것을 결정하기로 한 모양이지?]그 의뭉스러운 반문에 바로스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졌다.
“내게 황위를 안겨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럴 수 없다면 네놈들은 다시 계승권 있는 황자와 연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이거, 우리 황자님의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군. 하지만 이미 작업에 들어갔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걱정하지 말게나.]마치 아이를 다루는 듯한 말투에 바로스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황태자가 되지 못한다면, 내가 혼자 죽을 것 같은가? 그대들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으르렁거리는 음성에는 여유가 없었다.
혹여나 놈들이 자신의 배다른 형, 클리드 반 아레스와 선이 닿은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커진 탓이었다.
하지만.
[흐음. 흥분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느니. 그대가 원하는 것은 전부 이뤄질 것이다. 성국의 일 또한 보았을 텐데?]“그래서 더욱 못 미더운 것이다. 고작 맥라인이 성국보다 어렵다는 건가? 이리도 시간을 끌 정도로!?”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다는 것을 그대도 알 텐데. 너무 평정을 잃었군, 바로스 황자.]상대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기에 바로스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붉은 머리 청년이 또다시 자신을 가로막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 탓이었다.
“하면 소정의 성과라도 내놓으란 말이다! 로건 맥라인 그놈이 내 신경을 건드리는 이유라도!”
그 신경질적인 고함은 의외의 답을 가져왔다.
[아……. 하하, 그렇지. 그런 약속을 했었지. 뭐, 다행히 그 말은 바로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네.]“……뭐라고?”
[로건 맥라인. 그자는 역천의 길을 걷는 자일세. 자연히 세상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에게 불안감을 심어 주지.]“그게 무슨 개소리지?”
솔깃한, 그러나 전혀 이해되지 않는 답변이었다.
[그자로 인해 가장 크게 운명이 뒤틀릴 자들은 그가 거슬린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는 뜻이네.]설명을 들어도 찜찜함만 늘어날 뿐이었다.
쾅!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하고, 제대로 된 이유를 내놓으라고!”
[놈을 보면서 불안감을 크게 느낀다면, 바로스 황자 그대가 그 대척점에 선 자라는 뜻이다. 이리 말하면 알아듣겠나? 정당한 운명이라면 세상의 정점에 섰어야 할 것이 그대라고.]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 거창한 표현이 바로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켰다.
세상의 정점에 선다?
“……내가 황제가 될 운명이라는 뜻인가.”
[그렇게 볼 수 있지.]“……그렇다면 놈은? 그 운명을 막을 놈이라면 가장 먼저 처리해야지!”
[하하. 지금 놈을 죽인다면 이미 그자에게 깊게 관여된 그대의 운명 역시 꼬이게 될 뿐. 올바른 흐름은 우리가 만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황자.]“이제 시간이 없다고!”
[반년이라. 염두에 두지.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될 걸세.]알 수 없는 말에 이은 근거 없는 장담에 속이 터질 것 같았지만, 바로스로선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저벅저벅.
황궁의 복도를 걷는 바로스의 발걸음에는 짜증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평소라면 부드러운 웃음을 연기하며 한낱 시종들의 인사도 받아 주었을 그는 연달아 고개를 숙이는 시종과 관리들을 모조리 무시한 채 목적지를 향해 다급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동왕부에서 맥라인 왕실에 간 것이 루이사라고 했나?”
“예, 전하.”
“그자들이 무슨 수를 쓰고 있는 것 같던가?”
“……공식적으로는 수출과 혼담에 관한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여유를 잃은 듯한 황자의 짜증 어린 음성.
그에 푸른 머리의 미남자, 레오스가 작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맥라인의 왕제와 혼약으로 이어지고 나면 동왕부에서 직접적으로 맥라인의 정권에 간섭하려는 수준일 것입니다. 맥라인 왕으로서는 제국의 사방왕이라는 인맥을 얻을 기회이니 쉬이 거부할 수도, 단번에 쳐 낼 수도 없겠지요.”
“그게 전부인가?”
레오스는 황자의 말에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정보가 너무 없어.’
하물며 2황자가 실종되고 돌아온 직후에는 그에게 숨기는 것까지 생겼다.
애초에 왕국에서 잠입했다는 ‘그자’들이 누군지도 알려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추론을 하란 말인가.
입 안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지만, 레오스는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꺼내 들었다.
“맥라인의 혼란을 유발하기 위해서라면 다소 부족합니다.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릴 테고요. 그렇다면 ‘그자들’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공주의 일 말고도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건에 관해서는 제가 가진 정보가 너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뭘 알아야…….”
그러니 내게 정보를 내놔라.
그렇게 간접적으로 어필하는 것이었지만, 바로스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자들에 대한 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일이야.”
후일, 혹여나 일이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 꼬리를 잘라 내야 한다. 제국의 암적인 존재와 연수했다는 것은 만일의 사태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이대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군.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지?”
“예?”
“그자들의 일이 잘 마무리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 직접 손을 써야겠다.”
그 말에 레오스의 얼굴이 대번에 흐려졌다. 서두르는 황자의 얼굴에서 지난 실패의 흔적들이 겹쳐 보인 탓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부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맥라인에 혼란을 일으킬 만한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실패한다면 그 후유증이 상당할 겁니다.”
“뭐지? 말해 봐.”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루이사 공주가 지금 맥라인 왕궁에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녀가 거기서 잘못된다면…….”
레오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그와 함께 바로스의 눈은 점차 음험한 빛으로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