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호위기사 준의 형식적인 공치사는 루이사의 입가에 쓴웃음을 만들어 낼 뿐이었다.
돌아가기로 보고한 날짜가 이제 내일. 더 이상 연기를 할 이유도 없어진 터라, 맥라인의 국왕은 자신이 왕국의 중요 인물들을 만나는 것조차 허용치 않았다.
‘확실히 우리 마법에 대해 알고 있어.’
아무리 자신의 힘을 단번에 알아봤다고 한들 어찌 곧바로 대책을 세웠을까.
타히티 공국에서 게로힌 장로와 맥라인의 새로운 초인들이 충돌한 것, 그 한 번의 격돌만으로 이렇게 대비를 한다?
‘게로힌 장로가 탑의 비전을 너무 제대로 쓴 모양이야.’
왕이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닐진대,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본 것이 아닌 이상 이리도 철저히 대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제대로 된 정보는 없지만, 아마 그 전투에서 새로운 초인들 중 한둘은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로니안 왕제는 멀쩡해 보였지만……, 내상이 심했을 수도 있지. 그래. 그렇다면 내가 그 힘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도 말이 돼.’
그래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을 알아채자마자 미리 대비했다는 것도 말이 된다.
“흐…….”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와 연유를 추론하는 게 무슨 의미일까. 범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범 소굴에 알아서 기어들어 온 꼴이었다.
제국의 공주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자신의 인생은 여기서 끝이 났을 것이다. 그나마 최소한의 소득은 있었기에 처벌을 면했을 뿐, 조직에서 입지를 넓히고자 했던 희망도 기약하지 못할 미래로 미뤄야 했다.
그야말로 한숨만 나오는 상황.
“다른 장로가 동원된다는 계획. 아는 바 없지?”
“아시다시피, 제게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만회를 하고 싶어도, 조직의 다른 계획도 모른다.
물론 안다 해도 끼어들 명분이 없겠지만.
‘돌아간다. 돌아가서 다시 기회를 봐야지.’
이번 일로 배운 점도 있었다.
신분, 혹은 마법의 힘으로 언제나 승승장구해 온 자신이 처음 겪은 실패.
자신의 마법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그저 신분 덕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 두 가지가 봉쇄되고 나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내가 개인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 너무 부족해.’
세뇌된 기사들이나 준 같은 보조 인력은 있으나 마나였다.
조직의 장로 중 한 사람이라도 동행할 수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그럴 리가 없지.’
적어도 마도사를 세뇌하는 테러 정도는 분명히 성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맥라인 왕성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실제로 왕이 동원한 별궁의 경계 병력은 인식 저해의 술이 더해진 은신 마법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돌아가는 대로 장로들부터 만나 봐야겠어.”
“예?”
“아니, 아니다. 그만 돌아가라.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터이니.”
“……예, 알겠습니다.”
루이사는 준을 돌려보내고 차분히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그나마 연배가 젊은 장로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해. 제국의 왕족 출신이라고 날 무시하지 않는 자들을.’
그 생각을 떠올리자 절로 눈썹이 떨렸다.
제국에 반감을 품은 탑의 특성이 특성인지라 바깥에서는 고귀한 신분이, 조직 내부에서는 오히려 차별받는 이유가 되었었다.
덕분에 자신도 다른 장로들을 쓸데없이 나이만 먹은 늙은이들이라 무시했으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장로들을 포섭하는 일은 꽤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안 할 수는 없지.’
약점을 알았는데 보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작은 한숨으로 미련을 털어 낸 루이사는 적절한 후보를 몇 뽑아 놓고 고심을 이어 갔다.
어느덧 밤이 깊어진 시각. 서늘해진 달빛 아래, 기묘하고 불쾌한 느낌이 그녀의 본능을 자극했다.
‘살기?’
그리고 왜인지 익숙한 느낌.
‘암살자? 지금? 여기서?’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마탑의 비전인 ‘혼마력’이 그녀의 몸속을 일주했다.
자연의 힘, 마나(Mana)는 한계를 넘는 순간 생명의 힘인 포스의 힘이 더해져 마력(Mana force)이 된다.
그런 만큼 마도사는 단순한 신체 능력에 있어서도 중급기사 이상의 힘을 갖게 되는바. 일순간 그녀의 신체 능력이 활성화되며 언제든 몸을 재빨리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더하여 본능적으로 뿌려진 은밀한 마력으로 운용한 탐색 마법으로 넓은 별궁 전체를 순식간에 훑었지만,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루이사의 본능을 자극하는 꺼림칙한 느낌은 여전했다.
그리고 천재 마도사인 그녀는 자신의 직감을 신뢰했다.
‘뭔가 있어. 그런데 걸리지 않는다. 이런 경우라면…….’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자신이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귀에 못이 박이도록 경고를 들었던 집단.
조직의 비전으로 길러졌고, 이제는 조직을 쫓는 사냥개가 된 집단.
그 집단이 사용하는 특별한 은신술.
그리고 다행히도 조직에는 그들을 잡아내기 위한 탐색 마법도 존재했다.
우웅.
그것이 정답이었다.
오직 한 집단만을 찾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 정확하게 작동했다.
‘황실 특수감찰부.’
그들을 아는 이들에게는 귀신이라 불리는 자들이 별궁 안으로 숨어드는 기척이 연달아 느껴졌다.
경비 병력을 마치 없는 것처럼 농락하며 움직이는, 정말 귀신같은 움직임.
그것을 파악하는 순간 루이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째서 귀신들이……. 설마 내 정체가 발각됐다고?’
순간적으로 악몽 같은 추론이 이어졌다.
비밀 신분의 발각. 동왕부의 몰락. 가족들의 몰살. 그리고 황실의 추적.
로건 왕에게는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듯 큰소리쳤지만, 동왕부가 없다면 자신의 조직 내 입지도 확연하게 줄어든다.
그녀가 바라던 이상, 어머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지를 잇겠다는 꿈. 그 꿈을 쟁취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두근두근.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그 빠른 심장 박동은 다시 불길한 예감을 자극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귀신들의 숫자를 파악하고 나니 그 불길한 예감이 급속도로 사그라들었다.
‘고작 셋?’
헛웃음이 나오는 숫자였다.
이미 최근의 추격전에서 큰 피해를 본 귀신들이다.
조직에 놈들을 전문적으로 탐색하는 마법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법했다.
은신술이 파훼된다면 설령 1급 귀신이라 해도 잘해야 최상급기사에 준하는 수준일 뿐이다.
최상급기사 셋으로 마도사를, 그것도 그들의 수법을 잘 아는 마도사를 상대하려 든다는 것은 명백한 자살행위.
그런데도 고작 셋이라면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나를 방심시키려고 암검이나 부장들 중 하나가 몰래 따라붙었거나.’
아니면 자신이 카셀 마탑의 마도사라는 것을 모르거나.
최악의 경우라면 전자겠지만, 그녀의 직감은 후자라 말하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부장급이 나섰다면 왕부에서 이미 연락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인 동익왕, 제라드 폰 아세리안은 탑이 황실에 신경 쓰는 것 이상으로 황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또 생기는 의문점이 있었다.
‘그럼 이놈들은 뭐지?’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안, 이미 세 놈은 자신의 침실까지 접근해 왔다.
그 이유를 모른다고 얌전히 당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우웅.
이내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마력이 그녀의 침실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뭐지?’
이번 작전의 리더, 1호는 순간 몸을 스치는 꺼림칙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황실 특수감찰부의 1급 요원, 그중에서도 수석의 자리는 도박으로 딴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직감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멈춰.’
1호는 요원들끼리만 통하는 비전, 기파를 통한 의사 전달 방식으로 동료들에게 뜻을 전했다.
하지만 두 동료는 그 신호를 받지 못한 듯,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이미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칫.’
타이밍이 너무 좋지 않았다.
목표를 바로 앞에 둔 탓에 자신의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이리라.
조직의 뛰어난 은신술이 가진 유일한 단점이었다.
하지만 1호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본능적인 직감에 따라 신호를 보내기는 했지만, 이번 임무의 목표는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의 대명사 격인 공주다.
더구나 위치도 제국의 황실이나 왕부가 아닌 소국의 왕궁. 자신들의 침입을 방비할 마법적 조치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최악의 경우라도 의미 없는 흔적 정도가 남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자신이 정리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1호는 한 박자 늦게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눈에 이해하지 못할 광경이 보였다.
푹.
푸슉.
목표를 바로 앞에 두고 엉뚱한 침대를 찌르는 동료 2호와, 그런 동료의 뒤에서 그의 심장을 찌르는 3호의 모습.
2호의 멍청한 짓은 둘째치고, 3호가 저지른 참람한 짓거리에 경악한 그가 눈을 부릅떴다.
‘배신!’
황실 특수감찰부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리 없는 일. 그리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평생을 교육받은 대로, 그의 눈동자가 분노로 타올랐다.
하지만 최우선 목표는 임무.
1호는 들끓는 분노를 목표를 향해 분출했다.
단숨에 목표를 꿰뚫어 버리고 배신자를 처단하리라.
그런데.
쩌어엉.
자신의 회색 블레이드를 가로막는 투명한 장벽이 있었다.
그가 미처 당황할 새도 없이, 그 안에서 미소 짓는 목표의 얼굴이 보였다.
“저항력이 뛰어난 놈인가 보네. 하지만…….”
목표의 스산한 미소와 함께 엄청난 힘이 전신을 조여 오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이나마 손가락 하나 꼼짝달싹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그의 옆으로 동료 3호의 칼이 다가오고 있었다.
푸우욱.
“컥!?”
비명을 지르는 것은 조직의 3급 요원도 하지 않을 실수였지만, 1호는 너무나도 황당한 상황에 그 기본적인 금기를 어기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을 찌른 3호의 복면 사이로 부들부들 떨리는 눈동자를 본 순간, 그의 뇌리에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행동하는 듯한 동료의 모습.
– 우리의 존재 의의는 황실의 안녕. 황실의 안녕을 위협하는 적들의 추살이 우리 조직의 목표다.
– 역대로 황실을 위협해 온 세력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협이 되었던 세력은…….
조직에서 훈련을 시작했을 당시부터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었던 주적에 관한 설명.
사람의 정신을 조작하고 세상을 농락하는 악마들.
그리고 불과 얼마 전에도 그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놈들.
‘그놈들이다!’
미리 알았다면 이리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어찌 제국의 공주가 그놈들의 수법을 쓰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카셀 마탑은 황실 특수감찰부가 처리해야 할 제1의 주적.
이미 급소를 난자당해서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1호는 바로 최후의 수단을 강행했다.
‘같이 죽자!’
비전에 따라 포스를 움직이고, 은신복에 담긴 마나를 자극했다.
그러자 일순간 신체 내부에서부터 폭발적인 힘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머, 안 되지. 우리한테서 비롯된 수법이 통할 거라 생각했어?”
공주의 가벼운 손짓 한 번에 부풀어 오르던 기운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
“아, 안…….”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보다, 주적을 죽이지 못하는 것보다 더욱 최악의 경우가 바로 임무 중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이내 자살을 위한 최소한의 통제권마저 빼앗겨 버린 것을 느끼며 1호는 절망적인 비명을 내질렀다.
“걱정하지 마. 그자에게 너희를 산 채로 넘겨줄 수는 없으니.”
1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복잡한 표정을 지은 루이사가 눈을 살벌하게 빛냈다.
그리고 그날 밤.
– 루이사 공주가 맥라인 왕궁에서 암살자들의 습격을 받았다.
왕국을 강타한 믿지 못할 소식이 순식간에 수많은 소문으로 불어나 왕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