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제국의 공주가 습격을 받았대!”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냐!?”
“에이, 설마.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는데.”
“그래도 우리 왕궁에서…….”
수도의 여론은 일순간에 시끄러워졌다.
세계 최강국의 공주, 비록 황녀는 아니라지만 왕족의 핏줄이 습격을 받았으니. 제국과의 외교적 분쟁, 좀 더 심각하게는 군사적 마찰까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진 것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최악의 예상도 고작 그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 사건은 몇몇 사람들을 더욱 헷갈리게 했다.
[전일 일어난 불상사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촉구하오.]하아.
“이건 또 뭔 짓거리인지…….”
제국 동왕부에서 온 항의 통신.
그 내용을 보고받은 로건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체 그 여자는 무슨 속셈인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골치가 아파 왔다.
“……그나마 황족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공주가 죽었다면 황실에서도 따졌겠지요. 엄청난 요구를 해 왔을 테고요.”
긴급하게 불려온 드웨인과 데미안이 그런 로건의 앞에서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이상한 건, 이번 사건으로 공주가 얻을 게 없다는 것입니다.”
“제국 쪽은?”
“제국 쪽도 딱히 없을 듯합니다. 공주가 죽었거나 크게 다쳤다면 모를까, 놀란 것 정도로는…….”
데미안이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로건은 살짝 안심했다. 자신이 머리가 나빠서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닌 듯했기 때문이었다.
“짐작이 가는 건 하나뿐입니다.”
“뭐?”
“얻을 것도 없는 일에 일부러 공을 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친놈이 아니라면 없겠지.”
“예. 그러니까 이건 공주가 한 일이 아닙니다.”
“……암습을 받은 게 자작극이 아니다?”
“말씀드렸듯 얻을 것이 없으니까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쳤으면 또 몰라도…….”
“자기 몸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음모를 꾸밀 타입은 아냐.”
“황족이니, 왕족이니 하는 사람들은 원래 그럴 일이 없죠. 애초에……. 아, 대책 없이 저지르고 보는 폐하 같은 경우는 제외하고요. ……용감하고 결단력 있다는 뜻입니다. 칭찬이에요, 칭찬. 하. 하.”
로건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데미안이 딴청을 피우며 변명했다.
‘어째 이 녀석이 점점 기어오르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 내용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그렇다면?”
“제삼자가 저지른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뭘 노리는지 짐작이 안 가는데.”
“예. 이 정도 사건이야 저희가 동왕부에 예물을 좀 보내는 수준에서 끝날 일이죠. 그러니 애초에 제삼자가 노린 결과는 이게 아니었을 겁니다.”
“……공주를 죽이려 했다? 공주의 힘을 모른다는 거야?”
“예.”
“습격자의 행태는 일전에 나와 왕비를 습격했던 놈들과 일치한다. 즉, 제국이라는 뜻이야. 역시나 증거는 없지만.”
“그럼 제국 황실의 누군가라는 뜻이겠죠. 공주가 우리 왕궁에서 죽었을 때 이득을 보는.”
“설마 황제입니……?”
“아니, 황제는 아니야.”
로건이 단호한 목소리로 드웨인의 추측을 부인했다.
“전쟁의 구실로 삼고자 했으면 나를 확실히 죽일 자들을 보냈겠지. 황제가 한 일이라기엔 스케일이 너무 작아.”
황제의 검은 눈동자를 떠올린 로건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럼……?”
“당장 왕국과 제국의 분쟁을 바라는 이들일 테죠. 그 검은 뱀의 마법사들이 꼬리를 자르려 했다기에는 너무 허술합니다. 그렇다면…….”
말꼬리를 흐리는 데미안의 모습에 로건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근거는 부족하지만 왠지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이상하게 저도 그렇습니다.”
“바로스 황자.”
“2황자.”
로건과 데미안이 눈을 마주치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꾸준하게 왕국에 수작을 부린 배후로 지목되는 인물.
그리고 실종되었다 복귀한 뒤로 안 좋은 소문이 무성한 인물.
즉, 무리수를 둘 만한 사정이 있는 권력자.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2황자가 무사히 돌아온 것이 그자들과 협력을 했다는 증거라고 추론하셨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2황자가 공주의 능력을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이건 협력자의 뒤통수를 친 걸로도 모자라 완전히 삽질을 한 꼴이니까요.”
“모를 수도 있어.”
“예?”
“그자들, 카셀 마탑은 완전히 제국과 협력하는 게 아니야. 서로 이용하려는 관계 정도겠지.”
루이사와의 대화는 그런 추측을 확신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공주가 힘을 숨기고 있다는 건가요?”
“그래. 만약 2황자가 그걸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면…….”
“이걸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데미안과 로건이 다시 서로를 마주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고, 멀뚱히 그 광경을 바라보던 드웨인은 그저 입을 삐죽일 수밖에 없었다.
* * *
– 루이사 공주의 암습자들을 막고 처리하기 위해 맥라인의 용맹한 기사들 다수가 희생되었다. 예상치 못한 참사에 애도를 표하며, 놀란 공주를 ‘로니안 맥라인’ 백작이 극진히 보살피고 있다.
왕실의 발표는 공주 습격 사건에 대한 온갖 뜬소문들을 잠재웠다.
아니, 정확히는 한 가지 소문이 사실처럼 퍼져 나가며 나머지 소문을 잠재워 버린 것이다.
“공주님을 사모하던 제국의 귀족이 혼담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일이래.”
“그걸 로니안 백작님이 목숨을 걸고 막아선 거고.”
“사실은 중상을 입은 로니안 백작님을 공주님이 간호하고 계신다던데?”
“어머, 그럼…….”
“진정한 사랑은 어떤 방해도 극복하는 법이지.”
“이야…….”
공주 습격 사건으로 인한 외교적 분란을 걱정하던 이들이 허탈해할 만한 소문.
불안감은커녕 훈훈함만 키워 가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제국의 동부에서도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제대로 됐군.”
여론에 대한 보고를 받은 로건이 피식 웃자 보고를 하던 데미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예. 뭐, 분위기상 까딱 잘못하면 로니안 백작님이 정말 혼담을 진행하셔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쪽에서 거부할 거야. 걱정 마.”
“당사자분이 지금 매우 곤란해하고 있습니다.”
“참으라고 해. 애초에 혼담을 원한 건 그쪽이었잖아. 여론이 이렇게 형성된 이상 제국에서도 트집 잡기 어려울 거야.”
“공주가 다른 짓을 하지 말아야 할 텐데요.”
“자기가 암살자들 다 도륙 냈다고 소문나기 싫으면 따라야겠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정보의 한 조각도 알 수 없는 왕실이나 국제 관계의 암투보다야 치정 관계가 더욱 설득력 있게 와닿는다.
로건의 말에서 시작된 소문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이럴 때는 잔머리가 참 잘 돌아가시는데.”
“뭐, 인마?”
“아, 아닙니다. 아무튼 일단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딴청을 피우는 데미안을 보며 로건은 그저 피식 웃어넘겼다.
다만 데미안은 그렇게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런데 그, 귀신들이라고 하셨나요?”
“음?”
“그자들이 너무 쉽게도 왕궁을 드나드는데,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궁 사람들이 다 폐하 같은 초인도 아닌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놈들은 방비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놈들이 아니야.”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예?”
이랬다, 저랬다.
앞뒤가 다른 말에 데미안이 인상을 찌푸리자 로건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히 어느 정도 방비가 가능한 대책이 곧 생길 거야.”
“예?”
“나도 제국 놈들이 내 집에 멋대로 드나들게 계속 놔두고 싶지는 않거든.”
로건은 줄곧 미소를 머금은 채 며칠 전 습격 사건의 소문과 함께 전해진 기밀 보고를 떠올렸다.
– 대마법진 설치의 이론이 완성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첫 번째 실험 대상은 역시 왕궁이 될 것이다.
클레이튼의 보고를 떠올린 로건이 그렇게 미소 짓고 있을 때.
누군가의 얼굴은 또다시 일그러지고 있었다.
* * * [황실의 귀신들이라니, 공주는 우리 작전의 중요한 패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방해를 하겠다는 건가.]
쾅.
“당신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
바로스는 분노를 토해 내며 통신구를 노려보았다.
작전에 동원한 3명의 귀신은 그가 마지막까지 숨기려 했던 패 중 하나였다.
부황의 허락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귀신.
임무를 무사히 성공시켰어야만 했다. 아니, 실패했더라도 최소한 증거를 남기진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현장에 시신까지 고스란히 남겨 버렸으니, 이제는 또다시 돌아올 황제의 추궁이 두려울 뿐이었다.
‘이 자리를 어떻게 되찾았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되었길래 고작 여염집 아낙네나 다름없는 루이사를 상대하며 귀신들이 시체까지 남겼을까.
있을 수 없는 가정 두 개가 현실로 이루어져 버리면서 계획을 완전히 망쳐 버렸다.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게.
그러니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통신구 속 상대는 그의 마음을 전혀 이해해 주지 않았다.
[이렇게 가벼운 자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실망이야, 황자.]“이 상황에 나를 평가하고 있겠다는 건가!”
[그럴 만하지 않나. 무슨 제위를 노린다는 자가 마음만 급한 애송이 짓을 하고 있으니……. 손발이 안 맞아도 정도가 있는 법이거늘, 아직 기한도 충분한데 뭐가 그리 급하지?]끄으응.
통신구 너머로 보이는 노인의 무기질적인 눈빛이 바로스의 흥분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로건 맥라인을 본 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녀석의 그 붉은 눈동자 못지않게 저 눈동자도 자신을 불안하게 했다. 노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의 그 섬뜩한 느낌이 아직도 가끔 꿈속에서 떠오를 지경이었다.
분명히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것 같은데,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자꾸 흔들리는 건가.’
빌어먹을.
그리 생각하고 나니 또 스스로 실패에 대한 핑계를 찾고 있는 꼴이라, 바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부드득 이를 갈았다.
‘이런 식이면 또 그때처럼 최악의 경우로 몰린다.’
스스로의 한심함을 자각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스는 긴 한숨을 토해 내며 다시 통신구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내가 크게 실수한 것 같소. 사과하지.”
그 의외의 말에 노인의 표정 또한 바뀌었다.
[호오?]“하지만 염치없게도 부탁을 또 해야겠소.”
“이번에 동원한 놈들로 인해 또다시 손해를 보게 될 거요. 최악의 경우는 또…….”
절대로 겪기 싫은 끔찍한 가정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힘에 겨웠다.
다행히 노인은 생략된 뒷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이번의 실패를 만회할 만한 성과를 보여야 한다?]“그렇소.”
[……어렵지 않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약속을 받아야겠다. 다시는 통보 없이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는 것.]노인의 말에 바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황제 말고도 자신에게 지시를 내릴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
그것은 그에게는 더없는 모욕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알겠소.”
[흐음, 좋아. 이번에는 한 번 더 믿어 보도록 하지. 그럼…….]노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바로스는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황자 전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바로스는 예상했던 호출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