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공간.
햇볕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의 음습한 공기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법했지만, 지금 지하를 걷는 일행에게선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지하도 곳곳에 걸려 있는 횃불들이 음습한 공기를 어느 정도 걷어 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밝은 횃불 사이로 보이는 얼굴들에는 불안감보다는 기대와 흥분이 어려 있었다.
“잘 되겠죠?”
횃불을 들고 앞장서서 걷고 있던 빅토르의 물음에 로건은 미소를 지었다.
“클레이튼 공이 장담한 일이니, 당연히 잘되겠지.”
“그럼요. 잘 돼야죠. 이번 일에 들어간 돈만 해도…….”
구레나룻이 풍성한 거대한 덩치의 대신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초를 쳤다.
로건이 뭐라 하려던 순간, 옆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끼어들며 드웨인에게 면박을 주었다.
“이미 있는 것을 활성화하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실패할 확률이 더 낮겠죠.”
“……그렇지.”
데미안의 말과 로건의 맞장구에도 드웨인은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실험에 들어간 돈이 얼만데……”
“드웨인 님, 계속 그러시면 부정 탑니다. 잘못되면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뭐, 인마?”
그동안 투자한 막대한 예산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재무대신에게는 그보다 끔찍할 수가 없는 농담이었다.
인상을 쓰고 데미안을 노려보는 드웨인의 얼굴은 횃불의 그림자 때문인지 평소보다 한층 더 험악해 보였다.
그에 손사래를 친 데미안이 능청스레 웃었다.
“하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거죠. 좋게, 좋게요. 자꾸 그러시면 주름만 늘어요.”
“너, 인마. 이 주름의 반은 네 녀석과 폐하가 친 사고 때문에…….”
“에이, 너무 가셨다. 폐하는 몰라도 전 아니죠.”
“……뭐지? 이 익숙하고 더러운 느낌은……. 아, 너 어째 릭하고 닮아 간다?”
“시종장이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십니까?”
“지금 그 말도…….”
연신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로건은 피식 웃었다.
‘확실히 데미안은 전생과 완전히 달라졌어.’
그렇게 훈훈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생각이 어딘가에 미치자 로건의 안색이 다시 굳어졌다.
기밀을 요하는 일이었기에 대동한 인원은 고작 셋. 이미 단순한 호위기사 수준을 넘어 국가의 주요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초인인 빅토르와 이 일에 들어가는 자금을 집행하는 재무대신 드웨인, 그리고 위치상 기밀을 다루는 데미안뿐이었다.
‘앞으로도 각 군단장급이나 초인들 아니면 계속 기밀로 해야 할 테니.’
이능력이 없는 일반인 중에서 이 일에 대해 아는 것은 앞으로도 이 두 사람이 전부일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고난을 헤쳐 오며 알게 모르게 자신의 뒤를 받쳐 준 사람들.
이미 그들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하지만 카셀 마탑의 마법을 알게 된 이후에는 믿음과는 별개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잠시간은 손을 잡도록 하죠. 이렇게 뒤통수를 맞고도 지킬 의리는 없으니까.
루이사의 그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왕성 그랑피아에 계속 머물면서 수작을 부리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는바. 아무래도 두 사람을 위한 특별한 보호 조치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다만 뚜렷한 방법이 생각나기 전까지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두 사람 다, 오늘 이후에는 적어도 삼 일에 한 번씩은 내게 근황 보고를 해야 하네. 별궁에 격리된 루이사 공주 근처에는 갈 생각도 말고.”
왜인지는 몰라도 상극의 기운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포스로 계속 머릿속을 씻겨(?) 주는 수밖에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라, 벌써 몇 번째인 로건의 잔소리에도 입씨름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포스나 마나 등의 이능이 없는 문관 대신들은 천대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 대륙의 문화. 하지만 그에 상관없이 그들은 자신들이 책임지고 있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로건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신전의 소식도 마음에 걸리는데 말이지…….’
한 번 떠올린 상념에 걱정거리만 자꾸 이어진 까닭이었다.
장소나 상황이 그리 적절하지 않음은 알지만, 로건은 생각난 김에 불쑥 물었다.
“데미안. 오스틴 교황의 제국 지지 발언 이후 실질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나?”
“……성국은 아직 달라진 점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성국은?”
그 미묘한 단어 선택에 로건이 그를 돌아보는데.
“안 그래도 이번 시찰 이후에 자료와 함께 보고드리려 했습니다. 그게…….”
침을 꿀꺽 삼킨 데미안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국에서 바로스 황자가 성도, 노비엔스에 방문하기 위해 출발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뭐?”
“정확히 무슨 이유로 가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필립 상단주도 노비엔스 쪽으로 이목을 집중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후에 어찌 될지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어떻게 뭐 손을 쓸 수도 없고.’
신전의 변화는 너무 급작스러웠다.
오스틴 교황이 세속의 권력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신전의 원칙을 대놓고 무너트렸으니, 앞으로 신전이 어찌 움직일지는 예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과거 좋은 인연을 맺었고 최근에는 성녀로까지 불리는 명예 추기경이 떠올랐다.
“일리아 주교는? 혹시 연락이 되나?”
그녀라면 신전의 변화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사람을 보내 접촉해 보려 했습니다만, 교황 즉위식 직후부터 고행에 들어가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고 합니다.”
“허?”
하필 지금?
눈빛에 담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신전에서는 성녀가 새 교황의 입지를 위해서 일부러 고립을 택했다고 합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타락한 사제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신전을 만든 1등 공신.
거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성도 내부에서만 유명했던 오스틴 추기경보다는 ‘성녀’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더 컸다. 그런 성녀가 외부에서 빈번히 활동하면 아무래도 새로 즉위한 교황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으로선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이거 타이밍이 너무 공교롭군.”
“……새 교황 선출 이후 교단의 중요 인물들이 싹 개편되고 있는 시기라, 필립 상단주의 도움으로 노비엔스에 사람을 다수 심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조만간 상황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좋아. 무슨 소식이 있거든 바로 보고해. 구두로 먼저.”
“예, 알겠습니다.”
“폐하, 거의 도착한 것 같습니다.”
“아…….”
그렇게 신전의 정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했다.
빅토르의 손에 들린 횃불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푸르고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는 공간에.
“폐하!”
“폐하께서 오셨다!”
“폐하를 뵙습니다.”
일행이 지하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을 본 마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클레이튼과 빅토리아를 비롯한 그릭과 에난, 트루스.
골렘학파의 최정예 마법사 다섯이 한자리에 모여서 반경 300m는 넘을 듯한 마법진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토록 거대한 마법진을 살피기에는 인원이 너무도 부족해 보였다. 청백의 마나가 빛을 발하는 순간에는 흩어진 마법사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인원을 더 늘리기도 곤란한 일이라, 로건은 쓴웃음과 함께 자신에게 고개를 숙인 마도사를 보며 인사했다.
“고생 많으십니다, 클레이튼 공.”
“아닙니다. 이미 만들어진 마법진을 다시 활성화하면서 배운 것도 많습니다.”
“그래도 인원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만.”
로건의 말에 클레이튼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대의 마법을 재해석하는 일은 저나 제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리아가 가장 큰 역할을 거의 도맡아서 하고 있다 보니, 저희로선 딱히 힘든 점도 없고요.”
“리아가요?”
“예. 아무래도 ‘그 일’ 이후로 감응력이 훨씬 늘어난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아이입니다. 속성도 그렇고.”
속성?
여러모로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당장은 빅토리아의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 그렇군요.”
로건은 궁금증을 머리 한구석으로 밀어 둔 채, 빛나는 마법진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부족한 식견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거대한 마법진 전체가 몇 개의 오망성이 겹쳐진 형태라는 것 정도였다. 고대어를 잘 안다고는 해도, 마법의 룬어는 그 궤를 달리하는 언어라 일부분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5개의 대마법진이라고 했던가요?”
그 모호한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린 클레이튼이 황급히 따라붙으며 설명했다.
“네. 5개의 마법진 중 4개는 분석이 끝났습니다.”
“나머지 하나는요?”
“그게, 다소 특이한 구석이 있는 마법진이라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클레이튼의 표정이 어딘가 묘한 탓에 그 시간을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로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뭐, 4개만 해도 어딥니까. 일단 설명을 들어 봅시다.”
정확히 어떤 힘을 가진 것인지는 알지 못해도 대마법진에서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듯했다.
이것을 전방의 성들과 요새에 설치한다면, 제국을 상대하는 일은 한결 수월해지리라.
“예. 먼저 가장 바깥쪽에 있는 푸른색 마법진은 성벽 강화와 자동 보수에 관련된 마법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외부의 대마법공격을 막아 내는 방어 마법진이지요. 이 두 가지는 폐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아, 그 마정석을 갈아 주면서 유지해 왔는데 효과가 다해 간다는?”
“예. 천 년이 흐르며 변질된 마법진과 사라진 룬어들을 보충하여 효율을 한층 개선시켰습니다. 지속적으로 관리만 해 준다면 또다시 천 년은 끄떡없을 겁니다.”
“흠, 좋군요. 그럼 나머지 세 가지는 뭡니까?”
“하나는 성내의 모든 대상자를 상대로 피로를 덜어 주고 회복을 돕는 활력 유지 마법진입니다.”
“활력 유지?”
“제대로 발동되기만 하면 모든 대상에게 30%에 가까운 체력 증대 효과와 회복력 증대 효과가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습니다만, 기사나 초인들을 제외한 일반 병사 기준으로는 10만 명까지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허?”
“기사들과 초인들을 다 합쳐도 지금의 우리 군단 하나 정도엔 온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더 대단한 건, 대상자의 수가 그 이상이더라도 효과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요?”
“네. 이론상으로는 숫자의 제한이 없습니다. 효과는 약화되겠지만요.”
“약화라, 그래도 적용만 된다면…….”
얼핏 보면 1서클의 마법 정도로도 가능한 별거 아닌 효과인 듯했지만, 그 적용되는 범위가 수도 그랑 전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도 마정석만, 마나만 공급되면 상시 발동되는 대마법진. 아무리 마도사라 해도 일개 개인이 쓸 수 있는 수준의 마법은 아니었다.
“대단하군요.”
“예. 정말 대단합니다. 어찌 개체마다 파장이 다른 생명의 힘을 하나의 마법진이 일괄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지는 아직 원리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제대로 연구해도 과거의 대마도사들의 연구 성과를…….”
“아니, 아니. 제가 거기까지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겠지요. 다른 마법진은요?”
“아……. 하하. 또 다른 하나는 적대 세력 즉, 적에게 작용하는 약화 효과입니다. 이것은 애초에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서 지금으로선 그 위력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아…….”
무슨 말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이종족과 싸우기 위한 마법이었겠군요.”
“예. 인간 외의 모든 종족을 약화시키는 마법입니다.”
천 년 전, 대륙을 종횡하던 선도종족 중 인간은 가장 약한 세력에 속했다.
드워프, 엘프, 리자드맨, 오크족. 그리고 전설에나 나오는 용인족과 용까지.
불가해한, 절대적 종족이었던 용(龍)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 못지않은 지능에 그보다 뛰어난 특성이 몇 가지씩은 있었던 다른 종족들이 당시의 문명을 주도하던 선도종족이었다.
그에 반해 인간은 대부분의 개체가 맹수 하나 이기지 못할 정도로 약했고, 수명 또한 타 종족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았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 사이에선, 수백 년을 사는 이종족에게서도 드물게 나타난다는 대마도사가 세대마다 몇 명씩은 나타나서 인간이라는 종족의 명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대마도사들은 여럿이 뭉치거나 혹은 몇 세대에 걸쳐 도시를 건설하고, 약한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그 도시 중 하나가 현재의 그랑이었다.
천 년 전, 대이주 당시 5명의 대마도사가 이종족들의 대이동에 쓸려 나가는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전설의 도시가 바로 이 그랑인 것이다.
다섯 명의 대마도사가 세운 다섯 개의 마탑과 다섯 개의 대마법진을 가진 도시. 이 도시는 그란디아의 자랑이었고, 대륙 동부 인간들의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 자랑거리 중 일부는 지금 시대엔 써먹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하필 이종족 대상 마법진이라니…….”
로건의 입에서 절로 안타까운 한숨이 흘러나오는데, 그에 동조하듯 클레이튼 역시 불길한 소리를 내뱉었다.
“사실 아직 분석이 끝나지 않은 마지막 마법진에서 조금 곤란한 문제를 발견했었습니다.”
“음?”
“나머지 하나의 마법진은 바로 ‘활력’과 ‘약화’, 그 두 마법진의 대상자들을 분류하는 탐색 마법진입니다.”
“……그런데요?”
“고대에는 인간과 이종족, 두 분류로만 나누어도 되었을 테지요. 하지만 지금 인간끼리의 전쟁에선 마법진이 아군과 적을 분류하기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랑의 인구가 고대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다는 문제는 제외하더라도요.”
“아…….”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종족 약화 마법진이 딱히 쓸모가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활력 마법진 또한 너무 많은 그랑의 주민들 덕분에 그 효과가 약화된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성안에 존재하는 ‘인간’이 강화 대상이라면 적군도 강화될 것이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야 더 활력 있게 피 튀기는 전쟁이 될 뿐 아니겠는가.
하지만 로건은 클레이튼이 미묘한 어조로 말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있’었’습니다?”
그 날카로운 반문에 클레이튼이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리아가 방도를 찾았습니다.”
클레이튼이 눈짓하자, 어느새 다가온 빅토리아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