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이 분석 마법진의 본질은 범위 안에 들어온 대상의 근본을 분석하고, 그 정보를 다른 두 마법진에 전달하는 것에 있습니다. 범위 안의 모든 대상의 생물학적 구조를 파악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순식간에 끝내서 전달까지 하는 거죠. 분명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는 별 효과가 없는 보조 마법진임에도 불구하고 대마법진 중 하나의 용량을 잡아먹은 이유입니다.”
빅토리아의 설명은 시작부터 어려웠다.
“……리아, 간단히 좀.”
“이 마법진에 쓸데없는 부분이 많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에 철저해야 하는 천재들의 아집 같은 거랄까요.”
“그렇지! 쉽게 설명할 수 있잖아.”
이해하고 나니 호쾌한 맞장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런 로건을 보는 빅토리아의 눈은 가늘어지고, 주변의 마법사들은 저마다 천장이나 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웃지 않았는데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
민망함에 짧게 헛기침을 한 로건이 설명을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빅토리아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적군과 아군을 판별하는 기준을 극단적으로 낮춰 버리면 대상 생명체 전체를 스캔하고 분석하는 마법도 생략할 수 있습니다.”
“……적아를 제대로 판별하려고 만든 마법진 아냐? 그걸 줄이는 게 가능해?”
다행히 이번에는 맥락을 제대로 짚은 듯 빅토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말씀드린 대로 천재들의 재능이 쓸데없이 낭비된 경우입니다. 적아를 판별하는데 굳이 생체 정보 전부를 스캔할 필요까진 없으니까요. 그리고 고대에 비하면 지금 그랑에 상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들 모두에게 마법진의 힘을 분산할 필요는 없죠.”
“그럼?”
“문양을 활용하는 겁니다. 일정 크기 이상의 ‘불꽃 문양’을 새긴 장비. 그것을 가지고 있는 대상자에게만 마법이 발동하도록 활력 마법진을 변경하면 됩니다. 반대로 약화 마법진은…….”
“금룡의 문장을 대상화하면 되겠군.”
로건이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제국의 상징인 금룡의 문장. 적군의 기사나 병사들은 그들의 상징이 새겨진 무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의 모양이나 크기가 제각각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럼 분류가…….”
갑옷에 문양을 새겨 넣는 것은 어디까지나 장인의 재량. 같은 장인이라도 완전히 똑같이 그려 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빅토리아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런 것을 고려해서 형태의 변형에 대한 분석 코드를 추가로 집어넣는다고 해도, 생체 전체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훨씬 간략해집니다. 마법진에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지요.”
“그 말은?”
“이 보조 마법진을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뭐?”
로건이 놀란 눈으로 빅토리아를 바라보았다.
고대의 대마도사들이 만들어 낸 거대 마법진을 복원해 낸 것도 모자라 개조까지 할 수 있다?
로건의 놀란 표정에 클레이튼이 불쑥 끼어들어 제자를 자랑했다.
“정말입니다. 마나를 볼 수 있는 눈, 거기에 리아의 천재성까지 더해지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가능해지더군요.”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폐하께서 너무 큰 기대를 하시잖아요.”
“충분히 기대해도 될 것 같은데?”
로건이 클레이튼의 자랑에 미소를 지으며 호응하자 빅토리아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폐하. 아직은 기존 마법진의 용도를 조금 변경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당황하며 고개를 숙이는 빅토리아의 얼굴 위로, 그녀의 어린 시절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듯했다.
자연스레 뿌듯한 미소를 지은 로건은 더 이상 말을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흠. 정확히 어떻게 말이냐?”
“활력 마법진은 지금 제 상식으로는 이미 효율이 최대치예요. 힘을 소수에게 집중시켜 봤자 몸에 무리만 갈 테니, 수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로건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자신감 어린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약화 마법진은 다르지요. 다수의 병력을 일정 비율 약화시키는 마법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강자들에게는 컨디션 저하 이상의 효과를 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쓸 만은 하겠지만, 좀 더 손을 본다면 적군 중 가장 강한 이들을 먼저 제약하는 형태로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초인급의 전력도 10% 이상 약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일반 병사들을 제약하는 힘은 약해지겠지만요.”
그 말에 로건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책상물림은 ‘애걔? 고작 10%?’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10%는 결코 고작이라고 폄하할 수치가 아니었다.
힘이 10% 줄어들고, 속도가 10% 느려지고, 감각 또한 그만큼 둔해진다. 그것은 고수들의 격전에 있어서는 한 수, 혹은 두 수 이상의 차이를 벌려 줄 수 있는 막대한 이득이었다.
“엄청나군. 정말 엄청나! 그렇다면 이거, 제국군을 성안으로 끌어들여서 싸워야 하나? 하하하.”
실로 놀라운 성과에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정말 수고 많았다, 리아.”
“아닙니다, 폐하. 다 스승님이나 사형들이 도와줘서 가능한 일이었는걸요.”
그 겸손한 말에 옆에서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던 클레이튼이 바로 끼어들었다.
“너무 겸손한 것도 좋지 않다, 리아. 8할이 네 덕분이고 그 나머지 정도를 우리가 도운 거지.”
“아니, 스승님…….”
짝.
“뭐든 좋습니다. 이렇게 성과를 냈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정말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아니, 폐하”
“갑자기 이러시면…….”
갑작스레 고개를 숙이는 로건의 모습에 마법사들이 당황하며 마주 절했다.
그 모습에 흡족한 표정을 짓던 로건은 다시금 연신 빛을 뿜어내고 있는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5개의 마법진에서 나온 푸르고 하얀빛들이 뒤섞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지하 광장.
하지만 마나를 보는 눈은 그 안에 담긴 에너지가 보기와는 달리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태는? 어떤 상황입니까?”
“마정석을 설치하여 진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전에 다시 한번 점검하는 중입니다. 저희 마나로 이상이 없는지만 확인하는 수준이지요.”
“그럼 이 마법진을 당장이라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뜻인가?”
“예. 그래서 폐하께 보고드린 겁니다.”
“좋군요. 그럼 실행해 봅시다.”
“예.”
클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소 상기된 얼굴의 빅토리아가 마법진의 중앙을 향해 뛰어갔다. 그녀의 손에는 어디서 났는지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주먹만 한 마정석 하나가 들려 있었다.
모두의 긴장된 시선이 몰리며 일순간 지하 광장이 고요해졌다.
이내 빅토리아가 대마법진의 중심에 마정석을 박아 넣는 순간.
달칵.
우우웅.
번쩍!
“윽!?”
작은 소음을 시작으로 마법진이 직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누, 눈이.”
“미리 말 좀 해 주지!”
“조금만 참아! 금방 익숙해져!”
지하 광장 전체가 순식간에 대낮처럼 밝아진 탓에 작은 소란이 일어난 것도 잠시, 이내 그 작은 소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
“이건, 확실히…….”
“우와아아아!”
광장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드디어!”
“고대의 대마법진들이 부활한다!”
“우리가 해냈어!”
환호하는 소수의 사람들.
같이 공감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들 모두가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어!”
다만 중간에 그릭이 산통을 깨는 말을 내뱉자 클레이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결국 클레이튼에게 헤드록을 당한 그릭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조차도 지금은 주변 사람들을 웃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탄성을 들으며 흐뭇한 표정을 짓던 로건은 곧 옆에 있던 빅토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대단해. 부담스럽지도 않고, 온몸에 활력이 돌아. 확실히 효험이 있어. 어떤가?”
“저 역시 폐하와 마찬가지입니다. 평소보다 훨씬 오래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없는 생명력’ 특성을 가진 빅토르는 마법진의 효과를 로건보다 더욱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거기에.
“놀랍군요. 조금 과장하면 10년은 젊어진 기분입니다.”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발을 내려다보는 드웨인이 일반인으로서의 감상을 내뱉었다.
그야말로 극찬이라 할 수 있는 평가에 로건이 씩 웃으며 말했다.
“최상급 마정석에 고작 한 달이라는 거, 이 정도면 이해할 수 있겠어?”
“뭐, 이 정도면 납득이 갑니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전방의 모든 성에 설치할 수는 없다는 점만 명심해 두시면 됩니다.”
“그거야 예상했던 바지.”
계속해서 비용을 걱정하던 재무대신마저 홀린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뭐, 리아가 설명한 거 말고 또 다른 효과도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저거인가…….’
마법진을 발동한 뒤부터 왜인지 멍한 표정으로 새하얀 마법진을 바라보고 있던 빅토리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분석이 끝나지 않았다는 마법진.
마법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로건도 이제는 저 마법진의 효과를 알 것 같았다. 그러니 비슷하게 마나를 보는 눈을 가진 빅토리아라면 이미 그 효과를 간파하고 분석 중일 터였다.
‘다 끝나면 알려 주겠지.’
로건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얼굴로 클레이튼을 돌아보았다.
“이거 멋지군요. 그럼 이제 이 마법진들을 그랑이 아닌 다른 곳에 운용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그 역시 시간과 재료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그 확신에 찬 대답에 로건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했던 마지막 카드가 드디어 맞춰진 것이다.
‘이제 준비가 끝나 간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돼. 변수가 너무 많아.’
로건은 숨을 길게 들이쉬어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클레이튼 공.”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저보다는 리아가……? 어?”
그제야 빅토리아의 멍한 상태를 확인한 듯 클레이튼이 그녀를 가리키려던 손을 어색하게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로건이 클레이튼의 어깨를 두드렸다.
“둘 다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준비가 되는 대로 전방의 주요 거점 몇 군데에 마법진을 설치하겠습니다. 최소 다섯 군데, 무리를 한다면 열 군데가량도 생각하고 있으니 1년 정도만 더 고생해주십시오.”
그에 다시 로건에게로 시선을 돌린 클레이튼이 어색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1년에 열 군데나요?”
“힘드십니까?”
“아,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드러냈던 클레이튼이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게만 되면 폐하께서 말씀하신 제국의 침략도 훨씬 수월하게 막아 낼 수 있겠지요?”
“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는 클레이튼을 보며 로건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폐, 폐하! 나머지 하나의 역할도 알아냈습니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빅토리아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이쪽 관련이지?”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는 로건의 제스처에 빅토리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 마법진은 사람의 정신을 맑게 만들고, 억지로 간섭하는 이능을 배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현재의 마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들이라 이제야 해석이……. 어, 어찌 아셨어요?”
“잊었느냐. 나도 네가 보는 것이 보인다. 더구나 감각도 민감하다 보니.”
피식 웃은 로건이 빅토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그렇죠.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점이 있습니다. 이 마법진을 만든 대마도사는 아마 그 카셀 마탑 같은 존재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음?”
그 엉뚱한 말이 로건의 주의를 다시 집중시켰다.
“전에 겪었던 그 여자의 마법을 생각해 보니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이 마법진, 그 회색 마력을 분쇄할 수 있는 카운터 패턴이에요. 위자드 학파의 마법 같긴 한데…….”
오호.
로건의 눈이 그 순간 번뜩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봉쇄도 가능해?”
“완벽히 막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 마법진의 효과를 적용받는 대상자라면 세뇌가 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풀릴 거에요.”
의외의 발견.
그에 가슴 속 걱정거리를 하나를 덜게 된 로건의 얼굴에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날 이후, 맥라인의 왕성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