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32)
332화최근 맥라인에서 행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이 일이 양국의 우호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우려되오니…….
제국 황실이 보내 온 기나긴 말의 속뜻은 간단했다.
– 우리랑 싸우자는 뜻이냐? 정말 전쟁할래? 그러고 싶은 게 아니면 요새 짓는 거 당장 관둬라.
맥라인 왕실에서도 발 빠르게 답신을 보냈다.
– 아닌데? 우리 그냥 내부 단속하는 건데? 너희 쪽에도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까 신경 꺼.
서로가 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양국의 수뇌부는 잠정적으로 알고 있는 와중에 눈 가리고 아웅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당연히 제국은 더욱 강경한 내용의 공문을 보내 왔다.
그 의도가 빤히 드러나는 말.
게다가 맥라인 왕실에만 공문이 전해진 것이 아니라, 제국 동부에도 제국 황실의 이름으로 포고령이 내걸렸다. 제국이 노골적으로 이빨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에 맥라인 왕성에는 귀족들의 상소가 빗발쳤다.
– 요새 건설을 중단해 주시옵소서. 제국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선…….
– 현 제국은 역대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는…….
– 소국은 마땅히 대국의 뜻을 따라야…….
“소국? 대국? 이건 어떤 놈이 올린 거야? 정신 나갔네. 제국 놈이야, 이놈?”
로건이 상소문 중 하나를 들고 헛웃음을 짓는데, 그 앞에 서 있는 이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정보 담당 데미안과 재무대신 드웨인, 재상 로버츠 백작.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검공과 그와 함께 수련 중이던 루터와 위켄 군단장.
그리고 이제는 로건의 좌우에 항시 따라붙기 시작한 호위기사 겸 비밀 병기, 빅토르와 부르델까지.
맥라인 영지와 요새 건설에 투입된 마병단의 수뇌들을 제외한 현 왕국의 실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검공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제국의 동부 3, 4군단이 곧 북부 국경에서 훈련을 시행할 예정이라 합니다. 여차하면 정말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걱정스러운 말에도 로건의 태도는 단호했다.
“우리 2군단도 북부에서 훈련을 진행하시지요. 제국군과 마주 보고 훈련하면 재미있을 것 같군요.”
“폐하!”
“아아, 농담입니다. 농담.”
“이게 농담할 주제입니까, 지금!?”
검공이 보기 드물게 목소리를 높이는데.
“예.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렇지 데미안?”
로건은 미소를 유지한 채 시선을 옮길 뿐이었다.
“예, 폐하. 필립 상단주의 말에 따르면 식량이나 무구, 철광석 등 전쟁 물자의 흐름엔 큰 변동이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은……?”
“공문과는 달리, 제국은 당장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다는 말이지요.”
“허……. 단순히 그런 것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소왕국도 아니고 제국 정도의 규모라면요. 그리고 이제는 저희 왕국이 제국 군단 한두 개의 전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로건이 데미안의 말에 힘을 실어 주자, 데미안이 검공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필립 공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말이나 글은 간혹 거짓을 말하지만, 돈의 흐름에는 거짓이 없다고.”
“크흠.”
꽉 막혔다는 평가를 종종 듣지만, 그렇다고 우둔한 사람은 아닌지라 검공은 데미안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니 또 다른 의문점이 생겼다.
“폐하. 폐하께서는 제국이 언제고 저희 맥라인을 침공해 올 것이라 단언하셨습니다. 요새 또한 그 대비의 일환 아니었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제국 역시 그것을 알면서도 이 정도밖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게 좀 이상합니다. 혹 제국에서는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닐지…….”
그 말에 데미안과 드웨인의 시선이 검공에게로 몰렸다.
로건이 주장하는 제국 침공론은, 현 맥라인 수뇌부에서는 기정사실로 굳어져 모든 정책이 그에 맞추어 수립되고 있었다. 설령 그 판단에 의문점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한들 감히 누가 로건의 지시를 거부하겠는가.
애초에 그 명제에 태클을 거는 것이 가능한 것은 이 검공 정도뿐이라, 신하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다시 로건에게로 옮겨 갔다.
“제국이 더 격하게 반응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제국 침략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예?”
“협곡의 길목을 막는 요새도 결국 방어용 아닙니까. 우리 쪽에서 공격한다 치면 그저 불편하기만 한 걸림돌이 될 테지요.”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검공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 로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내부 정비가 다 끝나지 않은 것이겠지요. 황태자 책봉도 그렇고…….”
“하지만 폐하. 지금 반응은…….”
“무엇보다, 황제는 우리 왕국을 그리 큰 위협이라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예?”
“요새를 짓건 군단을 편성하건, 어차피 쉽게 짓밟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요. 좀 더 거슬리는 정도랄까.”
전생에 보았던 제국의 행태와 현생에 보았던 황제의 얼굴을 떠올리는 로건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어려 있었다.
‘우리가 무슨 준비를 하건, 조금 더 귀찮아진다, 정도로나 생각하려나.’
실제로 제삼자의 시선에 비치는 전력의 차이를 생각하면 황제가 그렇게 여길 만도 했다.
하지만 로건은 실제 맥라인의 전력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마 현 대륙 전쟁사의 특성상, 제국에서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을 자경단의 힘.
최선을 다해 소문이 널리 퍼지지 않게 막고 있는 아티팩트들과 리베라티오.
그리고 절대 기밀인 초인들과 대마법진까지.
거기에 새로 지어질 요새도 있으니, 충분히 제국을 막아설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것이다.
‘물론 제국도 중앙 군단의 전력이 비밀인 건 마찬가지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면 끝도 없다.
적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치명적이지만, 과대평가하는 것도 큰 실수를 부른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우리의 준비를 해 나가면 됩니다. 그렇게 준비했는데 혹시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뭐, 그걸로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충분히 납득했습니다. 그렇지 너희들도?”
검공이 그리 대답하면서 고개를 돌리자 묵묵히 서 있던 거인이 피식 웃으며 우렁찬 음성을 토해 냈다.
“저는 폐하의 말씀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괜한 걱정이십니다.”
루터 카일과 위켄 칼리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서야 로건은 스승의 뜻을 깨달았다.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 혹시나 지금 그들 사이에 있을지 모를 작은 미혹조차 없애려는 질문이었음을.
로건은 스승의 배려에 감사하며 미소로 답했다.
“물론 당장 전쟁을 일으키진 않더라도 견제는 확실히 들어올 겁니다. 제국 내에서 활동하는 상단이나 무역 관련 쪽에서는 상당한 타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그거대로 문제군요.”
검공의 안색이 다시 심각해지는데.
“그렇지만 이미 해결책은 세워 뒀습니다.”
“벌써요?”
“의외의 도움이 있었거든요.”
좌중의 시선이 로건의 시선을 따라 한쪽으로 쏠렸다.
“드웨인.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지?”
그러자 털보 대신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동왕부 측 협조가 꽤 적극적입니다. 이거 정말, 제국에서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겠는데요?”
그에 내막을 전혀 모르는 칼잡이들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 * * [계속 왕성에 있으라고요?]
“그렇다. 그래야 혼약의 핑계를 댈 수 있으니.”
통신구 속 딸, 루이사의 대꾸에 제라드 폰 아세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사랑스러운 딸을 대하는 양 다정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지만, 뱉어 내는 말은 매정하기만 했다.
[황실의 제재 조치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일이 될 겁니다. 벌써 그러기에는 후환이 걱정되는데요?]“정면으로 거역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느냐? 우리 왕부의 이름으로 거래하는 상단들은 맥라인 상단이 아닌데?”
제라드의 너스레에 루이사는 미간을 좁혔다.
[그런 얄팍한 수를 황실이 모를까요?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그러니까 그때를 대비해 혼약을 빌미로 삼자는 말이다. 거래하는 상단의 신분 보증을 해 주는 것뿐이다. 그것도 내 딸을 위해서. 적절한 핑계 아니냐? 설령 최악의 경우라도 경고 정도나 받겠지.”
[하. 정말 별걸 다 이용하시는군요.]“어허, 이용이라니. 어차피 너도 시간이 필요하지 않느냐.”
[그건 또 무슨 소리죠?]“‘탑주’가 무리한 명령을 내렸으니 그것 때문에라도 거기 남아 있어야지.”
[그건 또 어떻게……. 아버지, 설마 지금 탑 내부에도……!?]“걱정 말거라.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나는 결코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선에서 어슬렁거리며 간을 볼 뿐이지.
제라드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마지막 속내는 삼켰지만, 제 똑똑한 딸은 역시나 알아들은 것 같았다.
굳은 얼굴의 루이사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괜히 나서다 모든 것을 망치지 말고.]“나야 당연히 모든 행실에 신경 쓰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대스승님은 무서운 분입니다. 어쩌면 황제보다 더요. 하니 절대 거슬리시면 안 됩니다.]딸이 재차 강조하자 제라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걸 알면서 탑에 사람을…….]“그 사람이 황제보다 무서웠으면 손을 잡지도 않았겠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루이사의 말문이 막혔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진지한 얼굴.
평생 황제를 만난 적이 없는 루이사로서는 이런 언급 자체가 놀라울 뿐이었다.
[황제를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하시는 겁니까?]“높게 평가한다? 뭐, 반대일 수도 있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최악의 인간이니까.”
“그러니 너도 조심하고 또 조심하거라. 황실의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말고. 그랬기에 내가 지금껏 살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줄을 벗어나려고 이리 발버둥 치는 것이고.”
[……명심하겠습니다.]언젠가부터 좀처럼 말을 듣지 않던 딸이 실로 오랜만에 제 말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자 제라드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알았다면 됐다. 아, 그리고 최근에 좀 곤란한 일이 있었다지?”
[……딸에게 귀신들이 찾아온 게 좀 곤란한 일 정도인가요?]짜증 섞인 딸의 표정에도 제라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네가 잘못될 리는 없지 않느냐. 고작 그 정도 일 가지고 뭘…….”
[이러면서 누가 최악이라는 건지, 정말…….]제라드는 냉담한 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선물을 보내 줄까 한다.”
[필요 없어요.]“이런. 섭섭하게 그럴 거냐? 뭔지 듣지도 않고?”
[아버지는 항상 당신 기준으로만 판단하시니까요. 남이 어떻게 느낄지는 안중에도 없고, 엄마가 그렇게 됐을 때도 아버지 뜻대로만 하셨죠.]루이사의 싸늘한 목소리에 제라드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었지만, 이내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느냐는 듯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럼 늘 하던 대로 내 마음대로 선물하마. 이번에는 마음에 들 거다.”
[무슨……?]“바로스 때문에 화가 좀 났지? 그래서 그 형인 클리드가 너에게 보내는 위로 선물이다.”
스산하게 웃는 제라드의 미소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루이사는 알 수 없었다.
현재 진행되는 공사 건은 왕국 북부의 치안 안정을 위함입니다. 그 주목적은 양국을 오가는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오히려 양국 간의 우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본국을 잠정적인 적으로 규정하는 행위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합니다. 중단하지 않을 시에는 무력 행사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은 귀국에 있음을 명백히 밝히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