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생전 본 적 없는 산맥의 모습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주변의 지형지물들 또한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 뇌리에 파고들었다. 특히나 하늘을 뚫을 듯 높이 솟아오른 5개의 봉우리가 가장 높은 봉우리 하나를 중심으로 왕관 모양을 이룬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높디높은 산맥과 구릉, 멀리서 흐르는 구불구불한 강, 그리고…….
산맥의 중심, 가장 높은 봉우리 아래서 황금용의 문양을 새긴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인부들이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이 연이어 펼쳐졌다.
‘제국?’
그 모습을 인식하는 순간, 그의 영혼이 풍경의 일부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움직였다.
제국의 사람들이 무언가 공사를 하고 있는 봉우리 안으로.
본래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녔지만, 천 년도 훨씬 넘는 장구한 세월의 흐름에 의해 점차 힘을 잃어 가는 결계를 넘어서.
‘힘을 잃어 가는 결계?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의 영혼이 거대한 석실 같은 곳 앞에서 멈춰 섰다. 신화시대의 온갖 괴물들과 이종족의 모습이 벽화로 새겨진 공간이었다.
‘……여긴?’
그 당혹스러운 감정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공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길을 걷듯이 기나긴 공간을 구불구불 지나 한참을 나아가자 이내 눈앞에 널찍한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에 가운데에는 고대의 보물들이 수없이 쌓여 있고, 그 끝에 웅장하게 세워진 제단 위에는 대검 하나가 거꾸로 꽂혀 있었다. 반만 드러난 검신에선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와 어두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그 검신에서 이어지는, V자형으로 멋들어지게 꺾인 가드와 손잡이는 그 가느다란 외형에도 불구하고 검에 가해진 어떤 충격도 받아 낼 듯 굳건해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칼자루 끝 폼멜에 박혀 있는 작은 보석은 그 검이 가진 힘을 증명하듯 사방으로 신령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기운이 로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마치 검이 ‘내게 오라’고 소리치는 듯한 느낌.
‘설마……?’
로건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검을 자세히 살피니, 분명 익숙한 검이었다.
‘성검.’
자신이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 성검, 바니타스(Vanitas).
그래.
신성한 힘을 뿜어내던 그 검은 원래 성검이라 불렸었다.
그 고약한 이름과는 별개로, 그 검의 힘만은 진짜였다.
– 성검을 내놔라!
– 잡아!
– 어떻게든 성검을 회수해야 한다.
평기사 수준에 불과했던 자신이 제국의 귀신들을 한 달 넘게 따돌릴 수 있었을 정도로.
‘그래. 그랬어.’
자신을 쫓던 적들은 신검 비전보다도, 성검 그 자체를 원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 성검이 유일하게 자네에게 반응을 보이는군.
– 이것도 운명이겠지. 자네에게 맡기겠네.
– 절대, 절대 바로스 황제의 손에 넘어가선 안 되네.
자신이 단순히 고대어에 능해서 신검 비전을 맡았던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더불어 그 마지막 또한.
– 검이……?
산처럼 쌓인 시체, 그 밑에 마법진.
그 안에 들어서자 검이 울리던 모습까지.
– 제 발로 찾아왔구나. 검을 바쳐라!
–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드디어 이 땅에서 지브릭 카셀의 뜻이 이루어진다! 크하하하!
바로스 황제의 광기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마법진 안에 선 자신은 그 검으로…….
– 안 돼!
놀란 듯 눈을 부릅뜨며 자신을 보던 바로스의 모습.
시야를 뒤덮은 새하얀 섬광.
번쩍!
“흡!?”
순간 놀라서 눈을 부릅뜨자, 여전히 연무장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자각됐다.
“허……?”
이게 무슨?
당혹스러운 마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대낮에 꿈을 꿨다고 하기엔…….’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기억이 너무 생생했다.
나아가 여태 막연하게만 떠올랐던 전생의 마지막 장면이 또렷하게 기억난 것은 덤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머릿속 뿌연 부분이, 이제는 완전히 걷힌 듯한 그 느낌은 개운하기까지 했다.
‘품 안에 무언가 간직하고 도망쳤던 게 아니라, 들고 있던 검 자체가 성물이었어.’
왜 이제야 이런 기억이 떠오른 것일까.
그런 의문을 품자마자, 생각이 자연스레 유적 안에 있던 결계로 이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안에서 ‘이제는 이걸 부술 수 있다.’라고 말해 주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다시 성검을 얻게 된다면, 지금 느끼고 있는 수많은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도 들었다.
그 느낌이 매우…….
불쾌했다.
“하…….”
회귀가 그 검과 관련이 있다면, 왜 처음부터 기억나지 않았단 말인가.
“내가 자격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지랄도 풍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수작에 놀아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저 무시하기에는 뇌리에 새겨진 풍경이 너무나도 사실적이었다. 특히나 ‘제국군’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아니야. 전생대로라면 제국이 유적을 발굴하는 건 십몇 년이나 뒤의 일이다.’
로건은 그리 생각하며 불쾌한 기분을 애써 잊어 보려 했지만 좀처럼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젠장!”
그 성검.
자신의 회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되는 그 보물.
하지만 기억까지 간섭했을지도 모를 귀물이라 생각하니, 이제는 세상에 다시 없을 보물이라는 느낌보다는 찜찜함이 더 컸다.
한편으론,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다시 검을 얻게 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근거라곤 전혀 없는 생각이었지만, 왜인지 그럴 것만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전생에 사용했던 그 성검의 위력 또한 또렷이 생각나고 있었다.
호기심과 기대는 둘째치고.
‘그 검이 있으면…….’
실질적으로 전력이 강화된다.
오러유저 상급을 넘어 최상급에 한 발짝만을 앞두고 있는 지금.
아티팩트로 전력을 키울 수 있는 수준은 이미 한참 전에 벗어났다.
하지만 그 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 내 전력도 충분히 상승시킬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검이 머릿속에 남겨 놓은 유혹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젠장.”
로건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천공참을 완전히 체득하며 삶의 어느 때보다 맑아진 영혼은 그런 찜찜한 것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해 주는 듯했지만, 기분은 영 나아지질 않았다.
그리고 사실 성검이 아니더라도, 그 유적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저 전생에 지키려 했던 유물이 제국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전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그 유적에서 나온 것이었다.
‘신검 비전.’
약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신검 비전이지만, 제국의 트리스 혼스비 같은 자가 본다면 어떤 허점을 찾아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모든 역사가 바뀐 지금, 그 유물들이 좀 더 빨리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절대 제국에 넘어가서는 안 돼.’
입술을 짓씹듯이 깨문 로건의 안색이 점차 굳어졌다.
* * *
“……아무래도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어요.”
갑작스러운 그 말에 에일렌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어요. 그것도 은밀히.”
“……혹시 제국과 관련된 일이에요?”
끄덕.
굳은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을 잠시 바라보던 에일렌은 그대로 뒤에서 로건을 끌어안았다.
“나도 같이 갈까요? 지난번처럼…….”
그 고마운 말에도 로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나 혼자 해야 하는 일이에요.”
가슴을 감싼 아내의 따스한 손을 움켜잡으며 로건은 다시 다짐했다.
“왜요? 내가 같이 가면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그렇겠지만, 위험하기도 해요.”
그 말에 에일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오러유저 상급의 초인이 위험할 수 있는 일이라니.
“그럼 더 가야겠네요.”
꽉 힘주어 끌어안은 손에서 그 의지가 느껴졌지만, 로건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무력적으로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에?”
“말했죠, 카셀 마탑. 그쪽과 비슷해요. 여기, 여기가 문제라는 거죠.”
로건은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진심의 일부를 내보였다.
기억의 해방과 함께 생겨난 의심은 도통 사라질 기미가 없었으니까.
“그 검은 뱀의 마법사들, 그치들과 관련된 일인가요?”
“비슷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그쪽 관련해서는 상극이나 다름없잖아요.”
이 말은 그저 허풍이었다. 카셀 마탑은 몰라도 성검에 관련된 일은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그 검, 그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데려갈 수는 없어.’
기억이 완전히 떠오르기 전에는 그저 찾고 싶었던 검.
하지만 이제는 묘하게 경계심이 드는 검.
성검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그 이름에 어울리는 강력한 신성력이 아니었다면, 성검이 아니라 마검이라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사람의 정신을 간섭하는 검은 전설에나 나오는 마검뿐이었으니까.
‘……아니지.’
거기까지 생각이 뻗치다 보니 문득 어떤 가정이 떠올랐다.
‘가만, 그 신성력이 진짜일까? 얼마 전에 전대 교황의 사건도…….’
뒤늦은 깨달음이 머릿속을 벼락같이 관통했다.
거기다 바니타스(Vanitas), 그 이름에 담긴 뜻은…….
“정말 마검일 수도…….”
“예?”
“아니, 아니에요. 아무튼, 그럼 이해해 줄 수 있죠?”
등 뒤에서 끄덕이는 고갯짓을 느낀 로건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혼자 가는 게 맞아.’
지금 자신의 경지라면, 어떤 최악의 사태라도 혼자서 빠져나오는 것 정도야 손쉬울 터였다.
그리고 성검을 마검이라 가정하고 대비하면, 그 최악의 사태조차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차하는 순간 그 검은 폐기해 버릴 거니까.
전생에는 무슨 짓을 해도 이 하나 나가지 않았던 검이지만 공간을 가르는 검, 천공참은 단지 그 던전의 결계를 가르는 데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로건의 붉은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 * *
“또요?!”
“그래. 한두 달, 아니 한 달 안에 돌아오마.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예? 아니 제가 대체 시종장입니까, 배웁니까!? 왜 맨날 폐하인 척 연기를 해야 하는 건데요!? 이러다 진짜 언젠가 큰일이 날 거라고요!”
릭의 반항에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야 나름 재미있기도 했고, 두 번째는 부인 라일라와 함께 때아닌 신혼을 만끽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라 아무리 왕이 부탁했다고는 해도 자신이 국왕의 행세를 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이래저래 곤란한 일을 당할 수 있었다.
일단 지난번에 멋도 모르고 왕의 장인에게 이것저것 받아 챙긴 것을 포함해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았다. 일부러 좀 골려 주었던 드웨인 님은 아마 그날이 되면 코웃음을 치며 외면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 무심한 주인이 살뜰하게 챙겨 줄 것 같지도 않았기에, 릭은 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습관 되겠어요! 한 나라의 왕이 왜 자꾸 자리를 비우십니까!”
“괜찮아. 넌 잘해 주고 있어.”
“제가 안 괜찮다니까요!”
“반항하냐?”
“이씨…….”
울상을 짓는 릭을 보며 피식 웃은 로건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오면 아기 선물 좋은 걸로 주마. 조금만 더 힘내 봐.”
“겨우 그런 걸로…….”
“아티팩트.”
“충성! 맡겨만 주십시오!”
“그래. 건강하게 자라게 해 주마.”
로건은 그리 말하며 돌아섰다.
던전이 있는 곳에 대한 정보 조사는 굳이 필요 없었다.
‘제국의 크라운산맥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거기에.
자리를 비우는 동안 세세하게 챙겨야 할 변수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아내에게 다 전해 놓았다.
혹시나 별다른 일이 생겨도, 그녀가 잘 대처해 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최대한 빨리 다녀올 필요는 있었다. 이제는 정말 제국과의 전쟁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시기였으니까.
‘이게 마지막 외유가 될지도 몰라.’
로건은 그리 생각하며 캄캄한 밤하늘 아래 몸을 숨기고 몰래 성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