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크하하하. 내가 말이야, 그때 오크 열 놈을 베고…….”
“지X! 꽁지 빠지게 도망가던 거 내가 다 봤다, 이놈아!”
“웃기시네! 내가 이미 저 멀리 달려가는 니 엉덩이를 보며 뛰고 있었거든!?”
“푸하하하. X신들…….”
용병들이 모이는 곳답게 시끌벅적한 펍 내부.
그 구석에 홀로 앉은 ‘갈색’ 머리에 험상궂은 얼굴을 한 사내는 고개를 숙인 채 거품이 빠진 맥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홀로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귀는 활짝 열린 채 주변의 대화 속에서 쓸만한 정보를 찾는 중이었다. 데미안이 이끄는 정보 조직 ‘불꽃의 눈’이 아직 제국 전역에까지 퍼지진 못하기도 했고, 워낙 급하게 오느라 접선책을 제대로 준비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제대로 된 정보 조직을 찾아갈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곳에서 흐르는 소문도 제법 쓸 만하다는 걸 전생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성녀를 파문한다는 것 때문에 성국이 아주 시끌시끌해.”
“이번 대 신전은 유독 큰일이 많네. 그런데 그거, 진짜일까?”
다행히 아직 성녀가 잡혔다는 말은 없는 것을 보니, 빅토르가 일을 잘하고 있는 듯했고.
“뭐가?”
“동쪽에 무슨 나라랑 마찰이 있다던데?”
“에이, 뭐 그런 데까지 관심을 가져.”
“혹시 전쟁이 날지도 모르잖아.”
“그란디아였나? 그 작은 나라랑 제국이? 에헤이, 아서라.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전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용병들임에도 왕국의 소식엔 큰 관심이 없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슬쩍 웃은 로건은 미적지근한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안쪽의 카운터로 향했다.
용병 길드와 펍을 겸하는 여관.
탁.
자연스레 맥주잔을 내려놓은 그를 향해 바텐더이자 용병 길드 지부원인 사내의 시선이 쏠렸다.
“한 잔 더 드려?”
“아니. 크라운산맥 쪽에 일거리 있으면 추천 좀 해 주지?”
진짜 용병처럼 의뢰를 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가려고 하는 목적지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특별한 일이 없나 알아보려 한 것뿐인데, 바텐더가 피식 웃었다.
“외지인인가 보군. 억양도 동부 쪽 같고.”
“문제 있나?”
“그럼 있지.”
“음?”
용병 길드가 출신을 가지고 차별하는 일은 없을 텐데?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았는지 바텐더가 또다시 슬쩍 웃었다.
“크라운산맥이 금지(禁地)가 된 지도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 일거리라니, 어떻게 문제가 안 되겠어?”
그 문제라는 게, 생각과는 조금 다른 문제인 듯했다.
“뭐?”
“최근 일이니 모를 만도 하지. 안타깝지만 다른 일 알아봐.”
제국의 동북부에 있는 용병의 도시 콜로세움. 북부의 마수림과 가깝고 기후도 무척이나 추운 이곳은 제국에서도 온갖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으로 유명했고, 그 이명에 걸맞게 온갖 곳에서 흘러온 용병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이 용병의 도시에서 가장 흔한 의뢰 중 하나는 사냥꾼의 길을 타고 크라운산맥을 통과해서 제국 중심부로 향하는 상단의 호위였다.
‘어째 기억보다 사람이 좀 적다 했더니.’
사냥꾼의 길에서도 위험한 축했지만, 그만큼 빠른 경로이기도 했다.
상인들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이유가 뭐지? 거대 마물이라도 나왔나?”
“마물이면 다행이게?”
“무슨 뜻이지?”
“황실이 마수림의 마수들이 넘어온다는 명목으로, 크라운산맥을 금지로 선포했다. 허가 없이 들어서지 말라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언제부터 황실이 용병의 안전을 신경 썼다고?”
그 악명 높은 마수림조차 사냥을 하러 드나드는 것이 용병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산맥을 폐쇄했다니?
분명 정상적인 조치는 아니었다.
“하하, 맞아.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이런 걸 어쩌겠나.”
“……진짜 이유는?”
“황실기사단이 마수들을 처리하고 그곳을 훈련지로 쓰겠다더군.”
“그건 또 무슨 헛소리…….”
“그 대답, 자네까지 치면 천 번은 들은 것 같네. 갑갑하면 자네가 한번 따져 보든가.”
목숨이 백 개쯤 되면 말이야.
바텐더가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젓자 로건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최근 일이라도 외부에 전혀 소문이 나지 않았어. 그럼 금지로 선포하고서는 정보를 통제했다는 말인데.’
전생에서 이즈음에 이곳에서 용병 일을 할 때는 없었던 일.
불길한 예감이 짜증 나게 맞아떨어졌다.
“아세리안이나 파르젠티움으로 갈 생각이었나 보지? 아니면 노비엔스? 어쨌건 크라운산맥은 못 들어가. 길을 단축하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거면 실수……. 어이, 어디 가? 그냥 가는 거야?”
바텐더의 말을 외면하고 나오는 길.
크라운산맥 쪽, 저물어 가는 석양을 보는 로건의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 * * 쾅.
“무려 석 달이야, 석 달! 위치 제대로 잡은 거 맞아?! 엉뚱한데 파고 있는 거 아니냐고!”
간이 막사 안에 놓인 테이블이 가벼운 주먹질 한방에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냥 박살을 낸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모래처럼 잘게 부서져 버렸다.
그것은 그 거대한 주먹의 주인이 단순히 2m가 넘는 근육질의 체형 외에도 압도적인 포스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했다.
하지만 그 살벌한 무력 시위에도 탁자 앞에 앉아 있던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뒤로 곱게 빗어 넘긴 반백이 된 갈색 머리카락은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확실합니다.”
주름진 얼굴에 떠오른 옅은 미소 역시 그대로였다.
‘사람이 무슨 인형도 아니고.’
그 침착한 모습에 동부 1군단의 만인장, 야셀은 더욱 화가 치미는 듯했다.
황실에서 나왔다는 이 마법사 양반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개고생을 한 게 벌써 석 달째였다. 확실하다는 말만 믿고 다시 작업을 이어 가기엔 지나치게 긴 기간이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조짐도 없냔 말이야! 대체 어디까지 파 내려가야 해!?”
“1황자 전하께서 주신 정보입니다. 지금 황자 전하의 말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연달아 폭언을 퍼부으려던 야셀의 입이 다물어졌다.
끄으응.
‘젠장.’
여기서 더 무어라 말을 보태는 것은 유력한 황위 계승자인 1황자 클리드 반 아레스를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막 나가는 것으로 유명한 야셀이라도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사고를 친 탓에 징벌적 성격으로 받은 임무였으니까.
부르르 떨리는 손을 억지로 붙잡은 야셀이 다시 한번 인내심을 끌어 올렸다.
“……그래서,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은데?”
“이제 곧 결계가 보일 때가 되었소.”
“뭐?”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요. 길어야 1주일? 아니면 며칠 안에 나타날 수도 있고.”
“그 말 정말인가!?”
야셀이 눈에 띄게 반색했다.
“그렇소. 그러니 당신 할 일이나 제대로 하시오. 결계를 발견하는 날, 제물들이 엉뚱한 짓 못 하도록.”
‘제물’이라는 단어는 유독 작게 발음하는 반백의 마법사, 하비의 모습에 야셀은 다시 얼굴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끔찍한 계획을 정말 실행하겠다고?’
야셀이 하비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한 가장 큰 이유.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을 외부에 비밀로 하는 이유.
그것은 1황자의 제안에 동왕부가 호응하여 만들어진 이 유적 발굴 계획의 종반부가 끔찍한 인신 공양으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의 생명을 갈아 넣겠다는 참혹한 계획.
“……정말 그런 마법이 있는 게 확실한가?”
피식.
“설마 무지렁이들의 목숨이 아까운 것은 아니겠지요? 그들의 하찮은 목숨이 제국의 영광을 위해 쓰일 수 있다면 가치 있는 희생 아니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무식해도 희생이라는 말이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마법사.”
내키지 않는 일에 대한 분노는 결국 눈앞의 마법사를 향했다.
그 모든 일을 계획한 이가 1황자가 아니라 이 짜증 나는 마법사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황명을 거역하시겠다?”
“……그럴 리가.”
이어진 하비의 말에 야셀은 힘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찌 황제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항력의 절대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교육받고 살아온 제국의 기사였으니까.
“그럼 되었소.”
하지만 그래서 코웃음을 치는 하비의 모습이 더욱 양심을 쑤셔 왔다.
“어차피 기밀 유지에 필요한 일이었으니 그리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오, 기사 양반.”
“음?”
서로가 다른 것을 인지하고 꺼리는 그들은 서로를 기사, 마법사라고만 불렀다.
그리고 그랬기에 하비의 이 말은 의외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야셀을 배려해 주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이뤄질 테니.”
광기 어린 눈으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하비를 보며, 야셀은 그저 이를 갈 뿐이었다.
‘천막 규모로 보면 인부만 천 명은 넘는 것 같은데, 거기에 감시하는 병사도 없이 기사만 백 명? 묘한 구성이군.’
발굴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속.
어둑한 하늘 아래 족히 30m는 될 듯한 나무 위,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딛고 선 로건은 생각에 잠겼다.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불안할 법도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굳은 얼굴로 고심할 뿐이었다.
혹여나 눈이 밝은 자가 그를 목격한다 해도 그저 귀신이려니 하고 자리를 피했을 만한 재주.
귀신 그림자가 잔영의 수준을 넘어 또 다른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모조리 죽일 수도 없고…….’
민간인을 학살해야 한다는 꺼림직함은 둘째치고, 사방으로 도망칠 천 명이 넘는 인원을 다 잡을 자신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자신이 던전에 들어가 있는 사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까.
나아가 던전의 결계를 뚫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야 했다. 은밀한 움직임을 보일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산맥 깊숙이 자리한 어떤 곳에서 전해진 영혼을 자극하는 느낌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한없이 그립고, 또 그래서 불쾌한 느낌.
‘가까워. 얼마 안 남았어.’
그 느낌으로 인해 로건은 발굴단이 파 내려가고 있는 곳에 다가가기 전부터 그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고민하느라 시간을 며칠만 더 허비했어도 이미 저들에게 결계가 발견된 뒤였을 것이다.
‘내가 적합한 경지에 도달해서 기억이 해방된 게 아니라, 이들이 결계에 가까워져서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공교로운 타이밍.
그 모든 추측은 다시 성검을 잡게 되면 알게 될 수 있을 터였다.
그전에, 저 발굴단들을 처분할 계획을 세워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뿐일 것 같지만 말이야.’
다소 굳어진 안색의 로건은 발굴단의 규모를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야밤을 틈타 움직였다, 혹시나 모를 변수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사방의 환경까지 조사해 가며.
그리고 그 움직임이 꼬박 사흘 째 계속되어 더 이상의 정보 수집은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쯤.
– 나, 나왔다!
산맥의 동굴 깊숙한 곳에서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잎이 무척이나 무성한 어느 나무의 꼭대기,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서 곡예사 같은 모습으로 선잠을 자던 로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말, 정말이었군.”
어두운 동굴 속, 하지만 갱도를 밝히기 위해 설치해 두었던 횃불은 더는 필요가 없었다.
무너져 내린 벽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결계가 새하얀 광채를 뿜어내며 넓은 갱도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마법과는 또 다른 이능이 만들어 낸 이적이라는 것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우와아!”
“눈물 날 것 같아.”
“이, 이건.”
“나 이거랑 비슷한 기분 느낀 적 있어. 예전에 고위 사제님한테 축성 받았을 때.”
감동 어린 눈으로 새하얀 결계를 보던 인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감상을 뱉어 냈다.
소란을 듣고 황급히 뛰어온 야셀 역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유형화된 신성력이라니…….”
“결국 내 말이 맞지 않소? 기사 양반.”
“……그렇군.”
“그렇다면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지?”
“……알고 있소.”
인부들을 보는 야셀의 얼굴에 순간 갈등의 빛이 나타났지만, 그 빛은 굳은 결심에 밀려 사라졌다.
그리고.
“기사들은 인부들을 모아라. 마지막 작업을 개시한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는 일부 수위기사들이 평기사들을 닦달해 밖으로 내몰았다.
“쉬고 있는 교대자들도 모조리 데리고 들어와!”
“빨리빨리!”
“예!”
수십 명이 동시에 떠들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갱도 안을 시끄럽게 울리길 잠시, 이내 썰물처럼 목소리들이 사라졌다.
그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인부 하나가 야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대장님. 교대자들은 왜 모으시는 겁니까? 하던 대로 발굴을 이어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얼굴이 조금 굳어진 야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에 더욱 불안감이 커진 인부가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 누, 누구!
– 아아악!
– 적이다!
갱도 안에 있던 모두의 안색을 바꾸는 비명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