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38)
338화
“적……!”
스각.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틈타 공격을 가하려던 기사가 그대로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 처참한 광경을 만들어 낸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은색’ 오러블레이드였다. 그 아름답기까지 한 상서로운 빛과 참혹한 핏빛 광경의 대비에,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넋을 잃었다.
그러다 이내.
“으아아악!”
“사, 사람을 죽였어!”
“적이다!”
지켜보던 인부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파란을 만들어 낸 당사자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도망치지도 덤비지도 못하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냉정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스각.
“컥.”
“끄아악!”
“비, 빌어먹을!”
초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오러를 보고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던 기사도, 용케 용기를 내어 이를 악물며 달려들던 기사도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비명을 크게 지른 이들 덕분이었는지, 갱도 안에서 기사들 수십 명이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모두가 평기사 수준일 뿐이었다.
심지어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대열을 형성한 것도 아니고 그저 우르르 몰려나온 것뿐이라, 피가 낭자한 광경을 마주한 순간 하나같이 멈칫거릴 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떨리는 눈빛들을 보면서, 은빛의 사신은 주저 없이 앞으로 마주 달려 나갔다.
당황하는 적들과는 달리 놀랍도록 차분한 얼굴.
‘전령은 어제 왔다 갔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오지 않을 테고.’
쿵.
번쩍.
거세게 내딛는 진각과 함께 은빛의 오러블레이드가 가로로 휘둘러졌다.
3m 가까이 길게 뻗어 나간 검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범위 안의 기사 다섯의 허리를 단숨에 갈랐다.
쩌어억.
“아아악!”
“초인이다!”
“오러유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기사들은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굳은 얼굴로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용맹한 제국의 기사답게, 압도적인 적의 무력을 보고도 저항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높은 산마루에 자리한 유적 발굴지의 한 가운데, 포위가 가능한 지형에서는 제아무리 초인이라도 결국 숫자에 밀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늦었지.’
저 평기사들을 효율적으로 지휘할 만한 상급기사나 중급기사는 이미 처음의 기습에서 죽였다.
갱도 안에 그 배수의 기사들이 더 있음은 알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건 저들이 전부다.
명백한 상사가 없는 기사들은 진형을 짜 합을 맞추는 것에만도 시간이 걸렸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로건에게는 그들 모두를 몰살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시간이었다.
스슥.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사신이 어설프게 진형을 갖춰 가는 기사들의 사이로 귀신처럼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내.
쩌어어어억.
은빛으로 빛나는 원반을 던진 듯 기사들의 가운데로 상서로운 빛이 큰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고.
“으아아악!”
요란한 비명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마, 막아!”
“죽여야 해!”
기사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함을 질러 대며 애써 공포를 억눌렀지만, 그렇다고 실력의 차이가 메꿔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격은 그저 한 걸음을 내디뎌 귀신처럼 피해 내고, 슥 휘둘러진 검은 너무도 쉽게 제국 기사들의 팔이나 다리, 혹은 목을 잘라 냈다.
“끄아아!”
“괴, 괴물!”
겁에 질린 기사들이 발악적으로 내지른 검이 어쩌다 사신의 몸에 닿을지라도.
텅.
은빛 오러가 감싸고 있는 가죽 갑옷은 공격을 그대로 튕겨 내 흠집 하나 생겨나지 않았다.
“오러 배리어…….”
중급이상의 오러유저만이 가능한 기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는 기사들은 망연한 눈빛으로 검을 떨어트렸고.
“그래 봤자 잠깐이야!”
“몰아붙여서 지치게 만들면 우리가 이겨!”
희박한 기대로 투지를 불태우던 기사들은 그 투지가 무색하게도 이어지는 검격에 허무하게 쓰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오십에 가까운 기사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갱도 안에서 정예 기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웬 놈이냐!”
그렇게 소리치는 야셀 프리그먼의 도끼에서 붉은색 포스블레이드가 솟구쳤다.
단순히 길게 늘어난 블레이드의 형상이 아니라, 도끼의 형태 그대로 확대된 듯한 모습. 도끼날이 순식간에 대검의 날 수준으로 커져 버린 붉은색 포스엑스는 그 빛깔마저도 이상하리만치 새빨갛게 빛났다.
‘호오. 포스의 형상 변화와 동시에 압축까지?’
최상급기사 중에서도 거의 극에 오른 경지만이 선보일 수 있는 그 모습은, 그가 어떻게 동부 1군단에서 만인장의 지위를 차지하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로건의 시선은 소리치는 야셀보다도 그와 기사들의 뒤쪽에 서 있는 마법사에게로 향했다.
‘허?’
은은하게 흐르는 회색 마력.
밤중에 멀리서 볼 때는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놈은 마도사였다. 그것도 카셀 마탑의.
‘마도성자, 지브릭 카셀의 후예들.’
이제는 그 기원까지 온전히 짐작이 가는 무리.
생각해 보면, 그들이 이 위치를 아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의문점은 있었다.
그가 멀리서 그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저 마도사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약해. 마력이 제대로 정련되지도 않았어. 잘해야 6서클 비기너, 막 초인이 된 수준이야.’
그 수준으로 결계를 어찌 해제하려 했는지가 의문이었지만, 지금 그걸 물어볼 순 없었기에 로건은 그저 굳은 표정으로 야셀을 주시했다.
“대화를 나눌 가치조차 없다는 건가.”
딱딱하게 안색을 굳힌 야셀이 신중한 자세로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그 뒤의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순식간에 전열을 가다듬었다.
방패나 중병을 든 기사들이 1, 2열을 형성하고, 검이나 창을 든 기사들은 그 뒤에서 언제라도 사방으로 쏘아져 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정비했다. 로건이 선두의 기사들을 베어 내는 순간 양옆이나 뒤를 점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가장 앞에서 번뜩이는 포스엑스를 자랑하던 야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초인이라도 제국의 행사에 끼어들다니, 그 목숨으로 죄를 치러라.”
자신감 넘치는 얼굴에는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실제로 그가 몇 합 정도만 받아 내고 나면 포위망이 완성될 것이었다. 제국의 기사, 그중에서도 군단의 정예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유명했으니, 설령 다수가 희생되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저 숫자만으로도 초인을 죽일 수 있다 자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오러유저, 하급의 초인이라면 말이지.’
아니, 어쩌면 중급이라도 대다수의 희생을 각오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지금 로건을 상대로는 어림없는 이야기였다. 오러의 변환을 위해 억지로 격을 낮췄다 하더라도 고작 저 정도 수에 당할 그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고는 뒤편에 서 있는 저 마도사 하나뿐.
물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로건만이 아니었다.
“마법사!”
“걱정 말게나, 기사 양반.”
야셀의 고함이 거칠게 터져 나온 순간, 로건 역시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헛!”
그러고는 놀란 야셀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순식간에 마도사의 앞에 나타났다.
번쩍.
은빛의 검격이 야셀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한 속도로 목표를 갈랐다.
그러나.
쩌억.
그 검격이 가른 것은 어느새 마도사를 둘러싸고 있던 투명한 장벽이었다.
“하?”
쨍그랑!
마도사의 품속에서 무언가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이내 투명한 장벽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칫.”
콰콰콰쾅!
동시에 은빛 검격이 사라져 가는 장벽을 난도질하듯 강타했지만, 사라지는 속도가 좀 더 빨라졌을 뿐 장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틈을 타.
“꺼져라!”
꽤 놀란 듯 눈을 크게 부릅뜬 마도사의 마법이 로건의 바로 코앞에서 터졌다.
꽈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충격파.
그 충격파 덕분에 장벽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로건은 그 대가로 수십 미터 거리를 밀려 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아쉬웠다.
본래 실력을 발휘했다면 마도사의 품속에 있는 아티팩트가 뭐였든 간에 장벽을 단칼에 뚫어 내고 마도사까지 토막을 쳤을 테니까.
하지만 아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세를 다시 제대로 다잡기도 전에, 등 뒤로 살벌한 기세가 엄습해 왔으니까.
“뒈져라!”
로건의 온몸을 뒤덮을 듯한 거대한 붉은 도끼.
그 강력한 위세 사이로 희미한 은빛이 작게 번뜩였다.
꽈아앙!
그리고 그 결과는 겉으로 보이는 위세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웩!”
단숨에 피를 토하며 비틀비틀 물러나는 야셀.
그리고 불과 몇 걸음 물러난 것만으로도 충격을 해소하고 몸을 세운 로건.
오러유저와 포스유저 간의 차이는 이토록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건의 눈에는 이채가 어렸다.
‘제법.’
단숨에 도끼를 부숴 버리고 목을 베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놈의 포스에서 오러의 파괴 권능에 반발하는 흐름이 느껴졌다.
자신이 오러를 막 각성한 수준이었다면 십여 합은 무너지지 않고 버텼을 듯한 단단한 느낌.
놈이 특별한 비전을 익힌 것이 아니라면.
‘제국의 고위 전력이라면 다 배우는 한 수가 있다는 건가?’
이 또한 새겨 둘 만한 일이라, 로건은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자세한 조사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여유롭게 생각을 가다듬는 와중에도 그의 몸은 어느새 야셀에게 다가서 있었다.
다시 번뜩이는 은빛.
중상을 입은 적을 확실히 끝내기 위한 일격이었지만, 그 일격은 다시 한번 방해에 막혔다.
“대장님!”
“그렇게는 안 된다!”
불나방처럼 좌우에서 달려드는 기사들.
그들의 검과 몸이 야셀을 두 쪽 내려던 로건의 검격을 대신 받았다.
쩌어어억.
무너져 내리는 기사들의 시체 사이로, 눈이 두 배는 커진 야셀의 얼굴이 보였다.
“안 돼!!”
비명 같은 고함을 토해 낸 야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죽여라!”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것처럼 맹렬하게 돌진하는 야셀과 함께, 어느새 로건의 주위를 둘러싼 기사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
번개처럼 사선으로 내리치는 일격은 처음보다 더욱 강력했다.
중한 내상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체, 분노한 표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기.
둘 모두가 그 주인이 평상시에 어떻게 훈련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준의 차이는 확실했다.
‘허점이 많아.’
지금 당장 로건의 눈에 보이는 허점만 해도 서너 군데.
하지만 그는 좀처럼 그 허점들을 노릴 수가 없었다.
정면의 공격보다는 한참 못했지만, 등 뒤를 노리는 창과 옆구리를 노리는 검. 또 그 반대쪽을 찔러 오는 검들을 모두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어차피 이 자리에서 기사들을 전부 처리해야 하는데, 괜히 오러배리어를 둘러 기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새삼 아쉬웠다.
‘휩 블레이드라도 쓸 수 있었으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목격자까지 싹 다 죽여 버릴 생각이 아닌 이상, 정체가 드러날 만한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 했으니까.
쾅!
도끼의 옆면을 강타해 떨어지는 방향을 바꾸고 빙글 돌아서는 몸. 그 번개 같은 움직임을 따라 또다시 은빛의 선이 그어졌다.
카가가강!
“컥!”
“끅!”
단말마와 함께 갈라지는 적들.
용케 팔 하나만을 잃고 살아남은 기사 하나가 피를 토하며 주저앉는 뒤편으로, 또다시 달려드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앞에서는 이를 악물고 휘둘러진 살벌한 도끼가 다시금 옆구리를 노려 왔다.
그 상황에서.
“이만 죽어라!!”
멀리서 울린 날카로운 고성과 함께 로건의 머리 부근을 에워싸는 회색의 안개까지.
‘이거, 웬만한 초인이라도 죽었겠는데?’
내가 아니라면 말이야.
싸늘한 미소와 함께 다시금 은빛이 번뜩이는 순간.
스각.
“아악!”
야셀의 몸에 큼직한 상처가 또 하나 생겨나고, 달려들던 기사들은 속절없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