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대체 뭐 하는 괴물이야!?’
하비는 이를 있는 힘껏 악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으니까.
자신이 아무리 마도사라도 오러유저의 움직임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그는 오러유저를 단독으로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카셀 마탑에는 그저 대상을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발동하는 마법이 있었고, 그 대다수가 약간의 마력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을 흔들고 무너트릴 수 있는 효율적인 수법들이었다.
그러한 정신계 마법들은 그가 마도사가 되기 전부터 쏠쏠하게 써먹은 수법들이기도 했다. 마탑의 동지들이 아닌 다른 인간들은 절로 얕잡아 보게 될 만큼의 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힘에 취해 탑의 주류 마법 두 갈래 중 나머지 하나인 소환 마법도 등한시한 자신이 아니던가.
게다가 그는 오직 정신 마법만으로도 마도사가 될 수 있음을 탑에 증명한 인재였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는데.
“대체 뭐야! 저놈은!?”
저 흉악한 면상의 초인이 그 자신감을 산산이 깨부쉈다.
놈은 첫 일격에 탑주께 하사받은 보호 아티팩트 ‘겔러헤드의 거울’을 박살 낸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마법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처럼 거침없이 다가와 기사들을 학살했다.
‘내, 내 마법이…….’
평생을 믿어 왔던 힘의 근간이 무너지는 느낌.
그 무력감이 그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것이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마도사로서의 자존심이, 탑주의 엄명이 그런 최후의 수단을 쓰지 못하도록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 시조의 유물. 반드시 찾아야 한다.
위치를 알아낸 것도 겨우 몇 년 전.
거기에 최근에야 제국과 극적으로 합의가 되어 유물이 있는 인근 지역을 봉쇄하고,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심지어 동왕부와 황위 계승권자의 지지까지 받게 된 상황이 대체 어찌 가능했던 것인지는 그로서도 의아할 뿐이었다.
그저 탑에서 큰 모험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
그런데 그런 작전을 망친다?
돌아가 어떤 처벌을 받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냥 죽는 게 관대한 처벌일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상상만 해도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절대 안 돼!’
자신과 관련된 이들이 모조리 파멸하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영혼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사지가 쥐어짜이는 고통 속에서 육체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인형처럼 부려지는 것만은 절대 사양이었다. 탑의 후배들이 전투 인형이 된 자신을 조종하면서 비웃는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 소름 끼치는 공포가 미지의 적에 대한 공포를 내리눌렀다.
“그래. 죽어 보자!”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선 하비가 품에서 붉은 보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사용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지만, 전투 인형이 되는 것보다야 백만 배 낫다.
‘마법진의 핵은 다시 만들면 그만이야. 여기 인간은 많아.’
공포에 질린 얼굴로 사방에 숨은 인부들을 훑어본 하비가 손에 들린 ‘생명의 정수’를 부쉈다.
챙그랑.
“흡!”
그 순간 새어 나오는 붉은 기운을 조금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이내, 막대한 힘이 전신의 혈관을 따라 내달리는 것이 느껴졌다.
육체의 힘이 한순간 몇 배는 증폭된 느낌.
자신이 이럴 정도면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비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붉은 기운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크흐흐. 할……, 수……, 있……, 다.”
붉게 변질된 마력이 그의 손짓에 따라 ‘제국의 기사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충분했다.
이 정도 힘이라면, ‘동의’는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비, 빌어먹을.”
야셀은 거친 욕설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잠식해 버린 절망감에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쾅.
“우웩!”
다시 한번 가해진 맹렬한 충격에, 그의 입에서 피 분수가 뿜어졌다.
쾅!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르륵 밀려나는 몸뚱이.
베이지 않고 용케 몸을 건사한 자신을 칭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사이에 수하 두 명이 처참하게 쓰러지는 꼴을 보았으니까.
참혹한 예감이 밀려들었다.
‘그리트 님보다 강하다. 대체 어디서 저런 자가…….’
제국의 군단장보다 강한 자가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그것도 하필이면 제국의 일에 훼방을 놓는 적으로.
야셀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다시 적을 훑어보았다.
험상궂은 얼굴, 은빛의 오러.
‘가만, 어디선가 소문을 들어 본 것도 같은데?’
현실 도피일까.
그 용맹했던 야셀이 다시 적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생각에 빠지는데.
우우웅.
순간 그의 몸 안으로 알 수 없는 기운이 파고들었다.
“윽!”
아찔한 느낌이 드는 순간, 야셀은 본능적으로 그 기운을 밀어 내려 했다. 몸에 좋지 않은 기운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야셀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 이질적인 기운은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갔고, 곧 난폭한 힘이 혈관을 따라 내달리는 것이 느껴졌다.
뿌드드드득.
온몸의 뼈가 다시 재정립되고 몸이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굳이 거부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었다.
‘이 힘이면, 할 수…….’
갑자기 적이 작아진 것처럼 보이며 자신감이 솟아났다.
주변의 부하들 또한 하나같이 덩치가 더 커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 적을 죽여라!
자신감에 찬 야셀은 그렇게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캬아아아아!”
그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괴성을 마지막으로, 그의 이성이 툭 하니 끊겨 버렸다.
촤아악.
“꺼, 꺼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기사의 상태가 이상했다.
베어 버린 적의 육체도 어째서인지 갑자기 저항감이 강해졌다.
하지만 로건은 굳이 그 이유를 고민해 보지 않았다. 갑자기 멈춰 선 적들을 배려해 줄 필요는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은빛 오러블레이드가 다시 번뜩이기 시작하는 순간, 적들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쩌어어억.
“커, 커억!”
베어 낸 육체의 저항감이 믿을 수 없이 커지더니.
“캬아아아아!”
이내 귀를 찢을 듯한 괴성과 함께, 신체가 평범한 인간의 두 배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 붉은빛의 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건 또 뭐…….”
로건의 시선이 멀리 털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마도사에게 향했다.
앞뒤도 없이 별 효과도 없는 회색 마법만 쓰기에 처리를 미뤘더니.
‘무슨 짓을.’
하지만 이제 와 놈을 신경 쓰기에는 당장 눈앞에서 느껴지는 위기감이 더 컸다.
당장만 해도.
콰아아아앙!
기사였던 괴물이 바닥에 주먹을 한 번 내리꽂자, 주먹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투박하지만 그 힘과 속도가 이전의 몇 배는 되는 듯한 느낌.
몸이 부풀어 오른 탓에 넝마가 되어 간신히 걸쳐져 있는 갑옷이 전혀 우습게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로건은 갑작스레 일어난 변화가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고작 5명 남았던 기사들이 일제히 괴물로 변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캬오오오오!”
꽈아아아앙!
그조차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움직임이 빠르고, 다른 괴물에 비해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괴물, 야셀이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도 자신이 서 있던 자리의 지면이 움푹 꺼지는 것을 보며, 로건은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이거 자칫하면…….’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눈앞에 들이닥친 주먹.
은빛의 오러가 그 주먹을 비스듬히 갈라 냈다.
그런데.
스각.
콰아아아앙.
“캬아아악!”
오러로도 놈의 팔을 완전히 잘라 내지는 못했다.
손목이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주먹으로 바닥을 후려친 괴물이 멀쩡한 한쪽 팔로 손목을 붙잡고 발작하듯 고함을 질러 대는데.
그 짧은 순간 반쯤 잘린 놈의 손목이 다시 달라붙는 것이 보였다.
‘저항력도, 재생력도 인간의 수준이 아냐. 미친…….’
로건이 혀를 내두르는 순간.
“카야!”
“크아아아!”
그런 그의 뒤로 다른 괴물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질서는 없지만 기사일 때보다 확연하게 빠른 움직임.
로건이 무언가 결심한 듯 안색을 굳히던 그때, 의외의 광경이 벌어졌다.
뻐어어억.
야셀이었던 괴물이 달려드는 작은(?) 괴물들을 후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캬아아아!”
쾅!
뻐어억!
“하?”
마치 자신의 먹이를 건들지 말라는 것만 같은 행위.
두 놈이 야셀의 주먹에 맞아 비틀거리며 쓰러지자, 나머지 두 괴물이 위축된 몸짓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크르르르.”
“크륵.”
그에 놈들을 향해 이를 내보인 괴물 두목이 호기롭게 뒤로 돌아서는 순간.
푸우우욱.
은빛 오러가 빛나는 검이 되어 괴물의 눈을 관통해, 뒤통수로 빠져나왔다.
“고맙다, X신아.”
“크, 끄륵?”
다행히 머리통까지 재생해 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피거품을 뿜어내는 두목 괴물의 몸에서 점차 붉은 기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로건은 살벌한 미소를 지었고.
“캬아아아!”
쓰러진 두목을 보며 기세 좋게 소리를 지르던 나머지 괴물들이 이내 하나둘씩 허무하게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오, 오지 마!”
발작 같은 고함과 함께 회색빛이 번뜩이는 순간.
로건의 전신을 회색 안개가 감싸더니, 이내 무의미하게 흩어졌다.
피식 웃음을 흘린 로건은 아무런 느낌도 없는 것처럼 곧장 놈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다리에 힘이 풀린듯 털썩 주저앉은 마도사가 엉덩이 걸음으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히이이익!”
“……어처구니가 없군.”
“사, 살려 주십시오! 저는 제국에 고용된 마법사일 뿐입니다!”
“경지는 마도사인데, 하는 짓은 소인배라. 마지막에 헛지랄한 꼴을 보면 전투 경험도 별로 없는 듯하고.”
“예, 예! 저는 쓸모없는 놈입니다. 그러니 제발…….”
이 정도로 겁쟁이라면 써먹을 곳이 있지 않을까?
로건은 작은 기대를 걸고 불쑥 물었다.
“카셀 마탑?”
“……헙?!”
하비의 눈동자가 두 배로 커졌다.
“어, 어떻게?”
“쓸모 있는 정보를 뱉으면 살려 주지. 어떤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두리번거리며 멀리서 숨어 있는 수많은 인부들을 바라보는 하비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싫으면 죽던지.”
로건은 표정조차 바꾸지 않고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저, 저는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마도사가? 웃기는 소리. 이곳에 있는 유적에 대해 아는 것부터 말해 봐.”
그러자 울상이 된 하비가 또다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그의 입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 작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던지.”
“귀를 좀…….”
로건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이는데.
머뭇거리며 벌어진 하비의 입에서 갑작스레 녹색의 안개가 쏟아졌다.
스아아아아.
녹색 연기에 스친 지면이 거무죽죽하게 녹아내리고, 이내 끝을 알 수 없는 구멍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하비의 얼굴은 참혹하기만 했다. 녹색의 연기를 토해 낸 후 시뻘겋게 부풀어 오르던 그의 몸 또한 다시 쪼그라들고 있었다.
쿨럭.
“크흐흐흐. 이런 빌어……먹을…….”
정작 목표였던 로건은 어느새 그의 등 뒤에 서 있었고, 은빛의 검신이 그대로 그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적의 오러가 그의 서클을 박살 내고, 마지막 자폭조차 막아선 것이다.
물론 그의 목숨을 가져가는 것은 덤이었다.
“살려 준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데.”
“크. 크. 크륵.”
무엇이 웃긴 건지 비웃음이 떠올라 있는 듯한 하비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적에게 정보를 제공하느니, 차라리 같이 죽으려 한다. 마도사가, 초인이 서슴없이.’
그 이유가 충성심이든 다른 무언가 때문이든, 실로 무서운 일이었다.
“씁.”
하지만 지금은 그에 대해 깊게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이제 목격자를 처리해야 하나.”
로건이 그렇게 들으란 듯 중얼거리며 주변을 훑어보자.
– 히이익.
– 도, 도망가.
– 튀어!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들과 함께 주변의 수풀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숨어 있던 인부들이 일제히 도망치고 있었다.
이제 은빛 오러의 초인이 제국군을 도살했다는 말이 근방에 퍼지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유적을 털고 나온다.’
로건의 시선이 갱도 안, 자신의 영혼을 부르는 듯한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