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4)
34화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중후한 인상을 한 반백의 중년인이었다.
깨끗한 정장에 멋스럽게 나이 먹은 얼굴, 외모만으로는 어딘가의 귀족이라 해도 될 정도로 단정해 보였다.
하지만 로건과 필립을 보자마자 깊숙이 숙이는 고개는 사람을 모시는 데 익숙한 이라는 느낌이 확 들게 했다.
“저희 주인님께서 이곳에서 임포릭이라는 약을 사 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주인이라 하시면……?”
흥미로운 표정으로 중년인을 지켜보는 로건을 대신해 필립이 나섰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신분을 밝히지는 말라고 하셔서…….”
떨떠름한 안색의 중년인은 자신이 여기에 왜 와 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역시 이렇게 되나…….’
가게를 열었을 때부터 예상하던 결과이긴 했지만 그대로 약을 팔 수는 없었다.
로건의 눈짓에 필립이 미리 정해 놓은 대로 나섰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신분이 확실히 증명되신 귀족분께만 약을 판매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예? 그게 무슨…….”
“직접 오시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분의 직인이 찍힌 증명서라도 가지고 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
일견 황당해 보이는 조건이었으나 이것이 최선이었다.
‘아무나 살 수 없는 고급 제품이라는 인식을 줘야 해.’
자칫 귀족의 치부를 건드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아무에게나 넘기는 약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여, 여기 증명서입니다.”
한참 뒤 이마 가득 땀방울을 달고 다시 찾아와 증명서를 내미는 중년인의 얼굴에는 황당함만이 가득했다.
물건을 사는 데 저런 증명서를 들고 온 적은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로건은 그 증명서에서 귀족의 직인을 확인했다.
‘역시.’
증명서에 찍힌 문장은 백합의 문양. 데이비스 백작가의 것이었다.
가장 먼저 미끼를 던진 물고기였다.
로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필립이 다시 중년인에게 말했다.
“돈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예. 지시에 따라 전부 현금으로 가져왔습니다.”
사실 거래는 수도인 만큼, 그리고 금액이 큰 만큼 은행의 예금증서나 확인증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굳이 저렇게 현금 거래를 택한 이유는…….
‘증거를 남기기 싫다는 거겠지.’
중년인은 자신이 짊어지고 온 배낭에서 묵직한 금화 주머니를 꺼내 놓았다.
쿵.
“모두 1만 골드입니다. 명을 듣기로는 그 약 100상자 가격이라고…….”
“잘못 들으셨군요. 열 상자 가격입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오심이 어떨까요?”
저렇게 척 봐도 오랫동안 일을 해 온 것 같은 고용인이 귀족이 내리는 명을 잘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아마도 고작 약 한 상자에 천 골드라는 가격을 믿을 수 없는 것일 터였다.
“아, 아닙니다. 이제야 확실히 기억이 나는군요. 열 상자. 열 상자가 맞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손님.”
탁.
금화 주머니의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고 작은 상자들.
아무리 고급스러운 비단에 포장되었다고 한들 그 원가는 기껏 1골드 내외일 것이다.
반백의 중년인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상자와 금화 주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 이게 임포릭 맞습니까?”
“예. 그분께 드린 것과 같은 것 맞습니다. 가져다드리면 확인해 주실 겁니다.”
“하아…….”
한숨을 내쉰 중년인은 축 처진 어깨로 가게를 나섰다.
가게에 남은 로건과 필립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사업의 대박을 예감했다.
“파티장 가셔야죠.”
“물론. 오늘도 열심히 달려 봐야겠군.”
반복된 일에 지쳐 보이던 로건의 눈빛에 힘이 들어왔다.
작지만 고급스러운 가게에 손님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건 그날부터였다.
그렇게 일주일 후.
내성의 중심가에 있는 작은 가게.
간판도 없이 로건 맥라인이라는 명패만 걸린 가게 앞으로 아침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로건과 필립이 한 번 이상 보았던 얼굴들이었다.
즉, 대박이 나는 가게의 기본 조건인 재방문 손님들이었다.
물론 진짜 손님은 그들이 아닌 그들의 주인들이겠지만.
‘하나같이 하인들만 보내는군. 하지만 저래서야 무슨 소용이 있나.’
가게 앞에 줄을 선 하인들은 서로를 보며 쑥덕거렸다.
“함멜 백작님도?”
“탈룬 자작님은 또 왜?”
“헐. 저기 데이비스 백작가 집사님 오신다.”
로건이야 하인들의 얼굴만 보고는 그 주인의 정체를 알진 못했지만, 하인들끼리는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 덕에 로건은 그들끼리 떠드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들이 서로 알아보기에 소문은 더 빠르게 퍼져 나갈 것이다.
정확하게 로건이 원하던 바였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오늘은 필립이 무언가를 가게 앞에 내걸었다.
– 일일 한정 50상자 판매.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판매량에 드디어 다음 계획이었던 한정 판매를 시작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준비한 물량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예?! 주인님께서 다시 한 상자만 사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저희 가게 방침인지라…….”
“아. 안 됩니다! 저 그냥 돌아가면 큰일 납니다! 제발!”
어느새 로건의 가게 앞은 한 상자만 더 팔아 달라 떼를 쓰는 이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열 개가 들어 있는 한 세트를 몇 개씩이나 사 가 놓고도 며칠 만에 다시 오는 이유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 광경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임포릭의 가치를 광고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기에 로건은 그런 하인들을 그냥 방치했고, 가게 앞에는 울상의 하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발 좀 팔아 주세요!”
“주인님께 제가 죽습니다!”
와글와글.
그들로서는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고,
“저기는 뭐 하는 곳이지?”
“예? 잘 못 들었습니다, 나리.”
“왜 내성 한가운데에 귀족들이 아니라 하인이 몰려 있는 가게가 있는 거냐. 그것도 이 아침부터. 가서 알아보고 오거라.”
그 모습에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한 상자에 천 골드짜리 약을 판다는데요?”
“뭐? 저런 미친놈들을 봤나.”
“그런데 그만한 효과가 있답니다.”
“……그게 무슨?”
그리고 엄청난 가격에도 상당한 수요가 있다는 것이 알려진 순간, 임포릭에 대한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참 좋은, 차원이 다른 보약이 나왔다.
그 소문이 그랑 전체에 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오늘도 완판이군.”
처음 판매를 시작한 이후 일주일 동안의 판매량은 고작 100상자였다.
하지만 그다음 일주일간 판매량은 350상자, 일일 한도를 전부 꽉꽉 채우고 있었다.
그러니 로건의 얼굴이 환해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게요. 불능인 귀족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다 불능은 아니겠지. 정력제로도 좋다니까, 이거?”
“그러게요. 정말 그게, 그것참 귀족들 욕심도…….”
“그 욕심 덕분에 우린 돈을 벌고 있으니 좋은 거지 뭐.”
“그렇죠, 욕심. 흠…… 로건 님! 이 판매를 제게 맡기신다고 하셨죠?”
“결국은 그래야겠지. 사실 지금도 거의 네가 하고 있잖아. 왜?”
“이제 로건 님이 가지고 오신 물품이 절반 좀 넘게 남았지 않습니까. 혹시 내일부터는 제가 가격을 정해도 될까요?”
“가격까지? 흠…….”
계획대로 잘 팔리고 있는 물건에 갑자기 변화를 주어도 될까.
로건은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전생에서 10대 상단을 이끈 황금충 필립의 말이었다.
“그래, 한 번 마음대로 해 봐. 하지만 만약 잘 안 풀린다 생각되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될 겁니다.”
히죽 웃는 필립의 모습에, 로건은 그 자신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3천 골드?! 어제까지 천 골드였던 것이 왜 3천 골드로 바뀐 겁니까!”
첫 손님부터 거센 항의가 터져 나왔다.
로건조차 놀라 필립을 쳐다볼 정도로 극단적인 가격의 인상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상단의 사정을 모두 공개하기는 어렵습니다. 구매 대행자시거든 다시 허락을 받아오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게 오전 내내 필립은 손님들을 돌려보내기만 했다.
“야, 너 무슨 생각이야? 갑자기 가격을 세 배나 올리면…….”
“그래도 팔립니다. 그냥 지켜봐 주세요.”
로건은 아무래도 미심쩍었지만 너무나 확신이 넘치는 필립의 표정에 당분간은 잠자코 지켜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필립의 장담은 바로 그날 오후에 현실로 이루어졌다.
“한 상자, 한 상자 주시오!”
“둘, 아니 세 상자요!”
“여기 있습니다, 손님. 자! 오늘 물량 끝났습니다. 죄송하지만 뒤에 계신 분들은 내일 다시 찾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아, 안돼! 또 그냥 돌아가면 전 죽습니다!”
“한 상자! 한 상자만 팔아 주시오!”
“허…….”
로건이 놀랄 정도로, 임포릭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 * *
“와, 4주 만에 255만 골드……. 미쳤네. 더구나 이거 원가가 거의…….”
본인이 만들어 낸 결과임에도 넋이 나간 듯한 필립의 말.
그 옆의 로건은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으와아아아아아! 해냈다!”
불안한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전생의 정보를 토대로 했지만, 원래의 흐름에서 상당히 비틀어서 벌인 일이었다.
다행히 그 결과는 그야말로 엄청난 성공이었다.
특히나 필립이 바꾼 가격으로 2주 만에 무려 210만 골드의 매출을 올렸다.
“이 기특한 자식!”
“으아아! 떨어지세요!”
이런 추세가 한 달 내내 지속된다면 무려 450만 골드.
원래 맥라인 영지의 1년 치 예산 절반을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이 돈이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광산을 개발할 수도 있겠어.’
염두에 두었던 계획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생각 이상의 대박이었다.
다만 한 가지 내심 불안한 점은 있었다.
“임포릭이 이렇게나 잘 팔린다면, 아무래도 원재료를 유추하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까?”
정신 나간 대공자의 괴행으로만 여겨졌던 카록의 고기 매입.
하지만 그 대공자가 전에 없던 신약을 만들어서 판다면?
그 두 가지를 연결 짓는 사람이 금방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필립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라는 건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몬스터 고기를 먹는다는 것도 생각하기 힘들 텐데, 그거랑 약은 절대 연결 못 시켜요.”
정작 본인은 한방에 눈치챈 사람의 말이기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저야 카록의 고기로 돈을 벌겠다는 로건 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사 모은 사람이니 추론이라도 할 수 있는 거죠. 장담합니다! 눈치챌 사람 없습니다.”
하지만 필립의 눈빛은 티끌만큼의 흔들림도 없이 굳건했다.
“저는 오히려 다른 게 걱정됩니다.”
“다른 거 뭐?”
“이제 와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정말 부작용 없는 거 맞죠?”
“허…… 그래, 없어.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냥 그래까지만 하시지 왜 자꾸 부언을 다십니까. 끄으응.”
다음 달부터 전적으로 임포릭의 판매를 맡기로 한 필립의 심정은 많이 복잡한 듯했다.
“으으. 만약 잘못되면…….”
“그렇게 걱정하면서 판매가를 세 배로 올렸냐?”
“잘못되면 천 골드나 3천 골드나 죽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벌 수 있을 때 벌고 봐야지. 하지만…… 어휴…….”
부담감 탓인지 필립의 머릿속에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듯했다.
‘무리도 아니지. 직접 본인한테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
계속 저렇게 둘 수도 없으니, 로건은 의욕을 북돋아 주기로 했다.
이왕이면 화끈하게. 천상 상인인 필립이 가장 좋아할 방법으로.
“다음 달부터 판매 수익의 1%는 네 몫이다.”
번쩍.
그 말 한마디에 필립의 눈빛이 바뀌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정말이다. 그러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봐.”
“맡겨만 주십시오!”
그의 우렁찬 대답에서 좀 전 같은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 * * 이제 남은 임포릭은 700상자 정도였다.
당장 본가로 돌아가서 다시 물건을 보내더라도 일정상 1~2주는 판매를 중단해야 할 상황이었다.
너무 장사가 잘되는 바람에 오히려 공급에 차질이 있게 되었지만 필립은 그조차도 긍정적으로 보았다.
– 1, 2주의 공백이라면 임포릭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러면 곤란하겠지만요.
로건은 역시 믿을 만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 돈을 써서 미래를 대비할 차례였다.
‘돌아가는 길에 그쪽에 들를까? 아니야, 역시 가문에 얘기해서 가문 차원에서…….’
임포릭의 성황으로 한시름은 덜었지만, 눈앞의 목표 하나를 달성하자 미래에 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오늘 하루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집중!’
잡념을 떨치고 이제는 익숙해진, 잠을 대신한 명상에 다시 집중해 보려 하는데, 스으윽.
극도로 고양된 감각에 간신히 잡히는 ‘아주 희미한’ 기척, 은밀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도둑인가!’
로건 스스로 생각해도 군더더기 없이 빠른 반응이었다.
좌정을 풀고 침대 옆에 둔 장검을 집어 들어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겨누는 일련의 과정에는 한 점의 낭비도 없었다.
“누구냐!”
하지만 그 검이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직 가라앉지 않은 감각이 등 뒤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느꼈다.
‘미친!’
소름이 끼치는 느낌과 함께 강렬한 위기감이 엄습했다.
순식간에 최대치로 끌어올린 힘으로 로건은 번개처럼 뒤로 돌았다.
스각!
그와 동시에 공간을 가르듯 휘둘러지는 검.
최선을 다한 일격이 로건의 손에 미미한 촉감을 전해 주었다.
“음?!”
놀란듯한 감탄사가 상대의 존재를 확실히 알려 주었다.
“뭐냐, 넌.”
당황한 감정이 그대로 담긴 살기 어린 칼끝과 으르렁거리는 로건의 목소리가 갑자기 나타난 복면인에게 향했다.
도대체 누구인지, 무슨 목적인지 모를 복면인은 잠시 그를 응시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나타난 만큼, 사라지는 것 또한 갑작스러웠다.
로건은 황급히 감각을 곤두세워 봤지만 더 이상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조금 전에 느꼈던 그 희미한 기척조차도.
“귀신에 홀렸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침대 옆에서 소맷자락에서 잘린 듯한 검은 천을 발견하고서는 다시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