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저벅저벅.
“3달 만에 깊이도 팠네.”
갱도를 울리는 목소리에 응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타오르는 횃불들이 흔들리며 그림자를 조금 춤추게 했을 뿐, 직선으로 뻗은 지하의 갱도에는 발걸음 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단숨에 내달려 내려가지 않은 것은 혹여나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숨어 있는 놈은 없군.’
감각을 곤두세워 사방을 샅샅이 훑으며 갱도를 내려가던 로건은 새하얗게 빛나는 벽이 나타난 순간 그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우웅.
평범한 사람이라도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 분명한 성스러운 빛.
“흠…….”
전생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이곳은 마도성자 지브릭 카셀의 유적이 확실했다.
다만, 교황 사건과 같은 결이라면 이것 역시 가짜 신성력이어야 했다.
‘……역시 구별이 안 되는데.’
일리아 주교는 대번에 가짜 성력을 구별해 냈다고 하지만, 자신은 거기까지는 무리인 듯했다.
하지만.
‘부수는 것은 다른 얘기지.’
굳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는 일이다.
챙.
결심이 서는 순간, 검이 번개처럼 뽑혀 나오며 전면의 결계를 갈랐다.
일점의 힘도 낭비하지 않는 깨끗한 발검.
유려한 검신을 자랑하는 룩스가 결계를 타격하기 직전, 응축된 오러의 힘을 뿜어냈다.
꽈아아아앙!
하지만 새하얀 결계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 자리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역시…….”
로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미 정신과 몸이 완전히 일치되어 마음 가는 대로 검의 궤적을 그리는 경지에 이른 자신이다.
한데 그런 자신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효율로 뿜어낸 파괴의 권능이 무산되었다. 나아가 웬만한 기술로 파괴력을 증폭해 봤자 이 결계는 꿈쩍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들었다.
‘결국 성검이 알려 준 방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건데……. 흐.’
찜찜하지만 그냥 돌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로건의 손에서 황금빛 검격이 그어졌다.
번쩍.
허공에 그어진 검격에서 번져 나온 찬란한 황금빛이 순식간에 전면을 물들였다.
그리고 이내.
츠츠츠츠.
견고하던 결계가 빛이 잦아들듯 사라지며 황금빛 칼날에 굴복했다.
쩌어어억.
후으읍.
일순간에 절반 이상 텅 비어 버린 포스.
긴 호흡을 통해 그 탈력감을 조절한 로건이 안색을 굳힌 채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변장이 풀리며 그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얼굴이 전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런…….”
그것을 느낀 로건이 작은 한숨과 함께 짧게 혀를 찼다.
하늘 가르기, 천공참의 일격이 결계를 가르는 순간 번져 나온 파동으로 인해 클레이튼의 변신 마법기가 박살 나 버린 것이다.
아직은 그가 조금 미숙했기에 벌어진 일.
‘익숙해지기만 하면.’
천공참을 완전히 체득하자마자 바삐 움직인 결과였다. 조금만 더 수련하면 바로 벽을 넘어 다음 경지에 닿을 것도 같았지만, 그 얇디얇은 벽을 뚫는 것은 잠시 뒤로 미뤄야 했다.
당장은 눈앞에 유적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흠.”
새하얀 결계가 사라진 이후 드러난 굳건한 벽.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 회색빛 벽이 결계와 함께 갈라져 그 내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로건이 성큼 안으로 들어서자 좌우로 길게 늘어진 통로가 나타났다. 그가 갈라 버린 곳이 정상적인 입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긴 통로의 한 가운데로 들어선 것이다.
족히 10명은 나란히 서서 걸어도 충분할 만큼 널찍하고 높은 통로의 양면에는 생동감 넘치는 벽화들이 가득했다.
‘용, 인간, 리자드맨……. 전부 고대의 종족들인가.’
무슨 물감을 쓴 것인지 엄청난 세월의 흐름에도 빛바랜 그림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입에서 화염을 뿜어내며 거대한 산맥을 불태우는 커다란 용과, 그 앞에 선 다양한 종족의 전사들을 그린 벽화였다.
앙숙이라 알려진 여러 종족들이 나란히 서서 용을 적대하는 모습. 그 좌우로 이어지는 벽화들은 그 싸움이 시작되기 전과 후의 이야기를 그린 것 같았다.
로건의 시선이 자연스레 전투 후의 벽화 쪽으로 돌아갔다.
처절한 혈전의 와중인지, 비늘이 떨어져 나간 용의 모습과 수많은 종족이 죽어 나가는 광경이 그려져 있었다.
한시가 바쁜 마당에 단순히 벽화를 감상하려는 건 아니었다.
벽화가 실제 역사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창작의 산물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거기에 대해 고심하며 내용을 살펴볼 여유는 없었다.
그저 영혼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길 뿐.
‘성검부터 찾아야 해.’
며칠 후가 될지는 몰라도, 제국군은 반드시 이곳으로 되돌아온다. 자신에게 전멸당한 이들보다 더욱 막강한 전력으로.
그러니 그 전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곳을 떠나야 했다.
유적의 깊은 곳으로 향하는 로건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고대의 유적이 던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하에 파묻혀 있는 유적이 많고, 그 유적 안에 몬스터나 함정이 즐비하기 때문이었다.
역사학자들은 고대의 초월자들이나 대마도사들이, 자신의 허가를 받지 않는 이들이 그 영역에 발을 디디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설치해 둔 것이라고들 주장했다.
하지만 이 유적에는 어떤 몬스터도, 함정도 없었다.
‘몬스터가 없는 것은 그럴 만도 하지만…….’
태초의 어둠에서 태어나 세상의 마나를 먹고 살아간다는 몬스터는 이제 현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제 와 다수의 몬스터를 볼 수 있는 공간은 딱 두 군데뿐이었다.
먼 옛날 강림했던 대마왕이 남긴 마기를 마나 대신 먹는다는 마수들의 서식처, 대륙 북부를 뒤덮은 마역 마수림.
대이주 당시 이 종족들이 사라졌다는 대륙 남부의 금역, 끝없는 산맥의 바다라고도 불리는 남부 산맥.
더구나 이 유적은 부정한 것들을 물리치고 쫓아낸다는 신성력으로 가득하기까지 했으니, 몬스터가 보이지 않을 법도 했다.
하지만 함정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니?
‘이건 마치 누구라도 들어오라는 것 같은데.’
조심스레 내디디던 발걸음이 점차 빨라진 것은 그런 이유였다.
로건의 걸음이 다시 느려지기 시작한 건 통로 끝에서 넓은 광장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였다.
광장 끝에서 번뜩이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빛들이 시야를 어지럽힐수록 로건의 경각심은 높아져만 갔다. 여태까지 함정이 없었다 해도 끝까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혹시나 하는 함정을 찾기 위해 사방을 살피던 로건의 눈에, 다시금 벽화의 한 부분이 들어왔다.
통로의 끝부분에 그려진 벽화에는 붉고, 푸르고, 노란 드래곤 세 마리와 용인족 두 개체, 그리고 엘프, 드워프, 리자드맨, 오크의 모습이 하나씩 묘사되어 있었다.
그들 모두가 새하얀 원 모양의 후광을 두른 채 구름을 타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승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도 보였다.
그 벽화가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뭐지?’
로건은 순간적으로 함정을 찾는 것도 잊고 벽화에 몰두했다. 무언가 알 것만 같은, 뇌리가 간질간질한 느낌에 벽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대의 역사 따위는 따로 배운 적도 없고, 그 뒤에 더 이상 이어지는 그림도 없는데 자꾸만 시선을 붙잡는다.
하지만 이내 이성이 되살아나며, 로건은 막연한 느낌을 떨쳐 내고 다시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다행히 그의 감각에 걸리는 함정은 없었고, 로건은 표정이 잔뜩 굳어진 채 조심스레 광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천장에 닿을 듯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보물 더미였다.
흔히들 유적이라 하면 고대의 절대자들이 무수한 재물이나 보물을 숨겨 놓은 공간을 떠올린다. 발굴된 유적 대다수가 실제로 그런 보물들을 품고 있었으니까.
역사학자들은 고대의 절대자들이 신에 준하는 권력과 힘을 행사하며, 자신의 거주지에 재화를 쌓아 놓은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고 지브릭 카셀의 유적이라 짐작되는 이 공간 역시 어마어마한 보물이 쌓여 있었다.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것인지 모를 금화로 이루어진 황금의 동산 위로, 온갖 보석으로 만들어진 장식품과 예술품, 무기들이 저마다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너머, 성검이 꽂혀 있는 제단으로 가는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꿈처럼 스쳐 지나간 기억 속에서 보았을 때는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었다.
그랬기에 로건은 속이 좀 쓰릴 수밖에 없었다.
왕국 1년 치 국가 예산은 사뿐히 넘어설 것 같은 재화들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다 두고 가야 한다니.’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재물의 가치는 두 번째 문제다. 일단은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원인부터 처리해야 했다.
로건은 사방을 찬찬히 둘러봤다. 그러나 제단 위의 성검을 제외하고는 이 보물 더미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검 비전이 이 안에 있다고?’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비전을 찾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제 얼마 안 가 수도 없이 부딪쳐야 할 제국의 초강자들이, 신검 비전을 보고 더 강해지거나 자신의 약점을 찾아내게 되는 상황은 막아야 했다.
성검 쪽을 힐끗 바라본 로건은 이내 한숨을 쉬며 정신을 집중했다. 높이만 해도 자신의 키의 몇 배만 되는 이 보물 더미를 하나하나 뒤지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우우웅.
심장의 포스코어가 전력을 다해 포스를 토해 내고, 6개의 공전하는 핵이 다시금 그 힘을 수십 배로 부풀렸다.
그리고 그 힘은 이내 로건의 의지에 따라 수십, 수백 가닥으로 이어진 포스의 그물이 되어 보물 더미 속으로 파고들었다.
로건은 눈을 감은 채, 손끝으로 이어진 포스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주목했다.
‘다른 것은 중요치 않아. 서책. 책 종류.’
오러유저 최상급을 앞두고 있는 경지, 초인 중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그만이 가능한 재주.
그물처럼 퍼진 포스가 로건의 요구와 비슷한 물건을 찾아 보물 더미 안을 누볐다.
하지만.
‘없어?’
마치 거대한 그물채로 훑듯 열댓 번을 왕복해도 서책 비슷한 것은 걸리지 않았다.
‘그럴 리가.’
이를 악문 로건이 정신을 좀 더 집중해서 힘을 세분화했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전신의 감각을 퍼트린 포스에 집중했다.
이내 더욱 가늘고 촘촘해진 포스의 거미줄이 이전보다 더욱 천천히, 하지만 세밀하게 보물 더미 사이를 헤집었다.
그러나.
몇 번을 반복해 봐도 비전으로 추측되는 건 느껴지지 않았다.
“허…….”
괜한 힘을 소비한 걸까.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 로건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여기에 없다면, 신검 비전은 대체 어디에서 얻은 거지?’
전생에 성검과 비전을 전해 주었던 루이스가 무언가를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만약 이곳에 있다면?’
그저 자신의 감각으로도 찾아내지 못한 것이라면?
신검 비전 같은 귀중한 비전을 입구에다 두었을 리는 없으니, 정말 있다면 여기에 숨겨 두었을 확률이 높다.
어쩌면 쉽게 찾을 수 없게 마법 처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일일이 찾아 볼 시간도,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갈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면.
‘……없애야지.’
내가 못 먹는 것을 제국이 먹게 둘 수는 없다.
로건은 그 각오 하나로 어쩌면 고대의 비밀을 밝혀 줄지도 모를 보물들을 깡그리 박살 내기로 결심했다.
바로 검을 꺼내 든 것도 잠시.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로건은 금화 몇 개와 정밀한 세공이 되어 있는 단검 하나, 장신구 하나를 챙겼다.
움직임에 무리가 없을 만큼 부피가 작으면서도, 이 유적이 존재했을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물건들이었다. 보물이기 이전에 고대의 유물이기도 한 역사 사료들을 모조리 박살 내려니, 인간의 후손으로서 마음이 찜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일말의 망설임마저 털어 버린 로건은 다시 검에 힘을 불어넣었다.
– 신검 비전 6식, 근원 가르기 응용. 만상붕괴(萬象崩壞).
검 끝에서 쏘아진 황금색 빛의 덩어리가 보물 더미에 닿는 순간.
광장 전체에 황금빛 파장이 번지고.
우르르르릉.
번쩍.
그그그그그극.
이내 쨍하는 소리가 울릴 것만 같은 빛의 폭발과 함께 보물 더미가 가루가 되어 내려앉았다.
스아아아.
한순간에 보물 동산은 사라지고, 광장 바닥엔 금빛 가루만이 모래사장처럼 쌓여 있었다.
그 찬란한 황금빛을 보며 로건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재물이 아까워서는 아니었다.
온전할 때보다야 못하겠지만, 가루가 된 상태에서도 추산할 수 없는 재정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은 가져갈 수 없는 것.
그런 재물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의 마음이 무거워진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는데…….’
유적 내부로 들어올 때의 하늘 가르기로 소모된 기력. 그리고 포스 탐사로 인해 소모된 집중력 때문에 만상붕괴의 범위를 조절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런데도 광장의 벽이나 바닥이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천공참처럼 공간 자체를 갈라 내는 공격이 아니라면 흠집도 못 낸다? 이게 대체…….’
힐끗 바라본 제단 쪽에는 거꾸로 꽂힌 성검이 여전히 신령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