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성검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존재감은 이후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어 이 비밀을 파헤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일단 기력을 회복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로건은 적의 보급품에서 챙겨 놓았던 보존식을 입에 한 움큼 털어 넣고는 조용히 명상을 통해 포스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저 성검의 가장 큰 능력 중 하나가 사용자에게 마르지 않은 체력을 선사한다는 것이었지만, 검을 뽑아서 힘을 회복한다는 선택은 왠지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기력이 절반 이상 회복된 것을 확인한 로건은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성검 앞에 섰다.
우웅.
그가 일정 범위 내에 들어서자 반갑다는 듯 더한 성력을 뿜어내는 검.
‘전생에는 신성력을 보지도 못했지만.’
그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무거웠다. 전생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과 함께했던 전우를 의심하는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
‘이 모든 것이 기우이기를.’
그렇게 희망하며 로건은 천천히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번쩍.
검이 뿜어내는 기운이 일순간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그리고 이내 처음 듣는 목소리가 뇌리에 울려 퍼졌다.
실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로건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그 삶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생생한 기억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사물을 또렷이 인식하고, 불과 100일이 되기 전에 공용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던 천재 아기.
평온한 시대였다면 뛰어난 학자나 마법사로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을 그 아이는 괴물이 들끓는 난세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쫓기며 살아야 했다.
괴물의 공격을, 타 종족의 텃세나 박해를, 혹은 사냥을 피해 인간들 대다수가 유랑 민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
그나마 부족원 수가 천 명이 넘어가는 대부족에서 태어난 것이 다행이었지만, 그 부족 역시 유랑을 거듭해야 하는 운명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만 반년이 멀다 하고 거주지가 바뀌는 위태로운 시기에도 아이의 천재성은 유감없이 빛을 발휘했다.
오크족과 리자드맨들에게 쫓길 때는 그들의 전투술을 훔쳐 배우고, 엘프족의 숲을 지나칠 때는 그들의 궁술과 바람과 물의 정령술을 훔쳐 배웠다. 드워프들의 도시에서 잠시 거래를 위해 머무는 짧은 순간에도 그들의 기술을 배우고, 불과 땅의 정령술을 익혔다.
– 이 아이는 우리 부족의 미래다.
부족의 모두가 아이를 그렇게 인정했을 때.
하늘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니, 그 아이는 인간족의 미래가 될 것이다.
그토록 보기 힘들다는 용인족의 현자가 부족이 머무는 마을에 내려온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자는 그때부터 아이에게 ‘마법’을 가르쳤다.
그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아이는 마치 마법을 익히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현자의 가르침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그 결과, 불과 스물의 나이에 7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하는 초인이 되었다. 그것도 무려 인간족의 서클 마법이 아닌, 그 난해하다는 용인족의 클래스 마법으로.
‘7클래스가 초인? 아니 그 전에, 클래스 마법이 용인족 거였어?’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른 상식에 예전엔 알지 못했던 지식이 더해졌다.
잠깐 당황하는 순간 기억 속 ‘아이’에게 몰입해 있던 정신이 깨어났지만, 계속 이어지는 장대한 대서사시에 로건은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당연하게 부족의 장이 되었고, 그로부터 채 십 년이 지나지 않아 대륙 동부를 아우르는 인간족의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아이는 무려 8클래스의 경지를 개척하고 대마도사의 칭호로 불리고 있었다.
불과 서른 남짓한 나이에.
인간족은 물론이고, 모든 종족을 통틀어도 역대 대마도사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에 경지에 오른 것이다.
그렇게 초월자라 불리게 된 그는 세상의 경외를 받았다.
‘8클래스가 대마도사? 기준이 대체?’
다시금 놀란 로건이 퍼뜩 정신을 차리려는데, 그에 응답하듯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이 경지에 오른 뒤,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존재인 줄 알았다. 그것은 사실에 근접했지만, 결코 사실이 될 수는 없었다.
다시 10년이 흘렀을 때, 그는 인간족 최강의 대마도사라 불렸다.
그렇다. ‘인간족’ 최강.
그는 결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었다. 세상에는 9클래스를 개척한 이들도 존재했으니까.
수십 개체에 불과한 용들의 과반수.
용인족의 ‘대’현자들과 다른 이종족의 수장들.
수명의 한계를 넘어 영세토록 세상 위에 군림하는 반신(半神, Demi-god)들.
안타깝게도 그의 마법은 그 반신들의 경지에는 닿지 못했다.
– 실로 안타깝구나. 네가 인간족만 아니었어도 어쩌면 9클래스, 신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 텐데.
종족의 한계다.
그에게 마법을 가르친 스승, 용인족의 현자는 그리 말하며 진실로 그것을 안타까워했다.
믿을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자신의 경지를 따라잡은 제자지만, 현자는 아이가 종족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할 거라 판단했다.
아이, 아니 이제는 아이라 부를 수 없는 중년의 대마도사는 그에 반발했다.
자신은 할 수 있다고.
한계 따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신의 재능을 폄하하는 스승의 태도에, 천재는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냈다.
스승의 가르침으로 닿을 수 없는 길이라면 다른 길을 찾겠다.
천재는 그 오기로 모든 영광을 뒤로한 채 칩거를 택했다.
그렇게 그가 모습을 감춘 지 수십 년 후, 세상엔 다시 없을 재앙이 일어났다.
태초부터 존재해 온 고룡(古龍, Ancient Dragon), 가장 신에 가깝다는 반신들 중 하나가 신이 되는 과정인 ‘승천’에 도전하던 중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쳐 버린 것이다.
힘을 간직한 채 미쳐 버린 고룡은 세상에 재앙을 가져왔다.
곧 세상의 절대자들이 모이고 고룡의 토벌을 결의했지만, 그때는 이미 대륙의 삼 분의 일이 불타 버린 뒤였다.
그리고 절대자가 없는 인간족은 그 논의엔 참여하지도 못한 채 마룡의 힘을 소모시키기 위한 선발대, 아니 제물로 선택되었다.
그 사건이, 정확히는 마룡의 불길에 타 버릴 제물의 신세가 된 후손의 호소가 칩거하던 천재를 세상에 불러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재의 성취는 여전히 8클래스의 마스터에 머물러 있었다. 반신의 경지에 닿지 못한 인간족의 희망은 반신들의 의견을 꺾지 못했다.
천재의 참전은 그저 순식간에 타오를 마른 장작에 물 한 바가지가 끼얹어진 수준이었다. 세상이 그 재앙을 극복하건 말건, 인간족의 파멸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천재는 그 미래를 거부했다.
수십 년의 칩거와 연구에도 깨어지지 않던 한계가, 마룡과의 전투를 통해 깨어진 것이다.
천재는 마룡과의 전투에서 영감을 얻어 경지를 넘어섰고, 마침내 인간족 최초의 반신, 신인(神人)으로서 절대자들의 회의에 끼어들었다.
비록 그를 제외한 인간족 대마도사가 전부 사망하고, 종족 전체의 전사들 9할이 사망한 뒤긴 했지만.
종족 전체의 입장에선 너무 늦은 일이었지만, 다행히 완전한 파멸은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인간족의 권리를, 생존권을 주장했고, 타종족의 절대자들은 내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진실로 ‘전(全)종족 연합’이 성립되었다.
물론 연합이 결성되고 나서도 마룡이 토벌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미쳐 버린 마룡은 반쯤 얻은 신의 권능으로 다른 차원의 것들을 무분별하게 소환했고, 전종족 연합이 간신히 마룡을 토벌했을 땐 이미 마룡이 소환한 것들이 세상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킨 뒤였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대륙 남부의 바다가 사라지고 끝도 없는 산맥이 생겨난 것이었다.
단순한 산맥이 아니었다. 타 차원과 완전히 연결되어 버린 세외의 마경. 나를 비롯한 절대자들조차 그 마경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 혼자는 어쩔 수 없었다.
마룡의 토벌을 주도했던 10명의 절대자에게 변화가 생겼다. 마룡과의 전투가 인간족의 천재에게만 도약의 기회를 선물해 준 건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절대자들은 긴 전쟁의 세월 동안 마룡의 흔적을 연구하고, 또 배우면서 한계를 넘어설 길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그 지식을 공유하지 않았다.
어느새 목소리에서는 짙은 분노가 느껴졌다.
용족의 나머지 고룡 셋과 용인족의 대현자 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긴 세월 동안 다른 종족을 지배해 온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리자드맨과 오크족의 절대자.
그들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승천을, 신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때, 세상에 없던 ‘아홉’의 신이 생겨났다.
‘뭐!?’
절대자의 인생과 그 장엄하고 신화적인 전쟁에 몰입되어 있던 로건의 정신이 다시 한번 깨어났다.
‘9대신이 그럼?’
그 생각에 응답하듯 절대자의 한탄이 이어졌다.
실로 무책임한 자들이었다.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세상을 버린 것들이 신을 자처하다니. 홀로 남은 나로서는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홀로 남은 절대자, 그 천재는 인외의 마경을 결코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그 마경의 범람을, 세계의 침식을 막기 위해 대륙의 마나를 밀어내 남부에 보이지 않는 방벽을 세웠다.
점차 세월이 흐르면 마나에 친숙한 종족일수록 대륙에서 살기가 버거워지겠지만, 우선은 침식을 막아 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천재도 생각지 못한 막대한 변수를 만들어 냈다.
첫 번째 변수는 다른 종족들의 쇠퇴였다.
우선 용족이 오히려 마경의 깊숙한 곳을 향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마나를 먹고 마시며 육체를 키운 생명이었고, 그래서 시시각각 줄어드는 마나의 농도에 더는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마룡과의 전쟁에서 승천한 세 고룡을 제외하면 반신의 경지에 달한 용들이 모두 죽어 버린 까닭에, 그 사달을 일으킨 인간족의 절대자에게 저항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용들은 세상에 전설로만 남게 되었을 시기, 두 번째 변수가 나타났다.
다른 종족이 쇠퇴해 가는 시기, 놀랍게도 소수의 인간들이 마나를 대신하는 생명의 힘을 깨워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한 힘이지만, 나는 그 힘이 인간족을 지탱해 주길 바라며 ‘힘(Force)’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포스?”
너무 놀란 나머지 로건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했지만, 목소리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긍정적인 변수였다.
절대자가 존재함에도 여전히 대륙의 최약체였던 인간족에게 나타난 긍정적 변수.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변수는 절대자 자신에게 일어났다.
용족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가 결국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미 인간의 생리를 벗어나 마나와 함께 숨을 쉬고, 마나에서 에너지를 얻던 나로서도 점차 대륙에서의 생활이 힘겨워졌다. 그렇다고 내가 살고자 이미 고정된 마법을 해제하는 것은 본말전도.
그는 이제야 막 자립을 시작한, 기나긴 유랑 생활을 마침내 끝내려는 인간족을 두고 마경 너머로 갈 수 없었다.
그 막막한 상황에서, 천재는 또 다른 문제를 맞닥뜨렸다.
9대신의 신앙이라니, 그 빌어먹을 것들이 대체 언제 인간족에게 손을 뻗쳤던가.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족 사이에서, 마룡과의 전쟁을 끝내고 승천한 절대자들을 모시는 신앙이 생겨난 것이다.
실제로 아홉 신들이 그 믿는 자에게 힘을 나누어 주니, 팍팍한 대륙에서 마나나 포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그야말로 꿀물 같은 은총이었다.
분노한 천재는 처음에는 그 사제라는 것들을 모조리 도살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에게서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신성력, 그 힘은 희한했다. 마치 마나를 한층 더 가공한 듯한 힘. 그리고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된 신들이 현세에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근본. 그것이 내 영감을 자극했다.
신이 된 자들과 같은 전선에서 싸웠던 그는 본능적으로 그 에너지를 스스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차원을 초월하지 않고, 현세에 남은 현인신(現人神)이.
잊었던 욕망에 다시 휩싸인 천재는 신성력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제라 칭하는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막강한 권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에 대한 호칭이 바뀌었다.
인간의 왕에서 마도성자(魔道聖子)로.
거기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 마도성자께선 9대신의 대리인이시다.
– 인간족의 초월자이신 그분의 뜻을 따라 9대신을 믿어야 한다.
– 그분이야말로 신들의 뜻을 대행하는 첫 번째 종…….
그의 속을 뒤집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세상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엄연한 신인이 초월자로 격하되고, 심지어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간 동지들의 종이라 칭한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