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천 년 전, 대이주 당시의 기록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 현생 인류의 역사다. 하물며 그보다 천 년은 앞선 시대의 역사는 그야말로 알려진 바가 전혀 없을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고대에서부터 설화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 말을 잘 듣지 않는 어린아이들은 붉은 눈의 악마가 잡아간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부모가 겁을 주기 위해 하는 말로 대륙 동부 끝에도, 서부 끝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역사학자들의 대다수가 그것은 세상에 만연한 몬스터의 위협을 설명하는 말이라 하였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달리 생각했다.
– 고대엔 대륙 전체에서 어린아이를 잡아들였던 괴물, 아니 지배자가 존재했었다. 붉은 눈을 가진 지배자가.
붉은 눈이 유전으로 내려오는 맥라인 가문에선 하지 않았던 이야기였고, 그래서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충격도 컸었다.
그 이야기가 왜 지금 떠올랐을까.
“신위에 오르기 위한 제물이 인간이었습니까? 그것도 어린아이들?”
무심코 꺼낸 질문에 선조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침묵으로 충분했다.
“하…….”
– 인간 중에서 대신격에 오른 이가 나오는 것은 곧 모든 인류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었다.
“신이 아니라 악마겠죠.”
– ……아무리 내 후손이라도 그런 모욕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걸 모욕으로 받아들이시는 걸 보니 더 이상 할 얘기는 없겠군요.”
인간족을 수호했던 대영웅은 이제 없었다.
그 껍질, 아니 영혼에 남은 것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무고한 자의 목숨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 이기주의의 화신뿐.
가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일에는 분명 힘이 필요하지만, 그 욕망을 위해 그들 모두를 희생시킬지도 모르는 악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것도 내가 아닌 다른 자가 되어서는 말이야.’
로건은 그대로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윽!?”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 무려 2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기다렸다. 이제야 생긴 ‘육신’을 내가 포기할 것 같으냐!
어느새 다시 선명해진 지브릭 카셀의 영혼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안에는 더 이상 달콤한 유혹도 없었다.
뿌드득.
온 힘을 끌어 올려 간신히 고개를 돌린 로건이 그런 선조의 영혼을 노려보았다.
“인간을 구원한 영웅이 지나치게 타락하셨군요. 부끄럽지 않습니까!?”
– 마나가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르거나, 그에 준하는 육체를 가진 후손이 나타날 확률. 그리고 그 후손이 내 유산을 손에 넣을 확률. 그게 얼마나 될지 짐작이나 가느냐!?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절대 포기할 수 없어!
부끄럽지 않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말.
– 신성의 손실을 감내하겠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빼앗는 수밖에!
그 고함과 함께 영혼이 새하얀 빛으로 변해 사라지고, 로건이 서 있던 공간이 그의 전신으로 쏟아지듯 무너져 내렸다.
– 내놔라! 내 육체를!
그 온통 흰빛으로 가득한 시야 속에서 유일하게 형태가 보이는 것은 번뜩이는 붉은 눈뿐.
그것은 더 이상 인간 비슷한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그그극.
“어림……없다!!”
우우웅.
심장에서 연달아 증폭된 포스가 온몸을 조여 오는 거대한 힘에 맞서 저항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반항해 보아도 세상 자체가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력은 그리 쉽게 극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로건이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는 사이.
부서진 공간의 새하얀 파편들이 그의 몸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너무나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안 돼!’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이어졌다.
– 이, 이게 무슨!?
어째서인지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새하얀 기운, 선조의 영혼이 비명을 질러 댔다.
정신을 집중하자 심상 안에서 황금빛 포스가 몸에 파고든 하얀 기운을 분쇄하는 것이 보였다. 카셀 마탑의 추종자들에게서 나타났던 상극의 반응이, 다행히 그 원류에도 반응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뜻밖의 상황은 그 대단했던 고대의 영웅께서도 예상치 못한 것인 듯했다.
– 이, 이건?
확연하게 당황하는 기색.
몰라?
역시 신검 비전은 이 선조와 관계가 없…….
– 어떻게 네놈이 근원의 힘을!?
……무슨 말이지?
– 그런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아느냐!
의미를 알 수 없는 선조의 음성과 함께 더욱 거세게 몰려든 흰색의 기운이 다시 그의 포스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상성상 밀리는 힘을 물량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로건에겐 안타깝게도, 그것은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유적에서 소모한 절반의 힘이 새삼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까득.
결심이 서는 순간, 특성 ‘업(up)’이 발동되며 순식간에 두 배 이상 증폭된 로건의 포스가 다시금 파고드는 새하얀 기운을 중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했다.
– 어림없다!
뇌리를 울리는 악에 받친 목소리와 함께 막대한 기운이 쏟아져 나오며 다시 로건의 포스를 조금씩 압박하기 시작했다.
특성까지 발동했는데도 서서히 밀리는 상황.
‘젠장…….’
절박한 마음에 로건이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무는데, 문득 엉뚱한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나는 반드시 해낸다. 두고 봐라! 나를 멸시한 너희들을 내 발아래 둘 것이다!
하늘을 보며 소리를 치는 남자의 모습.
결단코 자신의 기억이 아닌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로건은 남자가 당시 느꼈던 모멸감과 자괴감, 분노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로건은 분노했다.
‘내 것이 아냐!’
지브릭 카셀의 인생을 곁에서 관조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그에게 매몰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 위기감을 키웠다.
하지만 그 위기감과는 상관없이 동화 작용은 계속되었다.
– 하늘 아래 가장 위대한 분을 뵙습니다.
하늘 아래.
그 단어 자체가 거슬렸다.
– 신성 제국의 유일하신 절대자. 9대신의 대리인을 뵙습니다.
대리인.
나는 그딴 게 아니다.
남자의 가슴에 자리한 분노가 로건의 영혼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 아악!
– 사, 살려 주세요. 으아앙.
– 어, 엄마아아!
거대한 마법진 위, 죽어 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그 제단의 위에서 그 참상을 내려다보는 오연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로건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까득.
‘내가 아니야!!’
일순간 돌아온 자아.
그리고 하마터면 매몰될 뻔했던 지브릭 카셀의 기억 속에서, 로건은 가능성의 한 조각을 찾아냈다.
마법이라는 다른 길에서 정점에 올랐던 자.
– 가능성을 간직한 어린 생명들, 그 생명의 힘은…….
그런 그가 승천을 위해 준비한 지식 중 아주 작은 조각 하나가 로건의 디딤돌이 되었다.
격의 상승까지 남아 있던 낮은 벽을 뛰어넘기엔 충분한 디딤돌이.
우우우웅.
번뜩이는 영감 아래, 심장의 포스코어가 또 하나의 핵을 토해 냈다. 그와 동시에 부족하던 힘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로건의 신체를 잠식하기 위해 넓게 퍼져 있던 새하얀 기운이 일순간 급박하게 뇌리로 몰려들었지만.
‘늦었다.’
번쩍.
일순간에 증폭된 힘이 지브릭 카셀의 기운을 모조리 몰아냈다.
– 아, 안 돼!
“돼!”
처음으로 입 밖으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로건은 자신이 몸의 통제권을 확실히 되찾았음을 깨달았다.
우우웅.
더하여 심장에서 진동하는 7개의 코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존재 자체가 격상한 무상의 기쁨을 오롯이 감상하고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눈앞에, 깨어져 가는 새하얀 공간 속에서 지브릭 카셀의 영혼이 다시금 흐릿하게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으니까.
– 이, 이럴 수가. 어찌 이런…….
그 허망한 표정이 가증스럽게 느껴졌지만.
“너무 추해지셨습니다, 선조님. 순리에 따라 이만 떠나시지요.
그가 멸망할 뻔한 인간족을 구원한 영웅인 것은 틀림없는바.
로건은 마지막까지 예의를 지키고자 했다.
그것이 선조의 영혼을 자극했을까.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지브릭 카셀의 눈에 이지의 빛이 돌아왔다.
그가 로건을 보며 불쑥 물었다.
–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음?”
– 어찌 포스가 변할 수 있었던 것이냐?
“당신이 모르는 비전도 있는 것이지요. 당신이 무시했던 포스의 힘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검 비전을 알면서도 인식하지 못한 것.
지브릭 카셀의 실수를 로건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가 존재하던 고대에 포스를 쓰기 시작한 인간의 기사들은 그리 큰 힘이 없었다는 것을 그의 기억 속에서 보았으니까.
하지만.
– 웃기지 마라! 비전이고 자시고 본질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로건은 진심으로 어리둥절할 뿐이었지만.
– 당사자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 생명의 힘이 변했는데!
흐릿해져 가는 영혼의 붉은 눈에 이글거리는 열기는 더욱 진해져만 갔다.
– 너는 원래 대지 계열 정령의 적성을 가진 노란 빛의 포스를 사용했다. 이런 황금빛 포스가 아니었단 말이다! 본질이 변했단 뜻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하?
‘신검 비전이 아니라, 포스의 색?’
예상치도 못한 엉뚱한 설명에 로건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회귀하며 자신의 포스가 이전보다 조금 반짝인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변화가 그리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포스의 색이 그 위력과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오랜 세월을 거쳐 증명된바.
빅토르를 통해 ‘재능’의 반영이라는 카셀 마탑의 이론을 전해 들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자신이 카셀 마탑의 마법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신검 비전 덕분이며, 빅토르나 로니안이 영향을 받은 것은 그 경지가 자신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라고.
그런데 지금 선조의 영혼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의 힘에 저항한 것이, 포스 자체의 힘이라는 겁니까? 신검 비전 때문이 아니라?”
처음으로 신검 비전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음에도 선조의 영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무시했다.
– 비전? 흥! 하찮은 포스의 기술 따위는 논외다! 본질의 문제란 말이다! 어찌 일반적인 포스가 신성에 저항할 수 있단……. 하!? 너? 정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
신검 비전이 하찮다는 말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당사자는 진지한 듯 그의 영혼을 대면한 이래 가장 진실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로건의 가슴에 근본적인 의구심이 생겨났다.
그러나.
– 대체 어떤 놈들이 내 작품에 손을…….
지금은 이 자를 처리하는 것이 먼저지.
자신을 보며 작품 운운하며 분노하는 모습에 로건의 마음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우웅.
“가시는 길, 이 후손이 살펴 드리겠습니다.”
경지가 상승함에 따라 특성을 썼던 부작용도 완화된 상황.
로건의 의지에 따라 황금빛 오러가 새하얀 공간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오러유저 최상급, 공간에 대한 이해가 완벽해졌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하는 파괴. 그에 지브릭 카셀의 영혼이 급속도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 난 절대 이대로 포기하지 않…….
“이만 꺼지십시오, 조상님.”
와장창.
로건의 말을 끝으로 사방이 터져 나가는 느낌과 함께 새하얀 공간이 사라졌다.
이내 로건의 눈앞에는 다시금 회색의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삭!
제단 위에 거꾸로 꽂혀 있던 검.
성검, 바니타스(Vanitas)의 폼멜에서 빛나던 구슬이 작은 소음과 함께 깨어져 나갔다.
동시에 성검이 전신으로 뿜어내던 신령한 기운이 급속도로 사라지는 것이 로건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바니타스(Vanitas)……. 하, 이런 뜻이었군.”
고대어로, 거짓, 허영 등을 뜻하는 단어.
성검에 붙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이름의 뜻을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젠…….”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신검 비전에 대한 의문, 그리고 지브릭 카셀이 말한 본질이 변했다는 것.
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 앞으로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무거움에 비하면 가벼운 문제일 뿐이다. 어쨌거나 그 의문을 해결한다고 해서 제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카셀 마탑. 그자들은 혹시나 알고 있을까.’
물론 그 찜찜한 마음을 당장 내려놓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현실에 집중해야지.”
다행히 생각보다 수월하게 최상급의 경지에 발을 디뎠다. 스승님을 제외하고도 그 검혼, 트리스 혼스비를 상대할 자신이 생긴 것이다.
뿌듯한 성취감과는 별도로, 제국을 막기 위한 힘이 차근차근 쌓여 가는 듯한 그 느낌이 든든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생각해야 할 것은.
“저 검을 어쩐다?”
신성력이 사라진 성검.
그것을 보는 로건의 눈빛이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