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실패?”
잔잔하게 퍼지는 목소리에 담긴 것은 차가운 분노였다.
그것을 느낀 기록관 클럼벨은 고개를 조아리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방해자가 있었습니다. 은빛 오러를 사용하는 초인이 나타나 동부 1군단의 만인장 야셀 프리즈먼과 기사 100명을 몰살시키고, 동왕부에서 보낸 마법사까지 죽였습니다.”
그 말에 클리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고 최악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동왕부의 자작극일 가능성은?”
애초에 동익왕 제라드가 자신의 계승전 점수를 올려 주겠다며 제안한 일이었다. 한데 그곳에서 오히려 피해를 봤다면, 제일 먼저 그곳을 의심해 봐야 했다.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죽은 마법사가, 마도사인 모양입니다.”
“……뭐?”
제국에 존재하는 초인은 공식적으로 32명, 아니 최근 한 명이 죽었으니 31명이었다.
물론 클리드는 황실 감찰부나 중앙 군단에 숨겨진 초인이 족히 10명은 더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결코 초인의 가치를 폄하하지는 못했다.
국지전에서는 판세를 바꿀 전술 병기, 국가전에서는 한 번에 적의 심부를 찌를 수 있는 전략 병기에 해당하는 것이 초인이었다. 그 가치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라, 대륙에 존재하는 소국 중에는 초인이 1명도 없는 국가도 다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동왕부에 따로 초인이 있었다고?”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목격자들의 증언을 분석해 본 결과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동익왕도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내게 장담했던 일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내 사람인 1군단장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는데!”
“1군단장 그리트 님께는 죄송하지만, 사실 저희로서는 완전한 실패도 아닙니다.”
“유적은 발굴되었으니까?”
“예. 그 방해자는 한 명으로 추측되는바, 유적 안에서 많은 것을 가져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져갔겠지.”
“예. 당연히 놈을 찾아야겠습니다만, 유적 그 자체로도 어떤 보물 못지않은 가치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보물도 존재하지 않는 유적이?”
“……동익왕 전하의 말씀대로 고대, 그것도 천 년도 훨씬 넘는 초고대 시기의 유적으로 판단됩니다. 아무래도 초월자의 유적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게다가 폐하께서 유적 자체와 그곳에 그려진 벽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계신다고 합니다.”
“……뭐?”
“고대의 기원, 특히 천 년 전 대이주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황실 마탑의 평가가 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거기에 유적 자체에도 강력한 마법이 깃들어 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관심을 보이신다……?”
“예. 그러니 동익왕 전하와 그리트 님께는 안됐지만, 저희로선 나쁠 게 없는 결과입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확실히…….”
아레스 제국은, 아니 그 전신인 아레스 왕국은 천 년 전 대이주 당시의 유물들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다.
황제가 관심을 보일 만도 했다.
그리고 황제가 관심을 보이는 일은 곧 제국의 이익과 관련되는 것이니, 계승전의 점수에 반영이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클리드의 분노는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있었다.
“성국에서 죽은 막스 일레이아 군단장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예. 이미 특수 감찰부를 움직이신 것 같긴 합니다만, 공개적으로는 성국에 보상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끝내실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액수는…….”
“바로스에 대한 평가는?”
“감점이 조금 더 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고작 그것뿐인가.”
클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보상금은 예상대로 막대했지만, 성국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황제가 고작 그 정도로 군단장의 죽음을 묻는다. 확실히 바로스가 성국에서 뭔가 중요한 걸 하나 본데…….’
톡. 톡.
팔걸이를 두드리는 클리드의 손가락이 조금씩 느려지더니 이내 그의 입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바로스가 무엇을 위해 움직였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나?”
“……아무래도 2황자 측만을 주목한 게 실수였나 싶습니다.”
“음?”
“처음엔 2황자가 무엇을 한 게 아닌가 예상했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2황자가 아니라 성국의 뜻에 따라 그런 결정이 난 것 같습니다.”
“성국의 뜻?”
“새롭게 바뀐 교단 수뇌부에서 저희 제국과의 연계를 위해 손을 내밀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바로스 황자를 지목한 듯합니다.”
새로운 정보였지만 그것만으로 찜찜함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그로 인해 바로스가 득을 본 것은 사실이다. 그 반면에 나는 황궁에 발이 묶였고.”
클리드의 입가가 불쾌하게 꿈틀거렸다.
“아직도 그 이유는 모르고?”
“폐하께서는 알고 계시겠지만…….”
“알려 주지 않으시겠지. 그런 분이시니까.”
“……예.”
클리드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배다른 동생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부터 속을 알 수 없던 녀석.
그리고 작년까지는 황위 계승전에서 자신을 앞섰던 녀석.
최근 연달아 둔 악수에 스스로 점수를 깎아 먹었음에도 귀신같이 다시 자리를 찾은 녀석.
그러고 보면 그 극단적인 변화의 시작은…….
“놈이 실종되었을 때, 난장을 부린 것이 검은 뱀이라고 했던가?”
“예. 황실의 주적으로 선포된 마법사 집단인 검은 뱀, 그들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클리드가 이내 무릎을 탁 쳤다.
“이런!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지?”
“예?”
“바로스가 돌아온 뒤, 그리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자리를 유지했다. 아니, 오히려 성국행이라는 무언가 중요한 임무까지 받았어.”
“확실히 이상하기는 합니다만, 지금 그걸 왜……?”
기록관인 클럼벨은 황실의 기밀에 대해 접근할 권한이 없다. 그러니 카셀 마탑과 황실에 얽힌 비사를 알지 못해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 하는 것이다.
하지만 클리드는 달랐다.
검은 뱀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박살 내는 것이 황실의 관례.
그런데 놈들에게 잡혀 갔다가 돌아온 황자가 자격을 유지한다?
그것부터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최악의 경우는 부황께서 그놈들의 수법에 걸렸다는 것이겠지만.’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놈들이 바로스를 통해 무언가를 제시한 것이다. 황제께서 놈들을 용인할 만한 가치의 무언가를.”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성은 그 하나뿐이었다.
항복.
제국의 주적 중 하나가 황실에 다시 굴복했다.
그 정도의 공적이라면 바로스의 실책도 눈감아 줄 법했다.
“검증에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 복귀 선언에 시간이 걸린 것도 이해가 돼. 그렇게 공과 과를 상쇄한다면, 지난번 실책을 용서받은 것도 말이 된다.”
“예?”
클럼벨의 의아한 목소리에도 클리드는 생각을 정리하기 바빴다.
아직은 추론일 뿐이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 추론이 곧 확실해질 듯했다.
그것은 결코 그에게 좋지 않았다. 지금이야 공과 과가 상쇄되어 원점이 되었다 한들 그의 경쟁자에게 그에겐 없는 막강한 패가 생긴 것이니까.
‘황족들의 움직임을 제한한 것은 황제께서 놈들이 정말 굴복한 것인지 확인해 보기 위한 것일 수 있어.’
클리드의 추론은 마침내 진실에 거의 근접했다. 그리고 그 추론은, 그에게 조급함을 심어 주었다.
경쟁자에게 뜻밖의 세력이 생겼다.
그것도 한때 제국 황실을 궁지로 몰았던 아주 강력한 세력이.
거기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중요한 임무까지 맡고 있다.
‘지금 조금 앞서고 있다고 안심할 수는 없어. 아니, 지금 상황 자체가 위험해.’
그렇게 이어진 생각의 꼬리는 끝내 평소엔 고려하지도 않았던 과감한 수에 다다랐다.
“……그 녀석은 하지 못한 것을 하는 수밖에 없나.”
“예?”
“이를테면 맥라인 왕국에 대한 공작이지. ‘그날’이 오기 전에 맥라인을 내부에서 붕괴시키거나, 그에 준하는 타격을 입히는 것 같은.”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제 와서 맥라인이라니요?”
“뭐든 해야 해. 이대로 있다간 자네나 나나 끝장이 날 수도 있어. 아니, 확실해.”
“……예!?”
그 말에 클럼벨의 안색 역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은, 아니 좋은 상황에 대한 보고가 어찌 이런 결론으로 이어졌단 말인가.
하지만 그가 겪어 온 클리드 황자는 근거 없는 소리에 이리 확신을 담아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가 있는 것이겠지.’
클럼벨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황자가 목표를 말했다면, 자신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 이건 가능성이 한없이 0에 수렴하는 일이었다.
“바로스 황자가 무수히 공들였다가 무산된 일입니다. 더구나 그때의 그란디아와 지금의 맥라인은 전력도, 상황도 너무 다릅니다.”
“그렇겠지.”
“……황위 계승자가 결정되기까지 고작 1년도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분열에 가까운 타격을 입힐 방법은 무력을 동원한 전쟁 외에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더구나 ‘그날’ 이전에 무력 분쟁은…….”
“그래. 폐하께서 금지하셨지.”
“예. 제국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상대해야 할 적은 동부의 왕국들뿐만이 아니니까요.”
클럼벨의 말은 정론이었다.
하지만 클리드는 턱밑까지 차오른 이 위기감을, 조급함을 좀처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부에서의 분열은 어렵다?”
“바로스 황자가 정확히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한 지금의 맥라인은 완벽한 중앙 집권제에 국왕이 모든 병권까지 틀어쥐고 있습니다. 분열이 가능한 체제가 아닙니다.”
“전쟁밖에 없다……라.”
“최소 동부의 8군단을 전부 동원해야 큰 피해 없이 점령 가능할 것이라는 참모부의 예측 결과도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예.”
그러니 포기하십시오.
클럼벨의 말에 담긴 뜻은 확고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는 게…….”
하지만 그 말은 필사적으로 미래의 활로를 찾는 클리드에게는 또 다르게 들렸다.
“그 말은, 그 왕만 어떻게 하면 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흡!
그 말에 망연한 표정이 된 클럼벨은 이글거리는 검은 눈동자를 보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1황자는 지금 너무 조급해하고 있었다.
“바로스 황자의 제안으로 귀신까지 동원했음에도 실패했던 일입니다. 지금 저희가 그 이상의 전력을 동원하려면 황제 폐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겠군.”
“그렇습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한탄하는 황자를 보며 클럼벨은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초조한 듯 이리저리 서성이는 황자는 좀처럼 포기가 되지 않는 듯했다.
“놈이 실패했던 무언가를 해내는 게 가장 효과적이야. 내가 바로스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할……. 뭐가 있을까.”
클럼벨이 굳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 전하, 급보입니다!
문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소식을 전해 들은 클리드의 눈빛에 이채가 떠올랐다.
“리버티 왕국의 가일 슬레이어? 이름 한번 독특하군. 확실한가?”
“예. 다른 건 몰라도 오러의 색깔은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은빛의 오러는 희귀하지요. 황궁에 있는 제롬 디카이드 경이 아니라면 그 소국의 초인, 그자뿐입니다.”
“……어이가 없군. 대륙 동쪽 끝 소국의 초인이 제국의 유적을 털었다? 그건 또 어찌 알고?”
“거기까지는…….”
기사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데, 클럼벨이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전하. 생각해 보니, 바로스 황자의 실패가 꼭 맥라인 왕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음?”
“소왕국 연합, 그 일 역시 2황자의 실패작이지요. 그것도 맥라인과 동부 소왕국들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어 준 최악의 실패.”
“그럼……!”
“예. 그렇다고 그런 소국에 황제 폐하께서 직접 손을 대시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건 충분히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내내 굳어 있던 클럼벨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이내 클리드의 얼굴에도 그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