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콰콰콰콰.
머리, 심장, 낭심, 그리고 사지.
신체의 일곱 군데를 동시에 노리는 듯한 맹격, 볼텍스.
그리트 아인츠하인에게 살육의 기사, 악마의 창 등의 이명을 만들어 준 그의 성명절기였다. 하나라도 막지 못하면 그대로 죽거나, 어찌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연달아 이어지는 공격에 시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한다는 악명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것을 막아 내는 로건의 수는 간단했다.
우르르릉.
그가 휘두르는 성검에서 기둥처럼 거대한 거인의 검이 솟구쳐 올랐다.
찬란하게 빛나는 은빛 기둥엔 ‘노란빛’이 섞여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볼 유일한 오러유저는 그 기둥을 막아 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꽈아아아아앙!
거인의 검과 7개의 오러스피어가 충돌하며 석실을 뒤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큭!”
“흡!”
양측이 서로 반대편으로 튕겨 나가고, 직전까지 로건을 향해 덤벼들던 1군단의 기사들이 충격파에 균형을 잃고 나뒹굴었다.
쓰러진 기사들의 얼굴에서 광기 어린 표정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윽!?”
“내, 내가 왜?”
당황하던 기사들의 시선이 이내 한곳으로 모였다.
아군이라 생각했던 마법사들에게로.
하지만 그들은 어느새 마법을 쏟아 내던 것도 멈춘 채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기사들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순간, 그들이 모인 자리에서 음산하게 빛나는 회색 마력이 솟구쳐 올랐다.
그 광경이 이미 한 번 농락당한 기사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판세를 바꾼 충돌의 당사자들은 그런 마도사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먼저 자세를 바로잡은 것은 이번에도 그리트였다.
“제법이구나!”
분노로 공격을 쏟아내던 그리트의 얼굴에 의외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다시 달려들었다.
반면에 가일, 로건은 잠시간 풀었던 봉인을 다시 갈무리하느라 한 박자 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쯧.’
웬만하면 연기가 탄로 날 가능성을 키우고 싶지 않았지만, 그리트 아인츠하인은 경지가 격하된 상태로 상대할 만한 적이 아니었다.
상급에서도 그 너머를 바라보는 강자. 자신도 그에 걸맞은 공격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거 너무 월척이 걸려도 문제군.’
로건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금 검을 들려는 순간.
“파워 워드(Power Word)! 복종하라!”
조금 전부터 살짝 뒤로 빠져 있던 마도사들 사이에서 사방의 공간을 떨쳐 울리는 기괴한 고함이 들려왔다.
흘깃 시선을 돌리자 늘어선 마도사들의 발아래, 회색의 오망성이 그려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랄 만큼 막대한 양의 마력이 치솟아 오르는 것 또한.
그 놀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치솟은 마력이 한 줄기 거대한 회색 번개로 변해 로건에게로 꽂혀 들었다.
번쩍.
달려들던 그리트가 인상을 굳히며 방어 자세를 취했을 정도로 섬찟한 마력. 그 마력이 로건을 엄습하자 곧 그의 뇌리에 쩌렁쩌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 복종하라!!
찌이이잉.
일순간 귀가 흔들리고 균형 감각을 잃을 정도로 엄청난 소음 공해.
마치 강력한 음파 마법으로 공격당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멈추시오, 그리트 백작! 놈은 우리가 제압했소!”
다시금 공격 자세를 잡으려던 그리트에게 마도사들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그리트의 몸이 재차 멈칫하는데, 로건은 그 빈틈을 고스란히 보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 혹시…….’
자신의 내부에서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막대한 회색 마력은 그의 머릿속에 접근하려다 그대로 포스에 갈려 나가고 있었다.
지브릭 카셀이 말한 근원의 힘이 무슨 뜻인지는 아직도 몰랐지만, 훨씬 부족한 힘으로도 쉽게 마력을 갈아 버리는 것을 보니 자신의 힘이 저들의 상극이라는 것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로건은 그 마력을 완전히 분쇄하는 것을 멈추고 일단 추이를 지켜보는 것을 택했다.
“무슨 말이지, 가레스?”
그리트는 가일을 경계하면서도 그가 전혀 움직이지 않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마도사들을 노려보았다.
마도사가 둘도 아니라 다섯이다.
즉 그중 셋은 그의 감각조차 속일 정도라는 뜻이니, 지금 그들을 적대해 봤자 남는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리트는 농락당한 부하들과 그의 자존심 때문에 차마 그들에게 굽히고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감정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가레스는 미소를 띤 채 답했다.
“지금 저자는 우리의 말에 저항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리트의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였다.
살아남은 기사들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증거를 보여 드리죠.”
가레스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자, 늙은 마도사 하나가 음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살벌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 왼팔을 잘라라.
그러자 가일이 바로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촤아악.
“헛!?”
가일은 서슴없이 검을 휘둘렀고 곧 그의 왼팔에서 선명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마도사의 명령대로 팔이 완전히 잘려 나간 것은 아니었다. 거죽에 그어진 자상에서 만들어진 핏물이 그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을 뿐.
“……끄으으.”
눈이 붉게 충혈된 가일이 왼손으로 오른손을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괴한 광경에 그리트를 비롯한 기사들이 인상을 찌푸릴 때, 마도사들은 놀라면서도 오히려 조금은 감탄하고 있었다.
검에서 불타오르는 은빛의 오러가 그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 그만. 차후 명령까지 대기하라!
재차 묘한 울림을 담은 목소리가 이어지자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던 가일이 이내 똑바로 서서 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쿵.
석실 바닥에 꽂힌 검을 잡고 한쪽 무릎을 꿇은 모습.
붉어진 얼굴에 핏줄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 누가 봐도 그 행동이 본의가 아님을 알 수 있었지만, 그의 육체는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역시 성검의 저항력이…….”
“대단하군요. 혈옥을 다섯 개나 소모한 대마법을 이렇게까지 버텨 내다니.”
“역시…… 오기를 잘했습니다.”
마도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반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이 기괴한 자들이 목표를 완전히 제압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리트는 이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자신과도 호각을 겨루었던 기사가 한순간에 꼭두각시가 되다니.
적에게 가진 유감을 넘어서서 이따위 마법은 용납할 수 없다는 불쾌감이 강하게 치솟았다.
그리고 그 불쾌감을 숨기기 위해 그리트의 발이 자연스레 가일을 향해 움직였다.
“그럼 마지막은 내가 장식하지.”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방해가 있었다.
“참아 주시오, 백작. 이미 제압된 적은 도구로 쓰는 게 더 좋지 않겠소?”
앞을 가로막는 목소리에 그리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자를 살려 두는 게 의미가 있나?”
“유적의 보물을 찾아야 하지 않겠소. 설마 저 검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텐데요?”
그 말에 그리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게다가 초인의 전력은 제국에도 소중할 텐데?”
“리버티의 초인을 제국으로 데려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지?”
가레스가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다 방법이 있소이다. 그리고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투자한 자원이 적지 않아 저자를 살려서 데려가야 그나마 본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본전?
‘초인의 경지에 이른 기사가 뭔지 모를 자원과 동격이라.’
그리트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나 가레스는 그런 그를 조금도 개의치 않고 더욱 불쾌한 말을 뱉어 냈다.
“알고 계실 텐데? 우리의 존재는 황제도 용인했다는 걸.”
“건방지게!”
그리트의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살기가 실렸다.
그의 주군이자 세상의 주인이신 분을 칭하며 그냥 황제?
무력의 우열을 따지지 않는 제국 기사의 충정이 자연스레 몸을 움직이자 가레스의 목에 창이 겨누어졌다.
“아아, 말실수요. 황제 폐하, 폐하의 허락을 받았다는 뜻이요.”
끌끌.
그를 보며 기묘하게 혀를 차는 가레스의 표정에 사과하는 기색은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트는 한발 물러서는 길을 택했다.
“……앞으로 말을 조심하라, 마법사.”
찜찜한 마음에 이름조차 부르기가 싫어졌다.
“하하. 물론입니다.”
하지만 가레스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것이 꼴 보기가 싫어 그리트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일단 목표는 완수했으니.’
황제의 위엄을 손상시킨 적은 완전히 제압되었다.
기사들을 조종하고 기괴한 술수를 쓴 마도사들이지만 일단은 아군이니 당장 적대할 필요는 없었다.
‘무력이 모자라서 물러서는 것이 아니다.’
그리트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무릎 꿇은 적에게 다가갔다.
“어쨌건 저 검이 유적의 보물이란 말이지?”
“그렇소. 아마 그 보물 때문에 놈이 경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을 것이오.”
가레스의 말에 그리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몇 수 나눠 본 느낌에 따르면 이자의 무력은 결코 아티팩트에 의존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 오러유저 상급에 해당하는 무력은 고대의 유물이라는 6클래스의 아티팩트로도 흉내 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폐하께 진상할 만한 보물이 되겠군.’
그 생각이 불편한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 그가 무릎 꿇은 적 앞에 선 순간.
“인비저블 홀드(Invisible hold).”
“테러블 블라인드(Terroble blind).”
“마인드 브레이커(Mind breaker).”
– 캬아아!
음산한 목소리의 합창과 함께 그의 몸이 굳어지고, 이내 시야가 새까맣게 변하며 온갖 망령이 달려드는 환상이 보였다.
‘익!’
갑작스러운 변고.
하지만 그리트의 강력한 정신과 포스는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마력들을 본능적으로 끊어 냈다.
혹시나 제압된 적이 움직일까 염려한 마음에 포스를 끌어 올리고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단 몇 초, 잠시 주춤한 시간이 그에게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푸우우우욱.
“커, 커흑!”
무릎을 꿇고 있던 적의 대검이 그의 가슴을 관통한 것이다.
“군단장님!”
“각하!”
– 동작 그만.
휘하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려 했지만, 이내 이어지는 늙은 마도사의 목소리에 모두가 인형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기억은 세탁하면 그만이지.”
“하찮은 기사들쯤이야…….”
“황제가 눈치채지 못하게…….”
“물론…….”
마법사들의 음산한 목소리가 생명이 꺼져 가는 그리트의 귓가에 흘러들었고, 그의 흐릿한 시야에 멍한 눈빛으로 굳어 가는 부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안 돼.’
용납할 수 없는 광경.
최악의 현실에 그리트의 눈이 부릅 뜨였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마도사들의 목을 치고 싶었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은 그의 몸은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끄, 끄으…….”
한스러운 마음, 원통한 생각이 신음으로밖에 나오질 않는데, 죽어 가는 그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가시오.”
꺼져 가는 의식의 끝자락을 붙잡고 마주한 눈빛.
제압되었다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또렷한 ‘적갈색’ 눈빛에 그리트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들의 최후가 눈에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병X들.’
털썩.
마창 그리트 아인츠하인이 차가운 석실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그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마도사는 없었다.
– 이리 오너라.
“수고했다. 가일……이었나.”
“전투 인형이 될 것에 이름은 무슨.”
“그래도 시조의 유물을 회수한 기념 아니오.”
“전투 인형도 식별 표시는 필요하고.”
그저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 것에 환호하는 이들만이 있을 뿐.
아직 완전히 정신이 제압된 것은 아닌 탓인지, 얼굴이 벌게진 채 통나무처럼 굳어 버린 몸으로 부르르 떠는 일부 기사들이 차라리 인간다워 보였다.
“이게 성검…….”
“근데 어째 반응이 약한데?”
“착각이겠지.”
– 성검을 내놓거라.
음산한 음성이 울리자 마도사들 앞으로 다가온 가일이 그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마도사들은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마력을 너무 강하게 심었나 보오.”
“그러게 말이오. 지능이 좀 떨어지나.”
“손잡이를 내밀라고 다시 명령하시죠.”
“잠깐. 조금…….”
.
번쩍.
촤아아아악.
가레스만이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고 멈칫하던 순간, 대검에서 솟구친 빛살이 허공에 커다란 반원을 그렸다.
마도사들의 목과 상반신을 그대로 가르는 핏빛의 원을.
“꺼, 꺼윽.”
“끄, 끄륵.”
“어,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쓰러지는 마도사들.
그런 그들의 눈에 입꼬리를 미미하게 끌어 올리는 가일의 얼굴이 보였다.
“하, 연기하기 힘들었다.”
그들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 하지만 이미 의식이 사라져 가는 마도사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사라질 차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가일은 이내 다시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
그러고는 대검으로 은빛의 폭풍을 쏟아 냈다.
콰콰콰콰콰.
고절한 마력으로 생의 끈을 붙잡고 있던 마도사들의 몸이 처참하게 으스러질 때까지.
그러고는 곧 광인처럼 소리를 질러 댔다.
“우어어어어어!”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 내던 그는 곧 석실 밖으로, 아니 성의 밖으로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이변이 연달아 이어진 연무장.
“이, 이게 대체…….”
“군단장님!!”
“젠장!”
“그 마법사들이 개수작을!”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제 막 마도사의 마법에서 풀려나기 시작한 1군단의 기사들 몇몇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