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제국의 사절이 리버티에 온 것은 애초에 비밀이었다.
하지만 수도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가일 슬레이어 대공의 성에서 터진 사고 소식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요란한 폭음과 비명, 성의 북쪽 너머로 괴성과 함께 사라져 버린 성의 주인.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너무 많았고, 하물며 칩거하던 전쟁 영웅의 성에서 벌어진 소란이었기에 리버티의 국민들로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내 이어진 왕실의 공식 발표는 가일 슬레이어의 무사 귀환을 바라던 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 가일 슬레이어 대공의 실종.
– 트리아와 로메인, 타히티의 잔당들이 벌인 테러.
– 왕실은 실종된 가일 대공을 찾고, 망국의 잔재들을 완벽히 청소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리버티가 시끌벅적해질 때, 리버티와 국경을 마주한 옆 나라의 왕성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의 소란이 일었다.
“마창이 죽고, 마도사……로 추정되는 이들이 다 죽었다. 그리고 1군단의 기사 여섯만 살아남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소이다.]크란 3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 국가의 주요 전력, 그것도 숨겨진 초인을 빌려 간 처지에 그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떳떳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통신을 들은 사람, 로건의 얼굴을 한 릭은 속으로 ‘으아아아! 역시 깽판은 우리 폐하지!’를 외치고 있었고, 통신구 뒤쪽의 사각지대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두 문관 역시 소리 없는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다막 릭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굳어진 안색을 크란 3세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가일 대공에 관한 일은 실로 유감입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우리 쪽에서도 제국에 따지기는 하겠소만, 실효성이 있을지는……]없겠지.
릭은 자신이 아무리 무식해도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웨인과 데미안 역시 그리 생각하는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릭은 마주 웃을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 내며 데미안이 들어 올린 종이 위에 적힌 글자를 자연스러운 어조로 읽었다.
“흐음,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해서야 어찌 일국의 군주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일로 제국의 속셈을 확인한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요.”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예? 뭘……?”
[가일 공의 마지막 모습은 광기가 어려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북부 마수림으로 뛰어드는 광경을 보았다는 목격담까지 있었지요.]“아…….”
아무리 초인이라도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대륙 2대 마역 중 한 곳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그냥 죽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가 다른 만큼, 그 말을 듣고 있는 청자의 감상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따 그 양반, 참 멀리도 가셨네.’
하지만 그 속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는 터라 릭은 그저 두 눈을 슬쩍 내리깔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일은 나라를 위해 평생 정체를 숨기고 산 열사였습니다. 그런 그의 희생이 어찌 괜찮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릭은 말을 하다 말고 복받쳐 오른 감정을 추스르는 듯 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그러고는 티 나지 않게, 하지만 아플 정도로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이내 눈이 충혈되며 눈물이 핑 돌자 다시 손을 내리고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는 우방의 혼란을 안정시키고, 제국의 속셈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력한 적이 될 것이 분명한 제국의 초인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는 충분히 제 몫을 했습니다. 9대신의 천국에 계신 조국의 영령들께서 그를 치하하실 것입니다.”
릭은 진심으로 가일을 애도하는 듯 부르르 떨며 눈물을 짜내기 위해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욱신거리는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릭은 마치 그 눈물을 숨기려는 듯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돌리고는 비장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이제 남은 것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겠지요. 그러니 부디 함께 기억해 주십시오. 가일 슬레이어, 그의 위대한 희생을.”
[……물론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송구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릭이 살짝 실눈을 뜨고 티 나지 않게 통신구를 바라보니, 표정이 한층 무거워진 크란 3세가 그보다 더 무거운 목소리로 사과의 말을 전해 왔다.
그 뒤편에선 드웨인과 데미안이 놀란 얼굴로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 진짜 배우로 나서도 되는 거 아냐?’
완벽한 무대를 펼쳐 낸 주인공은 스스로의 연기가 몹시도 흡족했다.
[제국에서 다시 도발해 온다면 우리 리버티 역시 참지 않겠습니다. 맥라인과 힘을 합쳐 대항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폐하!]그리고 그 연극의 유일한 관객은, 국왕 대 국왕의 사이에선 어울리지 않는 ‘폐하’라는 호칭을 쓰면서 릭의 연기가 실로 완벽했음을 증명해 주었다.
“그럼 저는 이만 신하들과 제국의 음모에 대처할 방안을 의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리버티도 맥라인과 함께하겠습니다. 언제라도 언질을 주십시오.]“물론입니다.”
열정적인 대사를 마지막으로 통신을 끝낸 릭이 자신만만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러나 그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대한 대답은 떨떠름한 표정과 함께 돌아왔다.
“다 좋았는데 마지막이 좀…….”
데미안의 말에 릭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네?”
“제국이 또다시 리버티를 건드리면 도와달라는 뜻 아니냐. 넌 알겠다고 한 거고.”
“……그게, 그런 말이 되나요?”
“그래. 표면상으로는 리버티와 제국의 다툼인데 굳이 맥라인도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한 거지.”
“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릭은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으…… 이런.”
릭이 머리를 잡고 한탄하자 데미안이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크란 3세도 너구리인 거야. 고개 한 번 숙이고 지원을 약속받은 거니까. 뭐, 전쟁이 벌어지면 먼저 제국을 상대하는 것은 어차피 우리일 테니까 나쁠 건 없어.”
“그래. 잘했다.”
드웨인 역시 칭찬에 합세하고 나서야 릭의 얼굴에 다시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런데 폐하께선 지금 어디에 계신답니까?”
“글쎄다. 가일을 실종시켜야 하니 마수림을 거쳐서 오겠다고는 하셨다만.”
“지금쯤 돌아오고 계시지 않을까?”
“리버티의 북부 쪽에서 들어가셨으면 마수림 동쪽 끝인데, 돌아서 나오신다고 하면……. 뭐, 몇 주 안에 돌아오시겠지.”
“그렇겠죠.”
걱정을 완전히 털어 낸 셋이 그렇게 웃음 짓고 있을 때.
그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을 내달리고 있었다.
* * * 밑동의 둘레가 20m는 될 법한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한 숲.
그 줄기만큼 거대한 나뭇잎들이 빼곡하게 우거져 하늘을 가리고 있었기에 숲속은 무척이나 캄캄했다.
물론 지금의 로건에겐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둠 속을 내달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선 연신 한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 잘 풀렸는데 말이야.’
지브릭 카셀의 영혼을 쫓아내고 성검의 핵이 깨어졌을 때, 로건은 껍질만 남은 성검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유적에 오기 전엔, 성검을 찾아낸 후 그것을 미끼로 카셀 마탑과 제국의 싸움을 유도하려 했다.
현재는 제국과 협력하고 있지만, 잠정적으로는 제국에게도 적인 애매한 위치의 적.
하지만 최근에는 성국의 교황까지 세뇌하여 움직이고 있다고 추정되는 위협적인 적.
일단은 그런 카셀 마탑과 제국의 동맹부터 무너트려야겠다는 생각에 떠올린 목표였다.
전생에서 바로스 황자의 뒤에 카셀 마탑이 있었다는 게 거의 확실시된 상황이고,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든 지브릭 카셀의 유산을 손에 넣으려 할 게 분명했다.
하여 가일 슬레이어라는 신분을 일부러 노출하여 제국의 이목을 리버티로 집중시킨 뒤, 루이사를 통해 성검을 미끼로 걸어 카셀 마탑을 움직일 계획이었다.
카셀 마탑의 마법에 상극인 자신이 성검의 힘까지 빌린다면, 전설의 대마도사나 오러마스터가 오지 않는 이상 절대 그들에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설령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다고 해도 검 하나쯤은 카셀 마탑에 넘겨줘도 상관이 없을 듯했다. 전생의 바로스야 어찌 되었건, 현생의 황제는 카셀 마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았으니 전생의 재앙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선조의 영혼이 등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성검의 핵이 박살 나 버렸다.
카셀 마탑이 성검의 힘을 못 알아볼 리는 없으니 애초의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가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뭐, 사실상 마검을 없앤 것이니 이걸로 됐어. 하하.’하고 그냥 돌아서기에는 좋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버리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조금 무리를 하기로 했다.
– 온전한 성검을 미끼로 걸 수 없다면, 껍질만 남은 것이라도 이용해 보자.
어떻게든 카셀 마탑을 제국과 충돌시키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무모한 계획이었지만, 선조의 기억이 그 무모한 도전을 실행할 용기를 심어 주었다.
지브릭 카셀의 그 망상이 카셀 마탑에 조금이라도 전해졌다면, 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절대 성검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직접 나서야만 했다.
다행히 가일로 신분을 위장할 때 썼던 은색 오러는 얼핏 보면 성검의 신성력처럼 보일 수 있었고, 성질의 변환을 일으켜 착각을 유도하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라면 그것이 자신의 손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로건은 가일 슬레이어로서의 역할극을 좀 더 이어 가기로 결심했다. 카셀 마탑과 제국은 유적에서 비롯된 이변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한동안은 같이 움직일 테니, 그렇게 동맹을 이어 가는 그들 사이에 분란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성검이 있는 곳이라면 카셀 마탑의 마도사들은 무조건 올 테니, 함께 올 제국의 사절을 죽이고 그것을 그들에게 덮어씌운다는 게 로건의 계획이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면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제국에서 미친 척 트리스 혼스비 같은 거물을 보내지 않는 이상 하수들을 농락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테니까.
더하여 자신에겐 통하지 않는 마법을 쓰는 카셀 마탑의 마도사들은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걱정은 그게 아니었지.’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제국이 협상을 통해 유물을 돌려받으려 할 경우였다.
그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질 것이었지만, 다행히 오만한 제국은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었다.
아니, 기대 이상이었다.
‘그냥 사절만 보낼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마창, 그리트 아인츠하인이라니.
어째서 동부 1군단장이라는 거물이 직접 움직인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월척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카셀 마탑의 마도사들이 대놓고 제국의 군단장을 죽이려 한 것도 의외였다.
아마도 뭔가 자신이 모르는 갈등이 있었으리라.
‘뭐, 그 덕에 연기는 훨씬 쉬웠지.’
처음 팔을 자르라는 헛소리를 들었을 때가 제일 위험한 순간이었다.
피부만 살짝 자해한 뒤, 연기가 통하지 않을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다행히 그 원인 모를 갈등 때문에 모든 것이 생각 이상으로 잘 풀렸다. 그가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연극이 완벽한 결말로 끝난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카셀 마탑과 제국 황실에선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것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뿌듯해졌다.
정말 다 좋았다.
그래.
거기까지는.
– 캬야아!
“이건 또……!”
촤아아악!
상념의 끝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살기.
로건이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주둥이의 주인이 황금빛 오러에 부딪쳐 양단되었다.
거칠게 튀어 오른 역한 핏줄기를 닦아 낼 틈은 없었다.
어둠 속에 번뜩이는 황금빛. 그것이 문제였을까.
– 캬오오오!
– 우우우!
– 캬르르르.
사방에서 기괴한 울음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에 로건이 참고 참았던 짜증을 폭발시켰다.
“아 젠장, 한참 잘 피해 다녔는데!”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버럭 내지른 고함.
그에 화답하듯 사방에서 울리는 괴성이 더욱 커졌다.
– 캬아아악!
– 크롸롸롸라!
– 그와아악!
동시에 로건의 주위를 뒤덮은 살기도 한층 진해졌다.
“아, 젠장! 빌어먹을!”
아무래도 이거 X 된 거 같다.
더러운 예감에 로건은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