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52)
352화 ‘마수림을 너무 우습게 봤어.’
방심 때문이었다.
미친 가일의 연기를 위해 한껏 괴성을 지르면서 마수림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이런 곤란에 처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마수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이제 오러유저 최상급 경지에 오른 자신이 곤란할 게 뭐가 있겠는가. 아무리 금역이라도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득한 옛날, 대륙 북부에서 가장 강성하던 왕국의 군대를 통째로 잡아먹은 마역이 마수림이라는 사실은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로건은 자신의 강력한 포스가 실린 포효에 잔뜩 긴장한 마수림의 괴수들이 갑자기 나타난 경쟁자(?)를 없애기 위해 우르르 몰려드는 광경을 마주해야만 했다.
로건이 막 십여 마리가 넘어가는 쌍두 원숭이들을 처단한 순간.
오러가 만들어 낸 번뜩이는 황금빛 사이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돌진해 오는 것이 보였다.
우르르릉.
거대한 나무들을 몇 그루나 쓰러트리며 돌진하자 마침내 어두운 숲속에 빛이 비치기 시작하며 놈의 살벌한 모습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일단 외형은 거대한 멧돼지였다.
다만 위협적으로 솟아 있는 송곳니가 거의 1m는 되는 듯했고,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날카로운 은회색 뿔이 돋아나 있었다. 더하여 전신에서 불길해 보이는 검은 기운이 일렁였다.
“꾸에에에에!”
두두두두.
거대 멧돼지가 지축을 울리며 돌진해 왔다.
분명 위협적인 모습이었지만 로건은 위기감이 아닌 짜증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이것들이 왜…….’
이게 대체 몇 시간째인가.
분명 마수들이 자기들끼리도 싸운다고 들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놈들은 오직 자신만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다.
“꾸에에에!”
“닥쳐!!”
짜증과 분노가 실린 황금빛 오러가 맹렬히 회전했다.
회전하던 오러가 점점 압축되더니, 이내 창처럼 일직선으로 쏘아지며 달려드는 멧돼지의 측면으로 비스듬히 휘어지며 파고들었다.
데빌 스피어, 그리트 아인츠하인이 보여 주었던 재주를 휩블레이드와 결합시킨 응용기였다.
돌진해 오던 멧돼지 마수가 집채만 한 머리를 민첩하게 틀어 방향을 바꾸려 했지만, 이미 가속이 붙은 로건은 그대로 도약해 놈의 목덜미를 깊게 베어 버렸다.
거대한 송곳니와 날카로운 뿔도, 질긴 가죽도, 그리고 그 튼튼함을 더해 주던 마기도.
오러라는 파괴의 권능 앞에서는 부질없이 무너져 내렸다.
“쿠에에엑!!!”
쿠우웅!
로건이 다시 땅 위로 내려섰을 때, 멧돼지 마수가 그야말로 귀청이 찢어질 듯한 괴성을 토해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푸화아악!
절반 이상 잘려 버린 목덜미에서 진득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자, 전부 와라! 아주 씨를 말려 주마!”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숨어서 피해 다니는 것을 완전히 포기해 버린 한 초인이 사방으로 살기를 흩뿌렸다.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던 걸까.
아니면 괴물 멧돼지가 무너트린 나무들 사이로 갑작스레 쏟아진 빛 때문일까.
몇 시간 동안 이어지던 습격이 거짓말처럼 멈추며 숲속이 잠잠해졌다.
“……흠?”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던 로건은 그제야 마수림에 관한 또 하나의 속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 마수들은 강한 위협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지만, 특정 영역 안에서 그 영역의 주인을 쓰러트리면 그 승리자에게 더 이상 덤비지 않는다.
몇 시간이나 이어진 전투는 아무리 초인이라도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바. 드디어 끊어진 습격의 연쇄에 로건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쩌저저적.
갑자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측면의 나무 하나가 갑작스레 그를 향해 쓰러졌다.
로건이 본능적으로 몸을 물렸지만 또 다른 나무가 쓰러지며 그의 위를 덮쳤다. 그것도 그냥 넘어지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윽!?’
로건은 쓰러지는, 아니 그를 노리고 다가오는 거대한 나무가 몽둥이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아챘다.
그가 알고 있는 몽둥이는 자신의 팔뚝만 한 물건이었지, 둘레가 수십 미터나 되는 거대한 나무가 아니었으니까.
꽈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릉.
거대한 몽둥이가 후려치고 지나간 자리가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그리고 로건은 그제야 이 변고를 만든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캬아아아아아아!!!
귓가를 강타한 소음에 일순간 균형 감각을 잃고 흔들리던 그의 눈에, 대체 어떻게 조용히 다가온 것인지 모를 거체가 보였다.
얼핏 사람의 형태로 보였지만, 20m는 될 듯한 체고.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꽉꽉 들어찬 흉악해 보이는 근육.
넝쿨인지 수풀인지 모를 잎사귀들로 마치 원시 부족의 사람처럼 급소를 가린 그 거인은 머리마저도 두 개가 달린 괴물이었다.
그 엄청난 모습을 본 로건은 곧 익숙한 이름을 떠올렸다.
현 대륙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고대의 몬스터들, 그중에서도 지상최강이라 불리던 괴물.
‘오우거? 그것도 머리가 두 개 달린?’
전설보다 과하게 덩치가 컸고, 머리도 두 개였지만 다른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로건이 일순간 비틀거리며 빈틈을 보였을 때 놈이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캬륵?”
“크롸롸.”
두 개의 머리가 서로 대화하는 듯 괴상한 소리를 뱉어 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허리를 숙이고는 로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른 한 손에 들린 웬만한 탑보다 큰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음?’
마치 땅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듯한 느낌.
로건이 꼼짝도 못 할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는 몸짓이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로건으로선 그 확신대로 움직여 줄 의무가 없었다.
쩌어억.
“!!?”
“롸?”
사람 하나를 충분히 감싸고도 남을 커다란 손. 인간과는 달리 4개 뿐인 손가락 중 가장 두툼한 손가락이 그대로 잘려 나가며, 그 사이로 뛰어오른 로건이 놈의 팔을 타고 질주했다.
“크롸롸롸롸!!”
“크롸아악!”
반 박자 늦게 고통을 느낀 괴물이 분노 섞인 괴성을 토해 냈지만, 그때는 이미 놈의 어깨까지 다다른 로건이 허공으로 도약해 황금빛 파괴의 권능을 휘두르고 있었다.
자신의 상반신만 한 두 쌍의 눈동자에 깃든 당황과 공포를 보며, 로건은 또 한 번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그 순간.
“롸!!”
한쪽 머리의 두 눈이 일순간 까맣게 물들더니, 괴상한 음성과 함께 사방으로 이상한 파동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파동은 괴물의 바로 눈앞에서 맹렬히 회전하던 오러를 그대로 멈춰 세웠다.
꽈아아아아앙!
“칫!”
졸지에 허공을 나는 새처럼 유영하게 된 몸.
아쉬움에 혀를 차던 로건의 눈에 거대한 몽둥이가 바닥을 쪼개 버릴 듯 내려꽂히는 광경이 보였다.
마나도,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거대한 질량과 부피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위협이었다.
‘젠장.’
가일로의 변장 때문에 그랑피아에 놓고 온 풍신의 부츠가 그리워지는 순간.
로건의 검이 허공에서 일직선으로 그어지며 그의 몸 주변을 감싸는 황금빛 원을 완성했다.
스슥.
이내 괴물의 몽둥이가 소음이랄 것도 없이 로건의 몸을 지나쳤다. 아니, 정확히는 로건의 몸이 있던 곳을 강타한 몽둥이의 일부가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마치 공간의 일부가 잘려 나간 것처럼.
그렇게 로건의 몸을 지나친 몽둥이가 지면을 강타하자.
꽈아아아앙!
우르르르릉.
또다시 지면을 울리는 충격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구멍이 뚫린 탓에 괴물의 괴력을 감당하지 못한 몽둥이가 산산이 부서지며 사방에 파편을 흩뿌렸다.
그 비산하는 파편 속에서, 로건은 옆에 있던 나무를 박차고 도약해 다시 괴물의 머리를 향해 뛰어올랐다.
“롸?”
“롹!?”
다시금 놀라고 당황하는 괴물의 눈빛이 보였지만, 짜증이 나는 것은 로건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일순간 포스가 삼 분의 일가량 증발하며 탈력감이 느껴졌다.
힘을 아끼기 위해 하늘 가르기는 최대한 쓰지 않으려 했는데, 그 덕분에 예상치 못한 반격을 허용했다. 심지어 놈을 끝장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공격을 무산시키기 위해 써 버린 것이다.
그러니 이번엔 놈을 확실히 끝장내야 했다.
“뒈져라!”
“롸!”
“크롸!”
다시금 예의 그 검은 파동이 로건을 덮쳐 왔지만, 공간 자체를 잘라 내는 천공참의 힘은 그 파동으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파지지직.
놀랍게도 그 검은 파동은 천공참의 힘을 잠깐이나마 버텨 냈고.
스각.
“끼에에엑!!”
결국 목표로 했던 두 개가 아닌, 하나의 머리만을 잘라낸 채 그 효용이 끝나고 말았다.
‘X발!’
물론 그것만으로도 치명상임은 분명했다.
어쩌면 전투 불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짧은 순간 로건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데, 그것이 막연한 불안감에 기인한 기대였음을 하나 남은 머리가 가르쳐 주었다.
“크롸롸롸롸롸—!!”
굉음처럼 터져 나온 고함, 아니 비명.
일순간 붉어진 괴물의 눈동자에 바닥을 구르는 자신의 또 다른 머리가 담기는 순간.
괴물의 전신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광폭화!?’
죽어 가던 몬스터가 순간적으로 몇 배의 힘을 발휘하는 현상.
그것은 현세에 남아 있는 몬스터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었기에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로건은 지상에 착지하는 순간, 그대로 옆 나무의 줄기를 밟고 뛰어올라 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굳이 지금 싸울 필요는 없어. 쓰러지기를 기다리면 돼.’
눈에 뵈는 게 없는 괴물을 굳이 정면에서 상대할 필요는 없다.
“크롸롸롸롸!”
그 예상이 적중한 듯 뒤에서 괴물이 발광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우지끈.
쾅!
우르르르릉.
무슨 난장을 피우는 건지, 질주하는 로건의 주위로 나무들이 두서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로건은 넘어지는 나무 위에서 다른 나무 위로 건너뛰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그 난동의 현장에서 벗어나 가장 높은 나무의 가지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우르르르릉.
“크롸롸—!”
괴물이 만들어 내는 파괴의 향연을 보며 로건이 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또다시 전신을 저릿하게 만드는 살기가 그를 엄습했다.
‘위!?’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그림자로 인해 어느새 어두워진 시야 사이로 빠르게 하강하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도마뱀의 몸통에서 길게 뻗어 나온 세 개의 머리. 몸통보다 세 배는 큰 날개. 가시가 잔뜩 돋힌 육중한 꼬리.
이성 따위는 한 줌도 없어 보이는 광포한 눈동자를 제외한다면 전설 속 최강의 생물이라는 용과 흡사해 보이는 생명체였다.
‘드레이크?’
오우거가 지상최강의 몬스터라면, 드레이크는 공중에서 최강인 몬스터다.
그러나 머리가 세 개나 달린 드레이크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로건이 미처 놀랄 새도 없이, 거대한 드레이크가 불을 내뿜었다.
화아아아아악!
세 개의 머리가 동시에 토해 내는, 반경 수십 미터를 감싸는 거대한 불길.
“이런 X발!!!!”
황금빛 오러로 몸을 감싼 로건이 그대로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휘이이익.
하지만 그런 그를 기다린 것은 공간을 가를 듯한 기세로 휘둘러지는 육중한 꼬리였다.
‘빌어먹을.’
정말 풍신의 부츠만 있었어도.
로건은 새삼 전용 아이템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다시금 천공참을 펼쳤다.
서걱.
“끼야아아아악!!”
거짓말처럼 잘려 나가는 드레이크의 꼬리.
비처럼 쏟아지는 마수의 피 사이로 로건이 추락하듯 지상으로 떨어졌다. 짧은 시간 내에 최고의 비전을 연달아 쏟아 낸 탓에 포스가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로건은 이를 악물며 휩블레이드를 최대한 길게 펼쳐 옆에 있는 나무 기둥을 붙잡으려 했다.
그런데.
우르르르릉.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로건이 감각을 끌어올리자 이내 시야가 밝아지며 붉은색이 가득 펼쳐졌다.
이곳저곳을 살피던 그의 눈에 양 끝이 갈라진 거대한 살덩이가 들어온 순간.
‘이런 X발! 진짜 X 같은!’
로건은 자신이 크기조차 짐작되지 않는 거대한 뱀의 주둥이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