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53)
353화 ‘빌어먹을!’
크기가 짐작도 되지 않는 괴물 뱀의 내장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로건은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 두었던 특성을 그 순간 발동시켰다.
심장의 포스 코어가 9번째 핵을 토해 내며 붉은 눈에서 황금빛이 쏟아졌다. 순간적으로 영혼의 격이 상승하는 느낌과 함께 지금 자신을 집어삼킨 괴물 뱀의 전체 구조와 주변 환경이 뇌리에 명백하게 들어왔다.
바닥났던 포스 또한 한계치를 뚫고 상승했다. 영혼이 한껏 고양되는 느낌과 함께 몸 안에서 거대한 힘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이제껏 수도 없이 써 왔던 특성임에도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변화였다.
하늘 가르기를 통해 깨달았고, 최상급의 경지에 오르며 확실히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공간에 간섭하는 권능’.
그 엄청난 힘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조차 베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차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오러마스터.’
바로 전설에나 나오는 그 경지에 잠시나마 발을 들였다는 뜻이었다.
꾸우욱.
우우웅.
손에 힘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진동하는 공간.
자신의 생명력에서 비롯된 포스의 힘이 주변의 모든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전능감을 만끽하며 영혼에 새겨 두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 크르르르.
꿀렁이는 붉은 벽, 아니 뱀의 입 안.
일단은 이 짜증 나는 공간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스각.
시작은 작은 소리였다.
가볍게 휘둘러진 로건의 검.
이내 그 궤적을 따라 거대한 살점이 갈라지며, 거짓말처럼 밖의 햇살이 비쳐 들었다.
– 캬오오오!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괴물의 비명.
로건은 그 비명을 무시하며 자신이 베어 낸 괴물의 피부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제 3분 정도.’
전신에 힘이 넘쳤지만 마음은 다급했다.
곧 탈진하게 될 몸을 누이고 쉴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마수가 가득한 이 금역에서.
긴장한 얼굴의 로건은 어느새 쓰러져 버린 괴물 뱀의 사체를 밟고 도약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질주했다.
오러마스터.
적은 힘으로도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그 전설의 경지가 보는 이 하나 없는 마역의 한가운데서 재현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늘을 질주하던 로건의 앞으로 갑자기 검붉은 빛의 기둥이 스쳐 지나갔다.
콰아아아아앙!
지이이잉.
반경 1m는 넘을 듯한 굵기에, 얼핏 봐도 살벌한 파괴력을 간직한 광선이 짜릿한 파동을 남기며 그의 질주를 막아섰다.
‘이런!?’
로건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트리곤 지상을 바라보는데, 그야말로 황당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체고만 20m를 넘을 듯한 거대한 덩치, 지상을 딛고 선 기둥 같은 네 개의 발. 크고 날카로운 4개의 발톱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이어진 빈틈없는 근육은 그 덩치에도 불구하고 날렵하게만 보였다.
어깨 위에는 세 개의 늑대 머리가 달려 있었는데, 각 머리에 눈이 두 쌍씩 번뜩였다.
거대한 삼두 늑대가 도합 12개의 눈으로 로건을 응시하길 잠시.
스스스스슥.
이내 그 위압적인 괴물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줄어들더니, 그 자리에 송아지만 한 은빛 늑대가 나타났다.
여전히 보통의 늑대보다는 커다랗지만, 좀 전의 괴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모습. 머리조차 하나가 된 ‘정상적인 늑대’는 한 쌍의 눈으로 허공의 로건을 응시하더니 크게 울부짖었다.
– 아우우우우우우우.
사위를 압도하는 괴성, 그런 박력이 담긴 포효는 아니었다.
하지만 확장된 로건의 감각에는 사방에서 부산을 떨며 움직이던 마수들이 일제히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든 과정이 경이롭기 그지없었지만, 지금은 그 광경에 마냥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로건에게는 왠지 모르게 다른 의미로 들렸으니까.
‘따라오라고?’
스스로의 생각에 헛웃음이 나오는데, 그를 한번 흘깃 본 늑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 채 어디론가 훌쩍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고고하고 오만한 태도가 이상하리만치 어울리는 늑대.
로건은 황당한 눈으로 놈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 늑대가 향한 곳으로 움직였다.
‘힘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고양감.
빠져나가는 포스.
특성, 업(up)의 유지시간이 끝나 가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이 불확실한 직감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상에 착지하는데, 한계까지 혹사당한 몸이 생각보다 빠르게 그 대가를 요구했다.
“윽!”
핑그르르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힘과 함께 영혼이 쪼그라드는 느낌에 로건은 괴로운 신음을 토해 냈다.
털썩 쓰러지는 몸,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로건은 자신을 응시하며 다가오는 붉은 눈동자들을 보았다.
‘아, 안 돼. 빌어먹을.’
이렇게 죽는다고? 내가?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로건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 아우우우우!
다시금 울려 퍼지는 늑대의 울음소리와 함께 다가오던 붉은 눈들이 일제히 소스라치듯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그날 로건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툭.
“으…….”
툭.
“음…….”
툭.
“……릭. 좀만 더…….”
아련한 기억 속 언젠가가 떠오르는 느낌.
로건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깨우는 시종을 밀어 내려 했다.
‘털?’
한데 손에 닿는 감촉이 조금 이상했다.
꼭 짐승의 발처럼 복슬복슬하다고 생각한 순간.
빠악!
“억!”
머리가 쪼개질 듯한 타격과 함께 로건은 ‘돌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아릿한 통증과 그 차가운 느낌에 퍼뜩 정신을 차린 로건이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휙.
“누구냐?!”
황급히 자세를 잡고 검을 뽑아 드는데, 그의 앞에 송아지만 한 은빛 늑대가 못마땅하다는 듯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늑대가 노려보고 있다는 것도 모자라 못마땅하다는 듯한 느낌이란 건 분명 신기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위화감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로건은 눈앞의 늑대가 기절하기 전 보았던 그 괴물의 전신이라는 것을 조금 늦게 떠올려 냈다.
그리고 그 후의 상황 역시.
“넌…….”
목숨을 구해 준 상대가 조금 거칠게 깨웠다고 따지고 드는 것은 로건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따로 늑대에게 말을 걸기도 우스운 일이었다.
“……끙.”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로건이 미간만 좁히고 있는데, 늑대가 별안간 ‘킁’ 하며 콧바람을 뱉더니 고개를 돌리며 일어섰다.
그러고는 차가운 석실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실?’
그제야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챈 로건은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회색빛 단단한 느낌의 석실.
다만 5m는 훌쩍 넘을 듯한 높은 천장은 완만한 구형으로 다듬어져 있었고, 바닥과 좌우 역시 울퉁불퉁한 표면 없이 깔끔한 공간이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 모습에 로건은 어리둥절했다.
‘마수림……이 아니었나?’
깔끔하게 만들어진 석실의 벽을 더듬어 보며 주변을 살피던 로건은 순간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짚고 있던 벽이 그저 평범한 돌이 아닌 듯했다.
쿵.
가볍게 주먹을 쥐고 두드려 보자 그 느낌은 더욱 확실해졌다.
이 비슷한 느낌의 돌, 아니 석실을 최근에 겪어 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유적……?”
지브릭 카셀의 유적을 구성하던 알 수 없는 재질의 벽.
신검 비전의 7식, 근원 가르기의 힘을 무탈하게 버텨내던 이상한 건물.
그 건물의 벽들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여기도 거기랑 비슷한 유적이라고?’
지브릭 카셀의 유적보다 확실히 작고, 별다른 무늬나 벽화도 없었다.
하지만 느낌이 너무 비슷했다.
우웅.
쿵!
“역시…….”
가볍게 오러로 충격을 가해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파괴의 권능이라 불리는 오러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벽.
이런 재질의 물건이 고대라고 흔할 리는 없었다.
새삼 불안한 마음이 들어 주변을 다시금 살피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컹!!”
석실의 안쪽, 꺾여 들어간 곳으로 모습을 감췄던 늑대가 다시 나타나 짖은 것이다.
짖는 소리도, 표정도 어딘가 신경질적인 느낌이었다.
다시금 늑대에게서 사람 같은 감정이 느껴져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늑대가 눈매를 더욱 가늘게 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앞발로 석실의 안쪽을 가리켰다.
“따라오라고?”
“컹!”
늑대가 로건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다시 한번 짖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밋밋한 회색 벽뿐인 공간.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구해 준 늑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라도 로건은 늑대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은 진리.
고대의 유적이 아닐까 생각했던 석실은 그저 안쪽에 조금 더 넓은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집으로 따지자면 아까 자신이 깨어났던 곳은 손님방, 지금 있는 곳은 안방이랄까.
그나마 다른 것이라면, 아무것도 없었던 전 석실과 달리 제단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책처럼 보이는 물건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다.
“컹!”
그 앞에서 또다시 짖는 늑대.
다가오라는 뜻 같았지만 표정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늑대의 감정이 읽히다니. 저 녀석이 이상한 거야, 아님 내가 이상해진 거야?’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녀석의 그 표정을 보니 새삼 일어날 때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던 통증이 다시 떠올랐다.
“……너 나한테 불만 있냐?”
알아들으리라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킁’ 하고 콧방귀 소리 같은 것을 내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니, 왜인지 알아들은 것도 같았다.
황당해서 녀석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컹!”
녀석이 답답하다는 듯 다시 짖으며 코로 연신 책자를 가리켰다.
읽어 보라는 뜻 같았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안 그래도 궁금한 게 한가득이긴 했던 터라 로건은 피식 헛웃음을 짓고는 제단으로 다가갔다.
제단 위에 놓인 책은 한눈에도 범상치 않았다.
알 수 없는 가죽으로 엮인 책자는 매우 두꺼웠고, 묶은 끈마저도 묘한 광택이 도는 것이 일반적인 실 같지는 않았다.
부옇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 내고 보니 표지에 적힌 것은 짤막한 단어 하나였다.
고대어 중에서도 예스러운 문체.
그가 익혔던 고대어보다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간 시절에 쓰이던 문체였다.
현대에서 말하는 고대어가 천 년 전 대이주 당시의 문자를 말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 책자는 만들어진 시대가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문체와 단어가 좀 어색할 뿐, 문자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네.’
더욱 다행인 것은 그가 이와 비슷한 시대의 고서를 이미 한 번 완벽하게 해독해 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신검 비전과 비슷한 문체야. 그러고 보니 필체도……? 아니, 설마. 우연이겠지.’
머릿속에 절로 복잡한 생각이 일었지만, 책을 펼친 순간부터 로건은 눈을 크게 뜬 채 그 내용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되는 책자의 내용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적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아이.
하지만 그 아이는 건강하던 아이도 하루아침에 병으로 죽기 십상인 영아기에도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온갖 병에 걸리면서도 기어코 회복하길 반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우연히 터득한 힘, 포스에 근원하고 있었다.
뛰어난 괴수 사냥꾼이었던 아버지의 경험을 따라 몸을 단련하고, 사냥하고, 괴물과 싸웠다.
무수한 위기 끝에 포스를 각성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냥꾼이 되었다.
당시의 사냥꾼은 괴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자.
그는 부족, 아니 이제 막 태동을 시작한 마을의 지킴이였다.
하지만 위기는 금방 찾아왔다.
아이, 아니 이제 전사가 된 청년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이종족들의 침입으로부터 몇 번이고 마을을 지켜 낸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마법의 힘을 보유한, 태생부터 인간보다 우월한 상위 종족들의 공격은 점차 강해졌다.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는 공격에 맞서 마을과 마을이 연합하고, 곧 거대한 도시가 생겨나 그들의 터전을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청년은 그 안에서 대전사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수호하는 명예로운 지위에까지 올랐다.
다만, 그럼에도 위기를 격파할 순 없었다.
고대에 자신의 가족과 종족을 지키려 했던 한 인간의 분투기.
거기까지는 ‘고작’ 그런 내용에 불과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문장에 로건의 눈이 부릅 뜨였다.
책자를 잡은 로건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전한다.
마법(魔法), 그리고 막 대두하기 시작한 성법(聖法)에 묻혀서 이상한 잡술 취급을 받던 포스(force). 그것이 나를 살렸다. 자연히 나는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그 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도성자의 실종이 50년을 넘어가자, 그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 이종족들이 인간족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막 정착과 발전을 시작한 인간족에게는 최악의 위기가 되었다.
역부족이었다. 몇 되지 않은 부족의 연합은 이종족의 분파 하나 조차 막아 내기 힘든 전력에 불과했다. 겨우겨우 드워프의 공격을 막아 내고 리자드맨을 물리쳤지만, 그다음 찾아온 오크 주술사와 고작 일백의 오크 전사에게 도시는 무너졌다.
그게 내 첫 번째 죽음이었다.
용족이 사라지고 용인족인 은둔한 시대, 모든 인간족을 규합한 마도성자의 등장으로 인간족은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엘프, 드워프, 리자드맨, 오크. 인간을 하위 종족으로 치부했던 그들조차 마도성자와 그 친위대만큼은 경외했으며, 그들에 대한 이종족의 공포는 마도성자가 실종된 이후에도 인간족의 성세를 유지하는 근원이 되었다.
괴물과 타 종족을 피해 유랑만을 거듭하던 인간족이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시대, 그 변혁의 시대에 나는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