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54)
354화원통하게 죽고 나서 눈을 떠 보니 다시금 어린 시절이었다. 꿈인 줄 알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 번째 삶은 목표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내 몸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부족을 지켜야 했다.
누구보다 절실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로건의 손이 절로 떨렸다.
다행이라면 내게는 경험이 있었다.
청년은 전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 시절부터 무력을 기르기 시작했다. 도시가 무너진 원인이 오크 주술사를 막을 강자가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했으니까.
한 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투박하기만 했던 포스의 발현과 발전 과정을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주변에 퍼트리기까지 했다.
어린 나이에 ‘웬만한 마법사를 능가하는’ 강자가 된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이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보통 인간들은, 아니 마법사들조차 좀처럼 포스를 깨우치지 못했다. 아무리 쉽게 가르쳐 줘도 그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태반이었다.
결국 기껏 효율적으로 체계를 갖춘 수련법은 그 자신에게만 적용할 수 있었다.
청년은 좌절했다.
결국 그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가 그에게 했던 것처럼 무식하게 목숨을 건 훈련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수가 많았기에 드물게나마 포스를 각성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잘 훈련된 그 전사들은 선천 마법을 사용하는 리자드맨이나 오크 전사들과도 충분히 겨룰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 사이 그는 홀로 참오를 거듭하며 한계를 깨고, 더욱더 성장했다. 그러다 오크 주술사뿐만 아니라 대주술사도 상대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수 년이 지났다.
청년은 마침내 이종족 부락의 산발적인 위협을 모조리 물리치고, 근방의 모든 인간족을 통합하는 대도시의 주인이 되었다.
근방에서 최고로 강성한 대도시, 인간족의 희망.
그가 세운 도시는 그런 이름을 얻었고, 청년 역시 ‘위대한 대전사’라는 과분한 칭호로 불렸다.
그러자 마도성자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인간족의 강자들이 청년을 주목했다.
대사제, 혹은 마도사 등의 이름으로 불렸던 타 세력의 강자들이 청년에게 연수를 제안했다.
청년은 거부하지 않았다.
이종족들의 텃세와 침탈, 그리고 괴물의 위협.
전, 현생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보아 온 동포들의 희생을 이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연합’이 탄생했다.
목표는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질 것 같았다.
연합은 중앙 대륙의 인간족들을 하나둘 편입해 가며 점차 커다란 세력을 이루었다.
뭉친 인간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괴물과 이종족의 도발은 줄어들어 갔다.
청년을 비롯한 연합의 수장들은 상황이 아주 심각해질 때까지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종족과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중, 인간족 내부에서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연합의 수장들, 청년과 마도사들이 본격적으로 사건을 파고들자 의외로 금세 그 원흉이 밝혀졌다.
“하…….”
책자의 내용에 집중하던 로건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여기서 또 이 이름이 나올 줄이야.
단순히 정상이 아닌 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적게 잡아도 만 단위의 인간을 제물로 바쳐 무언가 끔찍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친 자들과는 본래 말을 섞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청년의 예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연합의 수장들 내부에서 기습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 변수는 그리 큰 효과를 가져오지는 못한 듯했다.
그들의 수장이라 자처한 진실을 삼킨 뱀은 마나가 줄어드는 시대엔 더욱 드물어진 대마도사였고, 청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기괴한 마법에 대항할 수 없었다.
그 대목에서 로건은 또다시 섬뜩한 예감을 느꼈다.
청년이 정말 그렇게 끝을 맞이했다면 이 글은 대체 누가 쓴 것일까.
이어지는 글은 그 섬뜩한 예감을 바로 증명해 주었다.
“으음…….”
로건은 침음성을 흘리며 책자에서 잠시 시선을 거뒀다.
회귀한 이래, 막연하게만 생각해 왔던 어떤 불안감이 다시금 그의 뇌리를 잠식했다.
이 모든 게 환상이 아닐까.
내가 죽으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하는 모든 노력이 의미 없는 발악이 아닐까, 하는 원초적인 공포에서 비롯된 불안감.
누군지 모를 이가 남긴 책자는 로건의 그 불안감을 마치 글로 현실화시킨 듯했다.
‘카셀 마탑 놈들의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고.’
도무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가 가득했다.
로건은 잠시간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킨 뒤 다시 책자를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의 글이 이어졌다.
청년은 그 허무감과 상실감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했다.
자신은 왜 자꾸 회귀하는가.
이 이상한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가.
청년은 세상의 현자를 만나 가르침을 구했다.
회귀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알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의문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진실을 찾기 위한 그의 여행은 계속되었고, 그러던 끝에 남부 깊숙한 오지에서 은거 중이던 용인족의 현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마음을 깊숙이 파고드는 말을 전해 들었다.
청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엎드려 가르침을 청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용인족의 현자는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첫 번째 죽음.
도시가 무너질 때, 최후까지 항전했던 전사가 바로 그였다.
십만에 달하는 도시의 주민들이 그만을 바라보다 죽었다.
그런 그들의 염원.
두 번째 죽음.
지브릭 카셀의 후예들에게 제물로 바쳐진 자들.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억울함과 그 염원.
회귀로 인한 허무함에 시달리던 청년에게는 정신이 멍해지는 충격이었다.
“흡!?”
그 대목에서 로건은 전신에 소름이 돋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짊어진 염원, 한.
대번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산처럼 쌓인 시체들.
그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었다. 대다수가 그란디아의 유민들로 이루어진 시체의 산. 그것도 수천, 수만 정도가 아니라 백만 단위가 넘어가는 시체의 더미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제국을, 황제를 상대로 싸우고 있던 이는 자신이 유일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지브릭 카셀은 자신이 신성을 동원해서 나를 회귀시켰다고 말했는데…….’
그 말보다 이 기록에 더 믿음이 갔다.
아니, 믿고 싶었다.
‘황금빛 염원의 힘. 그래, 선조는 내 포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맞아.’
로건은 떨리는 손으로 계속해서 책자를 읽어 내려갔다.
현자의 말은 지쳐 있던 청년의 영혼을 깨웠다.
덧붙인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청년은 그것이 증명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아…….”
로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적은 반복되지 않아야 기적이 아닐까.
자신의 회귀가 결코 원인 모를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크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다만 그는 그 깨달음의 시기가 상당히 늦었다.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그가 용인족의 현자를 만났을 때는 이미 도시가 무너지고 난 뒤일 테니까.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청년에게 현자는 다시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미친 듯이 고향으로 질주했다. 모든 것을 걸고 지켜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며.
다행히도 그는 가까스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를 처음 회귀하게 했던 염원, 도시의 전투는 그때보다는 조금 늦춰진 시기에 그때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다만, 너무 황당한 변화도 있었다.
사람들을 실종시킨 이들, 아니 납치한 자들. 그들은 마도성자 지브릭 카셀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족의 세력을 모아 인간의 수호자인 지브릭 카셀을 다시 현세에 강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식한 나는 당연히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대마도사들 역시 어리둥절하던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자들이 정상이 아닌 듯했다.
광인들이라고만 생각했던 지브릭 카셀의 후예들은 예상외로 강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 외에 모든 연합의 수장들은 적군이 되어 있었다. 최선을 다해 분전했지만 결국 원통하게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어린 시절에서 눈을 떴다.
원한? 복수심? 그런 것보다 앞서는 것은 허무함이었다. 내 인생은 왜 반복되는가. 그리고 이리 삶이 계속 반복된다면 내가 지금 하는 모든 노력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식한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족을 떠나 떠돌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현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조롱한다며 화를 냈다. 어쩌다 찾아낸 대마도사 역시 어떤 마법으로도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단언할 뿐이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 그것이 자네를 과거로 돌려보낸 거야. 끝까지 싸웠던 마지막 전사를.
– 물론 두 번이나 겪은 이는 흔치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끌끌.
내 삶은 결코 허무하지 않았다.
– 아직은 괜찮다. 염원의 힘, 그 황금빛이 아직 네게 있다는 것은 그것을 바라 왔던 이들의 한 역시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내가 없는 자리에, 그놈들이 있었다. 검은 뱀, 지브릭 카셀의 후예들. 놈들이 나의 고향을 지키며 이종족과 싸우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나쁘고 마나는 느끼지도 못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 할 수 있는 마법은 배울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그런 내게 포스는, 재능 없는 자가 기를 수 있는 힘 그 자체였다.
그랬기에 역으로 보통 사람들 또한 나처럼 쉽게 포스를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전생에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했을 때, 모든 것을 완성했다 여겼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 다시 한번 인간의 제국을 세우자.
– 어떤 이종족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대륙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는 마나(Mana)의 힘, 그 영향도 컸을 것이다.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듯했고, 인간보다 마나에 민감한 이종족들 역시 그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직은 느리지만, 언젠가는 모든 이종족이 완전히 남부로 이주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너머로까지……. 그런 판단에 따라 연합은 근거지를 북으로 확장했다.
자연히 북부는 인간족의 세상이 되어 갔다. 그런데 그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연합의 세력권 안에서 실종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억울하게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사악한 뱀. 그 신화 속 존재를 상징으로 삼은 그들의 수장은 자신을 ‘진실을 삼킨 뱀’이라 칭했다. 그리고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 세상의 진실에 대해 아는 것은 오직 우리뿐이니.
–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
– 아직은 부족하다. 좀 더 많은 인간이 필요하다! 바쳐라!
처음에는 연합의 수장 중 일부가 배신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들 스스로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지브릭 카셀의 후예들. 그들은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고, 다른 차원의 괴물들을 불러냈다. 정말 다행이라면 왜인지 그들의 마법이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신? 웃기지 말라고 해. 창조주면 몰라도 그 후에 생긴 신들은 그저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또 다른 생명일 뿐이야. 뭐, 좀 강력하긴 하겠지. 하지만 시간에 간섭할 수는 없어. 그럼 아예 불가능하냐고? 아니, 가능하지.
– 그런 그들조차 필요로 하는 것이 신성, 달리 말하면 지성체들의 믿음이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 자아가 있는 지성체들의 한, 무고한 자들의 염원이 만든 기적이야. 억울한 이들의 혼이 모여 자네라는 희망을 빚어낸 것이지.
– 한데 자네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그리고 그런 내게 용인족의 현자가 다시 설명했다.
– 그들 역시 원한을 풀기를 바랐던 거야. 끝까지 싸운 자네를 믿어 본 게지.
– 뭐? 의미 없는 회귀? 어깨에 짊어진 엄청난 한을 보지 못해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 에잉, 이래서 인간족은…….
그는 나와 같은 이들이 고대에는 종종 있었노라고 말했다. 모든 종족이 하늘에 가까웠던 때, 한없이 신에 가까웠던 옛날에는 많지는 않아도 가끔 있었던 일이라고. 그리고 그런 이들을 ‘운명을 바꾸는 자’라고 불렀는데, 내 몸에 자리한 ‘황금빛 염원의 힘’이 그 증거라 말했다.
또한 그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와 같은 이가 더욱 드물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신화시대에서 멀어질수록 회귀에 필요한 힘, 그 억울한 염원의 규모가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하여 혹여나 또 나와 같은 자가 생겨나려면,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규모의 희생이 있어야 할 거라고 말했다.
그 순간 많은 것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와 함께 울고 웃던 가족들과 친구들. 나를 응원하던 부족민들. 그리고 점차 커져 가던 마을, 도시 속에서 웃던 사람들.
그 모두가 나였다. 그 모든 희망과 기대가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두 번의 죽음과 회귀만으로 그 모든 것이 허상이라 믿고 도망쳤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