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하여!!
지브릭 카셀의 후예들은 연신 그렇게 외쳐 대며 특유의 기괴한 마법으로 도시를 지켰다. 그것은 너무나도 소름 끼치고 역겨운 광경이었다. 단순히 그들이 전생에 저질렀던 죄악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크나 리자드맨처럼 원래 인간을 배척하던 종족들은 몰라도, 엘프와 드워프처럼 인간에게 우호적인 종족들까지도 인간을 적대하게 된 것은 그들이 숭앙하는 마도성자 지브릭 카셀의 박해 때문이었으니까.
박해?
로건은 이 대목에서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 선조는 제게 불리한 것은 하나도 보여 주지 않았군.’
승천한 각 종족의 로드, 즉 9대신에 대한 지브릭 카셀의 원한은 그 정당성부터 미심쩍었지만 후속 대처도 졸렬하기 그지없었다.
후손에게 제 인생의 여정을 보여 주면서도 그 사실은 빼놓은 것을 보면 아마 스스로도 부끄러웠던 것이 아닐까.
……제물 건도 그렇고.
‘9대신이 타 종족의 로드였다는 것은 아직도 믿기질 않지만…….’
지브릭 카셀의 본성이 본디 그러했다면, 다른 이들이 그에게 일부러 승천의 길을 알려 주지 않았을 법도 했다.
로건은 새삼 선조에 대한 혐오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무언가가 그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
“음?”
제단의 옆에서 지루한 듯 하품을 하던 늑대가 입을 꾹 다문 채 그를 앞발로 툭 친 것이다.
빨리 책을 읽으라고 재촉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화 속의 이야기를 연달아서 겪고, 읽고 있어서 그런지 이제는 저 사람처럼 느껴지는 늑대의 모습도 그러려니 하고 생각될 뿐이었다.
“알았다, 알았어.”
피식 웃은 로건은 그제야 자신이 내내 선 채로 책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아예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생각해 보면 신상 같은 것도 없는데 이 불룩 튀어나온 제단 역시 그저 책상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자세가 편해져서인지 문득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책자로 시선을 돌린 순간, 잡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
곧 이어진 내용에 로건은 다시 탄성을 내질렀다.
옆에 늑대가 다시 째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그누스(Magnus). 고대어로 커다랗다는 뜻을 가진 단어는 현재 왕국의 수도인 그랑의 옛 이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란디아의 건국왕과 당시의 대마도사들이 모여서 거대한 성벽과 마법진을 설치하기 전의 이름.
‘그랑의 옛 이름…….’
로건은 괜스레 책의 저자에 대한 호감이 커지는 것 같았다.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누군지 모를 저자에게 대답하는 것처럼, 로건은 그란디아의 건국 신화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천 년 전 대이주 당시까지만 해도 중부 대륙에는 제대로 된 인간의 국가가 설 수 없었다. 하여 대륙 동부에 인간의 초인들이 모여서 세운 그랑, 즉 그란디아는 정말 인간의 희망이 되었던 것이다.
당장 도시 방어전에서 그들의 도움을 받았던 시민들의 여론은 그들에게 우호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종국에는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청년조차 그들에 대한 반감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이 시점에서 도시를 구원한 조력자였지, 결코 지도자가 아니었으니까.
결국 그는 속내를 감춘 채 겉으로는 살가운 태도를 유지하며 남몰래 그들의 동향을 살폈다.
노력 끝에 청년은 마침내 전생과 비슷한 징조를 찾아냈다.
마그누스는 청년의 전생처럼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 세력을 주도하는 것은 그 전처럼 청년과 대마도사들이 아닌 지브릭 카셀의 후예들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실종자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은 끝도 없는 도시의 성장을 반기기에도 바빠 외부인들 몇몇의 실종에는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청년은 그들의 실종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결국 그는 인간을 제물로 스스로의 경지 상승을 꾀하던 놈들을 잡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청년의 예상과는 달랐다.
‘씁.’
가슴 한쪽이 찌릿한 느낌.
로건은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죄책감이 드는 것 같았다.
“음?”
이 대목에서 로건은 눈을 빛냈다.
대마법진의 개량으로 인해 카셀 마탑의 마법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긴 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추가적으로 설치할 요새나 그랑 같은 대도시에서만 효력이 있을 뿐.
놈들의 정신 마법에 당한 자를 바로 찾아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놈들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다음 대목을 읽는 순간 로건의 기대는 사라지고 말았다.
좋다 말았다.
바보가 된다는 사실은 분명 좋은 정보였지만, 그 세뇌 마법에 걸리게 되는 기간에 대한 표현이 너무 애매했다.
오랜 시간이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월 단위? 년 단위?
‘……년 단위라면 곤란한데.’
어찌 적용해야 좋을까.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적어도 단서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로건은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사람, 내 과네.’
왜인지 동질감을 느낀 로건이 흐뭇하게 웃었다.
자신 역시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치밀한 전략을 세우겠다고 다짐했었다.
쉬울 것 같았지만 막상 해 보니 어려웠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전생과 달라진 현재를 보고 있노라면 의도하지 않은 다른 것도 바뀌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만 늘어나곤 했다.
더욱 조급해질 뿐이라는 말이다.
‘물론 내 성격이나 머리의 문제도 있겠지만, ……아?’
가만, 그러고 보니 이 사람도 머리가 나쁘다고 했던가?
“씁.”
동질감의 이유를 파악하자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년의 힘, 포스는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마도성자가 실종 전에 했던 말.
– 마나의 힘보다는 못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익혀 단련할 만하다. 이를 포스(force)라 칭하고 평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권장하라.
그간 그 말은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포스를 폄하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었었다. 마나를 쓰지 못하는 패배자들이나 다루는 힘이라는 인식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런 기조가 지역에 남아 고대의 그란디아가 기사의 강국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로건이 그리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내 더욱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졌다.
청년과 카셀의 후예들은 이후에도 대륙 각지에서 수도 없이 부딪쳤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싸움에서 청년이 승리했다. 그들과의 싸움에서도, 그들이 조종했던 다른 몬스터나 인간, 혹은 이종족과의 싸움에서도.
책자에는 그 수많은 싸움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과정과 결과만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긴 했지만 그것만 해도 너무 긴 분량이었다.
다만 카셀 마탑의 수작과 그때 쓴 마법들은 이상하리만치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바,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았다.
“……엄청나군.”
물론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순간 질릴 정도였지만 로건으로선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그리고 그 긴 기록이 끝나고 나서야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다.
검신? 어디서 들어 본 말인데?
로건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심상치 않은 내용이 이어졌다.
그 정도면 할 만큼 한 거 아닌가?
로건이 잠시 의아해했지만 그는 곧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허!?”
너무나도 익숙한 글귀였다.
그리고 그제야 로건은 필체가 익숙했던 것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비록 딱 한 글자가 추가되기는 했지만.
조금 위태위태하기는 했지만 내가 도시 방어전에 참전함으로써 오크 주술사의 공격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세 번의 생에서 두 번째로 나의 도시, ‘마그누스(Magnus)’를 지켜 낸 것이다.
전후 사정을 아는 이라면 지브릭 카셀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에겐 결코 호의를 보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그누스에 모여든 현자들 중에는 마도성자가 수백 년 전 마룡과의 전쟁에서 인간족을 구원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옹호하는 이도 있었다.
꼬리를 잡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들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항상 살피려 했지만, 그들의 수는 너무 많고 나는 혼자였다. 단서를 잡은 것조차 우연에 불과했다.
그놈들은 이 사건이 개인의 일탈이라며 꼬리를 잘라 냈다. 하지만 내게 잡힌 놈이 붉은 머리에 붉은 눈을 한, 전설처럼 내려오는 지브릭 카셀의 특징을 빼다 박았다는 것이 놈들에게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때부터 지브릭 카셀의 후예, 아니 검은 뱀들과 나의 질기고 독한 악연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거창한 이명을 갖게 한 수많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검은 뱀 놈들의 뿌리를 뽑을 수가 없었다. 궁지에 몰린 놈들이 아예 나를 피해 숨어 버린 것이다.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이들이 작정을 하고 숨어 버렸으니, 검의 신이라 불린다 한들 정말 신이 아닌 이상 혼자서 온 대륙을 뒤질 재주는 없었다.
이 책을 보고 있는 이는 아마 염원의 힘을 가졌거나 그 비전을 익혔을 것이다.
마도성자의 실종이 확고해진 이후, 대륙의 중부에선 이종족들의 궐기가 이어졌다. 그에 따라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선량하다 알려진 엘프나 드워프마저도 인간을 공격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인간을 노예로 삼아 거래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마도성자가 행했던 이종족 박해의 대가가 고스란히 인간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 여파로 대륙 동부에 치우쳐져 있는 나의 도시 마그누스는 계속해서 인구가 늘어갔다. 언젠가는 내 부족의 고향인 이곳이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도성자가 대륙 전체에서 어린아이들을 끌어모아 잡아먹었다는 괴소문은 여전히 인간들 사이에 파다했으니, 마도성자에 대한 공포는 어찌 보면 다른 이종족보다 인간들에게서 더 심하다고 봐야 했다.
결국 놈들의 행사에 대대적으로 제재가 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도시의 수뇌부 대다수가 그들의 세뇌에 걸려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혀냈다.
방법은 간단했다. 놈들의 세뇌 마법에 오랜 시간 노출된 자들은 두 자리 수의 덧셈 뺄셈조차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남들보다 똑똑하기에 각 부족의 대표가 된 자들이 바보가 되어 버린다는 건 그야말로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가 마법에 의한 것임이 다른 마도사들에 의해 공증되었다.
카셀의 후예들은 반발했다. 그 대표라는 자는 그것이 자신들을 시기한 자의 모함이라고 주장했다. 놈들은 그간 정신 마법에 대한 것은 보여 주지 않았었기에, 자신들은 그런 수법을 모른다며 딱 잡아뗐다.
진실을 아는 나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충동적으로 손을 쓰고 말았다. 실수였다.
그런데 그로 인해 오히려 놈들의 마각이 드러났다. 놈들의 대표를 공격하자마자 주변의 병사들이 벌게진 눈으로 일제히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든 것이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놈들이 나에 대해 몰랐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탑주라는 작자가 나에게 무언가 마법을 걸려다가 몇 번이고 피를 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탓에 다른 마도사들에게 밀린 그들은 결국 황급히 도시를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마그누스에서는 놈들의 상징, 검은 뱀을 이종족보다 앞선 주적으로 선포했다.
세상에 마나가 점차 줄어듦에 따라 그에 감응하는 자도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었지만 그런 인식은 여전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마그누스에서만큼은 그런 인식이 사라졌다.
내가 지닌 염원의 힘이 카셀의 후예 놈들에게만 극상성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는 착각에서 기인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척했다. 사라져 가는 마나를 생각하면 인류가 앞으로 개발해야 할 힘은 마법이 아닌 포스가 되어야 할 테니까.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어느 순간 나에 대해 조금 거창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약한 몬스터나 사냥할 법한 무기술과 포스로 마법을 이기는 자.
이제 사람들은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을 넘어 숭앙하기 시작했다. 최근 인류의 대세로 떠오른 9대신의 사제들, 이해할 수 없는 힘을 다루며 기적을 선보이는 그들과 나를 비슷하게 여긴 것이다. 덕분에 나는 무기의 신이 내린 자, 혹은 검의 신(劍神)으로 불렸다.
나를 회귀시킨 염원의 힘에 호응하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했지만, 거기서 만족하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 내 동료이자 친우가 된 대마도사 타론 아레스가 불길한 말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하는 이상, 언제고 그들은 지브릭 카셀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그가 예언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더라도, 놈들과 수십 년간 싸워 온 나에게는 합당한 추론으로 들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을 말살할 방법이 없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언제고 다시 나타날 놈들을 뿌리 뽑을 수 없다면, 아예 놈들의 희망 자체를 꺾어 버리면 되지 않을까?
가장 쉬운 방법인 염원의 힘을 전파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수십 년을 그놈들과 싸워 가며 만든 기술을 더욱 개량하는 데 힘썼다. 고작 한 생명의 힘인 포스로, 대자연의 힘인 마나를 정복했다는 반신을, 어쩌면 신이 된 자를 죽이기 위해.
물론 그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존재하는 염원의 힘이, 내 친우 타론이 나를 도왔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나와 싸운 검은 뱀들이 그 영감을 자극했다. 그래서 만들 수 있었다. 놈들이 강림시키고자 하는 지브릭 카셀이라고 하는 신을 베기 위한 비전을.
존재하는 물질을 베는 전반 3식, 모든 이능을 잘라 내는 중반 3식, 그리고 근원과 공간, 영혼을 가르는 후반 3식에 더해 나도 이루지 못한 마지막 1식까지.
도합 10식의 살신기(殺神技). 그리고 그것에 내 염원을 담아 ‘신을 죽이는 검의 비전'(殺神劍?傳)이라 이름 붙여 후대에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