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59)
359화
“……모두들 수고 많았다!”
새롭게 지어진 요새의 성벽 위 높은 곳에서 울린 패드릭 맥라인의 목소리는 넓은 요새 안 깊숙한 곳까지 퍼져 나갔다.
“오늘 하루 즐겁게 먹고 마시며 자축하라! 모든 음식은 3군단에서 전부 지원하겠다!”
“우와아아아!”
그 목소리를 듣고 있던 모든 드워프와 인부, 마법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럴 만도 했다.
왕국 남부 모험가의 길. 북으로는 루터 강이 흐르고, 남으로는 남부 산맥만이 보이는 대륙 최남단. 그중 왕국에서 제국으로 이어지는 가장 큰 교차로에 떡하니 지어진 거대한 요새는 불과 두 달 만에 세워진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크고 튼튼해 보였다.
그만큼 마법사들과 드워프들의 활약이 컸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고생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역시 화끈하시구먼!”
“암, 저분이 바로 우리 폐하의 아버지시니까.”
“그럼 선왕 폐하셔?”
“선왕 폐하는 무슨! 왕도 아닐뿐더러, 선왕은 죽은 사람을 말……, 아니 됐다. 넌 나라에 관심이 하나도 없냐? 대체 너 같은 놈이랑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뭐 인마?!”
“워워, 진정들 해. 좋은 날 왜 그래? 저기 술이랑 고기 온다! 일단 마셔!”
“냅둬, 그냥 싸우게. 그럼 우리 먹을 거만 많아지지.”
“우하하하!”
시끌벅적한 장터 같은 분위기로 변해 가는 요새 안. 모두가 환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유독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드워프가 있었다.
“해, 해냈어. 내가 해냈다고!”
“수고하셨습니다, 하마르 공.”
클레이튼의 공치사에 하마르는 더욱 크게 웃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와하하하! 마법사 양반, 이로써 나는 또 한 번 한계를 넘었다고! 이제 슈퍼 드워프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
다크서클이 코끝까지 내려온 드워프가 벌게진 얼굴로 연신 소리를 지르자, 그 옆에 선 외팔의 드워프가 억지로 그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공방장님, 술을 너무 드셨습니다. ‘그것’이 가동되는 것도 보셔야 하잖습니까. 대공께서도 직접 오신다는데.”
“상관없어! 이제 발동만 하면 끝인데 뭐! 석 달간 요새를 2채나 짓느라 개처럼 굴렀는데, 내가 이 정도도 못 하냐!”
하마르의 발악 같은 외침에 테마르가 어색하게 웃으며 주위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정작 이 안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클레이튼은 그저 웃고만 있었기에 그 누구도 하마르를 말리지 않았다.
“거봐! 마법사 양반도 가만히 있잖아! 여보셔, 마법사 양반. 그러고 보면 우리가 같이 고생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닌데 당신도 와서 한잔해. 이제 쉬어야지!”
“아닙니다. 저와 제자들은 서부 국경에 있는 성 세 군데에도 ‘그걸’ 설치해야 해서 내일 바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 말에 흥분해서 떠들던 하마르가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측은한 얼굴로 클레이튼을 바라보며 손에 쥐고 있던 머리만 한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욕보시게, 동지.”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넨 하마르는 곧바로 돌아서서 ‘난 자유다!’하고 소리를 지르며 연신 술을 들이켜고 고기를 씹어 댔다.
모두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정신을 놓아 버린 듯한 드워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빈 맥주잔을 연거푸 채울 뿐이었다.
아무도 제지 못 하는 그 행보에 오히려 홀로 말리던 이가 물들어 버린 건 순식간이었다.
“흐음……. 그럼 나도…….”
슬쩍 눈치를 살핀 테마르가 왼손의 갈고리를 슥슥 닦고는 접시에 놓인 돼지 통구이의 큼지막한 살점을 찍어 들었다. 그러고는 하마르의 것과 똑같은 커다란 맥주잔에 맥주를 쏟아붓더니, 단숨에 들이켜기 시작했다.
꿀꺽꿀꺽꿀꺽.
어찌 저 작은 몸에 술이 저렇게나 들어갈까.
“캬아!”
보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호쾌하게 맥주 한 잔을 비워 낸 테마르가 탄성을 내뱉으며 고기를 뜯었다.
그 ‘우걱우걱’ 소리가 참으로 야만스럽게도, 식욕이 당기게도 보이는 가운데.
“으아…….”
홀린 듯 그 광경을 지켜보던 클레이튼과 제자들 사이에서 빅토리아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두 드워프들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드워프는 그런 주변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경쟁하듯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들의 폭주는 인부들과 장병들을 격려하며 돌아다니던 패드릭 맥라인이 뒤늦게 나타났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와하하하. 테마르 너, 그 손 오늘은 왠지 부러운데? 고기 뜯기엔 최고겠다!”
“푸헤헤헷. 공방장님도 손 한번 잘려 보쉴래여? 다이어트 하난 확실히 됩니다!”
이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만취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여어. 다들 수고 많았…….”
“헙! 빨간 머리! 악마의 아빠다!”
“……??”
국왕의 아버지이자, 맥라인 영지를 중심으로 하는 서남부의 방비를 맡은 3군단의 군단장이기도 한 패드릭 맥라인.
그가 언제 이런 소리를 들어 보았을까.
황당한 마음에 멍하니 굳어 있는 패드릭의 앞으로 클레이튼의 제자, 그릭과 에난이 황급히 달려들었다.
“하마르 님, 이제 쉬시죠.”
“읍!?”
“테마르, 자네도.”
“읍? 읍?!”
두 사람이 만취한 드워프들의 입을 틀어막는 사이, 한 박자 늦게 패드릭의 시야를 가로막은 클레이튼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마르 공이 기쁜 마음에 과음을 좀 했습니다.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공.”
“허허. 뭐,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일세. 고작 이런 일로 로, 흐흠, 폐하가 아끼시는 부하를 탓할 생각은 없네, 클레이튼.”
“하하. 감사합니다, 각하. 그럼 바로 지하로 가실까요?”
“그러세나.”
황당한 일을 호탕하게 웃어넘긴 패트릭은 클레이튼을 따라 외부에는 그저 ‘식량&무기 창고’라고 알려진 요새의 지하로 향했다.
입구를 지키는 기사들은 이미 그 충성심이 증명된 맥라인의 기사들뿐이었다.
“충!”
“수고가 많아.”
“아닙니다, 각하!”
툭 어깨를 쳐 주고 들어선 곳은 지하 광장이었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이미 빛을 발하고 있는 거대한 마법진이 반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광장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과연, 장관이로군.”
“효과를 느껴 보시면 더 감탄하실 겁니다.”
“기대하고 있겠네.”
클레이튼이 뒤로 눈짓하자, 어딘가로 사라졌던 빅토리아가 바로 나섰다. 그녀가 마법진의 중심부로 총총거리며 달려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운데에 주먹만 한 마정석이 심어졌다.
우우우웅.
이내 공기가 달라진다는 느낌과 함께 마법진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오오!”
패드릭은 긴 시간에 걸친 연설과 격려 등으로 지쳐 있던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을 느끼며 탄성을 토해 냈다.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최상급기사인 그는 신체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체력 소모량이 3할 정도 줄어들고, 회복량은 반대로 3할 정도 늘어나는가. 이것만 해도 농성전에서는 엄청난 효력을 낼 수 있겠어.”
“그리고 말씀드린 두 번째 효과는…….”
“알고 있네. 하지만 강적을 성안에 끌어들여 싸우는 것은 정말 끝장을 볼 각오를 한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겠지. 애초에 거기까지는 가지 않는 게 좋지 않겠나.”
패드릭은 호기롭게 말했지만 그 말을 하는 그도, 듣고 있던 클레이튼도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진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것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 들어가는 예산이 꽤 크다고 했었지?”
“예. 재무대신의 의견으로는 이곳 아머(Armor)와 북방에 지어진 쉴드(Shield), 그리고 카일을 비롯한 세 개의 성에 설치하는 것까지가 한계일 듯합니다.”
“다섯 군데라. 그래도 다 전략적 요충지인 만큼 확실히 큰 도움이 되겠어.”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둘 사이에서는 침묵이 맴돌았다.
전쟁. 그것도 제국과의 전쟁은 섣불리 입에 담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였으니까.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패드릭은 이내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요즘 로니안에 관해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던데.”
“예?”
“그 제국 동왕부의 공주 말일세. 우리 로니안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영지에까지 들려오더라고. 혹시 자네는 아는 거 없나?”
“아하하. 그, 그런 말이 있었습니까? 사실 제가 최근에 바빠서……. 아시지 않습니까.”
타당한 변명이었지만 패드릭의 귀에는 왜 그런 소문에 귀를 기울이시냐는 타박으로 들렸다.
“아, 그래. 자네가 요새 많이 바쁘긴 했지. 커험, 내가 고생한 자네한테 실없는 소리를 했네. 나야 자식들 혼사 문제이다 보니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보니…….”
“하하. 당연한 일이지요.”
“……더구나 그게 사실이면 사실상 우리 왕국에 좋은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예? 좋은 일이요?”
그 엉뚱한 말에 클레이튼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패드릭은 왜 그러냐는 듯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국 쪽에서는 딸자식을 시집보냈다고 출가외인이니 뭐니, 그런 소리는 하지 않는다고 들었네. 만약 그게 사실이고, 그 상황에서 정말 ‘그 일’이 일어난다면, 최소한 제국 내부에 분란이 생길 것 아닌가. 적어도 사방왕 중 하나가 제국에서 갈려 나갈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아……!”
패드릭의 말은 클레이튼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니, 이거 나만 놀라운 게 아닐 것 같은데?’
애초에 루이사의 방문 목적은 혼사였지만, 로건이 절대로 이뤄질 리 없다고 단언했기에 모두가 간과하고 있었다. 만약 정말 혼사가 이뤄진다면 분명 양국 간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제국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이 작든 크든, 맥라인으로선 절대 손해 볼 일이 없을 터였다.
“그렇군요. 안 그래도 요새 그 건 때문에 동왕부에서 힘을 써 주고 있긴 한데……. 충분히 가능성은 있겠습니다.”
“……가능성? 설마 생각을 안 해 본 건가?”
“아, 예. 폐하께서도 그저 혼사를 핑계로 찾아온 첩자 정도로만 생각하고 계셔서 말입니다. 하온데 각하께서는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음? 무슨 말인가?”
“로니안 백작이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억지 혼인을 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아……. 하하, 그런 것쯤이야 귀족 간엔 흔한 일 아니겠는가. 나도 그리 결혼한 것이고. 그 혼인이 결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나쁠 게 하나도 없지.”
그 말에 클레이튼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패드릭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뼛속부터 귀족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폐하께서 허락하실까요?”
“음?”
“로건 폐하께서는 안 그래 보여도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십니다. 특히나 로니안 백작을요. 폐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아마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패드릭은 묘한 표정으로 클레이튼을 바라보더니 이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지금 우리가 그런 걸 따질 때인가?”
“예?”
“정말 폐하의 말대로 전쟁이 일어난다 치세. 그럼 우리가 제국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저희는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할 것입니다.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희망적인 말 말고.”
“…….”
클레이튼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에선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뜻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것도 로건의 영향일까.’
온갖 사건을 일으키며 주변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 버리는 큰아들을 떠올린 패드릭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감은 나쁘지 않지만 만용은 곤란하지.’
그 터무니없는 자신감에 수많은 성과를 이뤄 왔지만, 이제는 그 어깨에 가족과 가문만이 아닌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상당한 시간 큰아들과 떨어져 있던 탓인지 그 허실이 다시금 보이는 자신이 현실을 짚어 줘야 할 것 같았다.
“흐음, 난 아무리 생각해도 질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네. 15개의 군단, 아직도 베일에 싸인 황실 중앙군, 그리고 수많은 초인들. 솔직히 말하면 상상만으로도 갑갑할 따름이야.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고 보네. 그런 의미에서 로니안의 혼사도 나쁘지 않아.”
“설령 로니안 백작이 불행해지더라도 말입니까?”
“그런 걸로 꺾일 내 아들이 아니야. 내가 자식 농사 하난 참 잘 지었거든.”
그 근거 없는 자신감에 클레이튼은 잠시 로건을 떠올렸다.
“자네가 말하기 힘들다면, 내가 한번 말을 꺼내 볼까?”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은 유전일까.
클레이튼은 헛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 시각 맥라인 왕성에선 로니안이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혼담이라뇨? 진심이십니까?”
“그럼요.”
루이사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빨간 머리 청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