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6)
36화
“누가 찾아왔다고?”
“그게…… 로건 맥라인이라는 자이온데,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와서는 각하께 언급이라도 해 달라 강짜를 부리는 통에…….”
그 말을 들은 펠릭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고, 그것을 본 기사의 표정도 더욱 딱딱하게 변했다.
“죄송합니다! 바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아니, 됐다. 들여보내라.”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기사의 눈이 커졌다.
* * *
– 들여보내라.
나지막이 울리는 음성과 함께 로건은 단출해 보이는 집무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귀족의 집무실이라면 흔히 보이는 그림이나 도자기, 화려한 장식 등은 일절 보이지 않고, 수수한 가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기다란 회의 테이블 너머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턱밑까지 내려온 금빛 수염이 인상적인, 서글서글한 눈매의 잘생긴 중년인.
로건은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검공을 뵙습니다. 맥라인 가문의 장자, 로건 맥라인입니다.”
“맥라인이라면 서남부의 영지가 아닌가. 그곳의 아들이 여기까지 웬일이지?”
외모에 어울리는 중후한 목소리.
고작 40~50대로 보였지만 그것은 강력한 포스의 힘으로 노화를 억제해서일 뿐, 실제 나이는 일흔에 가까운 노검호.
그란디아 왕국 최강의 검호로 칭송받는 검공, 펠릭스 에스페란자였다.
그의 눈이 로건을 무겁게 응시할 때, 로건은 이곳으로 오기 전 제게 쏘아 대던 필립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 아무튼, 전 안 갑니다. 절대로요! 로건 님께 문제 생겨도 전 모르는 척할 겁니다. 아시겠죠?!
필립은 곧바로 검공을 찾아가겠다는 로건의 자신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극단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지금 로건이 하고자 하는 일은 왕국의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이자 초인인 사람의 집을 대뜸 찾아가서는, – 혹시 고자세요? 그리고 어제 제 물건 훔치셨죠? 헤헤.
……라고 하겠다는 이야기였으니까.
– 긁어 부스럼입니다. 그냥 모른 척하면 될 일을……. 만약 잘못되면 우린 엿 되는 거라구요!
필립의 걱정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어제 그자가 검공이 맞다면, 이것은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이 나라 최고 권력자 중 한 명과 좋은 인연을 맺을 기회가.
그 정도면 충분히 도박을 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굳이 어제 얘기는 꺼내지 않아도 돼. 그자가 검공이 맞다면 소문이 사실이라는 뜻이고, 소문이 사실이라면…….’
로건에게는 그것을 고칠 방법이 있었다.
필립은 과장 광고라고 생각했지만 임포릭의 효과는 절대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자가 어제 가져간 두 알로는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어제 그 도둑이 진짜 검공이 맞느냐는 것이었는데…….’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지금도 완벽한 확신은 없었다.
검공씩이나 되는 인물이 왜 ‘직접’ 그런 짓을 했는지, 그 이유가 짐작도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무려 검공 펠릭스가 다짜고짜 찾아온 시골 촌놈의 면담 요청을 단번에 받아 준 것만으로도 그의 가정에 확신이 더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로건은 그의 모든 가정이 맞는다는 전제하에 완벽한 선물을 준비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로건은 검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품속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제가 최근에 수도에서 장사를 시작했사온데, 검공을 뵈러 오는 길에 선물 삼아 그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무어라 대꾸를 할 법도 한데, 검공은 아무 말이 없었다.
로건과 상자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하지만 로건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제가 파는 물건은 임포릭이라 하는 보약입니다. 효능은 여러 귀족을 통해 증명된바, 남자에게 훌륭한 약이라는 점은 이미 보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착 가라앉은 펠릭스의 음성은 누가 봐도 심드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로건의 말에 검공의 푸른 눈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굳이 초인인 각하께 필요한 것들이 아닌지라, 좀 더 특별한 물건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로건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맞구나!’
아마도 심드렁했던 표정은 임포릭을 써도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임포릭이 작용하는 원리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인 카록의 고기는 독성을 가지고 있고, 가성비가 좋은 그 중화제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수준으로 그 독성을 ‘줄여’ 주기는 했다.
하지만 미미한 독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 독성이 고기의 성분과 섞여 정력제 겸 성 기능 장애 치료제로 작용을 하는 것이었다.
그 기능이 워낙 강력하여 그 부위 한정으로는 거의 재생에 가까운 효과까지 생길 정도로.
하지만 그것이 오러유저라는 초인 중 초인을 만나게 되면?
그 미미한 독성은 초인의 육체에 눈곱만큼의 영향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해결 방법 또한 간단했다.
‘독을 극도로 농축하면 된다.’
달칵.
로건은 웃으며 작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그…….”
그 안에는 금박에 싸인, 화려해 보이는 알약 하나가 들어 있었다.
“특별 한정판입니다.”
“……허.”
펠릭스가 복잡한 감정이 담긴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특별 한정판이라는 것이 그저 50알을 농축했을 뿐이라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금박은 그저 보기 좋게 하기 위한 포장일 뿐이었다.
‘나도 먹고 죽도로 고생했지만…….’
내장이 꼬이는 고통과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 그곳.
로건은 오기 직전에 제 몸에 해 본 실험으로 인해 자신이 겪었던 이중고가 떠오르자 잠시 식은땀이 흘렀다.
포스코어를 가진 자신이 그 정도였으니 보통 사람이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러유저라면…….’
그 정도 독성으로 내장이 아플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효과뿐이었다.
전생에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질적 생명체인 몬스터의 고기가 만든 기적의 효과.
그렇기에 로건은 자신 있게 손을 내밀 수 있었다.
“눈에 차시지는 않겠지만, 각하의 건강을 염려하는 저의 성의라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용건의 끝이더냐? 더 바라는 것은 없고?”
“물론입니다.”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이나 해 봐라.
무언가 다른 뜻이 있는 듯한 질문이었지만 로건의 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여기서 지난밤의 일을 언급하거나 조건을 달면 모든 걸 망치게 된다.’
지금은 그저 검공과의 인연을 잇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로건은 그런 마음으로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으음…….”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도 검공의 동요가 느껴졌다.
잠깐의 침묵. 그 짧지만 긴 시간이 지난 후.
“후우우. 그래, 건강을 위한 약이라 하니 고맙게 받겠다.”
로건의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순간이었다.
‘일단 고비는 넘겼다.’
서로가 어제의 일을 알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확인했고, 그런데도 그것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새로운 연을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저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혹시 써 보시고 만족하신다면, 저에게 따로 언급해 주십시오. 주기적으로 필요하신 만큼, 얼마든지 공급해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물론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서’ 말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남길 때까지 검공의 표정은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검공가의 사자가 로건을 찾아온 것은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 * * 같은 자리, 같은 시간, 다른 날에 만난 검공의 표정은 너무 환하게 바뀌어 있었다.
전날과 너무 대비되는 표정에 로건이 미소를 짓는 찰나.
“무엇을 바라느냐?”
무어라 인사도 꺼내기도 전에 검공이 파격적인 첫마디를 꺼냈다.
“……예?”
“원하는 것이 있느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마.”
조금은 들뜬 목소리의 검공이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기대했던 바를 훨씬 초월하는 적극성에 로건이 조금 당황할 때.
검공은 오늘 아침의 그 생경한 기분을 아직도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효과가…… 있다. 여전히.’
오러유저는 육체를 움직이는 무술의 달인이자, 생명의 힘인 포스의 달인이다.
그렇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성분의 이 약이 수십 년 동안 변화가 없던 자신의 그곳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극의 끝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까지.
이대로라면 앞으로 대략 삼십여 번 안에…….
‘회복할 수 있다!’
아침부터 수십 번은 한 생각이지만 그때마다 움켜쥔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의 오래된 미련이자, 가슴속 깊이 박혀 있던 한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환희.
그 앞에 수십 년 수련으로 만들어진 부동심 따윈 필요 없었다.
뛰는 가슴을, 희망이 주는 기쁨을 온전히 만끽했다.
그러니 이 눈앞의 청년이 고맙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내 실수를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빈약한 증거만으로 자신을 찾아오고, 또 그것을 티 내지 않고 오히려 선물을 가져올 정도로 생각이 깊은 젊은이.
거기다 그날 보았던 검술 실력 역시 그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과연 ‘기적의 명약’의 주인이 될 만한 젊은 인재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 받들기 어렵습니다. 연유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게다가 그런 재능을 가지고도 겸손하기까지 했다.
‘훌륭해!’
본래 뛰어난 젊은이들을 아끼는 그였기에 더 기껍게 느껴졌다.
“하하. 내가 마음이 급했구나. 그래, 어제 네가 준 선물이 내 오랜 아픔을 치료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러니 그에 대해 보답을 하겠다는 것이다.”
어제 준 선물. 그 약의 효능을 생각하면 직접 언급하기엔 부끄러운 말일 수도 있었다.
특히나 검공 같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얼굴은 정말로 밝아 보였다.
그런 검공의 얼굴을 보며 로건은 또 하나의 확신을 얻었다.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
사실 로건은 자신이 임포릭을 팔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광란하는 귀족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문란한 생활을 해 왔거나, 하려 하는 이들만 이 약을 산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정말 치료목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그래. 내게 바라는 것이 있느냐? 터놓고 말해 보거라.”
묘한 감흥에 빠져 있던 로건은 검공의 재촉하는 목소리에 비로소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검공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단순히 생각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 것이었고, 그 생각에 로건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하지만 고작 임포릭을 주고 얻기엔 너무 과한 보상이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무조건 호응해서는 안 되었다.
로건이 들뜨려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가 바라는 것은 검공과의 항구적인 인연이었다.
내전이 끝나서도 최고위 귀족 자리를 유지하는 이.
그리고 제국과의 전쟁에서 그 자신과 자신의 기사단만으로 제국의 10만 대군을 일주일 이상 저지하고, 결국 분사했던 왕국 최강의 칼.
로건이 원하는 것은 현 왕국 최고위 귀족이자 최강의 오러유저, 검공 그 자체였다.
그러니 여기서는…….
‘혹시나 해서 생각했던 그것만.’
지속적인 연을 만들어 두기 위해선 적당히 손해를 보는 것이 좋았다.
로건은 오는 내내 생각해두었던 제안을 꺼냈다.
“굳이 그러시다면…… 쓸모없는 검술서 하나 정도 받아갈 수 있겠습니까?”
“……뭐?”
검공은 듣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중급검술을 잘못 말한 거겠지?”
“쓸모없는 검술서라고 했습니다. 하급검술이라도 됩니다. 다만 거기에 공작님의 확인서 정도는 붙어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허어?”
검공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체를 단련하고 기본기를 다지는 하급검술과 포스를 다루게 된 포스유저가 사용하는 중급검술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차라리 중급검술을 원하는 것이라면 그도 이해했을 것이다.
에스페란자 기사단의 비전 검술은 가르쳐 줄 수 없더라도, 그가 수집한 검술 중에는 제법 쓸 만한 수준의 중급검술도 몇 개 있었으니까.
그런데 하급검술?
‘웬만한 청탁이나 돈을 원한다 해도 들어줬을 것이다. 실망하기는 했겠지만…….’
그런데 이것은 그의 예측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 부탁이었다.
다만 그것이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왜지?”
“그저 저희 가문이 검공과의 인연이 닿았다는 증거로 남겨둘 생각입니다.”
“허허, 인연이라니.”
그가 듣기에는 그 말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준 검술서 하나 가지고 있다고 그게 무슨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살면서 수집한 검술, 그리고 만들어 낸 기본 검술로 검을 배운 이들도 넘치는 마당이었다.
심지어 왕국 기사 수련생의 가장 기본이 된다는 그란디아 왕국 검술에도 자신의 손길이 닿아 수정된 부분이 있었다.
검술서 하나만으로 자신과의 연을 주장한다면 이 나라의 기사 대부분은 그의 제자라고 주장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그로서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차라리 적당한 중급 검술을 하나 건네주마. 원한다면 내가 직접 교습을 해 줄 수도 있다.”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고, 그에 잠시 눈동자가 흔들리는가 싶던 로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중급검술이라면 저희 맥라인 가문의 검술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허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