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61)
361화
“공주의 두 번째 신분이 특이하단 생각은 했습니다만, 전하께서도 같은 줄을 잡고 계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안색을 굳힌 로건의 말에도 통신구 속 상대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하.]지금 로건과 통신구 속 사내, 동익왕 사이에선 진짜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 루이사 공주의 제안 한마디가 몰고 온 사태였다.
‘그저 공주 개인의 일탈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집안의 입장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좋을 대로 사는 귀족 자녀들은 발에 차일 만큼 많았으니까.
다만 그 배포가 남다르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요새 건설 건에서 동왕부가 힘을 써 주었을 때만 해도 ‘어쩌면?’ 정도의 생각으로 지나갔었다.
그러다 이제야 동왕부가 제국을 적대한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양국의 수뇌부가 공공연히 전쟁을 의식하고 있는 마당에 사방왕이 대놓고 혼약을 추진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으니까.
“정말로 황실에 반감이 있으시다면 이리 노골적으로 나오시는 것보다는 자중하시며 뒤에서 도와주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만.”
혼담으로 인한 이득이야 인정하는 바지만, 어차피 목적이 같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로건은 자신의 동생이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마녀와 억지 혼약을 하는 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왕으로서 무르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의 근간은 가족을 위한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상대의 생각은 로건과 다른 것 같았다.
[어허허.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폐하.’ 그저 젊은 남녀가 눈이 맞아서 혼인하겠다 하는 것에 무슨 그런 끔찍한 의미를 갖다 붙이십니까.]아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제국의 왕이 황제가 아닌 다른 이에게 폐하라 부르면서도, 공식적으로 황실을 적대한다는 사실은 부인한다.
‘혹시나 기록에 남을까 조심하는 거야.’
그래서 더 확신이 들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익왕이 황실을 거역하려 한다는 것만은 사실 같았다.
자신의 딸까지 이용할 정도로.
[제가 딸이 뭘 하든지 다 허용해 준다는 얘기는 왕부에선 이미 유명합니다. 혼사도 자기 뜻대로 하겠다니 이번에도 마지못해 허락하는 거죠.]“황제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황실은 루이사가 바로스의 작전에서 맥라인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로 왕국에 파견된 것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저는 거기서 진짜 왕의 동생과 눈이 맞아 버린 철없는 공주를 못 말린 것뿐입니다, 허허.]“전쟁이 일어나면 꽤 큰 피해를 보실 텐데요?”
[그전에는 노골적으로 왕국을 도와도 괜찮을 이유가 되겠지요. 안 그래도 요새 건설 건 때문에 상당한 압박이 들어오고 있었는데요, 뭘. 이참에 혼약을 기정사실화하면 당장은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황제의 눈치는 안 보시겠다, 이겁니까?”
[하하. 황제 폐하께서는 지금 성국에 이목을 집중하고 계십니다.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아직 맥라인은 그분의 마음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지요.]성국이라.
로건 역시 굉장히 신경이 쓰이는 바였다. 노비엔스에서의 일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제국과 왕국 간의 관계, 전쟁의 판도 등이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국제 역학뿐만이 아니더라도 걸리는 게 있었다.
– 폐하, 성녀님을 구해 주십시오.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생명만큼은…….
빅토르의 보고, 아니 청원을 떠올린 로건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 노력하겠다.
그리 답했지만 그로서는 더 이상 손을 쓰기도 어려웠다.
‘일리아 주교에게는 신세 진 것도 있지.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하지만…….’
상황이 예기치 않게 흘러가 성녀를 구해야 한다면 국가적인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최악의 경우, 제국에 더해 성국까지 적으로 끌어들이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한데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카셀 마탑에서 성국을 움직여 제국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뒤통수를 쳐 버린 것이다.
‘내가 만든 상황이지만.’
제국이 어찌 나올지는 이제 두고 봐야 할 일. 지금은 그저 바라는 최상의 방향으로 풀리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로건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그것을 달리 받아들였는지 동익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망설이시는 겁니까? 제가 듣기로는 로니안 백작도 찬성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그 말에 로건은 동생을 떠올렸다.
제 소중한 동생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결정을 내렸으면 했다.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카셀 마탑의 마도사다. 언젠가는 결국 처리해야 할 적이란 뜻이다.
그렇게도 말을 했지만 로니안의 생각은 확고했다.
– 잠정적인 적,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서로의 필요로 인한 일시적인 계약일 뿐입니다. 때가 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 형님,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결정입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언제 그렇게 컸을까.
‘아니, 이미 덩치는 나보다 크지.’
이 상황에서 자신이 거부해 봤자 의미 없는 짓이었다.
동생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또 하나 쌓여만 갔다.
“흠. 그럼 공식적으로 혼사를 추진하겠습니다.”
[하하. 하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돈.]“저 역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셀 마탑의 마도사를 향한 감시는 계속될 겁니다만.
‘뭐, 확실한 방도도 생겼고.’
로건은 속내를 감춘 채 웃으며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 적. 적이 이 집에 있다.
막연한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 티르를 통해 ‘본’ 광경.
루이사를 본 티르는 자신이 허락만 하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물어뜯고 싶은 듯했다. 그녀의 마력에 반응한 신수의 감각이 날뛰듯 일렁이고 있는 게 먼 거리에 있던 그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검신의 자취를 기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행이지.’
자신과 마찬가지로 염원의 힘을 지닌 강력한 신수 티르는 카셀 마탑의 마법사들에게는 또 하나의 천적일 터였다. 카셀 마탑의 음모에서 왕궁을 수호할 확실한 카드 하나가 더 생긴 것이다.
그러니 로건은 자신 있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동익왕이 이상한 말을 덧붙였다.
[한데 관례대로 반년 정도 후에 결혼식을 한다고 치면, 어쩌면 혼인이 무산될 수도 있겠습니다만.]“예?”
[정식 혼약에 대한 선물로 드리는 정보입니다. 중앙군의 내부에서 묘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황제는 성국에 대한 정리가 끝나는 대로 전쟁을 시작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그 말에 로건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직 1년은 남은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은 변수에 전쟁의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겠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 영혼이 굳는 느낌이었다.
“……흐흠,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이제는 뜻을 같이할 동지 아닙니까.]동지라…….
‘카셀 마탑이?’
하고 싶은 말이 가슴에 가득했지만, 로건은 그저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이상하게도 통신구 속 상대와 닮아 보였다.
* * * 로니안 백작과 루이사 공주가 정식으로 혼인한다!
최근 좋지 않은 분위기에 무산될 뻔한 혼약이 공주의 열렬한 구애로 성립!
이전부터 무수한 소문을 뿌리던 커플의 혼담이 드디어 성사되었다는 소문으로 온 그랑이 들썩였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왕족 간의 연애사에 사람들의 관심이 잔뜩 쏠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문이 가장 타오를 때는 그것의 진위를 알 수 없을 때라는 말을 증명하듯, 두 사람에 관한 소문이 진실로 판명이 나자 들끓던 분위기도 금세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것은 그 당사자들이 귀족들의 파티에 전혀 등장하지 않은 탓도 컸다.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이러쿵저러쿵 떠들기도 애매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 중 하나는 아직 완연한 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싸늘한 날씨에도 온몸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려 내고 있었다.
“혀, 형님. 잠깐!”
그그그극.
콰아앙!
간발의 차.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 머리 위로 떨어지려던 황금빛 오러의 각도를 비틀었다.
우르르릉.
챙그랑.
그 대가로 연무장 바닥이 또다시 깨져 나갔지만, 덕택에 중상을 입을 뻔한 것을 면한 로니안은 거의 넝마가 된 상체 갑옷을 내던지듯 벗어 버리며 항의하듯 소리쳤다.
“이게 무슨 상입니까! 두들겨 패는 게 언제부터 상이 됐냐고요!? 예?”
버럭 소리를 지른 탓에 튀어나온 침에는 붉은빛도 섞여 있었다.
얼굴 한쪽이 부어터진 결과로, 평상시 형을 그리도 따르던 로니안이 소리를 지를 만도 했다.
“쿨럭.”
옆에서 말없이 피를 토하던 빅토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상대적으로 털끝 하나 상한 데 없이 멀쩡한 얼굴의 로건은 다시금 애검 룩스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아직 너희가 상급으로 가는 길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그것을 도와주려는 것이니 당연히 상이지.”
“그, 그걸 왜 이렇게 하는 거냐고요!”
“이게 가장 빠르니까.”
“아으으으, 진짜!”
질린 표정을 지은 로니안이었지만, 다시금 섬뜩한 기운이 전신을 덮쳐 오자 반사적으로 검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빅토르에 비해서는 그나마 덜 억울했다.
‘난 이제 간신히 벽을 깼는데.’
신검 하먼 킬러브루의 말도 안 되는 무력을 경험하고, 대륙의 서쪽 끝 가이아 왕국의 남단에서 왕성까지 보름 만에 질주하는 극한의 고행 끝에서 간신히 중급의 벽을 허물었다.
막 밟게 된 경지를 다지는 길도 아직은 막막하기만 할 뿐인데 이게 무슨?
하지만 그는 이내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에이씨, 형님! 정말 다쳐도 모릅니다!!”
분노 섞인 고함과 함께 로니안의 칼끝에서 터져 나오는 변화.
주황색 오러가 무려 7개의 검으로 분화하더니, 그 7개의 검에서 제각기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7개의 빛줄기는 이내 서로 반응하며 증폭되더니 폭풍처럼 전면을 향해 쏘아졌다.
빅토르의 안색이 굳어진 건 그 안에 담긴, 일반 오러와는 다른 미묘한 파장 때문이었다.
같은 오러조차 분쇄하는 흉악한 파장.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생명 가르기를 7중첩으로?! 말도 안 돼!’
신검 비전 5식, 생령참(生靈斬). 자신도 쓸 수 있는 수법이지만, 지금 로니안이 쓰는 방식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 짐작은 갔다. 은하검으로 7개로 분화한 오러검에 각기 비전을 더해 증폭시킨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게 된다고?!’
일격, 일격에 혼을 실어 기력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 신검 비전이다. 그것을 억지로 일곱 갈래로 나눈다면 오히려 위력이 약해질 뿐인데다, 무리한 전개에 내상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은 미친 짓이다.
그래, 그래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일곱 배, 아니 그 이상으로 증폭된 것 같은 저 무지막지한 공격은 대체 뭐란 말인가.
어찌 저럴 수 있는가.
빅토르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있는데, 무심히 내민 로건의 검끝에서 황금빛 구슬이 튀어나왔다.
이내 그 구슬이 붉은 폭풍에 닿는 순간, 황금빛 파장이 사방으로 퍼지며 붉은 폭풍을 잠재웠다.
우르르르릉.
“거봐라. 완전하게 중급의 경지를 다룬다면 6식인 근원 가르기도 그렇게 쓸 수 있어야지. 특성이 아깝다, 이놈아.”
태연한 표정으로 훈계하는 그의 왕.
그 모습을 본 빅토르는 다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멀었구나, 난.’
중급의 벽을 깨고 특성 덕분에 더욱 엄청난 생명의 힘을 손에 넣었다. 그에 걸맞게 재생력과 포스 역시 폭증했다.
언제고 주군이 가지고 있었던 ‘동급 최강’의 칭호는 이제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아니, 적어도 로니안은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7개의 혼’이 그런 의미였구나.’
로니안의 특성, 7개의 혼.
단순히 마음을 7개로 분화해서 몇 수 앞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특성이 은하검의 요결과 합쳐지면 저리 무시무시한 일격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신검의 그 무지막지한 무력을 보고 느꼈던 무력감이 다시금 영혼 한편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다음 빅토르, 내상은 다 나았지?”
그에 반해 자신의 특성은 그저 버티는 게 고작인가.
자괴감이 들었지만 자신을 응원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윽, 분해. 한 방 먹여 줘, 빅토르! 넌 할 수 있어!”
탈진해서 주저앉은 로니안.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의 붉은 눈에는 정말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보였다.
그것이 힘을 주었다.
“……그래. 할 수 있다!”
스스로 지른 기합이 자신감을 한층 복돋워 주었다.
로니안이 수 싸움과 일격의 위력에 강점을 보인다면, 자신의 장점은 동급 최강의 포스와 지구력이다.
‘결코 모자라지 않아!’
그 순간 폭발적으로 솟아오른 회색 오러가 그의 육체 능력을 극한까지 증폭시켰다.
그렇게 빅토르는 자신의 주군이자 스승을 향해 돌진했다.
여느 날과 같은 치열한 하루가 또 저물고 있었다.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커억. 헉.”
“수, 수고하셨습니다.”
완전히 탈진해서 주저앉은 두 녀석을 보며 로건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빅토르가 좀 부족하지만, 저 회복력과 지구력이면 따라잡는 것도 금방이야. 로니안 녀석, 긴장해야겠는걸.’
이제 전쟁을 위한 준비는 정말 막바지였다. 그러니 이제는 상승한 경지를 다지는 한편, 아직은 무궁한 성장 가능성을 가진 이들을 담금질해야 한다.
스승님이나 루터, 위켄 같은 경우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고, 부르델은 자신이 가르칠 수 없는 분야다. 선택은 이 둘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좋은 선택인 듯했다.
‘내가 전쟁 전에 오러마스터의 경지에 오른다면 좋겠지만.’
특성 업으로 경지를 체험하면서도 그 마지막 벽을 정말 넘는 것만큼은 쉽지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오러유저 최상급의 격에서 얻은 새로운 권능에 입문하고, 신검 비전의 8식을 간신히 그려 보는 정도.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대륙제일검 트리스 혼스비, 그자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가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소울블레이드의 의미를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챙.
허공을 향해 겨눈 검끝에 검혼의 얼굴과 그 뒤에 선 황제의 얼굴이 그려졌다.
‘이제 곧…….’
생각할수록 두근거리는 가슴.
저물어 가는 석양의 붉은빛이 핏빛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