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65)
365화
“카셀 마탑은 성국에서 철수할 겁니다.”
“철수?”
“무슨 말인지 알고 계실 텐데요, 폐하.”
루이사의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로건이 아닌 그 뒤쪽에 서 있던 빅토르였다.
“그럼 성녀님은……!”
“당연히 무사하겠죠. 그런데 그 성녀와 꽤 친분이 있으신가 보네요, 빅토르 경?”
피식 웃는 루이사의 모습과 사방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에 빅토르가 얼굴을 붉히며 다시 한발 물러섰다.
“……성녀는 이곳 맥라인 교구 출신이니 이 안에 모르는 사람은 없지.”
담담하게 이어진 로건의 목소리에 방 안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루이사는 그 말을 연막이라 생각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초인이 성녀와 친분이 깊다. 그리고 하필 그 초인이 한동안 사라졌다가 얼마 전 다시 나타났다.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성녀와 관련된 게……. 아, 제국의 광검이 성도에서 죽었었지. ……그렇게나 강했나? 저렇게 어린데?’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흥미로운 추론이 쭉 이어지고 있었고, 그 추론은 이내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되었다.
물론 티를 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저 자신이, 카셀 마탑이 이들의 아군임을 어필해야 할 때였으니까.
명목상 ‘좋은 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
공식 석상에서 잘 보이지 않던 왕비가 개까지 데리고 나온 화기애애한 자리였으니 때마침 좋은 기회였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린 건가요?”
루이사는 왕비와 조용히 미소를 나눈 뒤 개를 쓰다듬었다.
아니, 쓰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킁.”
코웃음을 친 은빛 강아지는 루이사의 손을 피해 왕비의 뒤로 숨어 버렸다.
허공을 배회하는 손. 루이사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 왕비가 불쑥 나서서 그 민망함을 덜어 주었다.
“흠, 좋은 소식이기는 하네요. 폐하께서도 걱정거리 하나를 덜으신 듯하고.”
‘여기사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냥 귀부인 같은걸.’
루이사는 그 배려에 감사를 표하듯 미소를 지은 뒤 다시 로건을 돌아보았다.
“뭐, 그래도 그냥 철수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국 황실의 시선을 잡아 둬야 하니, 성국과 제국이 충돌하게 만들고 나서야 빠질 겁니다.”
그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든 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충돌? 그럼 그게 혹시?”
로건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가자, 시립해 있던 데미안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검혼과 삭풍의 마도사가 사병을 이끌고 아세리안을 떠났다는 정보가 있었지. 그럼 그게……?”
“……맥라인도 정보가 빠르시군요. 예, 그들이 황제가 성국을 향해 뽑아 든 칼입니다. 그리고 성국은 그 칼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게 될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으음.”
로건의 침음성과 함께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것을 느끼며 루이사는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뵙고 직접 말씀드리려 한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신뢰를 얻고 싶어서요. 이제 공식적으로 제 약혼자가 되신 로니안 백작님에게도 어필할 겸 말입니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에 바다처럼 푸른 눈, 약식이라지만 약혼식을 위해 차려입은 몸매가 돋보이는 드레스.
더없이 매혹적인 미인의 눈길을 받은 붉은 머리 청년은 헛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약혼식 피로연으로 시작된 자리가 왕국의 실세가 모두 모인 회의장이 되어 버린 지금의 상황이 어처구니없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루이사가 피식 웃음을 흘리는데, 그녀를 경계하듯 여태 말없이 물러나 있었던 검공이 한 발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일리아 주교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폐하.”
루이사가 전해 준 정보는 신중한 그가 그리 말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황스러운 건 로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했던 변수 중에서는 최상의 경우이긴 한데…….’
성국이라 따로 부르긴 하지만, 그 중심인 노비엔스는 제국의 영토 거의 한가운데에 존재했다. 사실상 제국의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셈이니, 맥라인으로선 나쁠 게 없었다.
다만.
“……분란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만약 제국이 성국을 점령한다면?”
“그랬다가는 대륙 전체 신민들의 역풍을 맞게 될 겁니다. 성국의 저력은 노비엔스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성전기사단이 유명하다고는 하나 그 전력의 대다수는 대륙 곳곳에 있는 신전에 흩어져 있었다. 즉, 노비엔스에 있는 성국의 전력은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성국의 진짜 힘은 대륙 신민들의 민심이요, 진짜 무력은 대륙 전체에 흩어진 성기사들과 신전 병사들이니까.
하지만 로건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난 노비엔스가 아니라 성국이라 했소, 공주. 황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렇게 무리한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요.”
이 자도 황제 얘긴가.
‘자기가 황제를 얼마나 봤다고.’
루이사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녀 자신조차 헷갈리는 분노를 애써 잠재우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설마 황제가 성국을 삼킬 명분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럴 리가 있겠느냐, 라는 물음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다수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로건 역시 확신은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없어야 하는 게 맞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제국은 이미 오래전에 성국을 병합해 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고려해 봐야 했다.
“당신들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노비엔스에 들어서면?”
‘당신들’이라는 말에 루이사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대답은 지체 없이 나왔다.
“처리한 후에 바로 돌아가야겠지요. 성도를 잠시 점령할 수는 있겠지만, 성국을 삼킬 명분은 되지 않아요.”
“음모에 휘말렸던 교황을 보호한다는 핑계는 댈 수 있겠지. 그러면서 교황을 압박해 이용할 수도 있는 거고. 당신들이 했던 것처럼.”
“아니면 성도에서 죽은 광검의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요. 맥라인에서 한 일인 줄은 모르고 있겠지만.”
루이사의 날 선 대답에 모두의 안색이 슬쩍 굳어졌다.
아무도 굳이 빅토르를 쳐다보는 실수를 하진 않았지만, 로건의 기감에는 루이사가 녀석을 쳐다보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이미 당황해 버린 녀석의 표정 또한.
하지만 로건은 태연히 대꾸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흐음, 제 착각이었나요? 뭐, 그렇다고 치죠. 아무튼 신전의 사제들이 모두 바보는 아니에요. 세뇌를 해도 어려울 일을 맨정신의 교황이 응할 리도 없고요.”
“원래 교황은 정말 올곧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목숨을 버릴지언정 길이 아닌 길은 가지 않을 거라고…….”
“음?”
삐뚜름히 웃는 루이사의 말에 호응한 것은 빅토르였다.
아마도 좀전의 화제를 바꾸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네가 그러면 오히려 더 인정하는 것 같잖아!’
로건이 눈에 힘을 주자 그제야 무엇을 깨달았는지 빅토르가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성녀님이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로건은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 오스틴 추기경에 대한 소문은 나도 들어 본 적이 있지.”
주관이 굉장히 많이 담긴 말이었지만 참고는 할 만했다.
그렇다면…….
“다른 명분이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저는 제국이 성국에게 상당 부분은 양보받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할 것이라 보는데요.”
“음.”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후방을 안정화할 겸 나선 게 아닐까 싶네요. 정복 전쟁에서 성국이 태클을 걸고 나오면 곤란하니까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폐하.”
루이사에게 적대적이었던 검공이 그리 말한 것도 모자라,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대다수가 무심결에 또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로 그녀의 말은 확실히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로건은 여전히 찜찜하기만 했다.
‘그 황제가, 검혼과 삭풍까지 움직여서 벌인 일이 고작 후방 안정화 작업이다?’
근거 없는, 그렇기에 그저 과한 불안감이라 생각하면서도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런 표정을 읽은 것일까, 루이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카셀 마탑이 계속 제국과 협력 관계에서 ‘작업’을 이어 나갔다면 또 모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거든요. 괜한 걱정은 안 하셔도 좋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했다.
자신이 벌인 일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뜻.
‘정말 괜한 걱정일까.’
스스로도 납득할 만한 핑계가 없으니 로건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을 들어 올렸다.
“좋습니다. 이 좋은 날 내가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든 것 같으니, 잠깐이라도 즐겨 봅시다.”
그제야 모두는 이 자리가 사실 약혼식의 뒤풀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아…… 약혼식. 그랬죠, 참.”
풉.
당사자인 로니안이 실없는 소리를 내뱉자 주변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느 귀족 하나 초청하지 않고 가족 같은 이들만이 모인 잔치. 하지만 그렇기에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가 왕국의 실세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본연의 취지에 걸맞게 다소 가벼운 주제로 이어지는 대담들 사이.
‘아직은 협력자라.’
로건은 푸른 눈의 공주가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며 찜찜한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오늘은 수련으로 밤을 새워야겠군.’
복잡한 마음을 털어 내기에는 그게 최고였다.
* * * 챙!
쾅!
강력한 충격에 주르륵 밀려나던 호리호리한 인영이 다시금 바닥을 박차고 전면으로 달려들었다.
갑옷도 없이 그저 간편한 무복 차림이었지만, 그런 그녀의 전신을 감싼 붉은 오러는 세상 어떤 갑옷보다도 튼튼하게 그녀를 외부의 위협에서 보호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빈틈.”
“윽!”
쾅!
몇 수나 높은 상대의 공격에서 완전히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익! 다시!”
나가떨어졌던 에일렌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연무장 밖에선 어둠이 점점 깊어져 가는데, 붉은 머리 여인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은 점점 더 거세게 타올랐다.
오히려 상대하던 로건이 지칠 정도였다.
“하. 오늘은 그만합시다, 부인.”
애초에 수련으로 밤을 새울 생각이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로건은 어색한 미소로 아내를 말리려 했다.
“왜요? 난 아직 팔팔한데?”
“거참, 계속 그럴 거예요? 내가 잘못했다니까요.”
“아니요. 난 내 남편한테 내가 기사로서 쓸 만하다는 것을 증명해야겠어요.”
에일렌의 말에 로건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그런 뜻이 아니라니까요.”
로니안과 빅토르를 데리고 특훈에 나선 요즘, 그 소식을 남에게서 접한 에일렌이 뿔이 난 것이다.
“나도 재능이 있어요! 로니안 도련님이나 빅토르 경만 비밀 병기인가요?”
“아 글쎄, 정말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니까요.”
“그럼 뭔데요?”
“그게…….”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기에 할 말이 궁했다.
‘당신이 전쟁에 나가는 게 싫어서 무의식중에 배제하고 생각한 것 같다. 내 실수다.’
이리 털어놓았다간 더 화를 낼 게 분명했다.
아내는 불과 이십 대 중반에 초인의 경지에 올라 그 재능까지 증명한 기사다. 심지어 여군까지 창설하고, 그 훈련을 맡긴 것이 자신이었다.
누군가의 아내이기 이전에 기사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고 생각했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그란디아 출신의 남자라는 거겠지.’
한숨이 나왔다. 에일렌이 전쟁에 나서는 것을 무의식중에 배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장 놀란 것이 그 자신이었다. 그러니 그 후유증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내내 머리를 굴리던 로건은 억지로 없던 답을 짜냈다.
“음……. 이렇게 단둘이 수련하려고?”
빙긋 웃는 애교는 덤.
나름대로 회심의 변명이었는데, 아내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헛소리 마요.”
그러고는 다시 칼을 들어 자신을 겨누었다.
“다시는 날 빼놓고 생각하지 마요! 나도 엄연한 기사, 그것도 당신과 나라에 충분한 힘이 될 수 있는 오러유저니까!”
……짐작하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더 변명해 무엇할까.
“미안해요.”
어색한 표정에서 나온 어색한 말이지만,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수밖에.
“그리고…… 고마워요.”
그 말에 그나마 마음이 풀린 것인지, 에일렌은 피식 웃으며 연무장에 넘쳐흐르던 살벌한 기세를 거두었다.
“그럼 다음부터 그 특훈에 나도 참여하는 걸로?”
“그럼요.”
“앗싸!”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지르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 귀엽게만 보여 웃음이 나왔다.
오전부터 내내 찜찜했던 기분이 잠시나마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아내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자! 그럼 내 문제는 해결했으니 당신 고민도 말해 봐요. 뭐가 문제에요?”
“예?”
“약혼식 때부터 내내 딴생각 중이잖아요.”
“아…….”
그렇게 티가 났던가.
로건이 살짝 당황하는데, 에일렌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모르겠어요. 함께한 시간이 몇 년인데.”
“……별거 아니에요.”
고마웠지만 정말 답이 없는 문제라 로건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별거 아닌 거니까 얘기해 봐요.”
웃음기를 간직한 푸른 눈이 부드럽게 그의 눈을 응시하자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담아 두려고만 했던 속마음을 토로했다.
“그냥…… 찜찜해서 그래요. 성국의 일이.”
“아까 결론이 난 거 아니었어요?”
“예. 이미 났죠. 그냥 기분의 문제 같기도 하고……. 아니, 아마 그렇겠죠.”
툭 차올린 돌멩이 하나가 힘없이 데구루루 굴러갔다.
얼마 구르지도 못하고 멈춘 돌처럼, 로건은 제 가슴에 무언가 얹힌 것만 같았다.
“찜찜하다……라.”
그러나 어느새 곁에 다가와 심각한 표정을 짓는 아내를 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누가 대신 고민해 준다고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 텐데 왜인지 홀가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됐어요.”
“네?”
“덕분에 찜찜한 게 다 사라졌으니까 이만 들어갑시다.”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했어요. 충분히.”
“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더 사랑스러워 보여 로건은 그냥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전해지는 체온만으로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런데 에일렌은 고민을 그만두지 않은 것 같았다.
“2황자는 지금 왜 성국에 있는 걸까요?”
침소에 도달하기 전 갑자기 나온 말에 로건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갑자기 무슨……?”
“성국의 일이 찜찜하단 거요.”
“아…….”
아내는 자신의 찜찜함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자신은 황제의 의도가 찜찜했던 것인데…….
그래도 애써 고민해 준 것이 고마워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성국에서 자리를 만들려다가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공중에 뜬 거죠.”
“그런데 왜 제국으로 안 돌아가고 성국에 남아 있냐고요.”
“음. 그야 그냥 돌아가면 X 될 테니까?”
“그럼 거기 있으면 X 될 게 안 된대요?”
일국의 국왕과 왕비의 대화라기에는 지나치게 저렴한 단어가 오가는데, 로건은 그 순간 복잡하던 머릿속이 조금이나마 맑아지는 듯했다.
“그건…… 아니죠.”
이어지지 않던 무언가가 이어지는 느낌.
“황제가 무슨 속셈이 있어서 황자를 거기 둔 건 아닐까요?”
“속셈이라…….”
“이를테면, 황자가 거기 있음으로써 무슨 명분이 생긴다던가.”
“에이, 그걸로 무슨 명분이 생겨요. 바로스가 거기서 죽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웃자고 한 소리였지만, 그 말을 뱉은 순간 로건은 자신의 머릿속엔 빛 한 줄기가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깐……, 이거?’
가능성이 있는데?
바로스 황자가, 황위 계승 후보가 거기서 죽는다면? 그리고 합당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다면?
‘제국이 성국을 점령할 명분이 된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눈을 마주친 아내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자기 아들을.”
“그, 그렇죠? 아무리 그래도…….”
서로가 비슷하게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결국 로건은 굳은 표정으로 획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 성녀와 연락이 가능할까요?”
“……한번 해 봐요.”
“젠장…….”
로건은 한밤중에 미친 듯이 통신실로 뛰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