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66)
366화- 트레이시 추기경이 종교 재판에 응했다.
일주일 사이 성도를 휩쓴 급박한 변화의 결과로, 노비엔스 주민들의 시선은 다시금 중앙 신전으로 모여들었다.
“교황 성하께서 즉위하신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어째 최근에 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종교는 그 특성상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레 보수적인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륙 어디에서보다 돈독한 신앙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성도의 주민들이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선 전대 교황의 탄핵에서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거의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급격한 변화였다.
거기에 더욱 불안감을 더하는 소식도 있었다.
“제국에서 군대가 온다는데?”
“누가 그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처음에는 소문뿐이었지만, 거의 1만에 가까운 제국군이 성도를 향해 질주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전해졌다.
그렇게 성도의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시기.
그들과 같은 곳에 있는 존귀한 신분의 누군가는 초조함에 떨고 있었다.
“아직? 아직도!?”
넓은 거처의 서재 안, 좌우로 바쁘게 걸음을 왕복하는 젊은 청년의 모습은 이제 일행들에게는 익숙하게만 보였다.
“……전하. 삼 일 뒤에 열릴 재판을 굳이 며칠 앞당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립니다.”
레오스의 대답에선 짙은 우려가 묻어 나왔다.
“이익, 검혼의 군대는?”
“이 속도라면 이틀 뒤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황자의 표정이 더욱더 굳어졌지만, 구석에 시립해 있던 외눈의 기사가 눈을 질끈 감는 것에는 둘 다 주목하지 않았다.
아마 신경을 썼어도 자신들과 같은 마음이라 여겼을 테지만.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외눈의 기사, 제롬 디카이드의 심경에는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 검혼과 삭풍이 군대가 도착하기 직전, 바로스를 죽이고 성국의 짓으로 위장하라.
남몰래 전해진 명령.
황제와 스승의 이름으로 온 그 명령이 마음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자다. 거기다 자신이 차기 황제로 밀겠다 맹세한 사람이기도 했다.
기사의 맹세와 황제의 명령.
기사로서 부끄러운 일과 신하의 도리.
심중의 갈등이 점점 심해져만 가는데 질끈 눈을 감은 그의 귓가에 다급한 목소리들이 울렸다.
“역시 핑계는 막스의 일이겠지?”
“예. 일단은 그 빌미로 트리스 님과 갈렌 님이 성도를 방문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흐, 일만의 군대를 끌고 말이지. 누가 그 말을 믿겠어.”
“하지만 애매한 숫자이긴 합니다. 정말로 점령전을 펼치겠단 의도로는 안 보이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재판에서 검은 뱀의 실체가 드러나면 제국의 적을 잡아 죽이겠다고 밀고 들어오겠지. 막스에 관한 명분도 있고.”
“그런데 트레이시 추기경도 지금 막장에 몰리지 않았습니까.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어쩌면 황제 폐하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뭘? 교황의 위를 넘기거나 제국을 섬기라는 발표? 어림없어. 트레이시가 몰린 거지 검은 뱀이 몰린 게 아니잖아. 그 영감탱이는 성국에 없다고.”
레오스가 최상의 경우를 희망적으로 얘기했지만 바로스는 그 희망에 찬 기대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 말은 확실히 객관적이었다.
자신의 운명이 걸린 일임에도 냉철한 판단력을 보여 주는 모습.
레오스는 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그 맥라인과 얽힌 일만 아니었어도…….’
그때 무너지지만 않았더라도 무난하게 황위 계승전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이렇게 황도도 아닌 곳에서 불안에 떠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지금으로선 마냥 아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럼 저희가 그 트레이시 추기경을 잡아 두는 방안은 어떨까요. 어차피 황제 폐하의 뜻을 거부할 거라면 저희 쪽의 면피를 위해서라도…….”
“안 돼. 애초에 그놈들을 끌어들인 게 나야. 꼬리 하나 잘라 간다고 면피가 되진 않아.”
“클리드 황자도 놈들과 관련해서 큰 실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만 잘 수습되면…….”
“그것도 놈들이 원인이니, 결국 내가 더 마이너스야.”
“트리스 님의 임무를 도와서 성국 장악을 돕는다면요?”
“그래봤자 남에 밥상에 숟가락 얹는 거야. 얹은 숟가락도 인정 못 받을 테고.”
대화는 뚜렷한 결론 없이 겉돌고만 있었다.
붉게 물든 석양이 창가에 비쳐 들어 붉은빛을 전하는데, 마치 초조함이 색깔을 가진 채 방 안을 물들이는 것 같았다.
차마 끼어들 용기가 없는 제롬이 멍하니 그 붉은빛을 바라보는데 바로스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웠다.
“제롬 경, 그대는 무슨 아이디어 없나?”
“……아, 예?”
“그대의 스승과 숙조부의 군대를 멈출 방안 말이야.”
그 의도가 뚜렷이 느껴지는 단어 선택. 하지만 제롬이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하. 개인적인 인연으로 움직이는 분들이 아닌지라.”
“그래. 그거야 나도 알고 있지. 하지만 아무 의견이나 말해 보라는 거야. 이렇게 생각을 마구 던지는 와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도 흔하니까.”
“아……, 예.”
무슨 생각이 날까.
가슴속에 번민도 떨쳐 내지 못했는데.
“그러니 그대도 생각나는 방책이 있다면 바로 이야기하라.”
“그러겠습니다, 전하.”
“그래.”
어깨를 두들기는 손길이 무겁기만 했다.
제롬은 자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 성녀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독대요? 갑자기?”
불쑥 찾아온 성녀는 그 용건도 특이했다.
“예. 황자님과 단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바로스는 곤혹스러웠다.
아무래도 검은 뱀과 관련하여 적지 않게 찔리는 부분이 있는지라 이번 일을 벌이면서도 성녀 측과는 최대한 접촉을 줄이려 했다. 그런데 그 중심축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독대라니?
‘무슨 생각이지?’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았지만 신비로운 은발에 새하얀 법복, 그 와중에 유독 푸르게 느껴지는 두 눈에서는 어떤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 외모의 아름다움보다 차분한 분위기가 더 인상적인 여자.
굳이 거부할 명분도 없던 터라 바로스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대들은 일단 나가 있으라.”
“예.”
“예, 전하.”
레오스와 제롬은 망설이지 않고 그 명을 따랐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후에도 성녀는 그를 빤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녀님?”
어색한 분위기에 바로스가 마지못해 먼저 입을 열자 성녀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 아직 나가시지 않은 분이 계신 듯합니다만…….”
그에 눈을 크게 뜬 바로스가 이내 할 수 없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1호, 거기 있는가.”
– ……예. 전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울리는 목소리.
하지만 성녀는 정말 그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조금도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그 제롬조차 특성을 쓰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하는 귀신을…….’
새삼 성녀라는 이름이 무겁게 다가올 때, 성녀가 갑자기 눈을 감더니 두 손을 앞에 모았다.
이내 그녀가 무언가 중얼거리는 순간.
번쩍.
새하얀 빛과 함께 성녀를 중심으로 둥근 빛의 구가 사방을 감싸 안았다.
‘성법 결계!’
치료술과 더불어 신성술의 대표적인 두 갈래의 힘 중 하나인 결계술이었다. 하나 치료술과는 다르게 막대한 신성력이 필요한 탓에 펼칠 줄 아는 사제가 드물어, 바로스조차 집단이 아닌 개인이 펼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제 온전히 대화를 할 수 있겠네요.”
“……놀랍군요.”
그조차 고작 비밀 대화를 위한 것이라 바로스는 꾸밈없이 감탄하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어진 성녀의 말은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바로스 황자. 혹시 황제 폐하를 얼마나 신뢰하시나요?”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도무지 그 속내가 짐작이 가지 않는 터라 바로스는 상대에게 말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흔들리는 자신을 느꼈다.
“……제 주변에서 누군가 떠올린 이야기온대, 그저 참람한 가정일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실제로 벌어질 경우의 파장이 너무 클 것 같아 이리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에 이어질 말의 심각함을 반영하듯 길게 이어진 서론.
그 뒤에 빙빙 돌려 이어진 말은 바로스를 섬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흐흐. 흐흐흐흐. 그런 어처구니없는……. 황제 폐하께서, 아바마마께서 나를……?”
신음처럼 힘겹게 새어 나오는 말.
자신도 모르게 힘껏 쥐어진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참으로 무리한 가정, 무례한 추측이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 만에 하나라도 실제로 이뤄질 경우…….”
“아니, 아닙니다.”
고개를 떨구고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바로스가 성녀의 말을 끊었다.
“정말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머리가 맑아지는군요.”
말과는 달리 얼굴은 창백해졌고 눈빛 또한 크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실례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아니요. 굉장히 확률 높은 추측입니다.”
나오는 말만큼은 단호했다.
“예?”
“저라도, 제가 황제라도 그리했을 것입니다. 그게 제국 입장에서는 최선의 방책이니까요.”
오히려 그리 확신하는 바로스의 모습에 성녀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들으면서도 ‘에이 설마’라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당사자가 너무도 쉽게 수긍하고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 전에, 죄송하지만 소리 좀 지르겠습니다.”
이내 벌떡 일어선 바로스는 성녀의 답을 듣지도 않은 채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빌어먹을!! 이런 X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지르는 고함, 아니 비명.
“내가? 내가 버리는 패라고?! 내가?!!”
쿵. 쿵.
결계의 벽에 다짜고짜 머리를 부딪치는 행동까지.
황자가 정말 미친 것이 아닐까 하고 일리아가 걱정을 할 때쯤에야 바로스의 발광이 멈췄다.
“후우우. 실례했습니다.”
산발이 된 머리와 피가 나도록 깨문 입술, 붉게 달아오른 얼굴까지 실로 처참한 몰골에는 어울리지 않게 침착한 목소리였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녀님.”
“아, 아닙니다, 전하. 그런데 정말로……?”
“예. 제가 헛짓거리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네요. 그 추측이 가장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사실이라면 아마도 그 실행자는……. 흐흐. 독대라니, 정말 현명한 선택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녀님.”
너무 위험한 말이라 독대를 청했을 뿐인 일리아로서는 어리둥절할 뿐이었지만 이내 행간에 숨은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바로스의 얼굴만큼이나 굳어졌다.
“그럼…….”
“이제 그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 대책을 강구해야겠지요. 그것이면 성녀님께는 충분한 거 아닙니까?”
살벌하게 번뜩이는 검은 눈.
그 안에 담긴 온갖 회한이 일리아의 말문을 막았다.
그녀는 말없이 돌아섰고, 이내 다시 들어온 일행들은 갑작스레 변화한 황자의 모습에 크게 당황했다.
“아니, 전하!?”
“대체 성녀가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레오스와 제롬이 형편없는 황자의 몰골에 분노하는데 바로스는 그저 손을 내저으며 그들을 말렸다.
“됐다. 신경 쓰지 마라. 훨씬 중요한 정보를 들었으니. 덕분에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계획이라 하시면?”
“트레이시를 먼저 쳐야겠다.”
“예?”
갑작스러운 말에 레오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반문했다.
하지만 바로스는 길게 설명해 줄 생각이 없다는 듯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1호, 거기 있나?”
– 예, 전하.
“트레이시 경에게서 그 ‘물건’을 가져와라. 무슨 수를 써도 좋다. 시간이 없다. 이틀을 줄 테니 바로 출발해.”
– ……예. 전하.
그 대답을 듣고 눈을 질끈 감은 바로스는 일행이 의문에 찬 눈빛을 느끼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롬 경. 1호가 아직 근처에 있는지 봐주겠나?”
“예? 아, 예.”
그 순간 제롬의 하나 남은 눈이 미약하게 은빛으로 빛났다.
이내 그가 사방을 훑어보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래?”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바로스는 레오스와 제롬을 손짓으로 불러들이더니, 거의 머리를 맞닿을 듯한 거리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폐하께서 나를 죽이려시는 듯하다. 그리고 실행자라면 아마도 귀신들이겠지.”
그 말에 두 신하, 특히 제롬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