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서부 7군 군단장의 죽음과 2황자의 실종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노비엔스의 동문 앞에 진을 친 제국군의 명분은 뚜렷했다.
하지만.
“신성왕국은 신의 뜻을 따르는 성지인바, 인세의 어떤 나라의 간섭도 거부한다. 굳이 사건을 조사하겠다면 대표자의 입성만을 허용하겠다!!”
들판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성국 측 대표의 말에는 조금의 물러섬도 없었다.
물론 그 말을 듣는 이들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이건 전쟁을 하자는 건데? 성국이 드디어 미친 건가?”
트리스 혼스비의 말에선 그 어처구니없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성녀가 어리다더니, 가까운 미래도 읽지 못하는가 봅니다.”
황당하긴 갈렌 디카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가 봐도 완벽한 명분을 거부한다면, 제국이 전력을 이끌고 성국을 침공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
그들이 생각할 때 지금 성국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조처는 일단 이 군대를 받아들인 뒤, 진상 조사에서 사건과의 무관함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만들지 않겠지만.’
그러나 애초에 이렇게 거부해 버리면 자신들의 짓거리라고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희박한 가능성도 남기지 않고 바로 전쟁으로 이어지는 외통수의 길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당장 이 인원으로 노비엔스를 완전히 점령하는 건 무리야.”
1만의 군세는 성에 진입한 이후 노비엔스 안에서 제국의 영향력을 확고히 하기 위한 병력이었지, 점령전을 가정한 병력이 아니었다.
더구나 노비엔스 내에서 상주하는 병력만 해도 5만에 달했다. 그들과 동행한 황실 중앙군과 혼스비, 디카이드 가문의 정예는 제국군에서도 최정예에 속했지만, 성국의 정예도 그에 못지않았다. 5배나 되는 숫자를 어찌할 수 있는 병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명분은 완벽하니 내부에서 끌 시간이 줄어든 것뿐입니다. 폐하께서는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갈렌의 말에도 트리스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일반적으로야 그렇겠지만, 다른 사람은 모르는 변수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2황자는 살아 있을까? 정말 검은 뱀 놈들이 데려갔다면…….’
제대로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고, 그것이 며칠 만에 끝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했다.
그런데 그사이에 사라졌던 2황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그리고 헛소리를 한다면?
‘예를 들면, 황제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던가…….’
그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더하여 전에 전해진 정보가 애매하다는 것도 결단을 내리는 데에 문제가 되었다.
‘그 작전을 실행했을 때 납치를 당한 건지, 아니면 그 전인 건지 그 시점부터 확실히 알아내야 한다.’
후자라면 설령 2황자가 살아 있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자면 우선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제롬과 연락을 해 봐야겠소이다.”
“그게…… 말씀드렸듯이 통신을 받지 않습니다. 중상이라 안정이 필요하다고…….”
“성국 측의 말이겠지?”
“……예.”
“본인의 의지가 아닐 수 있어. 내가 들어갔다가 오지.”
“각하!?”
“자네는 병력을 통솔하며 내 지시를 기다리게.”
갈렌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트리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황제와 자신의 비밀은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트리스는 소수의 호위기사만을 대동한 채 성문 앞으로 나아갔다.
“제국 공작, 트리스 혼스비 외 호위기사 여섯.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위해 성도에 입성을 청하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1만의 군세를 끌고 온 제국의 대표. 그것도 세상에 이름 높은 대륙제일검, 검혼의 이름은 너무나도 유명했기에 성벽에서도 소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 그 대륙제일검?”
“뭔 대륙이야, 제국이겠지.”
“그게 그거지.”
“아니지! 대륙 최고는 하먼 단장님이시지!”
“다 닥쳐! 아무튼 저 노인, 아니 저 사람이 정말 검혼?”
의외의 인물이 직접 나서자 성국의 지휘부라 할 수 있는 성기사들 사이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사자도 아니고 검혼이 직접?”
“미친, 무슨 생각인 거야?”
“이걸 어찌…….”
그리고 그 소란을 진정시킬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성문을 열어 주어라.”
“단장님!”
“어차피 예측했던 일이다. 사람만 다를 뿐.”
신검의 덤덤한 대답에 성기사들이 즉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극.
노비엔스의 동쪽 성문이 육중한 무게감을 드러내며 열리자 그 안쪽에 도열한 순백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도 천 명에 가까운 수의 기사들은 하나같이 위압감 넘치는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검혼은 내심 감탄했다.
‘과연, 이게 성국의 자랑인 성전기사단이라.’
세상 이곳저곳에 퍼져 있는 성기사들을 모두 모은다면 그 수가 1만이 훌쩍 넘어갈 거라 예측되는, 단일 이름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기사단.
그리고 성국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사단이라고도 추앙받는 성국 무력의 정점들을 실제로 마주하니 자연스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평기사의 수준도 제법이군. 포스뿐만 아니라 신성력도 사용할 테니 확실히 일반 기사들에게는 까다로운 상대겠어.’
아마도 동일한 수의 기사단은 말 그대로 압살할 수 있을 무력 단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적으로 상대해야 할 이들을 두고 감탄만 하고 있는 것도 웃기는 일이라 트리스는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고 성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자신을 환영하는 뜨거운 시선들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성도에서는 손님을 이리 살벌하게 환영하는가?”
가벼운 말과 함께 퍼지는 기세에 근방에 있던 성기사들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거인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감각. 순간적으로 꺾일 뻔한 무릎을 억지로 곧추세우는데 주변을 슬쩍 돌아보니 동료들 모두가 비슷한 상황인 듯했다.
그 기세를 직접 마주한 전열의 성기사들 백여 명은 일제히 기겁하며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 세상에 이런 괴물이?
이대로라면 곧 전열이 무너지며 추태를 보일 것 같은 순간, 누군가 그 기세를 무마하며 끼어들었다.
“손님도 손님 나름 아니겠습니까.”
성기사들의 대열 속에서 나타난 평범한 인상의 남자.
그를 발견한 순간 트리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180cm가 살짝 넘을 듯한 키는 기사들 중에서는 작은 편에 속했고, 얼굴 역시 평범해 보였지만 자신의 기세를 손쉽게 무마한 남자다.
이런 남자가 성국에 또 있을 리는 없었다.
“그대가 신검이라 불리는 하먼 경인가?”
그 목소리에는 옅은 경탄과 확신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지 못한 호의적인 음성에 하먼 역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대륙에 명성이 자자하신 검혼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도 영광일세. 신의 검이라, 성국의 위명에 기댄 우물 안 개구리일 줄 알았는데…….”
트리스는 다시금 감탄하며 마주 인사를 받았다.
대충 느껴지는 기도만 해도 자신에 필적할 듯했다.
더구나 신의 힘까지 구사한다는 성기사이니, 자신이 측정 불가능한 그 힘까지 따진다면 얼마나 강할까?
어쩌면 눈앞의 이 남자라면 자신을 능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트리스는 이내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오러유저는 그 힘이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젊음이 사라지고 급속도로 노쇠하면서 늙는다. 하지만 늙은 모습 그대로 전성기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오러의 한계를 넘은 또 다른 경지의 증명이었고, 그 근간인 포스, 즉 생명의 힘에 대한 누구보다 깊은 통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룩한 경지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이제 40대 끝자락이라 했던가?’
신성 오러의 특별함에 대해서는 자료로나마 들어 본 적 있었으나, 자신이 그보다 못하리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다만 그 나이에 자신과 필적할 수준이라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기에 그 감탄을 고스란히 담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놀라운 실력일세, 하먼 경.”
트리스의 입에서 연신 좋은 소리가 나오니 하먼 역시 날 선 태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저 역시 반갑습니다, 트리스 공. 다만 서로의 상황이 좋지 않아 유감이군요.”
“그러게나 말일세. 하지만 이렇게 마냥 대치하고 있는 건 의미가 없을 듯하니, 내가 내 제자를 만나 볼 수 있게 조치해 주겠나?”
“……물론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성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비켜서며 길을 만들었다.
정치권은 없으나 성국 내 무력에 관한 권한만은 확실한 게 성전기사단장이다. 그리고 역대 성전기사단장들 중 최고의 실력과 명망을 자랑한다는 하먼이 가지는 영향력은 단연 돋보였다.
그 단면을 본 트리스의 눈빛이 다시금 조금 굳어졌다.
* * *
“……어찌 된 일이냐?”
온몸이 붕대투성이인 제자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당황했던 그였지만, 잠시간 말없이 제자를 훑어본 다음에 나온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중상을 입었다더니, 뭐냐 그 꼴은?!”
다친 제자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노하는 모습.
그리고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제롬의 외눈이 질끈 감겼다.
“……역시 스승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군요.”
“이익, 이런 멍청한 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쿵.
제롬이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자, 트리스가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발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트리스의 몸에서 붉은 오러가 퍼져 나왔다.
“엇!”
챙!
놀란 성기사들이 검을 뽑아 드는데 지켜보던 하먼이 손을 들어 수하들을 제지했다. 솟구친 붉은 오러는 그저 검혼과 그 제자의 주변을 둥글게 감싼 막을 형성할 뿐이었으니까.
‘주변에 들려서는 안 되는 대화라……. 아무리 그래도 포스도 아니고 오러를 이만큼이나 뽑아서 고작 방음막으로 쓰다니.’
포스를 오러로 변환하는데 드는 소모율이 말도 안 되게 적거나 포스가 남아도는 것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둘 다거나.’
거기에 기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완벽한 조종 능력까지 포함되어야 저런 마법 같은 재주가 가능할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느꼈지만, 정말 괴물 같은 영감이었다.
‘나와 비교하면 어떨까?’
호승심이 들끓어 올랐다.
신검이라는 거창한 별명을 얻은 뒤부터 주변에 상대할 자가 없었다. 한데 저렇게 자신의 검을 몇 합이라도 너끈히 받아 낼 자를 눈앞에 두자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나서서는 곤란하지.’
지금 성국이 처한 상황은, 그리고 그의 입장은 함부로 검을 꺼내 들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새삼 이 복잡한 상황에 한숨을 내쉰 그는 조용히 전면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청력까지 막은 붉은 막 안에서는 밖으로는 새어 나가서는 안 되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스 황자가 알고 있었다고? 어떻게?”
“성녀가 귀띔을 해 준 것 같습니다.”
“허허, 성녀라……. 어린 사제라 하여 무시했었는데…….”
트리스는 제자의 말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황제의 계획은 제국의 이득만 생각하자면 추론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보통의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아버지가 아들을 베어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특히나 타락 사제도 아닌 성녀쯤 되는 이가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하기란 더더욱 어려울 듯했다.
“과연,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함이 있다는 것인가.”
트리스는 그렇게 잘못된 결론을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보다 가슴 아픈 것은 제자의 선택이었다.
트리스의 눈이 다시금 제자를 향했다.
생명의 힘 포스, 그 정점에 도달한 오러유저가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중상이라는 것은 셋 중 하나다. 정말로 죽기 직전의 부상이거나, 아니면 오러에 의한 상처이거나.
그도 아니면…….
자해이거나.
“내 눈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제롬 역시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자해를 하건 일부러 중상을 입건, 그 상처가 생길 당시의 모습까지 추론할 수 있는 괴물이 자신의 스승이었다.
“처음부터 스승님을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외부의 눈만 피할 생각이었지요.”
그 말에 트리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니 설명해 보거라. 설령 황자가 눈치챘다 해도 너라면 가능했을 임무다. 설마 황제 폐하가 아닌 황자를 선택한 것이더냐?”
“……거기에 제 양심과 기사의 도리를 더했습니다.”
“기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군주의 뜻이다!”
“제 군주는 바로스 황자 전하십니다.”
지체하지 않고 나오는 제자의 대답이 더 가슴 아팠다.
“대체 어쩌자고……! 어쩌자고 이놈아! 네 놈이 제국의 대계를 망쳤어! 알고 있느냐!?”
“죄송합니다, 스승님.”
트리스는 갑갑한 마음에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내 깊은 한숨을 쉬며 제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폐하께 사실대로 보고할 수밖에 없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으으으, 이 미련한 녀석아! 살고 싶다면 부탁이라도 하란 말이다!”
“폐하께서는 인재를 아끼시지요. 백의종군하게 시키실지언정 제 목숨을 거두시지는 않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네놈이 정말 정신이 나갔구나. 그게 말처럼 쉽게……!”
그저 한탄만 나올 뿐이었지만 트리스는 내심 제자가 말한 대로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단,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을 때의 얘기였다.
“제국의 숙원이 쉽게 풀릴 수 있었다. 그걸 망친 네놈이 살아남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알고 있겠지?”
“……예.”
“그럼 말해 보거라. 2황자가 살아 있다는 전제를 깔고도 우리가 성국을 접수할 수 있을 방안을.”
“한 가지 가정이 더 필요합니다.”
“뭐?”
“일단…….”
– 꼭 다시 보세. 그리고 자네가 살아날 길은…….
자신의 주군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그 말을 떠올린 제롬은 하나 남은 눈으로 자신의 스승을 응시하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