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7)
37화그 옛날의 백작가를 지탱하던 진짜 맥라인 검술은 맥이 끊긴 지 오래.
현재 맥라인 가문의 기사들이 익히는 맥라인 검술은 껍데기만 남은, 사실상 말만 중급검술인 것이다.
로건은 그저 따로 생각한 바가 있어서 거절하는 것뿐이지만, 듣는 이가 그 속셈을 알 수는 없었다.
“……흠. 굳이 그걸 원한다면야 뭐, 어쩔 수 없지. 정말 그것으로 충분하다면 따라오너라.”
로건의 부탁은 그가 예상한 대로 검공에게는 아주 쉬운 부탁이었다.
* * *
“오셨습니까. 그런데 뒤에 분은?”
“내 손님이다.”
“……예?”
검공이 자신이 그리 소중히 여기는 연무장에 누군가와 함께 왔다.
게다가 새파랗게 어린놈을 검공이 직접 손님이라 칭했다.
연무장을 지키던 기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하느냐. 볼일이 있으니 열거라.”
“예!”
검공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짤막한 대답과 함께 두꺼운 석문을 움직였다.
그그그긍.
폭이 50cm는 넘을 것 같은 두꺼운 석문이 기사의 힘에 밀려 좌우로 벌어졌다.
이내 사방이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연무장이 눈에 들어왔다.
로건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수많은 검이 걸려 있는 진열대였지만, 곧바로 그 옆에 있는 서가로 시선이 옮겨졌다.
연무장에 어울리지 않는 책장의 모습에 로건이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검공이 서슴없이 책장으로 다가가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로건에게 던졌다.
『천공(天空)』 하급검술서라기엔 지나치게 거창한 이름이었기에 로건이 의아한 얼굴로 펠릭스를 바라보았다.
“하급 검술서 맞다. 이것만 수련하다가는 몸 상하기도 딱 좋고. 하지만 독특한 점이 있으니, 참고삼아 한 번 읽어 볼 만할 것이다.”
하지만 로건은 어차피 검술서에는 기대도 없었다.
“하면 증명서는…….”
“끌끌. 정말 그거면 되겠느냐? 욕심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괜찮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중급검술서는 어떻겠느냐? 꽤나 괜찮은 수준의 것도 있는데?”
물건을 주는 이가 오히려 더 못 줘서 안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로건이 원하는 바는 바뀌지 않았다.
“그냥 증명서만 따로 써 주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검술서의 이름 명명 없이 저에게 주신다는 논조로…….”
검공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중급검술서를 받으면 정말 공정한 거래가 된다. 그러면 그걸로 이 인연은 끝이지.’
로건이 생각하기엔 딱 그 정도가 한계였다.
아무리 상대가 기뻐한다 해도 고작 정력제이자 불능 치료제일 뿐이다.
그는 금방 검술서 위에 올려진 증명서를 집어 들며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로건이 뿌듯한 마음으로 증명서를 살피는데, 그를 바라보던 펠릭스가 황당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검술서는 아예 챙기지 않을 참이더냐?”
“아. 죄, 죄송합니다.”
“네 녀석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검공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로건이 어색하게 웃는데,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구나.”
“예?”
“네가 만족한다 해도 내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거래는 공정하지 못하니 다른 것을 주겠다. 받겠느냐?”
‘그냥 그 빚진 마음을 간직해 줬으면 좋겠는데…….’
하나 검공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더 거절하는 것도 곤란했다.
“저는 이것으로 정말 괜찮습니다만……. 하하, 더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군요.”
빚을 지는 느낌이 아니더라도 서로 만족한 거래라면 연은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로건은 갑자기 기대감이 생겼다.
‘뭘 주려나?’
검공이라면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간단한 선물 수준은 아닐 것이다.
이런저런 상상으로 로건의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내가 친히 너에게 써먹을 만한 수법을 가르쳐 주겠다.”
이어진 펠릭스의 목소리가 그를 얼어붙게 했다.
‘가르침?’
그것도 왕국 최강 검호의 가르침이라니.
유명 기사단의 중급 검술은 수천만 골드에도 거래되지 않았다.
보통 국가 기밀에 속할 정도의 비전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왕국 최강의 오러유저라는 검공의 가르침은 그 이상의 가치일 수도 있었다.
‘물론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정말 과한 수준이라면…….’
그게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로건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네가 겸손하고 큰 것을 바라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은 잘 알겠다.”
“……예?”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 받아보는 평가에 로건이 어리둥절한데.
“하지만 내 마음이 편치 않아서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이것이면 네가 나와 인연이 생겼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증명할 수 있지 않겠느냐.”
검공이 인자하게 웃으며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 왔다.
아무리 신검의 비전이 있다고 한들, 현시대 왕국 최강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며 가르침을 준다는데 억지로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검공의 말대로 그것은 본래 로건이 거래를 통해 얻고자 했던 연을 초월하는 인연을 맺는 것이기도 했다.
‘제대로 대박이구나.’
미래를 위해 감수하려던 손해가 몇 배의 이득으로 돌아왔다.
결심을 마친 로건은 곧바로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그래. 이제야 그 나이 또래 젊은 애 같구나.”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검공이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로건을 향해 다가왔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마다 조금씩 강해지던 기세가, 그가 다섯 걸음 앞까지 다가왔을 때는 보는 것만으로 질식할 듯한 위압감으로 변해 있었다.
그 상태에서 검공이 칼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꿀꺽.
로건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데, 잔잔한 음성이 이어졌다.
“집중해라.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는 않을 것이다. 뛰어난 젊은이의 재능을 가늠해 보는 것도 늙은이의 즐거움 중 하나니.”
그 말과 함께 미소를 버린 검공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해지고,
“자. 검을 뽑아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 끝에서 뿜어진 기세가 로건의 전신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윽!’
검을 뽑으라 했지만 그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허리춤의 검집으로 향하던 손이 검공의 기세를 뿌리치지 못해 덜덜 떨렸다.
‘이것이 오러유저…….’
전생에는 오러유저와 직접 상대해 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용병 생활 때는 아군이건 적군이건 가까이 다가갈 수준조차 안 됐기 때문이었고, 독립군 시절엔 아군의 오러유저는 한가롭게 그를 상대해 줄 시간이 없었으며 제국의 오러유저는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그러니 멀리서만 보았던 오러유저의 실체를 직접 겪는 지금의 경험이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그런데 수준의 격차가 생각보다 더 심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억지로 움직이려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게 오러유저라고 다 할 수 있는 일일까?’
아무리 수준 이하의 상대라지만 무형의 기세로 마법처럼 전신을 묶어 버리는 기예가?
그렇다면 대륙의 모든 전쟁은 다른 병력은 필요 없이 오러유저와 오러유저의 싸움으로 결판이 났을 것이다.
‘이것 자체가 특별한 수법이다.’
생각이 바뀌자 대처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우웅.
심장의 포스코어가 진동하며 힘차게 에너지를 뿜어냈다.
두 개의 코어를 거쳐 증폭된 포스가 육체 전체의 능력이 아닌, 감각만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시적이나마 명상 상태에 준할 정도로 고양된 감각이 자신의 신체를 구속하는 기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내 상황이 조금씩 읽히기 시작했다.
‘증폭. 집중. 분산.’
검공이 포스를 끌어 올리며 자연스럽게 퍼트린 기세가 특정 순간 증폭되고, 하나로 집중되어 그의 몸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움직이려 할 때마다 그 시작점을 자극하여 힘을 허공으로 분산시킨다.’
분석은 되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아직도 미지수였다.
다만 그 순간 몸을 움직일 방법은 찾아낼 수 있었다.
검공의 기세가 힘을 분산시키려 하는 타이밍에 반 박자 빠르게 움직이기.
이 단순한 행위 자체만으로 로건은 검을 뽑아 들 수 있었다.
챙!
“역시…… 재능이 있구나.”
감탄한 듯한 검공의 한마디와 함께 몸을 압박하던 기세가 한순간에 사라지는가 싶더니 일순 그의 검으로 모여들었다.
우우웅.
그리고 붉은빛 칼날이 검 위에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오러블레이드?’
검공 내부의 포스와 외부의 기세가 조화를 이루며 이능으로 이루어진 유형의 칼날을 만들어 내는 모습.
그 모습이 로건의 감각에 또렷이 새겨졌다.
‘아, 아니. 아니야. 이건…….’
그렇게 로건의 눈에 깨달음의 빛이 감도는 순간.
“잘 보거라. 이것이 바로 중압검(重壓劍)이다.”
검공의 말과 함께 거대한 붉은 검이 그의 머리 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얼핏 봐도 3m는 넘게 솟아난 붉은 검.
저릿하게 느껴지는 힘만으로도 받아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대로만 구현한다면 일정 수준 이하의 상대에게는 쏠쏠히 먹힐 만한 재주다. 천천히 보여 주마. 집중해라!”
붉은 검이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로 머리 위로 떨어졌다.
‘피, 피해야…… 윽!’
내리꽂히는 칼날을 회피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붉은 검에서 비롯된 기세가 온몸을 파고들며 감각을 교란했다.
칼을 뽑기 전에 느꼈던 기세의 압박이 훨씬 강화된 느낌.
몸이 주인의 의지를 전혀 따르지 않는 것 같은 무력한 기분이었다.
‘저 칼날이 기세를 훨씬 강화하고 있다.’
직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원리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리를 알았다고 한들, 당장 어찌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웅.
그 순간, 몸 안의 작은 울림이 로건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좀 더 격렬해진 포스가 그의 내부로 파고드는 적의 기세를 중화시키기 시작하며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로건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허?”
검공이 의외라는 듯 웃더니, 일순간 붉은 검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능적인 감각이 이 공격은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큭!’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로건의 검이 황금빛 광채를 휘감고 치솟아 올랐다.
꽈아아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로건의 몸이 튕겨 나갔다.
쿵.
털썩.
연무장의 벽에 거세게 부딪히며 바닥으로 쓰러진 로건.
간신히 머리를 치켜든 그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피를 토해 냈다.
쿨럭.
부러진 검을 땅에 박은 채로 간신히 상체만 일으키는 모습에, 심각한 내상을 입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간신히 입을 뗀 로건에게서 나온 첫마디는, 검에 대한 의문이었다.
“오, 오러블레이드는 아니……?”
그 모습이 기꺼웠을까, 검공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따라 할 수도 없는 것을 가르치겠느냐. 제대로 보았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로건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풀썩.
그 만족한 표정 그대로 로건은 의식을 잃었다.
* * * 그르릉.
연무장의 문을 열고 나오는 검공을 본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안에 들어가면 기절한 녀석이 있을 거다. 곱게 치료실로 데려가라.”
“……예?”
공작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들이지만 이번엔 전혀 예상치 못한 명령인 듯, 반응이 조금 늦었다.
‘손님이라더니?’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은 한 가지였다.
하지만 검공은 그들의 의문을 해결해 주지 않았다.
“응급조치는 해 놨으니, 잘 치료하고 다 회복시킨 다음 내게 전하거라. 아직 녀석에게 할 말이 남았으니.”
“예!”
기사들의 대답을 들은 검공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야.’
말만 무겁게 했을 뿐, 원래는 실제로 손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날 옷자락을 잘라 낸 검은 제법 매서웠지만, 녀석이 중압검 앞에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 자체를 안 했으니까.
그런데 놈은 예상을 벗어났고, 그는 감탄의 마음을 담아 조금은 진지하게 손을 쓰고 말았다.
무릇 몸으로 배우는 공부는 상처와 함께 느는 법이니까.
‘젊은 층 중에 저놈과 비슷한 놈이라도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에스페란자 기사단 내에서도 저 정도의 재능은 없었다.
‘확실히……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어.’
검공, 펠릭스 에스페란자가 본격적으로 로건에게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