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71)
371화제국과 성국의 전쟁 소식으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그 저변에서 퍼진 소문들 때문에 갑자기 유명해진 이름이 있었다.
“검은 뱀? 뭐야 그게?”
“마법사들이라던데.”
“영혼을 조종하고 괴물을 부린다고? 마법사가 아니라 악마 아냐?”
“그러게.”
특히나 노비엔스에서 멀리 떨어진, 전쟁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이들은 전쟁보다 검은 뱀의 마법사들에게 더 관심을 보였고, 자체적으로 온갖 소문을 생산해 냈다.
게다가 그들은 제국과 성국에서 동시에 수배된 공적이었다. 때문에 그 많은 소문들의 결론은 결국 비슷하게 수렴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 추종자들!
당사자들은 억울할 만한 누명이었지만, 그들의 실체를 아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사실에 가깝게 느껴지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들끓는 소문에도, 정작 그들은 성국에서 모습을 감춘 이후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인간이 있는 사회에서는.
* * *
“크르르르.”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집채만 한 덩치의 검은 늑대가 갑작스레 자신의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자그마한 생명체를 보며 위협적인 음성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자신이 그 먹이(?)를 단숨에 덮치지 않고 그저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본능의 괴리 때문이었다.
겉모습과 능력이 다른 경우가 많은 마수들의 숲. 다른 지배자라면 본능이 말하는 바에 좀 더 신경을 썼겠지만, 이놈은 그렇지 못했다.
최근 다른 구역에서 쫓겨났거늘, 이 지역에서는 오히려 자신보다 강력해 보이는 마수가 영역을 비켜 주는 이상한 경험을 몇 번이나 한 탓이었다.
그것이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한 ‘동쪽의 왕’이 얼마 전 사라진 까닭에, 그의 새끼가 아닐까 하는 오해 때문이라는 것을 알 리 없는 놈은 이제 본능을 믿지 못했다.
그랬기에 꺼림칙한 느낌을 무시한 채 앞발을 휘둘렀다.
그리고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깨애애앵!”
단숨에 으스러졌어야 할 먹이 대신 자신의 앞발이 으스러져 버린 것이다.
눈이 뒤집히는 고통 속에서도 놈은 먹이를 찢어발기기 위해 두 개의 주둥이를 동시에 들이밀었다.
“꺼져라.”
그러나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휘저어진 손짓 한 번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쿠우우웅.
두 개의 머리를 한꺼번에 잃은 마수는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며 그대로 땅으로 쓰러졌다.
단숨에 놈을 처리한 노인은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이런 심처에 있을 만한 놈이 아닌데…….”
– 크르르르.
– 캬오오.
– 크륵.
갑작스레 생긴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풍기는 피 냄새를 맡은 다른 괴수들이 멀리서 붉은 눈을 빛냈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노인에게는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자신이 일부러 내뿜고 있는 마기(魔氣)는 그보다 못한 마수들에게는 접근을 불허하는 강력한 마수의 위협으로 느껴질 테니까.
지금 덤빈 이놈이 이상한 예외일 뿐이었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군.”
영상이 뚜렷해지고 있어.
노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흡사 마수림이 아닌 동네 뒷산에 마실을 나온 듯한 표정이었지만, 전신에서 흉포하게 솟구쳐 오른 회색 마력은 마수림의 자욱한 마기를 밀어 내며 이 땅에서 일어난 얼마 전의 사건을 읽어 내고 있었다.
대지의 마법사도 아닌 자가 마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수림에서 보이는 이적.
하지만 노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마법으로 흔적을 확인할수록 점점 불쾌한 의심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의 마법으로도 완전히 읽어 낼 수 없는 영상에서 조금씩 이상한 점이 보이고 있었다.
‘보고받은 것과 생김새가 달라.’
마수림의 짙은 마기 때문에 색상은 물론이고 형상조차 완벽히 구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얼핏 보이는 얼굴의 생김새는 보고받았던 험상궂은 얼굴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행동이 조심스러운 것이 미친 것 같지도 않고.’
물론 워낙 뚜렷한 흔적에서 추적해 온 것이니 그놈이 아닐 확률은 극히 낮았다.
‘좀 더 추적해 보면 알겠지.’
다행히 놈은 이 심처로 진입하며 꽤 격렬한 전투를 벌인 것 같았다. 강렬한 포스의 흔적과 사념의 흔적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성검의 추적 또한 빨라지고 있었다.
그 미쳤다는 놈과 함께 마수에게 먹혔을 가능성도 있지만…….
“헤리온 스틸로 만들어진 성검이다. 어떤 마수도 소화시킬 수 없어.”
노인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하며 점차 발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이내 뼈만 남은 트윈 헤드 오우거의 사체를 지나 거대한 뱀의 사체를 보았을 때는 노인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흔적이 끊겨 버린 것이다.
‘잡아먹힌 건 아니야. 배를 찢고 도망쳤어. 미친놈이 이렇게까지 강하다고?’
내내 이어지던 찜찜함이 막연한 불안감에 형태를 더해 갔다.
‘어쩔 수 없다.’
우우웅.
노인이 평생을 걸쳐 연마해 온 차원의 마력이 광대한 스캔 마법이 되어 그를 중심으로 마수림 전역을 훑었다.
마수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위장한 마기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그 거대한 마나의 흐름은 주변 마수들의 이목을 끌었다.
– 캬오오!!!
– 크르륵!?
– 쿠에에엑!
마나의 향기.
한없이 마기에 가깝지만 확연히 다른 느낌에 거대 마수들이 몸을 일으켜 그 근원지로 향했다.
쿵. 쿵. 쿵.
다가오는 그 위협들을 느끼면서도 노인은 막대한 마력이 빨아들인 사념과 정보를 분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도 결과가 있었다.
‘허공을 밟으며 질주……. 저쪽이다!’
목표가 남긴 사념이 아주 강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몰릴 때까지 몰린 직후였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허공을 질주한 무력은 예상외였지만.
‘아티팩트겠지. 아티팩트여야만 해.’
불길한 예감을 애써 외면하며 노인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과거의 사념이 보여 주는 흔적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그 순간.
“크롸롸롸롸!”
사자의 몸에 달린 뱀 꼬리, 박쥐의 날개.
인세에서는 이제 설화에서나 등장하는 마수 베히모스가 동굴 같은 입을 벌리고 그를 삼키려 들었다.
물론 그것이 노인에게 위협이 될 수는 없었다.
“마왕의 파편을 먹고 사는 버러지 주제에!”
불길한 예감은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이내 회색 마력의 격류가 되어 노인을 삼키려던 베히모스를 찢어발겼다.
촤자자자작.
쏴아아아아아.
“끼…….”
동쪽의 왕이 사라진 뒤 그 빈자리를 노리던 강자 하나가 허무한 비명만을 남긴 채 육편이 되어 흩날렸다. 쏟아지는 검은 피에 달려들던 다른 경쟁자들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덤이었다.
“덤빌 테면 덤벼라.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줄 테니!”
마수들이 그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진득한 살기와 소름 끼치는 마력이 마나의 향에 취해 달려들려던 마수들을 주춤하게 했다.
그 틈에 노인은 어수선한 공간 사이에서 마지막 흔적을 찾아냈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은 듯 한참의 허공을 날아 나타난 흔적.
하지만 생명의 위기라도 느낀 것인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사념이 있었다.
“보여라!”
굳이 소리 내지 않아도 될 일에 고함을 친 것은 불길한 예감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목표가 뿜어낸 사념은 지금까지의 영상보다 더욱 생생한 정보를 그의 뇌리에 전달해 주었다.
이제까지는 없던 생생한 색상까지 더해서.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우우웅.
“황금색 포스……?!”
그럴 리가. 운명을 바꾸는 자는 한 시대에 둘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이 목표를 착각했다?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인의 두뇌는 순식간에 정답을 뽑아냈다.
“흐흐, 그 가일이라는 놈이 그놈이라고? 포스의 색을 바꿀 수 있었던 거야?”
확신하고 있던 상식이 깨어지고 다시 재정립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 자체는 질 높은 경험으로, 영혼의 격을 높이는 근간이 되니까.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거하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증거가 된다면?
“내가 시조의 유물을 강탈당한 것도 모자라 그것으로 사기까지 당했다고?!”
솟구친 분노는 거센 마력의 격류가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콰콰콰콰콰.
별다른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마수림의 심처에서 회색 소용돌이가 일었다.
– 캬오오…….
– 크롸?
– 캬아아…….
근방에 있던 모든 마수들이 소용돌이의 근원지를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제물 주제에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남부 산맥과 더불어 2대 마역으로 불리는 마수림 안에서, 한 인간이 그 어떤 마수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퍼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무의미한 행동임을 느낀 노인은 이를 갈며 지면에 내려앉았다.
“후……. 그래 운명을 바꾸는 자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래. 그래야지.”
까드득.
오랜 연구 끝에 초고대의 자료를 해석해 낸 결과인 ‘운명을 바꾸는 자’들의 행태를 떠올린 노인은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렇게 간신히 분노를 가라앉힌 노인이 회색 눈동자를 들어 다시금 지면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그저 땅이 아닌, 이 자리에 쓰러졌었던 과거의 한 인물이었다.
“운명을 바꾸는 자라면 여기서 죽지는 않았겠지.”
아직은 놈의 손에 성검이 들려 있었다.
일국의 왕인 놈이 그렇게 티가 나는 검을 들고 복귀했을 리는 없다.
그 말인즉.
‘이곳 어딘가, 마수림 안에 숨겼을 것이다.’
아니, 몰래 숨겨서 맥라인에 들고 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제물로 삼을 놈. 대업의 준비가 끝나는 날 성검과 같이 회수하면 그만일 터.
다만 지금은 그저 오기가 생겼을 뿐이었다.
“어디 한번 보여 봐라.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성검을 이곳에 숨겼다면 일단 찾고, 그게 아니라면 놈의 속셈을 파악할 근거가 될 것이다.
일단은 놈이 마수림에서 행한 모든 것을 다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다시금 사념의 기억을 들여다보려 한 순간.
– 크르르르.
노인의 눈에 보인 것은 놈이 아닌 12개의 눈을 가진 거대 괴수뿐이었다.
– 크아아아아아앙!
사념 속에서 행해진 거친 포효.
분명히 과거에 존재했던 기억에 불과해야 할 음성은 남은 사념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본래대로라면 마도사로서 그 이상 현상을 탐구하며 즐거워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어떤 개새끼가!!!!!”
노인은 애써 잠재운 분노를 다시 폭발하듯 터트렸다.
* * *
“컹!!”
“왜 그래, 티르?”
왕궁의 마당에서 티르와 함께 뛰놀던 아이, 스텔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에 뭐 있어?”
“컹! 컹!”
갑자기 우뚝 멈춰 서서 북쪽을 보며 짖는 친구가 의아했지만, 아이의 눈엔 별다른 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왕궁의 중심부, 신수의 계약자는 그런 티르의 외침을 전해 듣고 있었다.
– 적. 친구. 쫓는다.
“음?”
“왜 그러십니까, 폐하?”
“아니, 아닐세. 계속 보고하게.”
“……예.”
로건은 말과는 달리 드웨인의 재정 보고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적이 나를 쫓는다?’
보통 티르와의 영통은 꽤 직관적이었지만 너무 단순했기에 해석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추론이 쉬웠다.
이미 예상했던 것 중 하나였으니까.
‘카셀 마탑……. 아마 마수림이겠지. 가일의 흔적을 쫓는다면 어디까지 왔을까? 그건 발견했을까?’
마수림에 해 놓은 장난을 떠올린 로건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어차피 그곳에서 카셀 마탑이 얻을 것은 없을 테니까.
더구나 지금은 훨씬 중요한 사건에 대해 집중해야 할 때였다.
“성국과 제국의 전쟁이 실제로 벌어지면 그 여파는…….”
로건은 다시금 눈을 빛내며 회의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