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제국 내부의 물자가 성도 주변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정말 전쟁이 벌어질 듯합니다.”
“예측되는 결과는?”
“성국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제국에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병력의 차이 때문인가?”
“예. 하지만 수적인 차이는 아닙니다. 일반 병력은 성국이 더 많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 성기사의 수가 어마어마할 테니까.”
“맞습니다. 다만 대륙에 퍼진 신전의 전력을 전부 노비엔스로 모을 수는 없습니다. 더하여 질적인 차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조용하게 울리는 데미안의 목소리에 방 안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 집중되었다.
“병사들의 훈련 수준이야 광신도 특유의 광기로 갈음한다 해도, 성국에서 알려진 초인은 신검을 제외하면 셋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게 성국의 패배를 예측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닙니다만.”
“더 큰 이유가 있다.?”
“성국의 근거지가 노비엔스뿐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음?”
“대륙에 흩어진 신전 병력을 모조리 집결시킨다 해도, 제국군에 둘러싸여 파상공세를 당한다면 결국 보급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데미안의 말은 설득력이 넘쳤다.
검공을 비롯하여 루터, 위켄 군단장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왕성 회의에 참석한 패드릭 맥라인과 마법병단의 단장이자 왕실 마탑주, 클레이튼 또한 서로 눈을 마주치며 동의를 표했다.
외부엔 숨겨진 초인 로니안과 빅토르는 물론, 클레이튼의 제자인 빅토리아까지 한발 물러서서 회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사실상 왕성의 실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데미안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어찌 되었건, 지금 상황만 보면 우리에게는 최상의 결과이긴 합니다.”
“제국이 성국을 정복해도?”
“……제국이 지금의 명분을 밀어붙여서 성국을 병합한다 해도 그 진통이 적어도 10년은 갈 겁니다.”
“그 후에는?”
“……대륙인의 정신까지 대표하게 된 제국의 위세가 천 년은 더 이어지겠지요. 물론 그 전에 대륙 전체가 제국의 발아래 눌릴 겁니다만.”
그 말에 방 안의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로건 역시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으나 이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자, 어쨌건 당장은 좋은 상황이야. 그럼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제국을 선제 공격하는 방법은…….”
“……제국의 동부 군단과 베일에 싸인 중앙 군단은 움직이지도 않고 있습니다. 선제 타격으로 제국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은 좋지만, 그동안 저희가 준비한 전략 대다수는 수비에 맞춰져 있습니다. 괜히 제국의 화살을 나서서 맞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 역시 아니겠지요. 경솔했습니다.”
간만에 왕성 회의에 출석한 거인, 4군단장 루터 카일이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쭈그러들었다.
“나 역시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네, 루터 군단장. 몸이 근질근질한 것은 알겠지만, 호승심은 잠시 참아 주시게.”
“예, 폐하. 면목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는 게 좋겠나, 데미안?”
“저희에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제국이 성국과 소모전을 벌이다가 그냥 물러서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황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겠습니다만.”
“혹시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사라진 2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바로스 황자?”
“예. 이미 제국은 검은 뱀, 카셀 마탑의 존재를 공표함으로써 2황자가 무슨 말을 해도 대중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놨습니다. 하지만…….”
데미안이 로건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바로스가 죽지 않고 피하게 된 그 근본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이 로건이다.
성녀를 통해 전해진 당시의 정보를 생각하면 나올 말은 뻔했다.
“미리 알고 피한 그자가 이런 상황도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지.”
“예. 물론 막연한 기대이기는 하겠습니다만, 그가 자신을 버린 황실을 엿 먹일 방법을 준비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하지만 그건 그대의 말 그대로 기대일 뿐이야.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물었네.”
“짐작하시겠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성국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제국을 향한 선전 포고나 다름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
“그렇다면 역시 소수의 강자들을 보내 성국을 돕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능하면 알려지지 않은 초인……들을요.”
하기 힘든 말을 억지로 하는 듯, 데미안은 상석 특히 왕의 옆자리를 보며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그 대상, 왕비 에일렌이 굳은 얼굴로 옆을 바라보는데 아내와 시선이 마주친 로건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카셀 마탑엔 대지의 기억을 살펴 과거를 읽어 내는 마법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티르의 신호도 있었으니…….’
카셀 마탑에서는 이미 가일과 자신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아마 성검 때문에라도 환장해서 찾고 있겠지.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더라도 지금 내가 나서는 것은 도박이야.’
제국을 가장 큰 적으로 두고 있는 이상 지금은 동지라고 볼 수 있지만, 혹시나 어떻게 이용될지 모르니 자신은 당분간 자리를 지켜야 했다.
아마 그랑을 나서는 즉시 추적이 시작되지 않을까.
로건은 그렇게 짐작하며 말했다.
“지금은 내가 갈 수 없어요.”
그 말에 에일렌이 눈에 띄게 안심했다.
‘날 그리 걱정하는 건가.’
훈훈한 마음에 뿌듯한 미소를 짓는데, 에일렌이 예상치도 못한 말로 뒤통수를 때렸다.
“그럼 가일 대신 아머드가 나설 차례군요.”
“뭐?!”
로건은 앉은 자세 그대로 반쯤 튀어 오를 뻔했다.
아머드, 소왕국 연합에서 ‘테로난의 수호자’로 명성을 떨친 초인이자 에일렌의 변장한 얼굴.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에일렌은 당당한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왜요? 나는 당신처럼 포스 색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잖아요.”
“아,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동생과 빅토르 쪽을 돌아보았다.
애초에 염두에 두고 있던 인선은 그 둘과 부르델 정도.
이기적인 선택이라 해도 할 말은 없었지만, 솔직히 아내의 출전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인선이 딱 맞지 않아요? 더군다나 난 특성상 생존에도 월등히 유리하잖아요. 남장이야 이미 왕국 연합에서 충분히 해 봤고.”
“……아니.”
“자꾸 빅토르 경이나 로니안 백작 쪽을 보는데, 저 두 사람은 포스의 색깔 때문에 후환이 남을 여지가 있어요. 내가 가장 적당해요.”
“……끄응.”
완벽한 논리였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싫은 이기적이고 못난 남편은 간절한 눈빛으로 집안의 어른들을 바라보았다.
그에 검공이 헛기침을 하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왕비님. 일국의 왕비가 타국의 전쟁에 용병으로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무리한…….”
“어마나, 각하. 맥라인 왕국의 왕비가 아니라 테로난의 수호자, 아머드 하센이 나서는 거예요. 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아예 다른 신분이 괜찮겠네요.”
할 말을 잃은 검공이 소리 없이 침몰하자 이번엔 시아버지가 등판했다.
“왕국의 중심은 왕실이고, 왕실의 중심은 왕가의 안전입니다. 왕과 왕비께서 자리를 지켜 주셔야 든든한 왕국이…….”
“왕은 이미 몇 번이나 자리를 비웠거든요. 뭐, 덕분에 든든한 대타들도 생겼고요. 아버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황당한 표정의 패드릭이 할 말을 잃고는 로건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냐?
맥라인 영지에만 있다 보니 로건의 잠행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탓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표정을 보며 좌절한 로건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측근들은 하나같이 땅으로 천장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로건이 옅은 배신감까지 느끼던 찰나, 에일렌이 뚱한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그 모습은 뭐예요? 당신은 되고 난 안 돼요? 설마 또 얼마 전처럼……!”
“아. 하하하. 그, 그럴 리가요.”
웃고 있지만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어느 남자가 자기 부인이 전쟁터에 나가 칼을 휘두르기를 바라겠는가.
하지만 왕비 이전에 기사이기를 원하는 에일렌에게 그 말은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래. 그래야지.’
알면서도 또 이런 실수를 한다.
로건은 한숨을 내쉬며 한심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러고는 언제 당황했냐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다만 로니안과 빅토르, 부르델까지 모두 함께 갑시다.”
“……예?”
그 말에는 에일레 뿐만이 아니라 지켜보던 모두가 놀랐다.
“폐하! 너무 과한…….”
검공이 황급히 부언했지만, 로건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상대는 제국입니다.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해야지요. 알려지지 않은 초인들은 모두 동원하는 게 맞아요. 그래서 혹시나 성국이 전쟁에 이긴다면 그게 더 최상일 테고요.”
너무나도 희망적인 말이었지만, 그렇기에 거부할 수 없는 말이었다. 성국이 제국에 비해 초인 전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앞서서도 나온 결점이었으니까.
다만 맥라인에는 로건이 미처 생각지 못한 초인이 한 명 더 있었다.
“폐하,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리아!?”
“무슨!?”
자신의 오빠와 스승이 경악하는 가운데 당당히 한 발 앞으로 나온 세계 최연소 마도사가 미소를 지었다.
“리아. 네 마법의 특징이 너무…….”
“걱정 마세요, 폐하. 골렘을 안 쓰고도 초인을 상대할 자신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멍청이 같은 오빠만 보내기엔 제가 너무 불안합니다. 저도 보내 주세요.”
로건이 황당한 눈으로 빅토리아의 옆을 바라보는데, 결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오빠와는 달리 클레이튼은 걱정스러운 얼굴이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대지 마법과 관련해서라면 이미 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끙…….”
그 단언에 막 목소리를 내려던 빅토르는 신음 같은 소리와 함께 침몰했다.
물론 그럼에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한 번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 아닐까요?”
“왕비야 확실한 대역이 있으니 문제 없고, 그 외에는 대외적으로는 왕의 동생과 그 친구, 왕국 최고 마도사의 제자와 용병일 뿐입니다.”
“그래도 혹시 누군가 하나라도 잘못되면 왕국에는 너무 막대한 손실입니다.”
“그러니까 더욱 뭉쳐서 보내야지요. 전쟁 속에서도 서로의 안위를 가장 먼저 챙기라고 당부해 두었습니다.”
“으음…… 그렇다면야.”
왕국 수뇌부 중 가장 보수적인 검공이 그렇게 물러섬으로써 모든 게 결정 났다.
* * * [알려지지 않은 초인을 다섯 명이나요? 빅토르 경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이지 엄청나군요, 폐하.]
“더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저희도 몸을 사리고 있어야 하는 상황인지라.”
로건의 말에 통신구 속 일리아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넘치는 도움입니다. 맥라인은 정말 제국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군요. 어떻게 그런 것을 예측하셨습니까?]“예?”
[폐하께서 연달아 도움을 받다 보니, 정말 예지력이라도 가지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아……. 하하, 그럴 리가요. 다만 황제를 보고 제국을 겪으면서,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확신했을 뿐입니다.”
절반의 진실뿐이었지만, 로건은 성실히 답했다.
그런데 돌아온 성녀의 답이 조금 이상했다.
[그럼 같은 것을 보면서도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 너무 못나 보이는걸요.]말에서 왠지 묘한 가시가 느껴지는 듯해 로건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통신구를 바라보았다.
교황의 직위를 뜻하는 새하얀 법관을 쓴 성녀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