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73)
373화 [하지만 아무리 서둘러도 10일은 걸릴 겁니다.]
“겨우 10일이면 되는 겁니까? 혹시 과장해서 말씀하신 거면 괜히 실망시키지 마시고…….”
[예? 성녀님 지금 무슨 말씀을…….]“아, 아닙니다, 폐하. 제가 말이 또 헛나왔습니다. 도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스트레스가 심하신 것 같군요.]“……면목 없습니다.”
일리아는 자꾸만 심해져 가는 두통에 간신히 통신을 끝내고 법관, 센텐티아(Sententia)를 벗었다.
“윽!”
순간 핑 도는 머리에 일리아가 머리를 잡고 비틀거렸다. 간신히 다시 균형을 잡았지만, 손에서 굴러떨어진 센텐티아는 잡지 못했다.
탁.
데구르르.
머리를 감싸 쥐고 호흡을 고른 일리아는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에나 눈을 뜨고 바닥을 뒹구는 성물을 바라보았다.
9대신의 성물. 9개의 성물 중 하나인 교황의 법관 센텐티아.
고대어로 지혜를 뜻하는 성물이 징그럽게만 느껴졌다. 비밀 통신이기에 대동한 이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리아는 선뜻 법관을 주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흐린 눈으로 성물을 바라보던 일리아는 이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대체 왜…….”
얼굴을 감싸 쥔 두 손.
센텐티아를 받은 후로는 이전처럼 습관적인 기도조차 하기가 힘들었다. 기도를 위해 손을 모으는 순간 자신의 정신이 푸른빛 속에 매몰되어 사라지는 것 같았으니까.
언제나 아늑함만을 선사하던 아문다의 푸른빛이 최근에는 두렵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들려오는 신언 또한 끔찍했다.
– 붉은 눈$%@ 죽여%%…… 신의 적.
센텐티아를 써서 감응력이 높아진 뒤부터 가장 많이 들린 신언.
완벽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다른 해석의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즉, 자신과 성국을 돕고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준 은인, 로건 왕을 죽이라는 뜻이었다.
그 신언과 자신의 이상 반응이 그녀의 신앙을 근간부터 흔들고 있었다.
처음엔 법관을 쓰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닐까 싶었지만, 요즘처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성국의 대표가 그 상징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언젠가부터 일부러 쓰지 않겠다고 생각할 때도 어는 순간 법관이 머리 위에 올라와 있었다.
좀 전에 통신을 했을 때처럼.
이제는 성물이 흉물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흐흑.”
자신이 잠식되고 있다는 공포는 그녀의 굳건한 신앙으로도 이겨 내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그 결과가 은인을 의심하고 죽이는 비정상적인 패륜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더더욱.
지금도 통신을 하는 내내 이상한 소리만 하며 은인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았는가.
그러면서도 그의 도움을 거절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그것도 말도 안 되게 엄청난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을.
“아니야! 정말 나의 신이시라면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뭔가 잘못된 거야……. 그자들……. 그래, 그자들이 내게 무슨 수를 쓴 걸 거야.”
일리아는 분노한 듯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문득 트레이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람의 정신을 조종한다는 악마적인 마법을 구사하는 이들.
하지만 트레이시가 자신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공포에 질린 와중에도 남아 있는 한 줄기 이성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자꾸만 눈앞에 들이밀었다.
– 나의 신이, 은인의 죽음을 원하신다. 성국의 안위에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그 소름 끼치는 진실에 바르르 떨던 그녀는 결국 습관처럼 두 손을 다시 마주 잡았다.
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해 온 다짐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이기지 못했다.
아니, 그녀의 심리 밑바닥에는 한평생 믿어 온 신앙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미지의 공포에서 그녀를 지켜 왔던 것은 언제나 굳건한 신앙이었으니까.
‘그래. 이번에는 다를 거야.’
그 종교적 광기가 희미한 이성을 눌러 버렸다.
“한없이 자애롭고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나의 주께…….”
그렇게 이어진 기도문.
한참을 이어진 그 기도문의 끝에서 일리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스스로 버렸던 법관을 다시 머리에 썼다.
그리고 자신도 알지 못할 뜻의 말을 중얼거렸다.
“얼마…… 남지…… 않았……다. 지브……릭.”
그녀의 푸른 눈은 평소보다 훨씬 더 짙은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고, 동공이 파충류처럼 세로로 갈라져 보였다.
그러다가 잠시 뒤.
“안 돼!!”
비명 같은 한마디를 토해 내며 법관을 내팽개치는 일리아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스스로를 감싼 두 팔은 쉴 새 없이 떨렸고, 창백한 볼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성국의 심처에서, 그 대표가 된 이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장.
다행히 그것을 목격한 관계자는 없었다.
* * * 예고된 전쟁의 시작은 누구나 예상했던 대로 제국 측의 선공이었다.
서부 7군단 중 무려 다섯 개의 군단이 노비엔스의 동서남북을 포위했다. 그 막강한 군세는 그 숫자만으로도 보는 이를 질리게 했다.
“저게 대체 몇 명이야?”
“셀 수도 없겠어.”
“젠장. 정말 끝인가…….”
더구나 단순히 그 숫자가 끝도 아니었다.
본디 제국 군단의 전력은 한 군단당 5만에 가까운 병력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세간에 알려진 기준으로는 그중 기사가 천여 명, 나머지가 정예병일 터였다.
“저거 앞줄 다 기사 갑옷 아냐? 제국은 병사들한테도 저런 갑옷에다 말까지 주는 거야?”
“그,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어야 하는데…….”
“뭐야 대체!!”
제국의 병력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던 이들은 선두의 병력을 보며 더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금룡의 문장이 선명하게 빛나는 은빛 갑옷을 전신에 두르고 건장한 전투마 위에 올라탄 이들. 기사.
일반인에게는 초인이나 다름없는 전투의 달인들이 한 군단에만 3천 명은 넘어 보였다.
5개의 군단. 성도를 포위한 병력의 기사만 해도 1만 5천.
대륙 전체에 퍼진 성전기사단원이 전부 모인다 해도 반 배 이상 많은 숫자였다.
“기사가 왜 저렇게 많아!”
상식을 벗어난 광경에 하먼조차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서부 군단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기사들을 보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황실 중앙군도 움직인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만, 시간상 저들은 군단 소속이 맞을 듯합니다.”
“그럼 저 비율이 말이 된다고?”
“허장성세가 아닐까요?”
부관, 라인 하퍼의 말속에 가득한 불안감은 눈에 보이는 광경을 부정하고 희박한 희망을 좇고 있었다.
문제라면, 하먼 역시 그렇게 기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저들이 모두 기사라면, 제국은 기사의 숫자만 5만이 넘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예감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결코 허풍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젠……장.”
소름이 끼쳤다.
이전에도 제국의 군단 하나만으로도 소왕국은 거뜬히 정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제국엔 그런 군단이 동부에만 8개, 서부에 7개가 있었다.
명실공히 세계최강의 국가라 불릴 만했다. 황실이 직접 관리한다고 알려진, 근위기사단을 제외하고는 편제에 대한 정보조차 없는 중앙군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5만이 넘는 기사라니, 설마……. 하지만 그게 정말이라면.’
기사만으로 군단을 구성할 수 있다.
물론 그 위력은 둘째 치더라도 편제의 효율상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성도에 소집된 성전기사단은?”
“며칠 전에 8천 명이 넘었습니다. 제국 내부에서 묶인 전력을 생각하면 사실상 최대한의 전력입니다.”
세간의 시선과는 다르게 전쟁은 노비엔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제국령 전체에서 노비엔스로 향하는 길이 막혔고, 그에 이곳저곳에서 신전 병력이 제국과 대치 중인 상황이었다.
‘로건 왕이라고 했던가. 그의 경고가 아니었다면 이나마도 힘들었겠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집합령을 내린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스테판 경은?”
“다행히 어제 도착하셨습니다. 부단장 세 분 모두 만전의 태세로 대기 중입니다.”
하먼의 머릿속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10만에 가까운 성군단, 8천의 성전기사단, 신성오러를 쓰는 초인 3명과 자신. 거기에 전쟁 시 노비엔스를 뒤덮을 강력한 성법 결계까지.
가능한 모든 전력을 끌어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25만의 대군과 만 오천에 이르는 기사들, 그리고 검혼과 ‘최소’ 다섯 이상의 초인들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최대한 버틴다. 전군에 그리 지시를 내리도록.”
“그것뿐입니까?”
“버티다 보면 변화가 있을 것이다. 성녀님께서 그리 예언하셨다.”
“오!”
그 말에 라인 하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잇달아 폭풍 같은 재앙을 맞이한 성도의 주민들. 그들의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 하먼은 성녀 일리아가 신의 예언을 받아 위기를 극복했다고 공표했다.
거짓이기는 했지만 법관을 받은 이후 신언이 점점 명확해진다는 성녀의 말도 있었으니,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효과가 여실히 보이고 있었다.
– 버텨라! 그리하면 이긴다!
– 성녀께서 예언하셨다!
– 우와아아아!
아니, 효과를 본 정도가 아니라 그 반향이 지나칠 정도로 컸다.
그 모습을 보며 하먼은 센텐티아를 쓴 일리아를 떠올렸다.
정말로 전설에 나오는 사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증폭된 신성력을 뽐내던 새로운 교황.
‘성녀께서 이번에는 정말로 제대로 신언을 받으셔야 하는데.’
입술을 질끈 깨문 하먼은 부관의 희망찬 눈초리를 외면하며 동문 밖의 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은 멀게만 보이는 적, 하지만 이제는 숙적으로 인식하게 된 이가 그곳에 있었다.
일전에 짧은 격전만으로 중앙 신전의 일부를 초토화시키며 성도의 주민들에게도 그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대륙제일검, 트리스 혼스비가.
“든든하군.”
성도를 포위한 제국군의 수장은 아군 병력의 위세를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병사를 뽑는 기준을 달리한 것만으로도 10년 만에 이 수준이다. 앞으로 또 10년이 지나면, 그땐 제국의 병력 절반만으로도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이야. 그렇지 않느냐?”
“예, 스승님.”
그것 역시 제 주군 바로스 전하의 공로 아닙니까.
제롬은 자연스레 올라온 소리를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현재 제국에서 바로스 황자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와 관련되어 귀족의 위까지 잃어버린 그로서는 더더욱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현재 그의 신분은 성국 토벌군의 원수, 검혼의 호위기사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단답형 대답이 스승에게는 기껍게만 느껴진 것 같았다.
“저기, 신검 저자의 질린 안색이 보이는구나. 제롬, 그리고 너희들. 내 말은 잊지 않았겠지?”
“예.”
“예, 각하!”
제롬의 대답과 더불어 그의 좌우에 도열해 있던 4명의 기사가 마치 한 몸처럼 동시에 대답했다.
‘인형 같아. 소름 끼치는 놈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저들이야말로 본디 검혼과 삭풍의 힘에 더해 황제가 카셀 마탑주, 진실을 삼킨 뱀을 잡을 수 있다고 공언한 황실의 비밀 병기이기였으니까.
지금은 그저.
“내가 신검의 힘을 빼놓으면…….”
“저희가 끝장을 내겠습니다.”
“……뒤를 맡겠습니다.”
저들 중 일부라고 착각하지 않게 대답이나 달리 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일 뿐이었다.
“좋다. 성전기사단의 부단장들은 각군의 군단장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노비엔스의 성법 결계뿐인데…….”
검혼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 제롬과 조금 닮은, 하지만 좀 더 날카로운 인상의 마도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저와 마법 병단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래, 갈렌. 믿고 있겠네.”
고개를 끄덕인 트리스가 말을 몰아 군단의 앞으로 나섰다.
– 황제 폐하의 과분한 은혜를 무시한 너희 무도한 무리들을…….
“에곤, 물러서게.”
“아, 각하.”
노비엔스의 성벽을 향해 힘껏 소리치고 있던 서부1군단장, 에곤 밀러가 트리스의 한마디에 장광설을 멈춘 채 바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검혼은 자신의 애검을 뽑아 들었다.
“황제 폐하의 명이다!”
기나긴 에곤의 선전 포고를 압축한 듯한 짧은 한마디.
“전군. 성도를 점령하라!”
그 외침과 함께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