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이미 화살통에 들어 있던 화살을 전부 소모한 지 오래였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저 돌진하는 길에 보이는 떨어진 화살들을 주우면 그만이니까.
성군단의 궁병이 쏘는 화살은 그가 평소에 쓰는 화살과 규격이 미묘하게 달랐지만, 그것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쏘아진 화살은 번개처럼 초장거리를 단축하며 날아가서, 목표의 움직임에 따라 근거리에서 다시 한번 꺾어지며 급소를 꿰뚫었다.
2km가 넘는 거리.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먼 거리에서 부르델은 쓰러지는 적의 모습을 보았다. 물론 그것을 확인하기 전에 이미 다음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온 대륙을 통틀어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엄청난 기술이었지만, 정작 그런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그는 속으로 연신 욕을 토해 내기 바빴다.
‘젠장, 젠장, 젠장!’
성벽을 내달리며 눈앞에 쌓여 있는 적이 아닌 까마득한 거리의 적만 쏘고 있는 현 상황이 비참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저격이라고 하기보다는 구조 신호에 가까웠다. 자신의 화살임을 눈치챈 일행이 왕비를 구하러 가 주기를 바라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으니까.
까드득.
‘이렇게나, 이렇게나 무력할 줄이야.’
오러를 각성하며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능력을 손에 넣은 그였다.
오러사이트(Aura-Sight).
초장거리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세세하게 살피고 멀리 쏘아진 화살의 궤도를 한 번 정도는 조정할 수 있는, 그야말로 궁수를 위한 특성.
거기에 이곳에 파견되기 전 골렘마스터 클레이튼이 직접 제작하여 넘겨준 4클래스 장궁형 아티팩트, 스나이핑 샷(Sniping Shot)까지 장착한 그는 자신감이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르는 상태였다. 장거리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전투력을 보일 자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 확신은 정말 딱 절반만 들어맞았다. 거리가 있을 때는 경이적인 전과를 기록했지만, 눈앞까지 다가온 같은 초인에게 그의 화살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무력했다.
‘아무리…….’
경지의 차이를 감안한다 해도 자괴감이 들 수준이었다. 아마도 경이적인 원거리 효율을 가진 특성 오러사이트가, 오러의 신체 강화 효과까지 확 떨어트린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 듯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유를 분석하고 자기 위안을 한다 한들 지금의 자괴감이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모셔야 할 주군의 아내를 전장에 남겨 둔 채 도망치는 길이었으니까.
‘아니,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그가 충성심에 불타는 기사였다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옥쇄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아니,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기사라는 족속들의 특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사냥꾼 출신이었다. 그리고 사냥꾼은 언제나 자신의 보신과 사냥의 효율을 목표로 삼는다.
보신은 그렇다 치고 사냥을 전쟁이라 치면, 지금 자신의 행동은 정확하게 효율에 들어맞는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자 불안하게 널뛰던 심장이 서서히 차분해져 갔다.
그런데 그 순간.
“잡았다, 이 쥐새끼!”
바로 뒤쪽에서 들려온 소름 끼치는 음성에 부르델은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윽!’
곧바로 옆으로 구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머리 위로 섬찟하게까지 느껴지는 날카로운 붉은 오러가 지나가고, 그 뒤로 일그러진 표정의 에곤 밀러가 보였다.
직전의 전투가 흉험했음을 알려 주듯 투구가 날아가 버린 갈색 머리의 사내는 푸른 눈을 험상궂게 부라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부르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자가 왜 벌써 여기에? 그럼 왕비님은……!?’
최악의 위기에 부닥친 와중에도 의무감 탓인지 눈이 그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대도시 중 하나인 노비엔스의 성벽은 한쪽 성벽만 해도 수 킬로미터에 달해 당장 왕비의 안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더욱 다급하게 만들었다.
“칫!”
뒹굴던 자세 그대로 다급히 시위를 메겨 보지만, 기껏 쏘아 낸 화살은 머리 위로 내리찍어 오는 붉은 칼날에 그대로 절반으로 쪼개지고 있었다.
화살을 쪼갠 참절검이 그대로 자신의 몸까지 가르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부르델이 당면한 죽음을 차마 마주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는 순간.
꽈아아아앙!
채채챙!
갑작스러운 폭음과 함께 자신을 덮치던 살기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음!?’
반응은 빨랐다.
부릅 떠진 부르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붉은빛 섬찟한 칼날과 맞서는 주황빛 오러.
사방에 범람하는 주황빛 오러는 붉은 오러에 으스러지면서도 막대한 양을 쏟아 내며 가까스로 대등한 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를 죽음에서 구해 준, 점점 창백해지는 안색의 청년이 그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형수님은!?”
위장한 신분에 대한 자각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청년.
그 목소리에 묻어난 다급함을 알기에 부르델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을 담아 마주 소리를 질렀다.
“아직 모릅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그는 에곤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파아앙!
“흥!”
그러나 부르델의 화살을 손쉽게 튕겨 낸 에곤은 오히려 역습을 해 왔다.
그런 그를 정면에서 가로막는 로니안.
꽈아아앙!
그런 로니안의 기세가 충격에 일그러지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큭. 내가 오히려 방해만 되었어.’
부르델이 자괴감에 입술을 질끈 깨무는데, 귓전을 때리는 아군의 목소리가 그 자괴감을 더욱 부추겼다.
“리아를 불러와요! 당장!!”
다행히 그 참담한 마음과는 별개로 부르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도 창백한 안색의 로니안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정상이라 해도 힘든 상대가 저 참절검일진데.
부르델은 이를 악물며 몸을 날렸다.
“조금만 더 버티쇼, 작은 공자!”
그 역시 위장한 신분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그저 맥라인의 가장 강력한 초인, 검공으로부터 전수한 귀신 그림자의 운신법을 극성으로 발휘하며 성벽 위를 내달릴 뿐.
이내 오러사이트로 확대된 그의 시야에 서쪽 성벽에서 제국의 정예들을 상대하는 마도사가 들어왔다.
‘제발 여길 봐!’
황급히 쏘아 내는 붉은 화살들이 그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격전지로 날아갔다.
그 마음이 닿았을까.
붉은 갑옷을 입은 적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는 것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애런으로 분한 빅토리아가 성벽의 묘한 꿀렁임과 함께 남쪽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됐다!’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잠시.
그 역시 바로 돌아서서 위기에 처한 작은 공자가 있는 전장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이 정도 거리라면 내가 약점이 되지는 않아.’
하지만 그 의도조차 눈앞으로 달려드는 제국의 기사들 때문에 좌절되었다.
“죽어라!”
화살 끝에서 빛나는 상서로운 붉은빛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겁도 없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수많은 기사들.
화살에 맺힌 오러를 몰라보는 멍청이가 아니라면, 초인임에도 얕보인 것이다.
그 모습이 부르델의 참담함을, 가슴 깊숙이 숨겨 둔 열등감을 자극했다.
‘이것들이!’
– 활에 재능이 있다고? 그래서 뭐? 그건 그냥 사냥꾼들이나 쓰는 무기잖아.
– 이야, 신기할 정도로 잘 맞추네. 이런 재주를 검술에 타고났어야지. 칼질은 완전 젬병이면서, 크크.
– 포스유저가 왜 활을 써? 형 X신이야?
사냥꾼의 아들로 사냥꾼 마을에서 태어나, 그 빛과 같은 재능으로 찬사를 받았던 자신. 하지만 바깥세상에서 그의 재능은 그저 신기한 재주 그 이상은 아니었다.
사냥꾼을 위한 훈련만으로도 포스를 각성한 그에게 세상의 기사들은 ‘일찍 검술을 배웠으면 대성했을 텐데’, ‘검술은 왜 못 하냐? 반푼이네.’ 등등의 모욕을 퍼붓곤 했다.
더욱 분한 것은 용병으로서, 사냥꾼으로서 세상의 강자들을 무수히 겪어 본 결과 그 모욕이 사실로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포스유저 중급 이상이 되어 활과 화살에 포스를 싣게 된 후에도 그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은 고작 평기사 정도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조차도 암수, 혹은 비겁한 수단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세상의 편견은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세상에 명성을 떨치며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원했던 산골 천재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랬기에 그는 인간 세상에서 명성을 떨치는 것을 포기했었다.
그리고 그 대신 택한 것이 마수 사냥꾼의 길이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익힌 사냥법과 궁술로, 사냥꾼들 사이에서나마 전설로 남기를 원했던 것이다.
명성을 떨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간신히 찾은 타협점. 하지만 언제나 그 가슴속에는 못다 이룬 꿈에 대한 갈망이 들끓고 있었다.
그랬기에 패드릭 맥라인이라는 귀족의 권유에 쉽게 넘어갔던 것이기도 했다.
– 자네의 재능, 내 아들을 위해 써 주게. 내 아들은 인재에게 베풂이 인색하지 않으니, 자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건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네.
실제로 그를 따라 나선 이래 얻은 것은 물질적인 것으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컸다.
스스로도 차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초인의 길에 들어섰으며, 미래에 귀족의 작위까지 확답을 받았다.
그에 반해 자신이 보답한 것은.
‘……없지.’
부르델은 스스로를 잘 알았다.
자신에겐 기사처럼 고결한 충성심은 없다.
하지만 받은 은혜는 갚고 싶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도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면…….
“너희들 따위에게…….”
발목 잡힐 시간은 없다!
그 의지와 분노가 무의식을 움직이고, 불꽃처럼 타오르는 오러를 실은 화살이 연달아 전방으로 쏘아졌다.
샤샤샥.
퍼버버벅.
“억!”
“아악!”
“무, 무슨 화살이…….”
판금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들을 연달아 꿰뚫는 화살.
가장 앞에서 달려들던 기사는 온몸에 열 개가 넘는 구멍이 뚫린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한순간에 초토화된 전면.
그 참혹한 광경에 뒤이어 달려들려던 이들의 발걸음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후…….”
참았던 숨을 내쉰 부르델은 한순간에 수십 발의 화살을 쏘아 낸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경지를 뛰어넘는 거창한 깨달음 같은 것은 아니었다.
저격으로만 사용하던 오러사이트 특성의 변주.
그저 전장에 흩어진 화살들에 본능적으로 포스를 미량씩 집어넣고, 원격 조정을 이용해 자동으로 끌어당겨 시위에 장전한 뒤 그것을 끊임없이 쏘아 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화살 한 발에 실리는 위력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빠르기에만 초점을 맞추자 정말로 경이로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잊고 있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언제부터 일발필사를 노렸었다고.’
빗맞은 화살도 사람을 죽이기엔 충분하다. 굳이 한 발, 한 발에 공을 들여 방어를 꿰뚫을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더하여 아무리 참절검일지라도 근거리에서 수십 발의 속사가 쏘아진다면 그 모든 화살을 일일이 튕겨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초인 궁수로서 근거리에서 초인을 상대할 방안은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X발!”
기쁨에 찬 욕설을 뱉어 낸 부르델이 얼어붙은 적들을 무시하며 다시금 동쪽 성벽을 향해 뛰었다.
가는 도중에 사방에 흩어진 화살들을 주워 화살통에 가득 채운 것은 그저 덤일 뿐이었다.
“왜 여기 있어요!? 왕비님은요!?”
도중에 성벽의 돌을 타고 움직이는 듯한 빅토리아를 만나 타박을 당하기도 했지만, 부르델은 굳이 길게 말을 섞지 않고 붉은빛과 주황빛이 섞여들며 주변을 초토화하고 있는 전장을 가리켰다..
“작은 공자부터 구해!”
“예?!”
“놈을 잡아! 나와 작은 공자가 끝을 낸다!”
이미 빅토리아가 전장에서 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마법이 무엇인지는 다 얘기가 끝난 상황.
당황스러울 정도로 막무가내의 지시였지만, 그 알 수 없는 박력에 빅토리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부르델은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절망감을 선사해 준 적을 향해 이를 갈며 뛰어들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백여 발에 달하는 화살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먼저 한 발.
탕!
“이 쥐새끼가!”
놈이 슬쩍 뒤를 돌아본다.
손발이 살짝 느려졌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작은 공자가 불리하다.
어떻게 하는지는 도통 짐작이 가지 않지만, 놈의 일검을 ‘다섯’ 개의 검을 중첩해 막아 내면서도 비틀거리는 상황.
부르델은 다시 두 발의 화살을 쏘아 냈다.
타당!
쾅!
“네 놈부터 죽여 주마!”
목표가 미끼를 물었다.
작은 공자를 튕겨 내며 돌진해 오는 적.
“지금!”
버럭 소리를 지른 부르델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오직 ‘손의 속도’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원격 조정을 통해 미친 듯이 시위에 걸리는 화살을 더욱 빠르게 전면으로 쏟아 냈다.
파바바바바박.
일순간 쏟아지는 개인이 만들어 낸 화살의 비.
부르델의 눈에 달려들던 놈의 푸른 눈동자가 두 배로 커지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놈의 몸이 ‘덜컥’하니 잠깐 굳어지는 것까지.
‘멋진 타이밍!’
부르델이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으아압!”
에곤 밀러가 비명 같은 기합을 지르는 순간.
붉은 화살의 비와 붉은 벼락, 그리고 주홍빛 검들이 일시에 쏟아졌다.
꽈아아아아아앙!
요란한 굉음이 일순간 주변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끄으…….”
“……지독한 놈.”
부르델은 질린 눈으로 바로 코앞까지 검을 들이댄 적을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30여 발의 화살을 쏘아 냈는데도 적중한 것은 어깨와 팔다리에 꽂힌 다섯 발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신의 공세를 틈타 작은 공자의 검이 뒤에서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는 것.
그나마도 빅토리아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흐, 흐흐. 이 내, 내가…….”
서걱.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잘린 목.
“에곤 밀러를 쓰러트렸다!”
작은 공자가 잘라 낸 목을 검에 꽂아 들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전장의 분위기가 실시간으로 바뀌는 것이 부르델의 피부로도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콰아아앙!
동쪽 성벽의 가운데쯤에서 터진 폭음이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왕비님?
로니안과 부르델, 빅토리아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치고, 이내 세 초인의 몸이 번개처럼 폭음의 진원지를 향해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