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84)
384화- 대해(大海)의 축복이 어떤 공격을 당해도 아홉 번은 견디게 해 줄 것입니다.
귀신들의 연이은 습격을 물리친 뒤, 성녀는 파리한 안색으로 그리 말하며 얼마 남지 않은 성력을 바닥까지 쥐어짜 그에게 축복을 걸어주었다.
동쪽 성벽의 아군이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그렇기에 빅토르는 성녀에 대한 의문을 뒤로한 채 미친 듯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야말로 절묘한 타이밍에 동생의 목숨을 구했다.
신전의 심처에서 성벽의 상황을 대체 어찌 알았을까.
과연 성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놀라운 혜안(慧眼)이었지만, 성녀의 안목도 한 가지는 틀렸다.
‘아홉 번은 견뎌 줄 거라며!’
짧은 격전의 순간 동안 검혼의 검격이 정타로 적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성녀가 걸어 준 축복의 힘이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성녀의 말이 틀린 것이라기보다는…….
‘이자가 괴물인 거겠지.’
빅토르는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되려 자신을 몰아치기 시작한 검혼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주군과의 대련을 통해 몇 번 보았던 위험한 기운. 공간의 베어 버리는 힘.
주군도 힘을 모아서 시전하던 필살의 일격이 검격마다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 검으로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깊은 바다의 힘을 담은 두꺼운 축복이 그대로 부서져 나가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진짜 성기사라고?”
상대가 그를 몰아치면서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과 전신에서 타오르는 불꽃 같은 오러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마 처음 자신의 기습에 의한 타격과 눈에 보일 정도로 형상화되어 그를 짓누르고 있는 동생의 마력 덕분인 듯했다.
그 상황에서 성벽 밖으로 튕겨 나갔던 두 명의 아군이 조금 늦게나마 다시 전장에 합류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합!”
“죽어!”
기합이라기보다 기대가 담긴 듯한 음성들.
꺼져가는 검혼의 불꽃과 굳어가는 그의 표정.
그 모습들이 빅토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여기서 검혼을 잡는다!’
급박한 상황, 교차하는 아군의 시선들 속에서 확신을 얻은 빅토르가 다시금 투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그런 짐작은 이쪽에서만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스승님!”
로니안의 뒤쪽에서 한 박자 빠르게 끼어든 외눈의 기사가 그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제롬 디카이드!’
빅토르 역시 모를 수가 없는 얼굴.
그의 은빛 오러가 로니안을 가로막았다.
거기다 붉은 오러가 번뜩이는 창을 든 기사가 에일렌의 뒤쪽에서 튀어나오며 그녀를 공격했다.
“각하, 피하십시오!”
투구를 쓴 탓에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붉은 오러가 어린 창과 칠흑색 갑옷만으로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서부 5군단장, 아르헨 투사트.’
삭풍의 마도사가 만들어 낸 중화 마법진을 호위하고 있어야 할 군단장까지 이 전장에 끼어든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예측 범위 안이었다.
“부르델!”
“맡겨라!”
리아의 얼굴이 드러나 버렸으니 신분을 감추는 데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만, 차마 그럴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도 그 뜻은 통한 듯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검혼의 오러를 뚫을 수 없다는 걸 아는 부르델은 새로 나타난 두 초인을 향해 미친 듯이 활을 쏘아 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빅토르는 다시 검혼에게로 정신을 집중했다. 이내 고양된 의식 속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하고, 검혼의 불꽃이 실시간으로 줄어들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깊어지는 얼굴의 주름도.
그 유명한 검혼이 보이는 뚜렷한 약점이 그를 유혹했다.
‘할 수 있어!’
그 순간 빅토르는 성녀의 축복과 자신의 재생 능력을 믿고 방어를 포기했다. 또한 극한으로 끌어올린 집중력으로 신검 비전의 6식, 근원 가르기를 처음으로 실전에서 발휘해 냈다.
우우웅.
회색빛 오러가 뭉쳐지며 만들어진 구슬. 닿는 모든 것을 본질부터 무너트리는 파괴의 힘이 매섭게 검을 찔러 오는 검혼의 빈틈을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빅토르의 눈에 똑같은 주황색과 붉은색 오러의 구슬이 동시에 검혼을 향해 쏘아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에일렌과 로니안 역시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눈앞을 가로막는 초인을 무시하고 검혼을 노린 것이다.
스스로의 안위도 돌보지 않은 채로 공격에 모든 힘을 쏟은 세 사람의 눈빛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 여기서 검혼을 죽인다!
제국의 가장 날카로운 칼을 부러트릴 절호의 기회.
‘반드시!’
대경한 표정의 제롬과 아르헨이 그대로 로니안과 에일렌의 허점을 파고드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지만 두 사람도, 빅토르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꺼져 가던 검혼의 불꽃이 그의 검으로 옮겨붙었다.
동시에 크게 원을 그리며 휘둘러지는 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 혼자만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모습에 빅토르가 이를 악물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한순간 8명의 초인이 한 지점에서 얽히며, 그 어느 때보다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우르르르릉.
튼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대천 결계를 비롯한 온갖 성법으로 철저히 보호되는 노비엔스의 성벽이 일순간 지진을 만난듯 흔들렸다.
“커흑!”
“억!”
“큭!”
저마다 고통을 삼키는 비명과 함께 초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스승님!”
“각하!”
몇 군데 화살을 맞긴 했지만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제롬과 아르헨이,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검혼을 향해 달려갔다.
강렬한 충돌에 의해 전장에서 튕겨 나간 검혼.
치명상을 입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 생명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이, 이런…….’
당장 달려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빅토르는 더 이상 움직일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아군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옆구리가 크게 갈라져 내장과 뼈가 드러날 듯한 중상을 입은 자신.
전신에 가득한 자상으로도 모자라 복부에 길다랗게 갈라진 검상을 더한 채 비틀거리는 에일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제롬의 검격에 의해 오른쪽 어깨에서 명치까지 갈라진 듯한 로니안의 부상이었다.
흐릿해져 가는 눈빛이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듯 위험해 보이는 치명상.
“오, 오빠!”
그나마 멀쩡한 상태인 빅토리아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나, 난 괜찮, 쿨럭! 흐으, 로, 로니안부터.”
피를 토하는 오빠를 보며 안색이 더욱 창백해진 빅토리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의 마법은 아직도 쓰러진 검혼을 짓누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마법을 유지하면 저 늙은 괴물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군의 부상이 너무 심각했다.
뼈가 보이는 부상이 벌써 조금씩 아물어 가는 오빠나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서 있는 왕비님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로니안의 상세가 문제였다.
‘작은 공자님!’
백작이니 뭐니 해도, 2m의 거한이 되었어도.
그녀에게 로니안은 여전히 은인의 동생인 작은 공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그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버티세요, 작은 공자!”
위장한 신분을 생각하여 단어를 고를 심적 여유는 없었다.
빅토리아는 검혼을 짓누르던 마력을 모조리 로니안에게로 쏟아부었다.
위자드 학파의 마법사라면 어설프게나마 힐을 썼을 테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처를 마력으로 덮고 남은 마력으로 로니안의 생명의 힘을 조금이나마 증폭시키는 것뿐이었다. 마법이라고 할 수도 없는 원시적인 마력 활용이었다.
그나마 마도사의 막대한 마력에 로니안 내부에서 호응하는 포스의 힘이 더해지자 상세가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다만.
“……다음을 기약하지. 너희들. 똑똑히 기억해 두겠다.”
외눈의 초인이 쓰러진 자신의 스승을 부축하고, 검은 창을 겨눈 초인이 부르델을 경계하듯 뒤를 맡으며 멀어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
“우리가 이겼다!”
“만세!!”
일행에게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결과였지만, 성국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쾌거였다.
그날, 수뇌부가 이탈한 제국군의 공세는 그렇게 멈추었다.
* * *
“고비는 넘겼습니다. 역시 초인이시군요. 한동안 정양하시면 몇 달 후에는 멀쩡히 움직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노사제의 말에 일행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성국의 고위층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지었다.
창백한 안색으로 눈을 뜨지 못하는 로니안보다는 덜하지만 일행 대다수가 중대한 부상이나 내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 지금 이 방 안은 중환자 치료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동료를 걱정하는 모습이 훈훈해 보인 것이다.
물론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이거, 나만…….”
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고 그에 어울리는 전과를 만든 부르델이었지만, 왜인지 지금은 자신만 대충 싸운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런 부르델을 에일렌이 다독였다.
“부, 흐흠, 아밀 경. 그대도 푹 쉬세요. 당신도 충분히 무리했으니까. 아마 제국군도 한동안은 공세를 취하지 못할 겁니다.”
창백한 안색의 아란, 에일렌의 말에도 부르델은 머리를 긁적였다.
‘호위기사로서 체면이…….’
주군의 부인과 동생도, 오러유저에 비하면 몸이 약한 마도사 빅토리아도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호위해야 할 대상자들이 다 자신보다 심하게 다쳤으니 호위기사로서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신과 비슷하게 멀쩡해 보이는 빅토르도 사실은 특성 때문에 회복이 빨랐을 뿐, 처음 부상은 오히려 가장 심각한 축에 속했었다.
지금도 창백한 안색은 그런 사기적인 특성으로도 오러에 의한 내상을 완전히 걷어 내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왜인지 죄책감이 드는 상황인 것이다.
부르델이 그렇게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의외의 곳에서 구원자가 나타났다.
끼이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선 신검이 곧장 방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그들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대들의 노고와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눈이 커지는데, 하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소리까지 덧붙였다.
“성녀님을, 교황 성하를 모시고 도망갈 생각이나 하던 이 하먼을 부끄럽게 만드셨소이다.”
“단장님!”
“각하, 왜 그렇게까지……!”
방 안에 있던 고위 사제들이 당황하는 와중에도 하먼의 눈빛은,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대들의 분전 덕분에 성국이 또 한 번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 말에 담긴 진정성에 방 안의 소란이 차츰 잦아들었다.
그렇게 잠시간 이어지던 침묵의 순간을 에일렌의 목소리가 깨트렸다.
“……전후 정리를 하고 오신 거겠죠? 전과는 어떻던가요, 단장님.”
“아군의 기사 병력 1천 명 사망, 500여 명 중상. 성군단이 일만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습니다. 하지만…….”
뜸을 들이듯 잠시 방 안을 둘러보던 하먼은 이내 빙긋 웃으며 결론을 말했다.
“제국의 피해는 적어도 그 세 배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입니다.”
“이예쓰!”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며 탄성을 지른 부르델이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에일렌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초인 전력은요?”
“제국 서부 1군단장 에곤 밀러와 3군단장 말톤 하이츠 사망. 2군단장 마일즈 보이킨과 4군단장 올란도 브라운은 중상을 입은 채 패퇴했습니다.”
“오!”
“압승이야!”
“역시!”
터져 나오는 탄성들 사이에서도 홀로 침착하던 에일렌은 곧바로 가장 중요한 이의 행방을 물었다.
“검혼은요?”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만, 적진의 분위기를 보면 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일행이 동시에 한숨을 토해 냈다.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짙은 아쉬움에 하먼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전과를 만든 것인지 모르는 건가?’
당장 노비엔스의 분위기는 거의 축제에 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슬픔을 승전의 기쁨으로 잊으려는 몸부림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이번 전쟁에서 성국이 거둔 승리가 값진 것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승전의 주역들이 오히려 아쉬워하고 있으니, 그 모습이 더욱 고마웠다.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제국은, 황제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제국도 여러분의 존재를 알았으니 더 큰 전력이 몰려오겠지요. 한 번만 더 힘을 보태 주십시오.”
5개의 군단과 하나의 마법 병단, 8명의 초인까지. 심지어 그중에는 검혼과 삭풍이라는 제국을 대표하는 초인들까지 있었다.
그런 병력을 투자하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제국이 이대로 물러설 리가 없다.
아마도 다음번에는 새롭게 등장한 초인 다섯의 전력까지 포함하여 성국을 철저히 짓밟을 수 있는 병력을 보낼 터.
‘어쩌면 중앙군이 움직일지도 모르지.’
자신이 온전히 회복한다고 해도 몸은 하나다. 노비엔스의 사방에서 쏟아질 압도적인 전력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하먼은 이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런데 에일렌, 아니 아란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