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85)
385화그 말에 방 안에 있던 성국의 관계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아란 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녀를 치료하고 있던 고위 사제가 너무 놀란 나머지 기도를 멈추고, 무언가 결심을 굳힌 듯하던 하먼의 얼굴에도 균열이 갔다.
하지만 에일렌은 한숨을 내쉬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본래 저희가 약속했던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단장님. 저희는 다른 곳에 매인 몸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에일렌의 시선이 온몸에 붕대를 감은 일행을 지나쳐 다시 하먼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이 의미하는 바가 너무나도 명백하여 하먼은 입술을 질끈 깨물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단 한 번이면 됩니다. 몇 개의 군단급 전력이 더 추가될 것이라 예상되는 마지막 전투, 그것만 막아 낸다면 제국도 더 이상 무리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말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비록 전제부터가 너무 암담하긴 했지만 이미 제국 서부 7군단 중 5개의 군단이 참전해 있고, 그중 두 개의 군단이 수장을 잃었다.
베일에 싸인 황실 중앙군의 병력이 추가 파병된 뒤에도 제국이 패배한다면 대륙 전체의 여론이 바뀔 것이다.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에서 연달아 이어진 승리는, 지금도 노비엔스의 사기를 하늘 높이 올리고 있었다.
– 신들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노비엔스 곳곳에서 쏟아지는 신들을 향한 찬사.
지금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승리의 주역들이 들으면 조금 억울할 소리였지만, 성국의 사람들은 그들의 도움조차 정말 신의 뜻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것이 분위기를 바꿀 것이다.
– 아무리 성국이라도 상대가 제국인데…….
– 어떻게 감히 제국에 대항하겠어.
– 종교는 종교로만 남아야…….
제국의 직접적인 압박에 발이 묶인 병력도 있겠지만, 지방의 대교구 중엔 그런 느슨한 생각들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교구장들의 성향에 따라 원군을 보내지 않은 이들.
그들 역시 ‘신들이 직접 가호하는 성전’이라는 여론에 휩쓸리게 되면 다소의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노비엔스로 향할 것이다.
아득한 과거, 제국이 아닌 다른 시절의 패자도 성국과 그렇게 대립하다 국력을 낭비하고 무너졌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어.’
병력의 질은 몰라도 그 전체 수만큼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성국. 광기 어린 신앙으로 무장한 수십만의 성군단이 전부 노비엔스에 모인다면, 검혼이 열 명이 있어도 막을 수 없는 최강의 무기가 될 것이라 하먼은 확신했다.
무엇보다 눈앞의 사람이, 아니 그 왕국이 전해 준 정보가 있었다.
“……황제가 정말 정복 전쟁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번 전쟁에서 더 이상 피해를 보는 것은 원치 않을 겁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성국은 직접적인 영토 확장을 원하지 않으니까요.”
“단장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미 예상 이상으로 무리를 한 상황입니다. 특히나 로프 경의 경우에는 보시는 대로…….”
죽은 듯 잠들어 있는 로니안을 바라본 에일렌은 잠시 말을 멈췄다.
자신이나 다른 일행의 상처가 경상으로 보일 정도의 심각한 중상. 이곳이 고위 사제가 즐비한 노비엔스가 아니고, 로니안이 오러유저 중급의 초인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남편은 분명 우리 안위부터 살피라고 했는데, 이 꼴을 보면 뭐라고 할까.
‘다들 너무 무리했어.’
모두가 다음 전쟁은 그들의 고향에서 일어날 거라고 믿고 있는 상황.
그러니 어떻게든 제국의 힘을 깎아 놓으려고 저마다 무리를 한 것이다.
그것은 당장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군단장 둘을 죽였다는 것은 충분히 엄청난 성과였지만, 기회를 잡고도 그 검혼을 완전히 끝장내지 못했다는 아쉬움만이 뼈아프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쓴웃음을 지은 에일렌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다음 전쟁 때까지 걸을 수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희는 더 이상 무리할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곳은 이 노비엔스가 아니니까요.”
명백하게 선을 긋는 말에 하먼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방 안의 분위기 또한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지금보다 더한 병력이 올 것이라 예상되는 상황에 초인 다섯의 전력이 빠진다는 것은, 지금 그들로서는 사실상 사형 선고처럼 느껴질 테니까.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면 안 되지. 성국은 최대한 제국의 전력을 소모시켜 줘야 해.’
그에 에일렌은 성국이 투지를 잃지 않도록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저희도 치료를 위한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음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완치가 된다는 보장도 없지요.”
제국의 추가 병력이 몰려오는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달 이내로 추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일행은 몰라도 로프, 즉 로니안의 부상은 절대 그 기간 안에 완전히 회복할 수 없는 중상이었다.
“그 말씀은……?”
“그 전에 전쟁이 시작된다면, 저희는 귀환을 위해 한쪽에 모여 길을 뚫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군단장 하나 정도는 끌어들여 처리하고 돌파해야 꼬리가 잡히지 않겠지요.”
“아……!”
하먼의 안색이 대번에 환해졌다.
사실 일행의 실력이라면 아무리 복잡한 전장이라도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에일렌으로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제국의 전력을 줄이기 위한 제안이었지만, 하먼에게는 성국을 위한 배려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냥 돌아가겠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으니, 작은 도움의 손길이나마 기꺼울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최선이겠군요.”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으로선 그것을 가정하고 대책을 만들어 보는 수밖에 없다.
하먼이 다시금 결심을 굳히고, 대화를 듣고 있던 나머지 사제들의 얼굴에도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그렇게 대화가 정리되는 기미가 보이자, 잠자코 있던 빅토르가 불쑥 앞으로 나섰다.
“단장님. 성녀님은, 교황님께선 좀 괜찮으십니까?”
“예?”
“전투의 마지막에 저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고는 탈진하여 주저앉으셨습니다. 그 뒤로 소식을 못 들어서…….”
“아, 성하께서는 아직 기도를 통해 성력을 회복 중이십니다. 조금 무리를 하시긴 했지만 건강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걱정 감사드립니다, 밀러 경.”
“아니, 그게……. 저…….”
“……?”
“아니, 아닙니다.”
당신은 성녀님이 이상하다는 것을 아느냐.
빅토르는 목구멍까지 솟아오른 질문을 억지로 삼켰다.
아직은 짐작뿐이거니와, 성녀가 해 준 ‘그 말’은 신전의 인물이라면 칼을 꺼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불경한 말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할 말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 망설이는 표정을 다르게 해석했는지, 하먼이 가벼운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밀러 경은 이전에도 성하와 인연이 있으셨지요. 걱정 마십시오. 그분께서 기도를 끝내시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 예. 가, 감사합니다.”
어색한 표정의 빅토르가 다시 뒤로 물러서자 하먼은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은 몸을 추스르는 데에만 집중해 주십시오. 나머지 모든 준비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
하지만 그 말을 하는 하먼의 모습은 너무도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한 방면의 초인들을 일행이 맡아 줄 것이라 해도 전체적인 전력은 그대로 열세일 텐데.
“외람된 말씀이지만, 단장님은 정말 그것만으로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에일렌은 그 자신감이 궁금해 불쑥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때쯤이면 제가 완전히 회복되었을 테니까요.”
지체하지 않고 나온 대답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아무리 위명이 쟁쟁한 신검이라지만 고작 개인일 뿐일 텐데?
검혼을 이기고 나서 허파에 바람이라도 들어간 것이 아닐까.
에일렌은 진지하게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실제로 그 말을 입 밖에 낼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말문이 막히는 그때.
– 급보입니다! 제국에서 추가 병력이 파견되었다는……!
방문 밖에서 들린 다급한 목소리에 장내 모든 이의 안색이 바뀌었다.
“벌써?!”
* * * 제국군의 충격적인 패퇴.
그것이 세상에 던져 준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대륙민들 대다수가 성국의 패배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신성 왕국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며 성국의 힘을 재평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호사가들 대부분의 결론은 제국을 비웃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 그 병력으로 졌다고? 지휘를 발로 했나? 내가 해도 이겼겠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양국 간의 전력 차가 너무도 확연했다.
더구나 그때까지 대륙제일검이라 칭송받던 트리스 혼스비가 신검과의 일전에서 사실상 패배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자, 제국의 위상을 의심하는 이들이 연이어 생겨났다.
역대 최강이라더니 제국도 별거 없네. 다 오합지졸 아냐?
종국에는 이런 소문이 누군가 일부러 퍼트린 것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국은, 아니 황제는 그 소문이 제국에까지 퍼지기도 전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강력한 수를 꺼내 들었다.
– 황실 중앙군 출정, 20만이 훌쩍 넘는 병력. 4~5개 군단 규모.
– 황실 친위대의 초인 7명 출동.
– 아세리안의 7대 마탑, 마탑주 다섯 출동.
이미 파병되어 있던 서부 5군단의 병력에 준하는, 아니 그 질만 따지면 훌쩍 뛰어넘는 대병력이 아세리안에서 출정식을 시작한 것이다.
– 타락한 사제들에게 천벌을 내려라! 이 땅에 올바른 신의 뜻을 세우겠다.
황제의 고함과 함께 진군을 시작한 대병력. 성국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국가들까지 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막대한 군대의 진군 소식은 제국을 비웃던 호사가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충분했다.
그런데 그 직후.
제국의 파티장이나 유력 귀족들이 모인 자리, 그리고 주변 왕국의 궁전 등에 수정구 하나가 전해졌다. 갑자기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검은 복면인들이, ‘검은 머리, 검은 눈의 청년’을 쉴 새 없이 습격하는 영상이 담긴 수정구가.
영상의 말미에는 그 청년이 초췌한 안색으로 등장해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제국 황실 특수감찰부의 요원들, 통칭 귀신이라 불리는 암살자들이다. 제국의 황제는 성국을 침략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했다. 나, 바로스 반 아레스가 내 명예와 위대한 핏줄을 걸고 맹세하니,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제국은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초석으로 성국을 삼키려고 한다.]제국군의 진군을 멈추게 만든 대사건.
성국 침략의 명분을 없애 버리는 것을 넘어, 양심이 한 줌이라도 있는 모든 이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 정말 제국이 정복 전쟁을?
– 아무리 그래도 아들을 죽이려 했다고?
– 세계 정복이라니!
제국이 들끓고, 제국 동서에 자리한 모든 국가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실은 발 빠르게 성명을 발표했다.
– 이미 고했듯 검은 뱀의 마법사들이 황자를 납치해서 세뇌한 결과일 뿐이다. 영상 역시 조작된 것. 제국은, 황제는 결코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검은 뱀의 마법사들과 성국의 타락한 사제들이 함께 꾸민 거짓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소수의 권력자에게만 소문처럼 알려졌던 귀신의 존재들이 영상에 분명히 보였고, 무엇보다 보통 사람들이 아는 정신 마법의 기준으로는 영상에 나온 황자의 눈빛이 너무 또렷했다.
거기다 영상에 대한 각국 마탑의 판단도 동일했다.
– 편집된 것은 분명하지만, 나온 영상 자체는 조작된 것이 아니다.
그 결과, 제국의 군대는 진군을 멈췄고, 제국을 향해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