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88)
388화
“으음…….”
새하얀 백발에 눈썹까지 하얗게 센 주름 가득한 노인이 신음을 흘리자, 그 곁을 지키던 시종들이 깜짝 놀라 일어섰다.
“깨어나셨다!”
“빨리 알려!”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지는 주변.
그에 의식이 막 돌아온 듯한 노인이 번개처럼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윽!”
짜릿한 통증에 상체를 반쯤 일으키다 만 노인이 신음을 흘리자 곁에 있던 외눈의 기사가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스승님, 아직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여긴 어디지?”
“제도로 귀환하는 길, 숙영지 안입니다. 3주 만에 깨어나신 겁니다. 조금 더 쉬십시오, 각하.”
“……제도? 3주?”
노인, 트리스는 온몸에 전해지는 통증에 얼굴을 잔뜩 찡그린 가운데서도 민감한 단어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제들의 협력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라도 깨어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갈렌 님이나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이 애를…….”
곁에 있던 제롬이 애써 무언가 설명하려 했지만, 트리스는 손을 들어 올려 장황해지려는 설명을 막았다.
“전황은? 제도로 돌아간다면 설마…….”
“예. 성국과의 전쟁은 끝났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그리 선언하셨습니다.”
“허어…….”
복잡한 표정으로 토해 내는 한숨에 제롬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막사 안이 침묵에 잠겨 있을 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막사 안으로 멀끔한 인상의 마법사가 들어왔다.
“깨어나셨군요, 각하.”
“……갈렌.”
“걱정이 많았습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였는데 혹시라도 각하를 잃게 될까 봐…….”
“일이 꼬였다? 설명해 보게.”
“예. 그게…….”
차분한 목소리가 전쟁 이후 변한 대륙의 정세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니 성국에 대한 미련은 이후로 미루시지요.”
갈렌의 설명이 끝나고 나서야 흔들리던 트리스의 눈빛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런가. 차라리 잘됐군.”
“예?”
“갈렌, 자네만 남고 나머지는 나가 보게.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그 말에 제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는 몸.
“예, 스승님.”
그는 무심한 스승의 시선에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시종들을 수습하여 빠르게 막사 밖으로 나섰다.
모두가 밖으로 나선 후, 트리스는 갈렌을 향해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 보였다.
그에 안색을 굳힌 갈렌이 순식간에 주변에 목소리를 통제하는 바람의 막을 만들어 냈다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네.”
바로 나온 트리스의 말에 갈렌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그 말씀은……?”
“아무래도 이번에 얻은 타격이 너무 컸나 보이. 길어야 1년 정도겠어.”
“그런……!”
그 말은 갈렌에게도 충격이었다.
물론 중상을 입은 채 3주 동안이나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크게 타격을 받은 것이야 짐작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려 검혼이 아닌가.
충격에 채 말을 잇지 못하는 갈렌을 보며 트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아까운 일이지. 그러고도 노비엔스를 점령하지 못했으니 폐하를 뵐 면목이 없어.”
아깝다?
‘당신은…….’
스스로의 목숨까지 폐하를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는 겁니까.
갈렌이 황당한 마음에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을 본 트리스가 빙긋 웃음을 보였다.
“이 사실은 일단은 자네만 알고 있게. 폐하께는 내가 직접 보고를 드리겠네.”
“각하.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오만한 것으로 유명한 마도사는 도무지 트리스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윗사람으로 인정한 세상의 단 두 사람 중 하나가 왜 그리 스스로를 험하게 굴리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만! 무리하지 않았어도 10년을 넘기지 못했을 거야. 그게 조금 빨라진 것뿐이다. 다행히 마지막 불꽃은 태울 수 있겠어.”
“…….”
그런 뜻이 아닙니다만.
갈렌은 답답한 마음을 접어 두며 그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트리스는 태연히 화제를 돌렸다.
“첫 번째 목표는 어디가 될 것 같은가? 기존의 계획대로인가?”
그 덤덤한 목소리에 갈렌은 조금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군. 그란디…… 아니, 이젠 맥라인이지. 그때 그 녀석이 왕이 된 나라…….”
“그렇습니다. 주제넘게도 우리 제국에 적대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왕국이지요. 뭐, 그 발악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습니까마는.”
갈렌의 말에는 제국의 귀족들이 맥라인을 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트리스 역시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크게 평가하는 것은 맥라인의 태양이라 불리는 로건 맥라인이라는 인재 하나뿐. 그것도 미래의 가능성 때문이지 현재의 능력을 본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겠지. 작은 왕국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아니, 잠깐.”
문득, 지난 전투에서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 광경이 그가 예전에 알고 있던 한 가지 정보에 더해지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 왕국에 특이한 마법 학파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골렘을 주 무기로 하는? 특이한 얘기라 기억에 담아 뒀었는데.”
“아, 예. 그렇습니다. 대지 마법의 변용이지요. 응용 마법의 한 지류에 불과한 게 한 왕국의 주요 학파가 될 정도니, 맥라인의 마법 전력이야 뭐…….”
그 말에 담긴 무게를 느끼지 못한 갈렌이 피식 웃으며 답변했다.
반대로 트리스의 안색은 더욱 심각해졌다.
“혹시, 거기 있다는 마도사가 푸른 머리에 서로 다른 눈동자 색을 가진 어린 여아라던가?”
“……무슨 말씀이신지?”
엉뚱한 말에 갈렌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 전투에서 갑자기 등장한 초인들, 그중 하나가 골렘 마법을 썼네. 제작해서 주문을 부여하는 마법 인형이 아니라, 성벽의 바닥을 그대로 조형하여 전투력을 부여하는 골렘 마법을. 더구나 성년도 되어 보이지 않은 여아였지.”
그 말에 갈렌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하지만 이내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던 것이다.
“여아요? 성년도 되지 않은? 그게 무슨 황당한 말씀이십니까. 아무래도 잘못 보신 게…….”
“이 내가, 전투에서 말인가?”
트리스의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상식과 검혼의 말.
갈렌의 마음이 후자로 기울며 그의 표정 역시 심각해졌다.
“……아니겠군요. 허, 이 시대에도 성년이 되기 전에 마도사의 경지에 오르는 게 가능한 일이었군요. 허허, 그게 무슨 괴물…….”
자신이 짚은 포인트와는 전혀 다른 말을 중얼거리는 갈렌.
그 후로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한참 이어졌지만, 트리스는 타박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내 갈렌 역시 마도사답게 놀란 마음을 빠르게 수습했다.
“……마법의 특이성을 보자면 그 왕국의 학파가 맞을 것 같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조사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각하의 말씀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믿기 힘들 테니까요.”
“폐하께서는 믿으실 걸세. 그거면 충분하지.”
“예. 그렇겠지만 확인은 필요합니다. 적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과대평가 역시 국력을 낭비하는 결과가 될 테니까요.”
“그래. 그러도록 하게. 다만, 확실히 조사해야 할 거야. 노비엔스에 새롭게 나타난 초인들은 전부 일행으로 보였으니까.”
“그 말씀은……?”
“그 여아가 맥라인 소속이라면, 적어도 맥라인에 알려지지 않은 초인이 다섯은 더 있다는 뜻이겠지.”
“하……. 그 조그만 왕국이 대체 어떻게…….”
“만약 정말 그렇다면 맥라인의 전력에 대해 완전히 재평가해야 할 걸세. 거사를 위한 첫 발걸음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폐하께서 검은 뱀은 어찌하겠다고 하시던가? 명분으로 썼다고 그냥 두실 분이 아닌데.”
“그건 특수감찰부에서…….”
성도의 격전 이후 3주 만에 자리에서 일어난 초인. 스스로에게 1년의 시한부 선고를 내린 검혼은 열정적으로 그 마지막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 * * 맥라인 서북부, ‘사냥꾼의 길’의 요점에 세워진 요새, 쉴드(Shield).
북부 대로의 치안 안정과 상인들의 보호를 이유로 건설되었지만, 실상 그 거대한 요새의 내부엔 오직 식량과 무기를 저장하기 위한 창고와 병사들의 숙소뿐이었다. 성벽 또한 일반 성에 비해 무척 두꺼웠으며, 내부 도로 역시 성벽과 성문으로 곧장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요새 내부에 들어와 본 이라면 누구나 전쟁을 위한 성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을 법한 구조.
그 전쟁을 위한 요새에 맥라인 2군단의 정예들이 모여들었다.
“충!”
요새 중심부의 사령관저, 집무실로 들어선 루이스가 경례를 하자 검공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력, 넓은 성벽 곳곳에 설치되는 무기와 바쁜 움직임들이 어지럽게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은 어떤가?”
“시국이 시국인 만큼 긴장감이야 어쩔 수 없지만,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
“예. 요새에 들어온 이후 컨디션이 좋아진 덕인지 힘이 넘치는 병사 몇이 사고를 친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덕분에 오히려 분위기가 더 좋아진 편이지요.”
“아…… 그런가. 허허.”
검공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요새에 설치된 마법진은 대외적으로는 비밀.
3할 정도의 활력 증가와 체력 회복률 증가는 신체 컨트롤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기사들이 아니라면 ‘컨디션’ 문제로 치부할 정도로 애매한 수치이긴 했다.
“비밀 무기를 비밀로 한 덕분에 사기가 오른다라, 이건 또 의외의 결과군.”
“저희에게는 좋은 일이죠.”
“그래, 그렇고말고. 다른 쪽은 어떤가.”
“별 이상은 없습니다. 일단…….”
루이스의 답변에는 거침이 없었다.
전쟁이야 이미 수년 전부터 각오했던바, 그리고 그 준비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2군단과 3군단이 북쪽의 쉴드 요새와 남쪽의 아머 요새를 틀어막고, 가장 큰 전장이 될 중부의 카일 성을 중심으로 모인 1군단을 4군단과 5군단이 보조하며, 유사시에는 남북으로 지원을 보내기로 한 배치가 기본.
거기에 본격적으로 전쟁의 신호탄이 오르면 50만이 넘어가는 자경단원들이 각지의 요처에 연사 석궁을 들고 모여들 것이다.
물론 자경단원들을 정식 병사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숫자에서 나오는 화력만 해도 군단 한두 개의 전력에 버금갈 것이라 짐작되었다. 더하여 석궁의 효용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수성전이라면 그 이상의 위력도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되는 든든한 저력이었다.
“좋군.”
“예.”
“훈련은 최소로 하되, 기강은 확실히 잡도록. 나라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 코앞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전한 정보가 있는데, 일단은 자네만 알고 있게.”
“예? 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번에는 폐하께서도 예측 못 한 일이라 하시더군.”
“??”
“전쟁이 시작되면, 신전의 사제들이 요새에서 병사들을 치료해 주기로 했네. 일단은 치유사 길드로 위장해서 말이지.”
“예!?”
확실히 놀랄 만한 이야기였다.
신전은 세상의 분쟁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미명하에 전시에는 어떤 국가나 영지에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몇백 년을 이어 온 그 불문율을 맥라인을 위해서 깨겠다는 뜻을 전해 온 것이다.
치유사 길드로 위장을 한다지만, 선택된 소수만 치료할 것이 아니라면 필연적으로 말이 새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간 정치 중립을 확고하게 고수해 온 신전의 위상을 크게 흔들 게 분명했다.
“……대체 왜?”
좋은 일이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루이스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진 빚 때문이라고 하더군.”
“예?”
“그런 게 있네. 아무튼 그리되었으니 병영의 중심은 비워 놓고 진형 훈련을 하도록. 경비를 위한 병력도 뽑아 놓고.”
제국에 엿을 먹이기 위한 행동이 또 하나의 큰 패가 되어 돌아온 상황.
검공의 얼굴엔 미소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 각하, 급보입니다!
문밖에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