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9)
39화
“……예?”
“매월 100만 골드씩 식량을 사서 테스론과 맥라인 성으로 보내라고.”
“정말 100만 골드요? 그것도 매월?”
“그래.”
“그게 대체 무슨……. 영지민들을 로건 님 혼자 먹여 살리실 생각이세요?”
“됐고, 적어도 1년간은 지속적으로 구매할 테니 구입처를 알아봐.”
“허어. 진심이시군요. 그렇게 영지민들을 아끼시는 분일 줄은 몰랐는데.”
필립의 말에 로건은 피식 웃었다.
‘영지민을 아낀다라…….’
글쎄, 솔직히 말하면 그냥 필요해서일 뿐이었다.
맥라인 성의 고질적인 문제점, 식량 부족은 적어도 내년까지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테스론 평야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테스론 성도 자급자족을 조금 벗어나는 수준의 소출량을 생산하는 성이었다.
거기에 맥라인의 척박함이 더해지면 결국 여전히 마이너스다.
더구나 지금은 초여름이었다.
겨울철에 비축한 식량은 떨어지고, 다음 작물 수확까진 아직 먼 시기.
이른바 춘궁기가 막 지난 타이밍이었다.
맥라인 성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다.
그가 앞으로 돌아가 벌일 일들에는 영지민의 노동력도 꼭 필요했으니 영지민의 전력을 최대한 보존해야 했다.
‘그렇지만 식량을 사는 것도 임시방편일 뿐이지.’
미래를 위해서는 더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잔말 말고 사라. 혹시 어려워?”
“아, 아닙니다. 1년 이상 장기 계약이라면 제공할 상단이 많을 겁니다. 더구나 대량이면 더 싸게 구매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럼 그렇게 진행하고, 임포릭은 가자마자 보낼 거야. 도착할 때까지 장사 준비나 하고 있어. 수송 호위로 용병대를 보낼 테니 거기 대장이랑 안면 터 놓고…….”
필립에게 세세한 지시를 해 둔 로건은 또 한 가지 의뢰를 위해 다시 녹스를 찾았다.
* * *
“……이 인물들을 찾아달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이름하고 외모 특징 한두 개 가지고요? 본명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거기다 사는 지역도 미상. 대륙을 다 뒤지라는 겁니까? 이것 참…….”
“할 수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끄응. 착수금으로 10만 골드는 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언제 찾을 수 있을지 확답도 못 드립니다.”
“한 명이라도 확인되는 대로 나한테 연락해. 맥라인 영지에 있을 거야.”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찾으려고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당연히 안 되지.”
“…….”
“한 명 찾을 때마다 착수금만큼 더 돈을 주겠다. 단, 그 정보가 확실하다면. 그러니 최대한 빨리 찾아와.”
“알겠…….”
쾅.
“허, 거참. 싸가지 하고는.”
녹스 정보원의 황당한 음성이 텅 빈 문 앞을 울릴 때.
이미 그곳을 벗어난 로건은 서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갔다.
‘미래의 무소속 초인들. 그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하지만 녹스에서 말했듯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초인의 경지에 이르러 놓고도 무소속으로 돌아다녔다는 것은 그들 하나하나가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어쩌면 로건이 알고 있는 이름조차 가명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기다릴 수밖에.’
자신은 가문을 성장시키는 일에 주력해야 했다.
여차하면 그 인재들 없이 제국 전쟁을 치를 수 있게 힘을 길러야 했고, 또 그들을 찾아내더라도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한다면 극단적인 수단까지 생각해 두어야 했다.
‘특히 주로 제국의 용병으로 활동한 그놈은…….’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는 현재에도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자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서두르고 있지?
“천천히. 아직은 시간이 있어. 괜찮아.”
로건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혼잣말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수도에서의 모든 일이 기대 이상으로 잘 풀렸는데도 조급증이 드는 것은 문제였다.
‘강박이야, 강박. 잠시라도 머리를 비워야겠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걸음이 현저히 느려졌다.
이제는 더 중요한 거래를 하러 가야 할 때였다.
조금은 느긋한 마음을 갖기 위해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을 보았다.
그렇게 간신히 마음에 여유를 찾으려던 그때, 저 멀리 거대한 탑이 보였다.
“하…… 젠장.”
불과 조금 전에 느긋하게 가자 다짐했는데 목적지를 보게 되니 해야 할 일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마탑이라…….’
마탑(魔塔, Magic Tower)은 같은 길을 추구하는 마법사들이 모여서 함께 생활하던 것이 기원이 된, 마법사의 세력이었다.
그들은 마탑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자신들의 마법과 세력을 자랑했다.
물론 마법사의 존재 자체가 희귀했으니 세력이라고 해도 많아 봐야 몇백 명 수준이었지만, 마법사가 그만큼 모이는 것만으로도 군대나 다름없는 전투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전투보다는 자신의 마법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데에 매진하기 마련이었으며,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좀처럼 마탑의 실험실 밖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스승의 존재와 배움이 절실한 하위 마법사들은 대부분 마탑에 소속되어 스승 곁을 잘 떠나지 않으려 했다.
그렇기에 맥라인 같은 촌구석의 영지에서는 마법사의 존재조차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찾기도 힘들지만 찾아도 일을 가리지.’
그것이 국가 규모의 전쟁이거나, 자체적으로 마탑과 마법사들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영지의 영지전이 아니라면 전쟁에서 마법사를 보기 힘든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 마탑이 그란디아 왕국의 수도 그랑에는 다섯이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로건이 가고자 하는 곳은 그 다섯 마탑 중의 하나.
왕도의 서쪽에 있는 대지의 마탑이었다.
딸랑딸랑.
전체적으로 황토 빛깔을 띤 칠 층 높이의 거대한 마탑.
그 1층에는 넓은 공간이 황량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얼핏 300여 평은 넘을 듯한 마탑의 1층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접수대 역시 한참을 걸어야 할 정도로 멀리 있었다.
그리고 그 접수대에는 대지의 마탑 소속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하는 바위 문양이 새겨진 황토색 로브를 입은 청년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흐음. 이보시오.”
똑똑.
“헙!”
졸고 있던 대지의 마탑 수습 마법사, 로이는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손님!”
반사적으로 일어나 크게 사죄하며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큰일 났다. 젠장.’
마탑을 방문하는 손님은 대부분 귀족이었다.
마탑이 만들어 낸 아티팩트를 구매하거나 의뢰를 하기 위한 방문객들로, 그들이 뿌리는 돈이 마탑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다.
고위 마법사들이 한 번의 마법 실험에 쏟아붓는 연구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기에,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항상 부족한 것이 마탑이었다.
더구나 요즘처럼 마탑의 사정이 좋지 않은 때에 귀한 손님의 눈 밖에라도 났다가는…….
‘응?’
한껏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자 보이는 광경은 그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튼튼해 보이지만 낡아 빠진 부츠와 각반, 비슷한 상태의 갑옷.
하프 플레이트 메일의 가운데 새겨진 불꽃 문양 역시 처음 보는 문양이었다.
심지어 얼굴은 자신의 동생보다도 어려 보였다.
로이는 그 순간 직감했다.
‘이놈. 개털이다.’
그러자 방금 저지른 실수가 가볍게 느껴지며 여유가 생겼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마 시골에서 상경한 뜨내기 귀족일 것이다.
‘이런 복장으로 고위 마법사님들과 약속을 잡았을 리도 없고.’
마탑이 유명하니 구경이나 온 것이 분명했다.
5대 마탑이 그 비싼 아티팩트를 전시라도 하는 줄 아는 얼간이들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런 뜨내기들이 내세우는 구실은 보통 똑같았다.
“마법 스크롤을 좀 보러 왔는데…….”
역시나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지자, 로이는 손님을 뜨내기로 확정 지었다.
‘표정관리. 표정관리.’
로이는 최대한 비웃는 티가 나지 않게 애쓰며 조용히 응대했다.
“마법 스크롤은 1서클 스크롤도 천 골드. 2서클은 2천 골드. 3서클은 5천 골드. 4서클은 1만 골드로 균일가입니다. 어떤 스크롤을 원하시는지요?”
마법사가 아닌 자도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일회용 마법 스크롤.
그런 기적이 가능한 만큼 만들기도 힘들고, 그만큼 가격도 비싸다.
로이는 이제 뜨내기가 당황한 얼굴로 핑계를 대며 돌아서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그의 예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허…….”
졸다 깨서는 아래위로 자신을 훑어보더니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놈.
무슨 생각을 하고 하는 말인지 뻔히 보였다.
로건은 굳이 이 한심한 놈과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 간단히 용건만 말했다.
“붕괴 마법 스크롤 150장.”
“……예?”
그 말을 들은 놈의 눈동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붕괴 마법.
4서클의 대지 계열 범위 마법으로,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몇십 제곱미터의 암벽도 한 번에 무너트릴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다만 그 발동시간이 길고 징조가 뚜렷하며, 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지반이 아닌 생물이나 다른 물질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단점 때문에 전쟁에는 도통 쓰일 일이 없는 마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이 아닌 분야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공사용으로는 최고지.’
로건은 그것으로 광산의 개발속도를 높이고, 또 다른 영지의 문제까지 해결할 생각이었다.
“……붕괴마법은 4서클 마법 스크롤로 말씀드렸듯이 하나에 1만 골드입니다. 그걸 150장이나 사신다고요?”
“그래.”
“……말씀만 하시고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시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손님.”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다시 자신의 아래위를 훑어보는 녀석.
어이없는 협박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이런 놈을 오래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붕괴 스크롤 맞아. 그러니 책임질 수 없다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불러와.”
“……예?”
“네가 팔 수 있어? 그럼 바로 거래하고.”
로건이 품속에서 쿠퍼스에서 발행한 계좌 증명서를 꺼냈다.
이 역시 마법적인 조치가 취해져 있는 위조 불가의 문서였다.
“흐업!”
그 안에 찍힌 400만 골드의 숫자를 확인한 놈이 화들짝 놀랐다.
“붕괴 스크롤 150장이니 150만 골드네. 꽤 큰 금액인데 책임질 수 있으려나…….”
이어지는 로건의 말에 놈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그, 그 정도 거래면 제 선에서 처리할 수가…….”
방금까지만 해도 확연했던 비웃는 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덜덜 떨리는 놈의 손을 보며 로건은 피식 웃었다.
“그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불러와야지?”
“예? 아, 예!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즈, 즉시 다녀오겠습니다!”
후다닥 뛰어 올라간 접수대의 마법사가 사라지고 얼마 후.
우당탕탕.
녀석이 올라간 계단에서 노년의 마법사가 구르듯 뛰어 내려왔다.
“어, 어디시라고? 아, 저분?!”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의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비틀거리며 세운 노년의 마법사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턱밑으로 자잘하게 난 수염은 반이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 수염이 보여 주는 연륜과 상관없이 좌우로 구르는 눈과 얄팍해 보이는 입술은 간사하다는 느낌이 다분했다.
“아이고. 귀한 분의 대접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지의 마탑주 레디오스 그라테입니다. 실례지만 어느 가문에서 오신 분인지?”
그 인상에 걸맞게, 마법사의 허리는 제 나이의 반도 안 되어 보이는 로건을 향해 쉽게도 굽혀졌다.
하지만 그 소개는 로건을 놀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탑주?’
아무리 150만 골드가 큰돈이라지만 달리 보면 남작령의 반년 치 예산에 불과하다.
대지의 마탑이 재정 상태가 안 좋다고 듣기는 했지만…….
‘명색이 5대 마탑의 마탑주가 바로 뛰어나온다고? 고작 이 액수에?’
하지만 그의 감각에 느껴지는 강렬함 힘, 마법사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다섯 개의 서클은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5서클 마법사. 마탑 어디를 가던 장로 이상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능력자임은 확실했다.
‘생각보다 이 마탑의 상황이 심각할 수도 있겠군.’
로건은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 정보를 염두에 두며 마주 고개를 숙였다.
“로건 맥라인입니다.”
“……맥라인?”
이름을 듣는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지만, 마탑주는 금세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견문이 얕은 바람에 실례를 했습니다.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제 방에서 편안히 얘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5대 마탑 중의 하나인 대지의 마탑. 그리고 그 정점에 있다는 마탑주가 보이는 저자세에 쉽게 적응이 되지는 않았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거래 상대의 약점은 곧 나의 이득일 뿐.’
로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서남부의 작은 영지일 뿐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구매할 능력은 충분하오니 저기 저 친구처럼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하, 하하. 저희 수습이 실수를 한 모양이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따끔하게 혼을 내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별것도 아닌 일인데요, 뭘.”
“너른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자, 저를 따라오십시오.”
말과는 달리 한순간이지만 옆을 쏘아보는 로건의 눈빛은 살벌했고, 그 대상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보니 이 야비한 인상의 탑주가 생긴 것만큼 성격도 좋지 않은 듯했지만, 굳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쯧. 자업자득이지.’
당장은 이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과연 대지의 마탑이 내가 원하는 물량을 맞춰 줄 수 있을까? 흐음.’
그가 원하는 공사를 하기 위해서 더 효과적인 마법은 불의 마탑의 4서클 폭파(Explosion) 스크롤이었다.
다만 폭파 마법은 전투용 마법으로 분류되는 만큼 동급의 다른 마법에 비해 훨씬 비싸기도 했고, 전투용 마법 스크롤을 다량으로 산다면 불필요한 이목도 끌 것이다.
그랬기에 대신 선택한 것이 붕괴 마법. 그리고 대지의 마탑이었다.
‘뭐, 마탑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한 가지 속성에 특화된 서클 마법사들이 더 전문적이기는 했지만, 왕실 마탑의 클래스 마법사들도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여차하면 물량은 나누면 된다.’
그리고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생각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로건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레디오스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