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추정 오러유저 상급…….’
언젠가부터 이름을 잃어버린 채 암검(暗劍)이라고만 불리는 사내는 목표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래도 사전 조사가 과장된 듯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이가 오러유저의 경지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한데 심지어 상급이라니?
제국의 군단장 중에서도 강자에 속하는 이들이 보통 사람 기준으로 노년은 되어야 도달하는 경지가 상급이다. 조심성이 과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제롬 디카이드의 증언이 있다고 해도 상식상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제국의 신성이라 불리던 그는 반역자를 도움으로써 신뢰를 잃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특수감찰부 내에서도 자신을 제외하고는 단 둘밖에 없었던 초인 중 하나, 비검(秘劍)이 이미 이 목표에게 당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중급 중에서도 강한 편이겠지.’
그것이 그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것만 해도 나이에 비해서 엄청난 성취다. 세기의 천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오러유저 상급인 자신과 중급인 부장이 동시에 나섰다. 암살이라는 행위의 특성상 자신과 부장이 목숨을 건다면, 오러유저 최상급도 노려 볼 만하다. 다만 적에 대한 과대평가는 불필요한 몸의 긴장만 가져올 뿐이다.
암검은 전해 들은 정보를 상식과 조합하여 그리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뒤따르는 부장, 영검(影劍)에게 신호를 보내고는 낯선 왕국의 복도를 소리도 없이 내달렸다.
왕궁 내의 시종도, 경비를 서는 병사나 기사들도 그들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티팩트의 힘에 특수한 포스 운용술이 더해진 이 잠행법은 특수감찰부가 귀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일개 소국의 병력들이 그들의 존재를 눈치챈다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기사들이나 병사들의 몸에 어린 묘한 마나가 조금 신경 쓰였다.
‘병사들까지 모두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을 리는 없으니 마법진이 있다는 건데, 맥라인에 그 정도 능력이 있었던가? 이것도 보고해야겠군.’
그렇게 사전에 없던 정보를 체크해 가며 움직이는데, 왕궁의 심처로 향하던 길목에서 그는 걸음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트랩?’
은신술과 복면으로 이중으로 가려진 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암살자로서 수십 년간 단련된 감각이 희미한 마력을 잡아낸 것이다.
복도의 바닥과 벽, 천장까지 불규칙하게 전개된 마법 트랩들.
정보에는 없는 함정이었다.
‘제법…….’
특급 이하의 요원들이라면 걸렸을지도 모를 만큼 높은 수준의 트랩.
어쩌면 지난번의 실패가 경각심을 심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지.’
그와 영검에게는 조금 귀찮은 수준에 불과했다.
– 서행. 함정을 피해 전진.
서로만 알아볼 수 있는 수신호를 나누고, 곡예를 하듯 함정과 함정 사이를 지나간다.
그 과정에 조금의 소음도 생기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가 있는 위치에 다다랐다.
‘이 시간에는 연무장.’
꼬박꼬박 일정에 맞춰 혼자 있어 주니 얼마나 좋은가.
‘예정된 출정 전날 왕의 죽음이라, 딱 좋군.’
영검에게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그는 이제까지처럼 소리도 없이 연무장으로 스며들었다. 왕실 전용 연무장 입구에서 경비를 서는 기사들 역시 그들에게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다.
기사의 그림자를 스쳐 지나가며 암검은 생각했다.
목표는 과연 언제쯤 자신들을 알아차릴까.
‘죽기 직전? 아니면 칼날이 닿기 직전?’
초인인데다 일국의 왕. 그가 해 온 평생의 암살행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거물이다.
태생이 살인자인 암검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귀신! 둘인가?’
로건의 붉은 눈이 살짝 흔들렸다.
흐릿하게 느껴지는 존재감과 은밀한 살기까지.
2년여 전, 침소까지 침입했던 놈들의 더러운 느낌과 매우 비슷했다.
하지만 검에 집중하며 감각이 극한까지 곤두선 지금에 느껴지는 그들의 움직임은 이전의 놈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정확히는 그 수준이.
‘그때 그놈 정도의 수준일까?’
한창 초감각에 자신을 가지고 있던 그때에도 튀어나온 칼날이 눈에 보일 때까지 기척이 인식되지 않았었다. 결국 아내가 각성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놈의 명은 끝났지만, 분명 놈은 위협적이었다.
지금 자신의 경지에서도 움직임이 간신히 느껴지는 정도라면, 정말 그때 그놈 수준일 수도 있었다.
‘암살자인데 오러유저라.’
그런 놈이 둘이라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2년 전이라면 말이야. 제국 놈들…….’
로건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스쳤다.
전생에 제국이 대륙을 거의 제패한 뒤에야 알려진 전략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전쟁 시작 직전, 상대 국가의 왕이 보통의 왕이거나 성군이라면 암살하고, 전생에 그란디아처럼 암군이라면 왕은 살려 두되 가장 인망 높고 능력 있는 신하를 암살한다.
전시 직전에 붕괴된 지도부는 필연적으로 군대의 혼란을 야기하기 마련이고, 결국 원래 가지고 있던 자원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제국군에 점령당하게 된다.
제국 황실 특수감찰부, 통칭 귀신들에 대한 소문이 민간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이건 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군.’
제국의 초인 전력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32명, 아니 이제 넷이 죽어 28명이었다. 물론 그들을 제외하고도 숨겨진 초인이 몇이나 더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제국이라도 초인이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오러유저라면, 더구나 귀신이라면 여기서 이놈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야.’
로건은 서서히 제게 접근하는 놈들을 향해 감각을 벼리면서도 검을 든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수련하던 상황이라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되었다.
그는 가볍게 포스를 운용하며 전용의 아티팩트들의 상태까지 점검했다.
우웅.
풍신의 부츠와 괴력의 건틀릿, 수호의 견갑이 연이어 작동하며 순발력과 힘, 내구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부가 기능을 제외하고서도, 그 스펙 업의 효과가 극도로 강화된 육체를 지닌 오러유저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이전에 고작 4클래스급 아티팩트로 평가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인 효능을 보이는 보물들이었다.
이름이야 후에 자신이 멋대로 붙였지만, 한 집단이나 한 사람이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 이 특이한 보물들의 연원을 이제는 안다.
‘검신 일맥의 유물들.’
포스코어에만 반응했던 이유, 그리고 운명에 이끌리듯 각기 다른 장소에서 그를 찾아온 이유는 같았다.
검신의 기록에는 이런 아티팩트 투구, 상체 갑옷과 하체 갑옷, 왼쪽 견갑, 그리고 버클러와 검까지 도합 9개가 한 세트의 무구라고 적혀 있었다.
모두 모았을 때 효능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지만…….
‘……무리겠지.’
대략 짐작만으로도 2천 년에 가까운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시간이 지날 동안 이 세 가지라도 남아 있는 것이,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게 잠시 신경이 살짝 분산되는 순간.
그 틈을 눈치챈 것인지 그의 목 뒤쪽에서 검은색 단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동시에 로건의 검에서 솟구친 번뜩이는 황금빛이 유려하게 휘어지며 등 뒤의 단검을 강타했다.
쾅!
요란한 충돌음과 함께 튕겨 나가는 그림자.
복면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흔들리는 기파와 검은 장갑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만 보아도 심각한 타격을 받은 듯했다.
‘제법!’
살벌한 미소를 지은 로건이 순식간에 놈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단숨에 목을 관통할 듯 찔러 들어가는 검.
복면 속 습격자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까지 감각에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놈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검을 무시한 채 옆으로 단검을 찔러 넣었다.
동시에 솟구치는 회색빛 오러.
같이 죽자는 속셈이 명확히 보이는 수법에 로건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또 하나의 단검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로건의 검이 회색빛 오러를 쳐 내고, 그 검에서 솟구친 황금빛이 살아 있는 뱀처럼 공중을 휘어 돌아 등 뒤의 습격자를 덮쳤다.
꽈아아아아앙!
앞뒤로 튕겨 나가는 습격자들은 여전히 기합도 비명도 없었지만, 그제야 이변을 눈치챈 기사들이 연무장 안으로 뛰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폐하!”
“암살자다!”
새파랗게 질린 안색.
근무 중에 암살자의 침입을 허용한 기사들은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질주해 왔지만, 그런 그들의 충성은 그 대상에게 거부당했다.
“돌아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과 함께 미친 듯이 쏘아지기 시작한 황금빛 빛줄기가 두 검은 그림자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
빛나는 황금빛 오러의 폭풍 속에서 회색 오러가 간간이 반항하듯 번뜩였다.
스각.
쾅!
꽈아아아아앙!
정신없이 교차하는 세 사람의 움직임을 기사들은 눈으로 따라잡기도 버거웠다.
“이, 이런.”
“저럴 수가……!”
권능의 충돌이 만들어 내는 폭음 속에서 한없는 무력감을 느끼던 기사들은 이내 자신들의 역할을 깨닫고, 연무장 밖으로 달려 나가며 휘슬을 불었다.
“침입자다!”
“연무장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구성하라!”
그렇게 사방이 소란스러워지는 순간.
암검은 이미 임무가 실패했음을 직감했다.
‘어찌, 어찌 이럴 수가…….’
모든 것은 목표의 무력이 예상치 못한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평가가 과장된 것이라 생각했거늘 오히려 모자랐다.
이 정도면 적어도 오러유저 상급의 극, 아니 어쩌면…….
‘설마 최상급!? 저 나이에?’
전설이나 신화 속에나 나오는 말도 안 되는 괴물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암검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회피에 바쁜 영검을 향해 빠르게 수신호를 보냈다.
– 임무 실패. 후퇴한다. 자폭해서라도 뒤를 막아라.
그 신호를 받은 영검의 기세가 더욱 흔들리는 것이 또렷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특수감찰부 요원은 기본적으로 임무 실패 시엔 자폭하라고 세뇌 교육을 받는다. 오랜 옛날, 제국 황실과 검은 뱀이 한때나마 연합하여 만들어 낸 귀신은 처음부터 적의 멸절을 위한 병기의 개념으로 설계된 ‘자원’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점에 다다라 초인의 경지에 오른 수장들은 그 자원의 ‘희소가치’ 때문이라도 자폭이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그들쯤 되면 임무에 실패하는 것이 더 이상할 노릇이었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바로 후퇴하여 자원으로서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 강령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저 괴물을 막아서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꼭 살아남아야 했다.
‘맥라인의 태양. 이자의 경지를 제국에 알려야 해. 세상을 속이고 있었다니…….’
현 제국의 제1 목표에 대한 정보가 애초부터 잘못되었다.
그 사실을 알리려면 자신은 살아야 했다.
“타아!”
습격 이래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암검의 회색 오러가 불꽃처럼 솟구치며 그를 물어뜯을 듯 달려드는 황금빛 뱀을 주춤 밀어 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검을 다시 휘두르는 대신 품속에서 꺼낸 무언가를 바닥에 던졌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짙게 퍼지는 검은 연기.
그 안에서 번뜩이는 황금빛의 주인이 분노한 듯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
정답.
특수감찰부 특제 암연탄은 최상급기사도 한순간에 심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최고급의 마비독이다.
다만, 오러유저에게는 큰 효과가 없다. 지금은 그저 시야와 감각을 교란시키는 용도로 사용한 것뿐이다.
그리고 그 틈에 그의 몸은 황금빛의 전권을 벗어나 다시금 허공에 투명하게 녹아들고 있었다.
“어딜!”
그것을 느낀 황금빛 오러가 그가 존재하는 공간 전체를 난도질하듯 덮쳐 왔지만.
“……위하여!”
목이 잠긴 듯한 걸걸한 외침과 함께 영검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무섭게 부풀어 오르는 그의 몸이 황금빛 오러를 정통으로 받아내는 것을 보며, 암검은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은신술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미친 듯이 외부를 향해 달렸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릉.
그가 연무장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왕궁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일었다.
저 정도라면 그 괴물도 꽤 타격을 받지 않았을까?
오러유저 최상급의 괴물은 공간의 권능을 다룰 수 있다지만, 저 어린 괴물은 습격받는 내내 그런 권능은 보여 주지 않았다.
‘아직은 미숙한 걸까. 아니면 역시 상급 중에서 특출난 것뿐? 그럼 아예 죽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발걸음을 돌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 목숨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영검. 그대의 희생은 잊지 않겠다.’
그렇게 속으로만 이를 갈며 질주하다 보니, 어느새 왕궁의 입구가 보였다.
정체 모를 칼자국 같은 게 길게 남아 있는 복도를 지나 입구를 벗어나려 하는 순간.
쩌억.
‘억!’
암검은 영혼이 쪼개지는 듯한 느낌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털썩.
저절로 은신이 풀어지고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그 괴물은 물론이고, 그 누구라도 뒤따라 나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실제로도 지금 자신의 주위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된……’
하지만 그에게 그 의문을 풀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치, 침입자다!”
“잡아!”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다가오는 맥라인의 병사들이 보였지만, 그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