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꽈아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릉.
연무장을 중심으로 내궁의 1/4을 날려 버린 강력한 폭발에 궁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 폭발의 진원지에서, 로건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초인이 자폭을 한다고?
“미친놈들…….”
이상을 느끼고 반 박자 늦게나마 힘을 모아 공간을 잘라 낸 것이 다행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내궁이 통째로 날아갈 뻔했다. 자신 역시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중상을 면치 못했을 테고.
하지만 이런 짓을 저지른 놈들 중 하나가 도망을 쳤으니, 마냥 분노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로건의 눈이 연무장 밖에서 다가오다 폭사해 버린 기사들의 시신으로 향했다.
그 처참한 광경에 가슴속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런 짓을 해 놓고 도망을 치시겠다? 흐, 웃기지 마라.’
쿵.
분노를 집중시켜 한 발을 내딛자, 그 분노를 반영하듯 폭발적으로 끓어오른 포스가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검으로 몰려들었다.
그와 함께 증폭된 감각이 왕궁의 입구 쪽으로 도망치는 놈의 존재를 흐릿하게나마 잡아냈다.
그 순간.
스각.
허공을 향해 번개처럼 검이 그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의미 없는 칼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로건의 손아귀에는 분명한 손맛이 느껴졌다.
분명히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 오직 신만이 건드릴 수 있다는 한 존재의 근원, 영혼이 그의 일격에 갈라지는 감각이.
‘성공……!’
신검 비전의 8식, 영혼 가르기(생령참, 生靈斬).
전설에나 나오는 오러마스터만이 쓸 수 있다는 비기이자, 몇 년 전 검혼이 그에게 보여 주었던 소울블레이드의 진화판이 이 순간 로건의 손에서 무리 없이 펼쳐졌다.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게.
“역시 기술의 숙달에는 실전이 최고군.”
상위의 권능을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신검 비전이 가진 최고의 가치.
그 비전의 힘과 특성 ‘업’의 힘이라면, 머지않아 전설의 경지라는 오러마스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새삼 들었다.
그렇게 미소를 짓던 로건의 눈에, 처참하게 으스러진 기사들의 시체가 다시금 들어왔다.
절로 굳어지는 안색.
조금 더 빨리 놈들을 처리했다면 이런 희생은 없지 않았을까. 스스로의 성취에만 기뻐하던 좀전의 모습이 부끄러워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다른 기사들이 로건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 폐하!
잔뜩 굳어진 얼굴이 그들의 걱정을 말해 주는 듯해 로건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꾸며 냈다.
“제국 귀신들의 습격이었다. 순직한 기사들의 유족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폐하! 큰일 났습니다!”
그 큰일 이미 끝났…….
“리버티와 테로난의 국왕이 암살당했습니다! 서쪽 국경으로 향하던 원군이 회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뭐?
비명처럼 터져 나온 프란시스코 로메로의 말이 로건의 말문을 막았다.
– 리버티, 테로난 국왕 동시 서거(암살).
– 후계자들은 모두 맥라인에 유학(볼모) 상태. 내부 혼란 예상.
– 각 왕국의 병력을 이끌던 초인들은 국가 비상사태에 회군을 선언.
왕실경비대장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실시간으로 전해 준 보고.
로건은 그 보고를 듣자마자 인상을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리버티와 테로난은 약소국이다. 그들의 전력이라 해 봤자 각 왕국당 제국 군단 하나와 비등할까 싶을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무려 2개 군단의 전력이 전선에서 이탈하게 된 꼴이다.
제국군이 진격을 시작한 타이밍에 들어온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그래. 나만 노리라는 법은 없지. 젠장, 빌어먹을!”
“예?”
“아니, 아니다. 왕자들은?”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귀국을 청하고 있습니다. 협약에 있는 조항이라며…….”
프란시스코의 말에 로건은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이 출정인데…….”
“어찌하시겠습니까, 폐하.”
에둘러 설득할 시간은 없었다. 당장 내일, 늦어도 며칠 안으로는 전장으로 가야 했다.
“……어쩔 수 없지. 극약 처방으로 간다.”
“예?”
“왕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내가 직접 만나야겠다.”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어리둥절한 근위기사들을 뒤로한 채, 로건은 빠르게 발걸음을 올 옮겼다.
* * *
“……친견? 우리 모두와?”
리버티 왕국의 왕위 계승 서열 1위, 1왕자 티몬 리버티가 시종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예, 그렇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뵙고자 하십니다. 지금 바로 준비해 주셔야겠습니다.”
“……알겠다.”
티몬은 표정을 관리하며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보자고 할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급작스러운 비보에 자신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마음의 결정은 내린 뒤였다.
‘로건 왕이 뭐라 하더라도 돌아가야 해. 동생들은 몰라도 나는 반드시!’
부왕이 서거하고 왕국은 혼란에 빠져 있다. 이런 판국에 자신이 돌아가서 민심을 수습하지 않는다면 재작년 평정했던 점령지에서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군대의 회군도 필수였다.
‘남의 나라를 돕는다고 우리가 망할 수는 없어.’
너무나 당연한 명분이었다. 거기다 돌아가신 부왕께는 죄송하지만, 이것은 볼모 생활을 끝내고 맥라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였다.
애초에 고작 내란을 수습하는 동안 쳐들어오지 말아 달라는 이유만으로 그와 동생들이 모두 맥라인에 볼모로 온 것 자체가 이해하지 못할 조치이지 않았나.
이제야 그 불합리한 결정을 돌이킬 기회가 온 것이다.
어차피 맥라인은 곧 망할 게 분명하다.
제국을 상대로 작은 왕국들이 연합해서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니까.
‘부왕의 죽음은 왕국을 수습한 다음 조사하면 돼.’
아마도 이제는 리버티에 점령된 피정복지의 망령들이 벌인 일일 것이다.
– 그럴 리가 없잖아. 얼마 전에 제국이 벌인 일만 생각해도…….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진실의 소리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해 버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복수의 길이 너무나도 막막해지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서 왕국을 정비한 후, 제국에 항복하면 돼. 그럼 왕실은 유지할 수 있어.’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을 맞닥트린 소인은 그저 보신밖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찾아간 대전의 주인은 그런 그의 현실 도피를 용납하지 않았다.
“리버티와 테로난의 재앙이 제국의 사주라는 것은 왕자들도 직감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리버티의 세 왕자, 테로난의 두 왕자와 공주 하나.
여섯 왕족을 앞에 두고 로건은 다짜고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다들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가운데 가장 먼저 반발한 것이 리버티의 1왕자 티몬이었다.
“확증이 있어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폐하?”
그는 자신보다 몇 살 어린 왕의 오만한 확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저 양국이 원군을 물린 탓에 나라가 ‘더’ 위태로워졌기에 하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제국이 뭐 하러 굳이 약소국의 왕을 암살하겠는가.
“음?”
일순간 자신을 쏘아보는 눈빛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더욱 마음에 안 들었지만, 대놓고 반발할 수는 없었다.
티몬은 상대의 눈빛에 위축되지 않으려 억지로 어깨를 폈다.
하지만.
“……지금 저희 고국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맥라인의 사정은 알지만, 그, 근거도 없이 무작정 도울 형편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폐하.”
그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작아져만 갔다.
“그래서, 적의 술수에 그대로 놀아나겠다는 건가?”
“적이라니요!? 제국은 맥라인의 적이지, 리버티나 테로난의 적이 아닙……!”
“형님!”
티몬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순간, 옆에 서 있던 동생이 다급하게 그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싸늘해지는 주변의 분위기. 티몬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시, 실언을 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폐하.”
“실언?”
왕이 피식 웃음을 흘리자 옆에 있던 동생, 헤이먼 리버티가 형의 앞을 슬쩍 가로막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부왕의 부고에 형님께서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무례한 언사를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폐하.”
“서른이 넘은 왕자는 아직 애 같고, 갓 성년이 된 왕자가 오히려 더 어른스럽구나. 첫째가 아닌 둘째가 왕재라, 리버티에 있을 때 들은 말이 결코 틀리지 않군.”
그 말에 형이 다시 발끈하려는 것이 느껴졌지만, 헤이먼은 그 보다 왕의 말이 더 신경 쓰였다.
리버티에 있을 때라니?
“혹 리버티에 오신 적이 있으십니까?”
헤이먼이 떨떠름한 얼굴로 묻는데, 왕이 품속에 손을 넣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
우웅.
왕의 전신에서 파란빛이 번져 나왔다.
헤이먼은 그것이 왕의 품속에 있는 어떤 아티팩트가 작동한 것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이내 왕은 갈색 머리와 갈색 눈,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인이 되어 손끝에서 ‘은빛’의 오러를 뿜어내 보였다.
동시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변조된 목소리가 대전 안을 울렸다.
“날 알아보겠나, 리버티의 왕자님들?”
평범한 갈색 머리와 험상궂은 얼굴 정도는 흔히 볼 수 있다 치더라도, 거기에 ‘은빛’의 오러가 더해진 사내의 모습은 리버티의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불과 수년 전, 위기에 처한 왕국을 일으킨 영웅.
그리고 얼마 전 제국의 음모에 의해 실종된 리버티의 은빛 사신.
“가, 가일 슬레이어!?”
“이, 이게 무슨!?”
“어떻게 오러의 색이……!?”
리버티의 왕자들이 일순간 놀란 눈으로 당황하는 그때.
– 왕비 전하 납시오.
기사의 목소리와 함께 대전의 문이 열리며, 경장 갑옷을 차려입은 붉은 머리의 여인이 들어섰다.
왕비가 여긴 왜?
혼란스러운 좌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왕비, 에일렌이 빙긋 웃으며 품속의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번쩍.
푸른빛과 함께 변하는 외모. 왕과 마찬가지로 갈색 머리, 갈색 눈의 남자로 변한 에일렌이 테로난의 왕자들과 공주를 바라보았다.
“저와는 구면이시죠. 로난 님, 에실리 님, 로트만 님?”
낮게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전신을 감싸는 붉은 오러의 갑옷이 구체화되자, 그들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아, 아머드 님?”
“아머드 하센!?”
“어떻게 당신이……!”
경악하는 그들을 보며 가일의 모습을 한 로건이 입을 열었다.
“자, 이젠 그대들이 어째서 맥라인에 와 있는지 알겠나?”
그 물음에도 여섯 왕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충격이 너무 컸던 것이다.
로건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지금 상황이 조금 곤란해. 싫더라도 강제로 협조를 구해야겠네. 물론 이것은 그대들의 고국을 위한 길이기도 하네.”
쿵 소리를 내며 옥좌에서 일어선 로건이 그들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설마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얼간이가 또 있지는 않겠지?”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앞뒤에서 쏟아지는 초인들의 기세가 전신을 강렬하게 압박하는 순간, 왕자들과 공주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내 왕이 그중에서도 가장 벌벌 떨고 있는 티몬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친한 척해, 친한 척.”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티몬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결국 이 모든 게 제국의 음모입니다.]실종되었던 리버티의 영웅 가일 슬레이어와 왕위 계승자 티몬 왕자가 서로 손을 잡고 결연한, 그리고 참혹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하는 영상이 세상에 퍼졌다.
특히나 분노(?)로 덜덜 떨리는 티몬 왕자의 음성은 듣는 이에게 절로 애처로움이 들게 할 정도로 설득력이 넘쳤다.
거기에 테로난의 수호자, 아머드 하센과 테로난의 1왕자 로난의 영상까지 더해지자 회군을 준비하던 왕국 연합의 군대는 전의로 불타기 시작했다.
게다가 태도가 변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영상들이 왕국 연합과 그들의 군단에게만 전해진 게 아니었던 것이다.
– 제국이 본격적으로 정복욕을 드러냈다.
대륙의 서부와 제국의 서쪽에 있는 나라들에까지 영상이 실시간으로 퍼져 나갔고, 제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서로 간 긴밀히 연락을 취하던 서방 왕국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로건은 정식으로 친정을 선포하며 서부 국경의 교역 도시, 카일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